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더부살이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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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이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손사레치며 아니라고 한 다음 백지수 별장 주소를 목적지로 해서 교문에 택시를 불렀다.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택시에서 내리고 차문을 닫았다. 택시가 떠나갔다. 오른 주머니를 뒤져 별장 키링을 꺼내고 대문 앞으로 걸었다. 냐옹, 하고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봤는데 잿더미가 도도도 달려오고 있었다. 백지수가 접때 잿더미는 밤에 찾아 온다고 하지 않았었나. 일단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뻗었다. 잿더미가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게 괜히 기뻐서 미소지어졌다. 한편으로는 또 우울해졌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잿더미를 왼팔로 안아들고 일어섰다. 열쇠를 꽂아 대문을 열고 도로 닫은 다음 현관문도 열고 닫았다. 잿더미가 냐아, 하고 울면서 몸을 비틀었다. 몸을 숙여 잿더미를 내려주고 유리문을 살짝 열어줬다. 잿더미가 달려갔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온유!”
백지수가 2층에서 내려오는 건지 계단 밟는 소리가 쿵쿵쿵 하고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살구색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에 회색 돌핀팬츠를 입은 백지수가 시선은 밑으로 하고 양손으로 잿더미의 몸통을 잡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잿더미의 두 앞다리를 끼워 잿더미의 배가 내보이도록 하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거의 곧바로 온 걸 보면 자위는 안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잿더미가 냐아, 하고 울었다. 계단을 다 내려온 백지수가 두리번거리다 나랑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됐어?”
백지수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뭐가.”
“뭐가는 무슨.”
백지수가 내 왼편에 앉은 다음 씨익 웃었다.
“서면사과로 끝났나봐?”
“잿더미 나 주라.”
“어.”
백지수가 잿더미를 내게 건네주었다. 양손으로 잿더미를 받고 허벅지 위에 올렸다. 잿더미가 눈을 감고 몸을 말아 자기 뒷다리에 턱을 얹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털이 보드라웠다. 잿더미의 체온이 점점 느껴졌다.
“아니 만지기만 하지 말고 말 좀 해봐.”
“열 시간 사회봉사랑 열흘 출석 정지 먹었어.”
“뭐?”
백지수가 왼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짚고 벌떡 일어났다. 잿더미가 눈을 뜨고 고개를 획 돌려 백지수를 쳐다봤다.
“아니 미친 새끼들인가? 왜 씨발 출석 정지를 처때려? 그것도 열흘이나? 너 뭐 항의 안 했어?”
“안 했어.”
“왜?”
“한다고 뭐 달라지겠어, 이미 낸 결정인데.”
“아니 끝나기 전까지는 그건 결정이라고 안 불러 미친 새끼야!”
“왜 화내.”
“아니 그냥 존나 씨발 같잖아. 쌍방인데 강성연은 피해자고 넌 가해자인 것부터 징계 존나 세게 처먹인 것까지 싹 다.”
“...”
“내가 다 억울해서 뒤질 거 같애 진짜.”
뭐라 대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그냥 틀어져버린 꿈을 향한 길과 전혀 그려본 적 없지만 그려야만 할 가수 아닌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번잡하기만 했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혼잡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내 꿈을 내가 다 망쳐버렸다는 데에서 나오는 우울, 강성연에 대한 끈적한 분노, 학교에 찾아와 내 평판을 무너뜨린 이수아에 대한 증오까지 부정적인 감정이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채 동시에 존재해서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술을 들이붓고 싶지도 않았고 뭐라도 때려부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무기력하기만 했다.
“근데 너 어떡해? 가수 돼도 학폭 논란 뜨면...”
백지수가 말했다. 깜짝 놀라서 상완으로 살짝 소름이 돋았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어도 가끔 말 없이 나만의 생각으로 빠져들고는 상대가 주의를 깨우는 말을 했을 때 이렇게 놀라곤 했다.
“나도 모르겠어.”
“아... 진짜 이 강성연 개 같은 년 어떻게 해야 되지?”
“...”
시선을 밑으로 내려 잿더미를 보며 왼손으로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라도 한눈 팔고 있지 않다가는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될 것 같았다.
“나 여기에서 좀 살아도 돼?”
“... 여기에서 산다고?”
“응.”
“... 왜?”
백지수가 다시 소파에 앉고 나를 쳐다봤다.
“나 이수아한테 엄청 화나 가지고, 마주치면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서.”
“이수아 그 새여동생 맞지.”
“응. 강성연 때문에 망한 거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강성연 말고도 이수아 탓을 자꾸 하게 돼. 애초에 걔가 우리 학교 찾아와서 내 평판을 망가뜨리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건데 하고.”
“으응...”
“솔직히 걔 마주치면 강성연한테 나 있는 화도 다 쏟아부을 거 같애. 화풀이로. 진짜 개새끼 돼 가지고.”
“...”
백지수가 오른손을 들어 내 등을 쓸어주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냥 측은했다. 경멸을 받아도 좋을 말이었는데. 고마워서 괜히 북받쳐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백지수는 정말 몇 없는 내 편이었다.
“울어도 돼.”
백지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백지수가 상체를 내 쪽으로 살짝 기울여 오며 두 팔을 벌렸다. 품에 안겼다. 나중엔 쪽팔릴지 몰라도 지금은 백지수가 간절히 필요했다. 백지수의 가슴이 닿는 얼굴이, 잿더미의 몸이 닿는 허벅지가 따뜻했다. 슬픔과 함께 울음이 잦아들었다.
“술 마실래?”
백지수가 물었다. 안긴 채로 고개를 도리질했다. 백지수가 킥킥 웃고는 오른손으로 내 뒤통수를 약하게 한 대 때렸다.
“어리광부리지 마. 갓난 애도 아니고.”
“알겠어.”
“그래서 술 마실 거야?”
“아니. 싫어 술은.”
“그럼 어떡하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땐 술 말고 답 없는데.”
“몰라. 담배 피워보고 싶어.”
“담배? 너 흡연자야?”
“아니. 한 번도 안 피워봤는데, 하회탈 쌤이 힘들고 그러면 맨날 담배 피우셔 가지고 그거 보면서 궁금해졌어.”
“호기심인 거잖아 결국엔. 걍 입에 댈 생각하지 마. 차라리 술을 마셔.”
피식 웃었다.
“결론이 왜 거기로 가요?”
“아니 담배는 중독성이 있잖아.”
“알콜 중독도 있잖아요?”
“술은 옆에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자제하게 해준다든가 해서 조절 되잖아.”
“그럼 나 술 마셔야 될 때마다 네가 옆에 있어준다는 거야?”
“그건 좀 억진데.”
“아님 나 담배 배울 거야.”
“와, 이건 진짜 애새끼식 어거지 부리기네.”
킥킥 웃었다. 울다가 웃으니 홀가분했다.
“계속 안겨 있을 거예요 우리 온유 애기?”
“네. 계속 안겨 있을래요.”
“슬슬 너 쪽팔릴 때 되지 않았어요?”
“몰라 걍 안아줘.”
“미친 놈.”
백지수가 내 머리를 감싸 안아줬다. 얼굴에 닿는 가슴이 부드러웠다. 편안했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평생 있다가 죽고 싶을 정도였다.
“아직 안 됐어?”
“난 이대로 계속 있고 싶은데.”
“지랄하지 말고.”
“아니 진짜로. 정 가고 싶음 네가 나 뿌리치고 가면 돼.”
“네가 그렇게 말함 내가 어떻게 가.”
“계획대로군.”
“계획대로 이 지랄.”
백지수가 킥킥 웃으며 양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언니가 누구 때문에 옷이 젖어서 옷 좀 갈아 입으러 가야 되거든?”
“지금 잿더미한테 말 거는 거야?”
“아니 너한테 말 건 건데.”
“난 남잔데 왜 언니인데요?”
“내가 특별히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허락해준 거지.”
“난 내 남성성을 포기하지 않겠어요.”
“너 지금 말투 개 극혐인 거 알지.”
“너 때문이야, 네가 언니라고 부르라 해서 그래.”
“이젠 진짜 논리까지 애 같네.”
“돌봐줘 그럼.”
“싫어.”
백지수가 양손으로 내 양어깨를 붙잡아 밀어내려 했다. 그냥 몸을 일으켜줬다. 백지수가 양손 검지랑 엄지로 눈물 젖은 민소매 자락을 잡고 당긴 채 일어섰다. 넓은 골반 중앙에 보이는 보지랑 맞닿은 면으로 추정되는 곳이 젖어있었다. 나를 안아주면서 흥분했나? 자지가 살짝 들려서 잿더미가 흠칫 놀랐다. 존나 음탕한 백지수가 계단을 향해 걸었다. 백지수가 세 번째 계단을 밟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너 술 안 마실 거야?”
“모르겠어.”
“알아서 해.”
“너는?”
“너 마시면 나도 조금 마셔줄 순 있어.”
“알겠어.”
“그래서, 마셔?”
“조금.”
“어.”
백지수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급속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잿더미를 어루만지며 달랬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학폭위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열흘 출석 정지를 받았다고 일일이 보내면서 시간을 죽였다. 문자를 다 보냈는데도 백지수는 내려오지 않았다. 또 자위하나. 여태 봐온 대로라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괜히 백지수가 야속했다. 난 지금 백지수가 필요한데, 백지수도 그걸 알 건데, 내 심정을 다 무시하고 자위에만 빠져있다는 게 괜히 섭섭했다. 한편으로는 꼴리기도 했다. 배려심 깊은 백지수가 내가 자기를 필요로 하는 걸 알면서도 바로 내려오지 않고 자위를 한다는 건 백지수가 다른 모든 의무와 욕구를 제쳐둘 만큼 성욕이 커다랗다는 방증이었으니까. 더불어 나를 안아주면서 보지를 적신 걸 보면 내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극도로 흥분해버리는 이온유바라기라는 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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