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햄버거랑 초코 라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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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팠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눈을 뜨고 일어나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이온 음료를 꺼내고 컵에 반절 정도 채워지게 따른 다음 들이켰다. 두 숨에 다 마셨다. 바로 컵을 씻어냈다. 화장실에 가 씻고 나왔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 테이블 앞 의자를 빼서 앉은 다음 왼팔을 테이블에 대고 왼손으로 턱을 괬다. 이제 또 아침으로 뭘 만들지 궁리해야 했다. 그리고 뭐 또 할 일이 뭐 있던 것 같았는데. 괜히 눈을 찌푸리고 궁리했다. 주방 옆 벽에다가 화이트보드를 놓아둬야 했다.
일어나서 화이트보드를 넣어둔 봉투를 찾았다. 다 꺼내고 주방 근처에 시선이 잘 가는 벽에다 벽걸이를 둘 붙인 다음 화이트보드를 걸었다. 마커로 보드에 이온유라고 써봤다. 잘 나왔다. 지우개로 지우고 ‘오늘 먹고 싶은 메뉴’를 맨 위에 쓰고 왼쪽 측면에 ‘아침’, ‘점심’, ‘저녁’이라고 썼다. 표를 그려서 아침 점심 저녁을 안에 가두었다. 괜찮은 듯했다. 다시 주방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어제 술을 마셨으니까 커피는 만들면 안 될 거였다. 그럼 뭘 만들어야 되지? 두리번거려봤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대충 초코 라떼나 만들면 될 듯했다. 같이 먹을 거로 뭘 만들까 고민하다 일단 냉장고를 열어봤다. 다짐육이랑 채소가 있었다. 버거를 만들면 될 것 같았다. 냉장고를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숨이 나왔다. 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다시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다 꺼내고 선반에서도 필요한 걸 다 꺼냈다.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둔 것들을 사용할 순서대로 재배열했다. 일단 냄비에 물을 붓고 다시마를 두 조각 넣은 다음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불을 켰다. 보울에 다짐육을 넣고 간장, 설탕, 감자전분, 간마늘, 후추, 넛맥, 큐민, 정향, 참기름을 계량해서 넣었다. 물 끓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서 바로 불을 꺼주고 색을 확인했다. 아직 노란 빛이 잘 나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가서 위생 장갑을 끼고 패티 반죽을 치댔다. 반죽을 적당히 손에 쥐고 오른손 위에서 둥글둥글 굴렸다가 살포시 누르고 다듬으며 패티 모양을 만들었다. 괜찮게 나온 건 도마에다 올려놓았다. 꽤 두툼한 패티가 여섯 장 나왔다. 다시 다시마 우린 물을 확인해봤다. 색이 노랗게 나 있었다. 다시마를 건져서 생크대에 버리고 냄비에 간장, 설탕, 맛술, 올리고당, 굴소스, 생강가루, 마늘,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휴대용 버너를 찾아 그 위에 올린 다음 불을 켰다. 팬을 두 개 꺼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두른 다음 불을 켰다. 패티를 세 개씩 올린 다음 양쪽 면에 색이 예쁘게 났을 때 불을 줄이고 시간을 들여 익혔다. 데리야끼 소스가 졸아드는 것을 확인하고 숟가락으로 휘저어줬다. 더 졸아들어야 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배고팠다. 냉장고를 열어 이온 음료를 꺼내 입을 안 대고 한 모금 마셨다. 바로 다시 이온 음료를 넣고 냉장고를 닫은 다음 팬으로 뛰어가 패티들을 뒤집었다. 팬을 기울여 패티들에 올리브유를 끼얹어줬다. 데리야끼 소스를 만드는 냄비가 반절 정도 졸아든 걸 보고 불을 끈 다음 맛을 낸 채소들을 건져 싱크대에 버리고 테이블에 옮겼다. 다른 프라이팬을 휴대용 버너 위에 올리고 불을 켠 다음 팬에 햄버거 번을 구웠다. 다시 패티들을 뒤집어주고 올리브유를 끼얹었다. 젓가락을 가져와서 패티 하나의 가운데를 푹 찌르고 3초를 마음속으로 셌다가 빼서 왼손목에 살짝 대보았다. 조금 뜨거웠다. 당연히 뜨거울 거였는데. 돌이켜보니 좀 멍청했다. 싱크대에서 물을 틀어 왼손목을 식히고 패티를 굽는 두 프라이팬의 불을 껐다. 햄버거 번을 뒤집었다. 패티를 접시에 옮기고 두 팬을 다른 데에 옮겼다. 햄버거 번을 새 접시에 옮겼다. 작은 냄비를 하나 꺼내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데리야끼 소스를 조금 부은 다음 불을 켰다. 밀가루를 조금 넣고 숟가락으로 슬슬 휘저었다. 숟가락으로 한번 떠서 떨어뜨려 봤다. 농도가 막 걸쭉하지는 않았다. 후후 분 다음 숟가락에 남은 것을 맛봤다. 괜찮았다. 불을 끄고 숟가락을 싱크대에 놓았다. 도마에 양파랑 토마토를 놓고 슬라이스했다. 번 밑바닥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패티를 올리고 데리야끼 소스를 바르고 슬라이스 치즈를 올리고 양파를 얹고 토마토를 얹고 패티를 하나 더 올리고 데리야끼 소스를 바르고 번을 올려 마무리했다. 만들고 보니 꽤 묵직했다. 만족스러웠다. 다른 것도 똑같이 쌓아 올려 만들었다. 남은 데리야끼 소스는 소스를 담는 작은 그릇에 옮겨놓았다. 온도가 식으면 안 되니 호일을 대충 덮어뒀다. 이제 초코 라떼를 만들어야 했다.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생크림이랑 설탕이랑 다크초콜릿을 넣어놓고 불을 켜 약불로 조절했다.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백지수 방으로 갔다. 침대 위에 흰 레이스 팬티랑 검은 브라만 입고 있는 송선우가 이불을 왼발치에 내팽개치고 오른손이랑 오른 다리를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랑 검은 돌핀팬츠 차림을 한 백지수의 가슴이랑 두 다리 사이에 올린 채 자고 있었다. 자지가 서버렸다. 존나 야했다. 아니 이건 뭐 덮쳐달라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식으로 자는 걸까? 왼주머니에 왼손을 넣어 자지를 위로 올리고 다가갔다. 송선우의 오른 손목을 잡고 위로 올려 흔들었다. 송선우가 눈 감은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음... 으응...”
“일어나.”
“몇 신데에...”
“아침.”
“아니 술 마셨는데 좀 오래 자면 안 돼...?”
“햄버거랑 초코 라떼 준비했는데 안 먹을 거야?”
“햄버거랑... 초코 라떼...?”
“응.”
송선우가 오른 눈만 슬며시 떠서 나를 쳐다봤다.
“진짜 다 했어?”
“다 했어.”
“알겠어 내려갈게...”
“빨리 와. 지수도 깨우고.”
“으응...”
뒤돌아 뛰어서 내려갔다. 바로 냄비 앞에 가 거품기로 슬슬 섞었다. 달콤한 향이 확 풍겨왔다. 배도 고픈데 그냥 이대로 빨리 먹고 싶었다. 잘 녹았을 때 불을 껐다. 수건을 찾아 두 번 반으로 접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스팀완드를 감싸서 잠깐 틀었다. 1000ml짜리 스테인리스 스팀피쳐를 찾아 우유를 붓고 스팀완드가 살짝 잠기게 집어넣은 다음 틀어서 공기를 주입했다. 우유의 부피가 커져서 조금 올라왔다. 흰 박스티랑 분홍 돌핀팬츠를 입은 송선우랑 아까 본 차림의 백지수가 내려왔다.
“뭐야 다 안 했네.”
송선우가 장난스레 말했다. 백지수가 말없이 의자를 꺼내 앉고 두 팔을 테이블에 댄 다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송선우가 백지수 옆자리에 앉고 오른팔을 테이블에 댄 다음 오른손으로 턱을 괘서 백지수를 바라봤다.
“지수 피곤해?”
“응...”
“그러게 왜 술 마시자 했어.”
“그냥 그럴 수도 있잖아...”
송선우가 배시시 웃었다. 컵을 세 잔 꺼내 초코 소스를 깔고 스팀 밀크를 부은 다음 휘핑크림을 올리고 초코 시럽을 다이아몬드 격자무늬로 뿌렸다. 송선우가 와, 하고 감탄했다.
“너 진짜 개 쩐다. 나 바로 마셔봐도 돼?”
“어. 근데 섞어서 마셔.”
“알겠어.”
송선우가 숟가락을 들고 열심히 젓다가 숟가락을 꺼내고 입에 넣었다. 송선우의 눈이 커졌다.
“으음!”
송선우가 숟가락을 입에서 빼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진짜 개 존맛.”
피식 웃었다.
“고마워.”
“못하는 게 없네 이온유.”
“너무 금칠하지 마.”
송선우랑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내 거도 섞어줘.”
“나 숟가락 썼는데 이걸로 섞어줄까?”
송선우가 말했다. 일어섰다.
“걍 내가 숟가락 새 거 가져올게. 지수 거랑 내 거 그걸로 섞고.”
“응.”
송선우가 답했다. 숟가락을 하나 꺼내고 돌아왔다. 송선우가 지수 거랑 내 거를 나란히 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 찍었어?”
“응.”
대답을 듣고 둘 다 섞었다. 송선우가 쓴 숟가락도 왼손에 들어서 싱크대에 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송선우가 오른손 검지로 호일을 가리켰다.
“이건 버거지?”
“응.”
“열어봐도 돼?”
“응 이제 먹어야지.”
“오키.”
송선우가 호일을 열고 입을 떡 벌렸다.
“진짜 존나 크다. 이거 입에 들어가기나 해?”
“몰라 한번 해봐야지.”
“네가 먼저 먹는 거 시범 보여줘.”
백지수가 얼굴에서 두 손을 걷어내고 두 눈을 떴다.
“뭐 얼마나 크길래 그래...?”
백지수가 버거를 봤다.
“진짜 크긴 개 크네.”
“그니까. 빨리 먹어봐 이온유.”
“알겠어.”
양손으로 들고 버거를 입 가까이에 댄 다음에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봤다. 어려울 거 같았다. 송선우가 나를 보면서 미소지었다.
“어려울 거 같죠? 좀 쫄리죠? 이온유?”
피식 웃었다.
“도전.”
양손 검지랑 엄지로 버거 끝부분을 살짝 눌러 부피를 조금이라도 줄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덮치듯 빵을 베어 물었다. 송선우가 오, 하고 소리냈다.
“이걸 성공했네.”
“욕망의 아가리다 진짜.”
백지수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송선우가 아학학, 하고 웃었다.
“말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냐?”
“걍 이온유 보면 욕심 그득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백지수가 초코 라떼 잔을 들고 한 입 마셨다. 항변하고 싶었지만 입안이 가득 차서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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