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118화 (118/438)

〈 118화 〉 학폭위

* * *

그랬냐. 미안하다 온유야, 괜히 데려왔어. 하회탈이 흡연실에 들어가 담배 세 개비를 연거푸 피웠다. 학폭위 열릴 수밖에 없겠다. 내가 미안하다. 교무실에 그 바닐라베이지로 염색한 여자 누구야? 이온유 새어머니래. 아 진짜? 너무 젊던데? 여자애들이 수군거렸다. 귀가 좋은 게 저주스러웠다. 자리에 앉았는데 나를 피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애가 두어명 있었다. 피해망상인가? 눈 감고 책상에 엎드렸다. 온유야 일어나. 어떤 남자애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상담쌤이 불러. 응. 찾아가서 대충대충 답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신 차려라 온유야. 하회탈이 지나가듯 말했다. 네. 어떻게 하면 정신 차리는 건지는 몰랐다. 4월 첫째 주 수요일에 학폭위가 열린다고 하회탈이 말했다. 무조건, 무조건 반성한다고 해라. 우발적이었다고, 화해하고 싶다고 해라. 네. 할 말을 정리해 대본처럼 써서 인쇄했다. 학폭위가 열렸다. 강성연한테는 변호사가 있었다. 저 애가 가해자예요? 학폭위 위원으로 참석한 누군가의 어머님이 누군가의 어머님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네. 잘생겼네요. 진짜 잘생겼긴 해요,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헛웃음이 나왔다. 웃는 거 봐요, 이런 심각한 상황에. 심정만으로는 울고 싶었다. 옆에는 어머니라기에는 안 닮았는데... 새어머니라네요. 세상에. 묻고 싶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진지하지 않은 사람은 정작 누구냐고. 진술해야 했다. 이야기가 깁니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아버지가 재혼하여 제게 새어머니와 새여동생이 생겼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기에 주변 친구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새여동생도 저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저라는 새오빠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어느날 새여동생이 자기 방에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목욕하러 욕실로 들어갔을 때 그 애의 썸남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제가 받았습니다. 그 남자애는 제가 새여동생의 남자친구인 것으로 착각하고 전화를 끊으며 걸레년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걸 여동생에게 전달했고 여동생은 그 녀석과 정리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그 녀석이 다시는 여동생에게 달라붙지 않게 여동생의 남자친구인 척 여동생이 친구들과 있을 때 얼굴을 비추곤 했습니다. 여동생과는 상의하지 않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애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쁜 애여서 여동생을 어장관리녀라고 매도하며 평판을 무너뜨렸습니다. 여동생의 복수심은 저를 향했습니다. 여동생은 제 학교에 찾아와 제가 자기를 따먹었다는 둥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처럼 말하며 제 평판을 무너뜨렸습니다. 바로 다음날 강성연이 점심 시간에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가 듣지 않는 줄 알았는지 걔 말대로 존나 따먹은 거 아냐, 라는 말을 하고 씨발 사는 집도 같은데 그 얼굴에 그 몸매면 나 같아도 존나 개 따먹었을 듯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에는 참았으나, 제가 교실 안에 들어갔을 때 저를 흘겨보는 것을 보고는 화를 참지 못해 때렸습니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는 몇 번이고 그런 식으로 저를 험담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화가 가라앉고 났을 때는 아차 싶었습니다. 성연이랑은 밴드부로 같이 활동하며 꽤 친한 사이였으니 말입니다. 그날 강성연은 병원에 입원했고, 저는 사과하려 과일 바구니를 사고 담임 선생님과 함께 저녁 시간대에 병실에 방문했습니다. 강성연은 담임 선생님께 잠시 자리를 비워달라했고 저 보고 용서해줄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를 품으며 나가라고 했습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제가 사실 새여동생을 따먹었지 않았느냐는 폭언뿐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강성연이 말한 것을 녹음하지는 않았지만 선명히 기억합니다. 내가 지금 네 사과 받아주면 나만 존나 쓰레기 새끼되는 거잖아. 나는 네 새여동생으로 근친 드립친 개새끼인데다가 존나 처맞기까지 한 병신인데 너는 가족 뒷담 같은 거 안 참고 바로 달려들었다가 사과하면 바로 용서해주는 대인배되는 거잖아. 그래서 또 때렸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결코 긍정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또 반성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폭언을 들었다 한들 모든 갈등은 말로써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손찌검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잠을 설쳐가며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성연이와는 제법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해온 친한 친구사이였기에 가능하다면 성연이와도 다시금 화해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건 거짓말이었다. 친한 사이였다는 어필은 폭력의 지속성이 없었다는 걸 간접 제시하는 거였고 다시금 화해하고 싶다는 말은 내 반성 정도를 재차 환기하는 거였다. 아차 싶었다고 말했던 것도 싸대기를 때린 것이 우발적이었음을 어필한 거였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잘못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 말을 반복하다 보니 또 억울해져서 눈물이 글썽 맺혔다. 저만 잘못한 거예요? 제가 그렇게 잘못한 거예요? 온유야... 윤가영이 내 왼손에 오른손을 얹었다. 어머어머. 누가 그걸 또 봤는지 뻐끔거렸다. 미칠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마음 속으로 그 말만 수십 번을 반복했다. 아줌마들이 잠깐 수근거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갔다. 위원들이 협의했다. 서면사과와 사회봉사 열 시간, 그리고 열흘 출석 정지가 내용이었다. 말하다가 언제 무심코 실은 반성 안 한다는 말 따위를 입 밖으로 내뱉었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의견진술 기회가 있었는데 뭐라 안 했다. 어차피 정해진 거 말한다고 뭐 바뀔까, 라는 생각도 있었고 다 귀찮기도 했다. 스스로도 너무 충동적인 것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위원들이랑 있는 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냥 다 좆 같았다. 다 꺼져버렸으면 했다. 그런데 그럴 수는 없어서 그냥 내가 꺼지기로 했다. 학폭위가 끝나고 하회탈이 불렀다. 윤가영 보고 혼자 집에 가라고 했다. 옥상으로 갔다. 하회탈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회색 연기가 짙었다. 너 왜 그랬냐? 왜요? 왜요는 인마, 네 인생이 달린 거잖아, 이 답답한 새끼야. 하회탈이 왼손을 주먹 쥐고 자기 가슴을 쳐댔다. 아이고, 성미는 불 같아 가지고. 왜 그런 거냐 대체. 몰라요. 몰라요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재고해달라고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해야지 계속 그렇게 얼빠져서 있어도 되는 거냐? 응? 하회탈이 담배를 다 태워서 바닥에 버리고 짓밟은 다음 새 담배를 입에 물어 불 붙였다. 하회탈이 눈물을 글썽였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쌤, 울어요? 연기 때문에 눈물 나오는 거야 인마. 누가 담배 연기로 울어요. 하회탈이 중지랑 검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 손을 밑에 내리고는 후우, 하고 가늘고 긴 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못난 거 같아서 그런다. 너 힘들어하는 거 알았는데 평소에 내가 너 조금만 더 챙겨 줬으면, 성연이 보러 병실로 같이 가자고만 안 했으면, 성연이가 자리 비워달랬을 때 아니라고만 했으면, 그냥 다 후회된다. 내가 잘못해서, 그래서 너 잘못된 거 같아 가지고. 하회탈이 눈으로만 울었다. 미안하다 온유야. 내가 잘못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이 뭘 잘못했어요. 다 제가 그런 건데. 담배연기가 눈을 건드렸다. 하회탈이 한 모금 빨고 하늘을 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회색이 먹구름 낀 하늘로 흐물흐물 흩어졌다. 내가 왜 우는지 아냐? 몰라요. 내가 교사 부임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진짜 딱 한 명 기억하는 자살한 학생이 있는데, 그 애가 자살하기 전날 내가 복도 지나면서 그 애 안색이 안 좋은 걸 슬쩍 봤었다. 근데 그때 위로해줄까 생각했다가, 이미 지나쳐갔기도 했고, 나도 조금 피곤했고, 다른 누가 또 위로해주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갔었다. 근데 그다음날에 그 애가 학교 안 왔다는 소리 들리고 며칠 뒤에 실종됐다고 소식 들리고, 나중에는 시신으로 발견됐다더라. 부검도 했는데 타살로 추정되는 흔적 하나 없는 그냥 완전한 자살. 그때 지나치면서 봤던 그 애가, 이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걔가 너무 내 가슴 한편에 콕 박혀버려서, 난 교사 생활하면서 절대로 애들한테 안 소홀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하회탈이 담배를 한 입 빨고 연기를 뿜었다. 그래서 지금 왜 우시는 건데요. 그 애가 복도에서 보여준 얼굴이랑 지금 네 얼굴이랑 너무 닮아서 우는 거다 이 자식아. 저 안 죽어요 선생님. 그래, 그거 거짓말이어서 너 죽으면 진짜 내가 너 죽여버릴 거다. 죽었는데 어떻게 죽이시게요. 두고 봐라 내가 못 하나. 제가 선생님보다 더 오래 살 거예요. 제발 그래줘라. 하회탈이 다 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짓밟은 다음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 붙였다. 미안하다 온유야, 미안해... 안 미안하셔도 돼요. 내가 미안한 걸 어떡하냐. 빗방울이 머리에 떨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 오는 거 같아요. 들어가야겠네. 하회탈이 담배를 한 모금 쪼옥 빨아 연기를 뱉고 바닥에 버려 짓밟은 다음 허리 굽혀 꽁초 세 개를 다 집고 외투 오른 주머니에 넣었다. 같이 옥상문 가까이로 걸었다. 하회탈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열지는 않았다. 온유야. 네. 휴지 같은 거 있냐? 왼주머니에서 할 말을 인쇄한 종이를 꺼내 반 찢어서 건넸다. 고맙다. 하회탈이랑 같이 눈물을 닦았다. 이제 우리는 내려가야 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