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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14화 (114/438)

〈 114화 〉 경위 작성 (2)

* * *

“너 여기로 와서 앉아봐.”

백지수가 말했다. 서유은이 종이를 밑으로 내려서 백지수를 바라봤다.

“네? 저요?”

“아니. 이온유.”

“왜요?”

자기가 말해놓고도 너무 공격적이었다 싶었는지 서유은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왜냐는 게 그니까, 제가 움직여도 되는 일이에요...?”

백지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너 읽는 거 옆에서 같이 보려 했던 거니까.”

“그럼 제가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되긴 하지.”

“제가 언니 옆으로 갈게요. 오빠는 글 써야 되니까.”

“응.”

서유은이 일어서서 백지수 옆에 앉고 어깨를 붙여서 종이를 공유했다. 보기에는 퍽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입을 열었다.

“둘 다 지금 폰 갖고 있지 않아? 사진 찍고 공유하지.”

“그래도 되긴 했는데, 굳이?”

“그니까요. 같이 읽는 그게 있는 건데.”

“죄송합니다.”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근데 사실 저 지금 폰도 없었어요.”

백지수가 눈을 크게 뜨고 서유은을 바라봤다.

“왜?”

“저 아침에 폰 내 가지고요.”

“안 내도 되는데?”

“학교에선 폰 내는 게 익숙하다고 해야 되나...? 중학교 때부터 그래왔어서, 그리고 안 내면 왠지 공부도 안 하고 그럴 거 같아서, 저는 그냥 아침에 바로 내요 무조건.”

“대단하다. 난 해볼래도 엄두가 안 나서 그렇겐 못 하겠던데.”

“근데 진짜 처음엔 금단 증상처럼 심심해져도 나중에 익숙해지면 괜찮은 거 같아요.”

“으응. 이제 읽자.”

“넹.”

서유은이 백지수에게 달라붙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종이를 맞들었다. 둘이 키스하면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 진짜 돌았나? 고개 숙여 다시 글을 쓰려고 펜을 붙잡았다. 흐름이 끊긴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글 내용이 이어지는 대신 둘이 부둥켜 안아서 혓바닥을 뒤섞는 상상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서유은은 손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서 꼼지락대다가 겨우 백지수의 몸을 붙잡는 데에서 그쳤고 백지수는 고개를 살짝 꺾어 입술이 잘 맞닿을 수 있게 하고 오른손을 서유은의 바지 속으로 넣어 아직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보지를 건드렸다. 하움, 언니이, 흐읍, 이상해요오, 라고 서유은이 말하고, 가만히 있어봐, 쯉, 기분 좋아지는 법 알려줄게, 라고 백지수가 몰아붙였다. 그 역으로 서유은이 눈웃음 치면서 왼손 검지랑 중지로 백지수의 보지를 쑤시는 모습도 상상됐다. 거기에서 더 나가서 둘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자지를 빨다가 정액을 입으로 받아주고 서로 얼굴을 붙잡고 나눠먹는 모습까지 떠올랐다. 그만 상상하고 싶어도 생각은 이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다 벗은 서유은이 소파 팔걸이를 배게 삼아 눕고 서유은처럼 나신인 백지수가 내게 엉덩이를 내밀어 개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서유은의 보지를 핥아댔다. 백지수의 보지는 충분히 젖어있었다. 바지랑 팬티를 자지가 드러나도록 살짝 내리기만 하고 곧장 자지를 박아넣었다. 한숨이 나왔다. 펜을 내려놓은 다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좆이 만들어 낸 것 같은 상상이 빨리 가시기를 기다렸다.

“오빠 괜찮아요...?”

“이온유가 왜? ... 왜 그래?”

“아냐 나 괜찮아.”

“지금 우는 거 아니지?”

“안 울어. 그냥 갑자기 피곤하다고 해야 되나, 그래서 그래.”

“너 말 없이 그럼 걱정돼. 툭 하면 울어 가지고.”

“네? 오빠가 툭 하면 운다고요?”

“어? 응. 얘 울보야 알고 보면.”

“아 진짜요?”

“아니 또 뭔 소리하는 거야.”

“너 울보 맞잖아.”

“오빠 우는 거 저도 한번 보고 싶어요...”

“며칠 있어 봐. 꽤 금방 볼 수 있을 걸.”

“내가 우는 건 왜 궁금한 거야 유은아?”

“그냥 상상이 잘 안 돼서요...?”

두 손을 치우고 눈을 두 번 깜빡인 다음 서유은을 바라봤다.

“안 보여줄 거야.”

“지수 언니만 편애하시는 거예요...?”

“아니 이게 어떻게 편애야.”

“저만 안 보여주시는 거잖아요.”

“애초에 보여주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우는 게.”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저 진짜 한번은 보고 싶은데...”

“볼 수 있을 거야.”

백지수가 말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절대 안 울 거야.”

“네, 네.”

오른손에 다시 볼펜을 쥐고 마저 쓰기 시작했다. 세 번째 장을 절반 정도까지 쓰니 그래서 주먹을 날렸다는 내용까지 도달했다. 몇 줄 더 적다가 그리하여 이렇게 경위를 써냈다는 말을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한번 훑어 검토했다. 역시 이야기 전달에만 치중해 있어서 경위서라는 말을 쓰기에는 부족했다. 종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려다가 백지수가 나를 보고 있는 게 보여서 종이를 건네주었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받고 바로 서유은이랑 붙어서 읽어나갔다.

“개 미친년이네 강성연.”

백지수가 말했다. 강성연이 했던 말을 직접 인용한 부분을 읽은 모양이었다. 곧 서유은의 표정도 혐오와 경악으로 물들었다.

“성연 선배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존나 미친 거지.”

“진짜 개 극혐... 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아... 너무 싫어요.”

“극혐이라 해도 돼, 맞으니까. 괜찮아.”

웃음이 나올 듯했다. 서로 때렸는데 욕먹는 건 강성연 뿐인 게 너무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불쌍하기까지 해서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성연 선배 보기 힘들 거 같은데 저 어떡해요?”

웃었다. 참을 수 없었다.

“그 정도야?”

“아 저 진짜 싫어요, 이런 말하는 사람.”

“근데 밴드부에서 내쫓거나 할 순 없어, 그럼 완전 따돌리는 거니까.”

“그냥 지가 알아서 나가지 않을까? 쪽팔려서라도.”

백지수가 말했다.

“몰라 어떡할지.”

“화해는 할 거야?”

“해야 할 거 같아. 학폭위 선처 받으려면.”

“오빠 학폭위 열려요?”

“응. 순간 이성 잃어서 너무 때렸나봐.”

“흐으음... 이런 말하면 안 되는데, 진짜 맞을 만했어요.”

“그니까. 잘 팼어.”

할 말이 없어서 멋쩍게 웃었다. 누가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는지 덜컥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백지수가 물었다.

“하회탈 쌤일 걸.”

일어서서 문을 열렸다. 하회탈 쌤이 서 있었다.

“어 온유야.”

하회탈이 내 너머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뭔데 말동무를 둘이나 끼고 있냐?”

고개만 돌려 뒤를 봤다. 서유은이 어, 어, 거리다가 소리를 냈다.

“제가 들어와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저도 그냥 찾아간다고 하고 온 거예요.”

백지수가 말했다.

“그래. 근데 온유가 거절을 안 한 게 문제라고. 근데 유은아, 너 오늘 모의고사 아니냐?”

“앗, 맞아요.”

“영어 시간이잖아. 빨리 교실 들어가.”

“넵!”

서유은이 빠릿하게 일어서서 걸어왔다. 비켜줬다. 서유은이 특목실 문 밖에 나가고는 뒤돌아 두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저 갈게요!”

“어, 잘 가.”

백지수가 얼빠진 표정을 하고 답했다.

“잘 가.”

“...”

하회탈이 가만히 서유은이 멀어지는 걸 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 돌려 나랑 백지수를 봤다.

“뭐냐 쟤?”

“그냥 유은이가 좀 활기차요.”

백지수가 말했다.

“그런 거 같다. 너도 나가봐라 지수야.”

“네.”

백지수가 특목실을 나갔다. 하회탈이 문을 닫고 잠근 다음 안쪽으로 네 발짝 들어왔다. 세 발짝 디뎌 가까이 다가섰다.

“온유야.”

“네.”

“너 친구한테 주먹을 휘둘렀으면 최소한 반성하는 모습은 보여야 되는 거 아니냐? 말리는 애들도 한 대씩 쳤다매? 잘못한 거 되새기고 있어도 모자랄 놈이 아무 일도 없던 거처럼 바로 여자애들이랑 시시덕거리고 있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지금? 마음 속에 죄의식이라는 게 없어? 이러는 게 정상이야?”

“... 죄송합니다.”

“겉으로만 죄송해 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하회탈이 오른손으로 내 왼어깨를 두 번 토닥였다.

“그래. 믿는 선생님 실망스럽게 하지 마라.”

“네.”

“쓴 거 가져와봐.”

“네.”

테이블에 있던 종이를 모아 순서대로 쌓고 모서리가 딱딱 맞게 정리한 다음 일어나서 양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하회탈이 오른손으로 받고 왼쪽 벽에 등을 기대고는 빠르게 읽어나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두 번째 장을 넘어 세 번째 장을 읽고 있었다. 얼마 안 가 하회탈이 종이에서 시선을 떼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이리 잡소리가 많냐?”

“이해시키려면 필요한 얘기라서요.”

하회탈이 피식 웃었다.

“자존심은 또 세요.”

“...”

하회탈이 종이를 돌려주려는 건지 도로 내게 건넸다. 양손으로 받았다.

“너 말할 때도 글 쓸 때처럼 조리있게 할 수 있냐?”

“그러려고 노력은 할 수 있죠.”

“글이랑 말이랑 호흡이 다르다.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면 입으로 뱉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게 좋아.”

“네.”

“영상은 토론보다는 연설 같은 거 찾아봐라. 넌 알게 모르게 공격성이 좀 있어서 토론 같은 거 보면 역효과날 거 같애.”

“네.”

“근시일 내로 학폭위 열릴 거다. 준비 잘 해.”

“알겠어요.”

하회탈이 여전히 벽에 등을 기댄 채로 팔짱을 꼈다. 말을 할 거 같았는데 정작 입은 안 열고 오른손을 올려 검지랑 엄지로 콧등을 누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자 밖에서 애들이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하회탈이 입을 열었다.

“근데 온유야. 네 부모님 중 한 분 정도는 불러야 될 수도 있는데, 누가 오시냐?”

아버지는 안 됐다. 새어머니도 싫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부를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마음 고생하시는데 당신의 자식이 폭력을 휘둘러 학폭위가 열렸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

“... 새어머니요.”

“알겠다. 나가자.”

하회탈이 고개를 주억이며 벽에서 등을 뗐다.

“네.”

하회탈이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나가서 옆에 서 있었다. 열쇠로 문을 잠그고 볼펜과 함께 하회탈에게 건넸다. 하회탈이 오른손으로 받고 입을 열었다.

“수업 준비해라.”

“네.”

반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귀가 조치 같은 걸 시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하회탈이 내 편을 들어 목소리를 내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마냥 고마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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