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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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목을 잡아서 억지로 떼어냈다. 이수아가 그대로 주저 앉아서 내 왼다리에 두 팔을 감고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더듬거려 내 자지를 만지작거렸다. 미친 년이라고 욕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윽, 막 따먹어도 돼애... 싫다고, 흡, 안 할 테니까아... 밖에서도 보지 벌릴 테니까아... 흑, 버리지 마아... 씨발 년이라고 욕도 할 수 없고 다리를 털어서 떨쳐낼 수도 없었다. 그러면 내가 진짜 쓰레기로 보일 테니까. 오빠 자지도, 끅, 빨라는 대로 빨게... 머리가 뜨거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정작 내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자지 섰잖아아... 흑, 오빠 아직 나 먹고 싶은 거잖아아...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는 나는 남들의 시선에서 어떻게 보일까? 어떤 변명도 못 하는 것으로만 보여서 이수아를 따먹을 대로 따먹고 나 몰라라 하면서도 몸을 만지니까 자지나 세우는 쓰레기 새끼로 비춰질까? 억울했다. 얘들아 좀 비켜봐라, 뭐 이리 많이 모였어? 고개를 돌려 봤다. 하회탈이 애들을 비집고 다가오고 있었다. 시선을 내려 이수아랑 내 하반신을 보더니 미간을 좁히고 인상을 팍 구겼다. 평소가 하회탈이라면 지금은 일본의 오니 가면 같았다. 뭐냐 온유야? 오니 가면이 대답도 안 듣고 두리번거렸다. 구경하지 말고 가라 얘들아. 애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지 발을 안 뗐다. 선생님 말 안 들려? 가라고! 오니 가면이 호통쳤다. 슬금슬금 빠지는 애들이 생겨서 길이 약간 트였다. 온유야. 그 애 데리고 따라와라. 이수아를 내려다봤다. 계속 훌쩍이고 있었다. 호흡부터 몸의 잔떨림까지 전부 엉망이었다. 누구든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동정을 할 수밖에 없을 모습이었다. 미친 년이 영화만 처보더니 연기력이 경지에 달한 모양이었다. 몸을 굽혀 팔을 억지로 떼어냈다. 풀리자마자 곧장 다시 내 다리를 끌어안아 왔다. 무릎을 굽혀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할 만큼 했잖아. 끅, 나 오빠 사랑해애... 멈추지 않을 모양이었다. 팔을 억지로 떼내고 오른팔을 무릎 뒤에 넣고 왼팔로 등 뒤를 받친 다음 몸을 일으켜 이수아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이수아가 내 상체를 꼬옥 껴안고 사랑해를 연발했다. 좆 같았다. 그대로 오니 가면의 뒤를 쫓았다. 뜻을 헤아리기 싫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걸었다. 도대체 어떤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생기고 떠돌까. 삽시간에 퍼질 것들을 적절히 교정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내가 숨기고 싶었던 가정사를 공개하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할 텐데. 모든 게 막막했다.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교장실로 들어갔다. 외부와 단절된 듯 정적이었다. 소파에 오니 가면이 앉아있었다. 문 잠그고 와서 앉아라. 오니 가면이 말했다. 다리를 굽혀 오른손으로 문을 잠그고 나서 오니 가면의 반대편에 앉았다.
“뭐냐?”
오니 가면이 물었다.
“새여동생이요.”
“... 계속 안겨 있을 거야?”
오니 가면이 말했다. 이수아가 내 품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는데 표정은 또 무표정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가증스러웠다. 이수아가 다리를 펴 바닥에 발을 디디고는 내 옆 자리에 거리를 조금 두고 앉았다. 오니 가면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이수아를 봤다가 나를 바라봤다.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옆에 새여동생? 얘가 말한 거 중에 어디까지가 사실이야?”
발끈할 뻔했다. 추스렸다.
“다 거짓말이에요. 그냥 저 엿 먹이려고 한 거예요.”
오니 가면이 이수아를 봤다.
“이온유 말이 사실이야?”
“...”
이수아가 입을 다물고 오니 가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목을 조르고 싶었다.
“온유야.”
“네?”
오니 가면이 양무릎에 팔꿈치를 댔다.
“솔직히 교사 생활 수십 년하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거든. 그래서 나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지금도 너랑 네 새여동생, 이름이 뭐냐?”
“이수아요.”
“응. 너랑 수아를 따로 격리해서 각자 얘기 들어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복잡해. 근데 네가 막 양아치 같은 애도 아니고 오히려 행실 바른 모범생이라서 네 말을 믿어주고 싶기도 해 가지고 이렇게 듣고 있는 거야.”
“... 네.”
“그래.”
오니 가면이 이수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수아야?”
“...”
이수아가 오니 가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오니 가면이 헛웃음을 짓고 나를 봤다.
“얘 왜 이러냐 온유야?”
“저도 모르겠어요.”
이수아를 봤다.
“말 좀 해봐.”
“저 내보내주세요.”
이 미친 년이 왜 이럴까.
“왜?”
오니 가면이 물었다.
“나가고 싶어요.”
“그래. 나가도 되는데, 하나만 얘기해주고 나가라.”
“저 할 얘기 없어요.”
이수아가 일어섰다. 왼손목을 잡아서 걸음을 못 떼게 막았다. 오니 가면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나만 듣자 수아야.”
“뭐요.”
“네가 복도에서 말한 게 온유 말대로 다 거짓말이야?”
“제가 거짓말이나 하려고 왔을 거 같아요?”
오니 가면이 얼굴을 더 구겼다. 학생에게 무시받는다고 느낄 때면 과거 체벌이 가능했던 시기의 모습이 언뜻 드러난다고, 선 넘지 않게 조심하라고 나이 드신 음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게 문득 기억났다.
“주어진 질문에 대답이나 해, 선생님 상대로 말장난하지 말고.”
“...”
“자리에 앉아라.”
“제가 왜요?”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마주보고 얘기하는 게 사람이랑 대화할 때 차려야 할 최소한의 예의란다 수아야. 얘기하기 싫다는 티 팍팍 내면서 앉아 있는 사람 앞에서 일어서거나 선 사람 앞에서 앉거나 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
이수아가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렸다. 뭐가 억울하다고 울까, 열이 솟아올랐다.
“이온유 이 새끼는 맨날 저 내려보는데, 이 새끼는 왜 저한테 예의 안 차려요?”
“... 온유가 평소에 널 부당하게 대했구나.”
반박하고 싶었다. 그래도 오니 가면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겠구나 싶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온유가 어떻게 했니?”
“이 개새끼가, 윽, 우리 엄마한테 막 좆 같이 굴고. 흑, 저 학교에서, 흡, 어장 관리하는 씨발년으로, 끅, 만들었단 말예요오...”
이수아가 자리에 앉아서 오른손등으로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온유가 먼저 괴롭혀서 힘들었구나.”
“윽, 이 개새끼, 흡, 좆도 모범생 아니고, 끅, 그냥 존나 생양아치 새끼예요...”
오니 가면의 표정이 풀려서 도로 하회탈로 변해갔다.
“온유가 양아치였구나.”
“읍, 저한테 막, 끅, 오빠 자지 보고 싶어서 그러냐고 그러고, 윽...”
하회탈이 다시 오니 가면으로 바뀌어서 나를 쏘아봤다. 말 없이 표정만으로 내게 진짜냐고 물어오고 있었다. 살고 싶어서 본능적으로 고개저었다.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있는데, 윽, 찾아와서 존나 남친인 척 하고, 흡...”
“온유가 몹쓸놈이었네, 이제 보니까.”
이수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해줘서 고맙다. 이제 나가도 돼.”
이수아가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있을 모양이었다. 하회탈이 입을 열었다.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 온유야 잠깐만 나와봐라.”
“네.”
하회탈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에 나갔다. 따라 나섰다. 하회탈이 교장실 주변에 남아 있던 애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하회탈이 나를 스윽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며 걸었다. 계단을 밟아 옥상으로 나왔다. 하회탈이 밖에 내놓인 먼지 쌓인 낡은 의자를 오른손으로 대충 툭툭 털고 담배를 꺼냈다.
“선생님들한테 나 교내에서 담배 피웠다고 하지 말아주라.”
“네.”
하회탈이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모금 쪼옥 빨아들이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집고는 입에서 뺀 다음 연기를 뿜어냈다. 회색이 허공에서 흐물흐물 흩어졌다.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온유야.”
“네.”
“여자한테 원한 사지 마라. 여자가 한 품으면 평생도 간다.”
“... 쌤도 여자한테 원한 사신 적 있으세요?”
“딱 한 번. 한 번 오해 산 적 있었는데, 오래도 가더라.”
“... 어떻게 됐는데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내 마누라 됐지.”
하회탈이 다시 담배를 빨아들였다. 뿜어나온 연기가 푸른 하늘로 올라가다가 이내 흐지부지됐다.
“... 자세하게 얘기해주시면 안 돼요?”
“몰라. 잘 기억 안 난다.”
하회탈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연기를 뿜은 뒤 등 돌려 담배를 의자 등받이에 지그시 눌렀다.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는지 비슷한 자국이 여럿 있었다. 하회탈이 꽁초를 허공에 탁탁 털더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냄새나지 않을까 하다가 걱정을 접었다. 왠지 평소에 하회탈한테서 냄새 제거제 향이 많이 나더라니 이게 그 이유였던 듯했다.
“네 여동생 기다릴 건데 내려가야 되지 않냐?”
“... 걔가 절 기다릴까요?”
“글쎄다. 일단 서로 앞으로도 보기는 봐야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겠죠.”
하회탈이 문을 열었다.
“막 반목하지 마라, 서로 힘만 빠지니까.”
네, 라고 답했다. 그럴 수 있을지 확실치는 않았다. 실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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