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얘 진짜 왜 이래 (2)
* * *
할 말이 더 있던 것 같은데 너무 어이없어서 뭐였는지 까먹어버렸다. 이수아가 나를 쏘아봤다. 입을 다문 채 뒤로 물러났다. 이수아가 방문을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요구르트를 다 들이키고 주방에서 새 스푼을 꺼내 이수아가 남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째선가 목이 말랐다. 이온음료를 한 잔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폰을 켜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왔나 확인했다. 아직 내가 보낸 문자를 눌러보지도 않은 건지 1이 사라져있지 않았다. 뒤로가기를 눌러 다른 사람들이 보낸 문자에 답장하고 폰을 껐다. 조명을 끄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심적 피로가 심해서인지 금방 잠이 몰려왔다.
알람 없이 잠에서 깼다. 눈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아픈 데는 없는데 찌뿌둥하고 속이 개운하지 않았다. 백지수는 나보다 심할 텐데, 걱정됐다. 폰을 켰다. 6시 9분이었다. 백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어났음 문자 보내]
[아님 7시 30분에 모닝콜 함]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어 이온음료를 꺼내 입을 안 대고 마셨다. 2층에서 누가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가영 특유의 가벼움과 경쾌함이 없는 것을 보면 아버지 발소리였다. 바로 방으로 도망쳤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한 다음에 6시 40분이 될 때까지 방에서 잠깐 폰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40분이 되고 방문을 열고 머리만 내밀어 아버지가 없는지 확인한 다음 나왔다. 주방으로 가봤다. 아무도 안 보였다. 이수아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왜?”
이미 깨있던 건지 금방 깬 사람 특유의 늘어지는 소리가 아닌 짧게 묻는 소리가 돌아왔다.
“아침 뭐 먹을래? 만들어줄게.”
“석류 에이드랑 와플에 초콜릿 중탕해서 발라줘. 아니 초콜릿 바르지 말고 따로 그릇에 담아서 줘. 나 어제부터 생리해서 그런 거 먹어야 돼.”
“... 뒤에 말은 빼도 되지 않았어?”
“여동생 생리 주기는 알아줘야 되는 거 아냐? 오빤데?”
“... 어.”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주방으로 가서 재료들을 꺼냈다. 와플팬을 예열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인덕션을 켜 그 위에 올렸다. 보울에다 박력분이랑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걸러 내리고 소금이랑 설탕을 넣어 거품기로 살짝 섞어줬다. 다른 그릇에 계란과 우유를 섞어서 보울에 조금씩 흘려가며 가루끼리 뭉치지 않게 조심조심 섞었다. 바닐라 익스트랙이랑 식용유를 조금 넣고 섞어 반죽을 완성했다. 예열한 와플팬을 열어 기름을 발라주고 반죽을 부은 다음 닫아서 구웠다. 냉장고에서 석류청이랑 탄산수를 꺼내 유리잔에 넣어 섞었다. 냄비에 물이 끓어서 온도를 줄이고 위에 보울을 올린 다음 초콜릿을 손으로 부숴 보울 안에 넣었다. 골고루 잘 녹도록 스패츌러로 섞었다. 스패츌러를 살짝 들어올려서 초콜릿이 액체답게 뚝뚝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인덕션을 껐다. 어느새 와플을 집어넣은지 5분이 지나서 와플팬을 열어 와플을 접시에 꺼냈다. 녹인 초콜릿은 다른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아 온도가 조금이라도 더 유지되도록 했다. 테이블에 와플이랑 초콜릿, 석류 에이드를 세팅하고 이수아 방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이수아.”
“나가.”
거의 곧바로 문이 열려서 뒤로 물러섰다. 방에서 여자 냄새가 풍겨왔다. 분홍색 브라에 교복 와이셔츠를 걸쳐 가운데 단추만 끼우고 분홍색 삼각 레이스 팬티만 입은 이수아가 나를 지나쳐 주방 쪽으로 갔다. 걸음을 딛을 때마다 예쁘고 귀여운 정도의 엉밑살이 보여서 눈이 쏠렸다. 미친 년이 왜 저따위로 입고 있는 거지?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지를 빠르게 위로 올리고 뒤따라 주방에 가 이수아 옆 자리에 앉았다. 이수아가 와플 접시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 연어 샌드위치해줘. 생리에는 생선이 좋대, 유제품 말고.”
“... 와플은 어떡하고?”
“오빠가 먹으면 되잖아.”
“... 응.”
의자에서 일어서서 냉장고를 열어 어린잎채소랑 양파랑 크림치즈를 꺼냈다. 채반에 어린잎채소를 올리고 헹궈준 다음 물기를 털어냈다. 양파를 도마에 올리고 채썰어 보울에 담아 찬물에 담갔다. 식빵을 가져와 두 장 꺼내 도마에 올려 테두리를 잘라내고 안쪽면에 크림치즈를 발랐다.
“많이 발라줘.”
“어.”
옆으로 봐도 크림치즈가 눈에 띄게 넉넉히 바르고 어린잎채소를 올렸다. 그 위에 슬라이스 된 연어를 올린 다음 찬물에 담가둔 양파를 살짝 털고 키친타올로 물기를 없애서 올렸다. 그 위에 또 어린잎채소를 올리고 빵을 덮은 다음 약간 칼을 사선으로 해서 반으로 잘랐다. 완성된 샌드위치를 접시에 올려 이수아에게 넘겨주었다.
“잘 먹을게.”
“... 응.”
컵에 우유를 따르고 도로 의자에 앉았다. 이수아가 연어 샌드위치를 오른손으로 들어 한 입 베어물고 오물거렸다. 와플에 초콜릿을 끼얹어 한 입 먹었다. 많이 달았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이수아가 석류 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 맛 어때?”
“맛있어.”
이수아가 연어 샌드위치를 다시 한 입 베어물었다. 답답했다. 동시에 초조했다. 어느샌가 주도권은 이수아에게 넘어가 있었다. 아니 자연적으로 넘어갔다기보다는 이수아가 스스로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었다. 토요일이랑 일요일 단 이틀만에 무슨 계기로 이렇게까지 달라졌을까? 이수아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오빠 나 사랑해?”
등줄기로 소름이 쭉 솟았다. 이수아는 말로써 사람의 영혼에 타격을 입힐 줄 아는 애였다.
“뭔 미친 소리야 그건 또.”
“내 얼굴 존나 보잖아 아까부터.”
“생각할 거 있어서 그래.”
“나 보면서 생각해야 될 일이야 그게?”
“... 아니.”
“그럼 그렇게 보지 마 부담되니까.”
“어.”
와플에 초콜릿을 끼얹어 한 입 먹었다. 이수아는 더는 말을 붙여오지 않았다. 그저 석류 에이드를 마셔가며 연어 샌드위치를 먹을 뿐이었다. 이수아가 한 조각을 다 먹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냉장고에서 바나나 하나만 꺼내줘.”
“어.”
냉장고를 열어 바나나를 잡아 하나만 뜯고 이수아에게 건네줬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밑을 잡고 한꺼풀씩 거의 끝까지 벗겨냈다. 그러고는 입을 작게 벌려 바나나를 거의 목에 닿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어넣고 베어물어 우물거렸다. 이수아의 눈가에 눈물이 한 방울 맺혔다. 세상에 누가 바나나를 저딴 식으로 처먹을까. 고의성이 다분했다. 지금의 이수아는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이수아를 성적으로 보도록 만들고 있었다.
바나나를 다 먹고 두 번째 연어 샌드위치 조각을 두 입까지 베어 물고는 나머지를 접시에 남긴 채 손가락을 비벼 가루를 털어낸 이수아가 일어섰다. 와이셔츠 사이로 하얗고 잘록한 허리의 중앙에 있는 일자 배꼽이 보였다. 시선을 황급히 올려 이수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 안 먹을 거야?”
이수아가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오빠가 먹어.”
“와플 만들어 달라던 것도 내가 먹었잖아.”
“먹기 싫음 버리면 되잖아.”
“너 다시 앉아봐.”
“왜?”
“앉아.”
이수아가 팔짱을 꼈다. 가슴이 모여서 가운데로 골이 형성됐다. 브라 위로 보이는 푸른 정맥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 미친 년이 진짜. 조금 어지러웠다. 눈을 감고 두 팔을 테이블에 대서 손목으로 눈 주변을 눌렀다. 이수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샤워해야 돼.”
손을 치우고 눈을 떠서 이수아를 봤다.
“앉아.”
“...”
이수아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왜 또 말을 듣는 거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빨리 말해.”
“너 원래 이러지는 않았잖아.”
“뭐가.”
“내가 요리하면 네가 뒷정리하고 그러지 않았어?”
“누가 뒷정리 안 한대? 씻고 할 거였어.”
“...”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다.
“너 어제 아이스크림 먹은 스푼 내가 치우게 했잖아.”
이수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트집 잡을 일이야? 오빠가 생각하기에?”
“너 방금 와플 먹고 싶다 해서 기껏 만들어줬는데 안 먹고 나한테 대신 먹으라 한 거는 뭔데. 새로 만들어준 샌드위치도 남기고 너 먹어라 하는 거는 또 뭐고. 내 입이 음식물 버리는 곳이야?”
“먹기 싫음 버리라니까?”
“샌드위치는 먹다 남긴 거니까 버려도 괜찮다고 쳐, 근데 와플은? 네가 와플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었다가 한 입도 안 먹고 버리면 그건 내가 헛수고한 거잖아.”
“근데 오빠가 먹었잖아.”
“이미 만들었으니까 마지 못해 먹은 거지. 나 와플 먹을 생각 원래 없었어.”
“그래. 그건 내가 미안해. 이제 됐어? 나 씻으러 간다?”
“넌 그게 사과하는 사람이 보일 태도야?”
“미안해.”
“... 어.”
이수아가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 가만히 자리에 남아서 점점 멀어지는 중단발과 엉덩이를 보았다. 존나 지금 섹스어필은 왜 하는 걸까? 이해가 안 됐다. 범인이 광인의 뜻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정상인이라면 그 심중을 애초에 이해할 수조차 없을 뿐더러 설령 이해한다 한들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반 쯤은 광인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런 짓은 시도도 안 하는 게 상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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