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뭐라도 해야지 (4)
* * *
밥을 다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혹시 소화제 있냐고 물어봤다. 있다는 말에 선반을 뒤져 하나를 꺼내 먹었다. 설거지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차분한 느낌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볼륨을 최대로 한 다음 선반에 올려뒀다. 욕조에 손을 담가 온도를 확인해보고 몸을 담갔다. 살짝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수온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은 많이 잤는데 왜 또 졸릴까, 알 수 없었다.
눈을 떴는데 수온이 미지근했다. 깜빡 잠든 모양이었다. 물을 조금씩이라도 나오게 해서 망정이지 그냥 수도를 잠근 채로 잤다면 감기에 걸렸을 뻔했다.
그나저나 큰일이었다. 이렇게 잠을 많이 잤는데 백지수가 또 새벽에 일어나서 자위하기라도 한다면 소리를 듣고 깨버리고 말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소파에서 자야 할 듯했다. 욕조에서 일어나서 바디워시를 하고 빠르게 머리를 감았다. 수건으로 물기를 털고 옷을 입은 다음 오른손에 폰을 쥐고 밖에 나왔다. 주방에 가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 마셨다. 폰을 켜봤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목욕 ㅈㄴ 오래 하시네요]
[2층 바로 올라오지 말고 전화 먼저 거셈]
헛웃음이 나왔다. 또 자위하나, 아닐 수도 있었는데 속으로는 그럴 거라고 반쯤 확신했다. 전화 걸었다. 수신음이 네 번 들렸을 때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와, 이제 목욕 다 하셨어요?
“바나나 우유 하나도 마셨어요.”
ㅡ바나나 우유는 아무리 길게 마셔도 2분 컷 아냐? 너 대충 2시간? 목욕한 거 같은데?
“나 사실 욕조에 몸 담그고 살짝 졸았어.”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ㅡ야. 그건 졸은 게 아니라 잔 거야 바보야.
“아니 근데 2시간은 좀 과장 아니야?”
ㅡ과장 같으면 네가 지금 폰으로 시간 확인해보든가.
“몇 신데.”
ㅡ지금, 아홉 시 오십 팔 분.
“그래도 두 시간이나 한 건 아니네.”
ㅡ근데 존나 오래 하긴 했잖아 솔직히.
“그건 인정. 나 올라가도 돼?”
ㅡ어, 잠만. 잠깐만 올라오지 마. 한 삼 분? 응, 삼 분 있다가 올라와. 그리고 올라올 때 바나나 우유 하나 가져와.
“응.”
ㅡ끊어.
“알겠어.”
전화를 끊었다. 또 어떻게 지저분하게 애액을 바닥에 흘려가면서 자위라도 한 건가. 내가 자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자위할 생각을 할까, 너무 음탕해서 아뜩했다. 내가 목욕하다가 잠들지 않고 문자도 안 보고 대충 백지수 방으로 갔다면 벽에다 딜도를 붙이고 옷을 다 벗은 채로 개처럼 헥헥대면서 엉덩이를 내밀었다 빼는 백지수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발기했다. 폰을 다시 켜봤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점만]
[잠만]
[3분 말고]
[7분 있다가 와]
[알겠지?]
3분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너저분하게 자위한 모양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응.]
답장을 보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바지랑 팬티를 끌어 내린 다음 선반에 올려놓았다. 왼손으로 벽을 짚고 오른손으로는 자지를 잡고 흔들어 자위했다. 백지수의 뒤에서 몸을 밀착해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개처럼 따먹고 싶었다. 사정했다. 자지를 닦아내고 벽에 묻은 정액을 씻어내렸다. 팬티랑 바지를 다시 입고 밖에 나왔다.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백지수 생각만 했는데 발기해 버려서 자지를 위로 올린 다음 백지수 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폰을 보고 있던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에 검은 돌핀 팬츠를 입은 백지수가 나를 쳐다봤다. 백지수가 왼손을 내밀었다. 바나나 우유를 주려고 다가가는데 왼발에 물기가 느껴졌다. 아무것도 못 느낀 척 표정을 감추고 바나나 우유를 건넸다. 백지수가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바나나 우유 뚜껑을 까려고 바닥 쪽을 보던 백지수가 두 눈썹을 치켜올렸다. 시선이 따라 내려갔다. 백지수 바지에 도끼 자국이 보였다. 아니 일부러 당겨 가지고 착 달라붙게 입었나? 존나 야했다. 자지를 위로 올려둔 게 다행이었다. 백지수가 나를 올려봤다. 눈이 마주쳤다. 백지수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야 그, 너 왼발에 물기 안 느껴졌어...?”
“... 약간 느껴졌지.”
“왜 말 안 했어, 바로 얘기하지.”
백지수가 탁자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여러 바퀴 돌돌 말아 여러 겹을 빼낸 뒤 휴지를 뜯어서 내게 건넸다. 왼손으로 받고 왼발을 들어 휴지로 닦아냈다.
“내가 체중 관리하려고 평소에 물을 진짜 엄청 많이 마시거든. 근데 벌컥벌컥 마시다가 가끔 바닥에 흘려. 그때마다 바로 닦아서 치우는데, 아, 내가 왜 이걸 해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백지수가 바나나 우유 뚜껑을 벗기고 꼴깍꼴깍 들이키고 왼손목으로 입을 스윽 닦았다.
“너도 막 그럴 때 있지, 해명 안 해도 되는데 왠지 모르게 해명해야 할 거 같은 느낌 드는 때. 방금이 딱 그거였어.”
“가끔 그럴 때 있지.”
“그니까.”
백지수가 남은 바나나 우유를 다 마시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입을 열었다.
“왜?”
“휴지 줘. 내가 버릴게.”
“고마워.”
애액을 닦은 휴지를 백지수한테 줬다. 백지수가 휴지를 받고 일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침대 오른편으로 가서 드러누웠다. 소파에서 자야 했는데. 몸이 너무 당연하게 움직여버렸다. 백지수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문을 닫고 침대 왼편에 누웠다. 그냥 지금 오늘은 소파에서 자겠다고 말할까, 그럼 왠지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백지수가 옆으로 누워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또 왜?”
“... 나 내일 이수아 보러 가야 돼.”
“왜?”
“실장님이 이수아한테 명함 전달해달라고 해서.”
백지수가 왼 눈썹을 실룩였다.
“굳이? 걍 문자로 사진만 보내거나 하면 안 돼?”
“무시할 수도 있잖아.”
백지수가 흠, 하고 입 다문 채 한숨 쉬었다.
“근데 이수아 걔도 뭐 있어?”
“연기. 내가 자초지종 설명하니까, 실장님이 걔 연기 잘한다고 말한 부분에 초점 맞춰 가지고 혹시 새여동생 꿈이 연기자냐고 물어보더라. 만약 맞으면 걔도 같은 소속사 들어왔을 때 스토리 메이킹도 되고 그림 예쁘게 나올 거 같다고 한번 얘기해보라고 했어.”
“으응...”
“나 아침에 이수아 등교할 때 가서 보려고.”
“걔 언제 나오는데?”
“걔 걸어서 가 가지고 조금 이르게 나와. 그래서 나도 좀 빨리 일어나서 씻고 나가려고. 너 내일 아침 뭐 먹고 싶어? 만들고 나가게.”
“음, 고민 좀 해봐야 할 거 같은데.”
“파스타 먹을래?”
“아침부터?”
“내가 할 줄 아는 게 적어서 이제 새로 해줄 게 다 떨어졌어.”
백지수가 미소지었다.
“야. 넌 맨날 새로운 거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질릴 수도 있잖아.”
“질리면 내가 질린다고 말하지. 근데 여태 내가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내가 맨날 새로운 거 해줘서 그런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너무 부담 갖지 말라는 거지, 내 말은.”
미소지었다.
“고마워.”
“고마워 이러네.”
백지수가 왼손을 들어 올려 엄지랑 검지 둘째 마디로 내 오른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너 가끔 보면 진짜 마인드 존나 애새끼 같은 거 알아?”
피식 웃었다.
“오히려 좋은데?”
“뭐가 오히려 좋아.”
“항상 초심이라는 거잖아, 언제고 동심 간직하고 있으면.”
“진짜 개소리인데 뭐라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네.”
“그럼 개소리가 아닌 거 아닐까?”
“뭐래.”
“근데 너 내 볼 계속 만질 거야?”
“응.”
백지수가 내 오른 볼을 꼬집던 왼손 엄지랑 검지 둘째 마디로 내 오른 볼을 주물러댔다.
“너 볼 느낌 되게 좋다, 만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도 네 볼 만져도 돼?”
“에반데.”
“나만 못 만지는 거 부당한데.”
“만져 그럼. 근데 막 꼬집거나 하면 뒤진다.”
“안 해.”
오른손을 들어 백지수의 왼 볼을 쓰다듬었다. 살결이 부드러웠다. 몸을 밀착하고 키스하고 싶었다.
“왜 쓰다듬음?”
“이것도 만지는 거잖아.”
“뭐라 반박을 못 하겠네.”
“내가 이겼다.”
오른손 엄지랑 검지 둘째 마디로 살짝 잡아봤다. 부들부들했다. 섹스할 때도 이런 느낌이 들까 궁금했다. 백지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섰어?”
“...”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너 미쳤어?”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래.”
“너 진짜 이상한 거 같애.”
“그래도 너보단 정상인 듯.”
“왜 내가 너보다 비정상인데요.”
“보통 남자애가 가출하면 여사친이 자취하는 방 쳐들어와서 여사친 자는 침대에 누워 가지고 재워줘 응애, 이러진 않지. 가슴으로 품어달라고도 안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언제 가슴으로 품어달라고 한 적 있어?”
“너 내가 안아줄까 물어보면 물어보는 족족 거절 안 했잖아. 그 정도면 존나 안아달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지. 사실 말하는 것보다 더 음습하고 노골적인 듯.”
“진심 상처받는다.”
“어쩔. 내가 또 안아줄까? 상처받았으니까?”
“응.”
백지수가 피식 웃고 왼손을 내 오른 볼에서 뗐다. 백지수가 두 팔을 벌렸다.
“진짜 안아주게?”
“네가 안아달라매.”
“난 사양 안 해.”
품에 안겨들었다. 언제나처럼 가슴이 부드러웠다. 살내음이 향긋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뭐야.”
“두 번 남았잖아, 머리 맘대로 만지는 거.”
“그걸 기억하고 있네.”
“이제 한 번 또 남았다.”
“네, 네.”
“존나 덩치만 큰 애새끼.”
“응애.”
백지수가 킥킥댔다.
“아 존나 싫어.”
나도 웃었다. 오늘도 섹스는 안 할 듯했다. 그래도 앞으로도 백지수가 계속 방금 같은 식으로 나온다면 언젠가는 선을 넘게 될 것만 같았다. 내일부터는 무조건 소파에서 잠들어야 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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