〈 133화 〉 햄버거랑 초코 라떼 (2)
* * *
송선우가 햄버거를 우물우물 씹다가 나를 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어뉴.”
귀여웠다.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 먹고 말해.”
“오키. 잠만.”
송선우가 열심히 씹다가 꿀꺽 삼키고 초코 라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너 우리 깨우러 왔을 때 나 속옷만 입고 있었잖아.”
“응.”
“바로 깨웠어?”
“바로 깨웠지.”
“감상 안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감상을 왜 해.”
“보고 싶을 수 있잖아.”
“나 변태 아냐.”
백지수가 입안에 든 햄버거를 우물거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로서는 다소 부당하게 느껴지는 적개심이 읽혔다.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지수씨.”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변태 새끼.”
“갑자기 왜 욕해.”
“변태 새끼니까.”
가슴이 답답했다. 너무 억울했다.
“나 진짜 안 봤어.”
“진심?”
송선우가 눈웃음 지으면서 물었다. 한숨이 나왔다.
“어제부터 나한테 왜 그래 둘 다.”
“걍 네 반응이 개 재밌어.”
송선우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그냥 너 변태 새끼인 것도 팩트잖아.”
백지수가 말했다. 차라리 송선우가 말했다면 모를까 자기만 한 변태를 찾기도 어려울 백지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어이없었다. 그냥 한숨만 한 번 쉬고 햄버거나 먹었다. 송선우가 빙글빙글 웃었다.
“온유 삐졌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처럼 안아줄까 내가?”
또 놀리고 있었다. 씹던 버거를 꿀꺽 삼키고 초코 라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만하는 거 아니었어?”
“그만두기엔 너 놀리는 게 너무 재밌어.”
“계속 놀리면 얘 또 운다.”
백지수가 툭 던졌다. 송선우가 눈웃음 지으면서 초코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울면 내가 진짜 안아줄게 온유야.”
“너 그런 말하면 이온유 눈물 짤 수 있어 진심.”
“아니 나 진짜 그런 애 아니라고...”
“슬슬 시동 건다.”
차라리 진짜 지금 눈물이 나온다면 모를까 울지도 않는데 계속 몰아가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냥 빨리 먹고 설거지나 하면서 자리를 피하는 게 나을 듯했다. 송선우가 백지수의 오른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유 진짜 울상인데?”
분명 속삭이는 소리였는데 내 귀에도 들렸다. 백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위로해줘야 돼?”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송선우의 왼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왼손으로 가렸다. 초코 라떼를 마시면서 아닌 척 집중했다. 말소리 대신 작게 트림 소리가 들려왔다. 송선우가 꺅, 소리를 내면서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멀리했다. 송선우가 다시 눈을 뜨고 백지수를 게슴츠레 바라보았다.
“뭐야 진짜.”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수.”
“실수라기엔 너무 직격이었는데?”
송선우가 고개를 획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
“온유야 너도 방금 지수가 트림한 거 들었어?”
“어? 어.”
“트림할 수도 있지.”
송선우가 백지수를 바라봤다.
“아니 근데 나 너무 놀랬어 진심.”
“미안해 놀래켜서.”
백지수가 말하고 나서 다시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송선우가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지수가 너한텐 이런 적 없지.”
“아마 없었지?”
“그치.”
송선우가 미소짓고 백지수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수도 온유한테는 내숭 부리는 거야?”
백지수가 초코 라떼를 마시면서 눈을 크게 뜨고 송선우를 바라봤다.
“뭔 소리야, 트림한 거 그냥 실수였다니까.”
“알겠어.”
“...”
백지수가 버거를 먹었다. 왠지 모르게 내가 긴장됐다. 초코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먼저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나 설거지할게.”
“응.”
백지수가 답했다.
“내가 도와줄까?”
송선우가 물었다.
“아냐 이온유가 다 하게 내버려 둬.”
백지수가 말했다. 싱크대로 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한테도 열쇠 주면 안 돼, 안 돼, 온유만 주고 차별하는 거야, 이온유는 사정이 있잖아, 흐음, 온유만 편애하고, 아 편애 아니야, 하고 송선우랑 백지수가 대화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근데 너 좀 조심해야 되는 거 아냐?”
“왜?”
“아니이...”
송선우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더니 속삭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너 몸도 야한데 이온유가 눈 돌아가서 너 덮치면 어떡하려고?”
“... 몰라.”
“모르는 게 아니라, 아니 설마...?”
“설마는 뭔 뜻이야?”
“내 입으로 말하긴 약간 그런 거를 바라는 거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아니 근데 하게 되잖아...”
“아 됐어.”
“아니 걱정돼서 그래. 진짜 혹시 모르잖아. 지금 좀 괜찮아 보이는데 빨리 내보내거나 최소한 소파에서 자게 해.”
“내가 알아서 할게.”
“진짜 조심해.”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둘 다 조용히 먹는 건지 말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내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특별히 야한 건지 아니면 세상 모든 여자가 다 야한 건지 궁금했다. 누가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린 다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갑자기 무게감이랑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내 옆구리랑 복부를 감싸오는 팔뚝이 단단한 게 송선우가 와락 껴안은 듯했다. 입김이 오른 귀를 간질였다.
“이온유.”
“왜요.”
“말투 너무 까칠한데?”
“네가 깜짝 놀래켰잖아요.”
“미안.”
걸어오는 소리랑 한숨 소리가 들렸다. 백지수가 우리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곧 왼편에서 팔짱을 낀 백지수가 보였다.
“뭐 해?”
“껴안기.”
“둘이 사귀는 거야?”
“아니?”
“안 사귀는 거라기엔 지금 둘이 너무 애정행각 아냐?”
“애정행각 아니고 그냥 베프라서 이러는 건데?”
피곤했다. 한숨 쉬고 싶었다. 왜 나를 끼고 싸우는 건지, 갑자기 달라붙어 온 송선우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뭔 얘기하려고 달라붙은 건데?”
“너 지금 너무 공격적이다.”
“미안해 나 숙취 때문에 머리 아파서 컨디션이 좀 그래.”
“알겠어 내가 이해해줄게.”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매미도 아니면서 가슴을 밀착한 채로 계속 달라붙어 있는 송선우가 말을 꺼낼 때마다 목덜미에 숨결이 닿아 애무라도 받는 느낌이었다. 요즘 성욕도 제대로 안 풀리는데 이런 성고문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온유야.”
“네.”
송선우가 쿡쿡 웃었다. 그만해줬으면 했다.
“왜 존댓말이야?”
“빨리 용건만 말해주세요.”
“응.”
송선우가 입을 내 오른 귀 가까이에 댔다.
“나 심심하면 온다고 연락하고 올 테니까 그때 열어줘.”
“...”
“빨리 고개만 옆으로 저어봐. 그럼 떨어져 줄게.”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드디어 송선우가 떨어졌다. 아침부터 심력 소모가 너무 컸다. 여자 한 명이랑만 있다면 모를까 두 명 이상이랑 같이 있기만 하면 극도로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혼자 있기도 싫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써야 해서 힘들다면 혼자만 있는 건 외롭고 고립감이 들어서 힘들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였다.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백지수가 화이트보드는 왜 있는 거냐고 물어와서 설명했다. 어제 입었던 흰 크롭티에 크롭 청자켓이랑 청바지를 입은 송선우가 점심 타임부터 식당일을 도와야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백지수랑 같이 잘 가라고 말하며 현관까지만 배웅하고 도로 거실로 돌아왔다.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야.”
“응?”
“낮잠 자자.”
피식 웃었다. 바로 앞에 서서 날 올려다보면서 낮잠 자자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왜 웃냐?”
“그냥 너 귀여워서.”
“지랄.”
백지수가 걸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뒤따라갔다. 백지수가 침대 왼편에 누웠다. 나도 침대 오른편에 누웠다. 백지수가 옆으로 누워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야 좀 가까이 와봐.”
“왜?”
“왜 금지랬지.”
“네.”
몸을 꿈틀거리며 다가갔다. 백지수가 왼팔이랑 왼 다리를 내 몸 위에 얹었다. 너무 가까웠다. 자칫 잘못하면 백지수의 배에 내 자지가 닿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대로 자려고?”
“왜. 안 돼?”
“아니 이건 좀.”
“안 된다고 하면 내쫓을 거야.”
“...”
백지수가 몸을 더 밀착해왔다. 백지수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 때처럼 몸을 웅크리는 걸 보면 진짜 이대로 잘 작정인 듯했다. 머리에서 풍겨오는 샴푸 향이 좋았다. 새근새근 작은 숨결이 자꾸 가슴에 닿아와서 간지러웠다.
“나 좀 간지러운데.”
“알겠어.”
백지수가 몸을 펴고 상체를 더 붙여왔다. 가슴이 맞닿았다. 눈 감은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야 너도 나 안아줘 봐.”
미친년. 존나 따먹고 싶었다. 바지 속에서 껄떡거리는 자지를 백지수의 배에 비비고 싶었다. 오른팔을 들어 백지수를 안았다. 민소매 너머로 느껴지는 브라가 너무 야했다. 옷을 벗기고 브라를 풀어헤치고 싶었다. 몸이 뜨거웠다. 내 몸이 뜨거운 건지 백지수의 몸이 뜨거운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둘 다 뜨거운지도 몰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