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얘 진짜 왜 이래 (1)
* * *
그릇 같은 게 떨어지지 않게 테이블 위에 잘 쌓고 밑을 받쳐 들어서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하윽, 흐으응, 하는 익숙한 신음소리와 질꺽질꺽질꺽, 하고 딜도로 보지를 쑤시는 소리였다. 미친 년이 자기 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자위하는 모양이었다. 따먹어달라는 어필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백지수의 음탕함은 항상 내 짐작을 뛰어넘었다.
“앙... 아앙... 항... 하응... 하읏... 응... 으응... 으흐응... 으흑... 흐으응... 으읏... 흐으으윽... 아하아아... 아흐윽... 아하앙... 아흐응... 흐으응... 하으응... 하앙... 아앙... 앙... 아응... 응... 으응... 후윽... 흐으응... 흐으으으읏... 으흐응... 아흐으으으읏...!”
가 버린 모양이었다. 뽀옥, 하고 보지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빠져나간 소리가 들렸다. 보지가 물건을 꽈악 물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날 수 없는 소리였다. 저렇게 매일 같이 보지를 쑤셔대는데 어떻게 조이는 걸까, 내 자지도 꽈악 물어줄까, 당장 알아보고 싶었다.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테이블을 내려놓으려 허리를 굽혔다가 그냥 도로 똑바로 펴고 조용히 내려갔다. 싱크대에 그릇들을 놓고 물을 틀었다. 주방 수세미에 세제를 뿌리고 더러운 부분을 닦아냈다. 다시 물을 틀어 헹궈주고 건조대에 올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이유 모를 불안감이 덮쳐왔다. 당장 별장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왜일까 잠깐 생각했다. 백지수라면 알몸으로 1층에 내려와 나를 유혹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백지수를 개처럼 따먹을 게 뻔했다. 여태 안 내려온 것도 용했다. 빨리 나가야 했다. 챙겨야 할 게 뭐 없나 빨리 떠올렸다. 아무래도 없었다. 주머니에 폰이랑 열쇠가 있는 것만 확인하고 밖에 나왔다. 백지수에게 문자보냈다.
[나 집 갈게. 설거지는 해놨어.]
몸이 달아올라있었다. 햇빛도 없는데 땀이 계속 흘렀다. 정신이 없었다. 차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기운을 해소해야 했다. 지도 앱을 간간이 보며 집으로 달렸다. 뛰면서 오히려 몸이 식어갔다. 가로등 아래에서 잠시 쉴 때마다 백지수가 생각났다. 나한테 따먹어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자기 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존나게 보지를 쑤시며 신음을 냈을 백지수의 흐트러진 얼굴 표정과 목에 달라붙은 짧은 머리카락을 상상했다. 딜도를 벽에 붙이고는 뒤돌아 고양이 자세를 하며 스스로 엉덩이를 내밀었다 빼서 보지를 쑤셔대는 천박한 모습을 상상했다. 팬티를 들춰서 본 백보지와 오른손 검지로 느낀 보지 속살을 기억했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난 내일 백지수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까? 백지수는 오늘 보인 추태를 내일 스스로 기억하기나 할까? 만약 기억한다면 그날부터 백지수는 어떻게 다가올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집 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고 마지막 힘을 짜내 달려서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다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바로 왼손을 벽에 대고 오른손으로 자지 밑을 감싸쥐어 흔들었다. 오른손 검지가 기억하는 백지수의 보지에 자지를 박는 상상을 했다. 유두가 선 가슴에 얼굴을 묻고 혀 끝을 세워 핥고 쪼옥쪼옥 빠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몇 분을 백지수를 따먹으며 손을 흔들어대도 정액은 도저히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자지가 나름의 사고 기관을 가져서 실제로 백지수의 보지에 박지 않는 이상 정액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시위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우울했다.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병신 같았다. 이게 어떻게 울 일일까,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정할 때까지 억지로 오른손을 흔들었다. 백지수로는 모자라서 김세은, 서유은, 송선우, 정이슬, 이수아, 윤가영을 모조리 동원했다. 각각 한 번씩 자지를 밀어넣을 수 있는 데까지 밀어넣은 채 질내사정을 하고 나서야 쌀 수 있었다. 사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울컥거림은 전에 없이 길었고 정액도 마찬가지로 전에 없이 많았다. 샤워기를 틀어 흔적을 흘려냈다. 자지를 닦고 몸을 씻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없애고 검은 반팔 티셔츠랑 검은 반바지를 입었다. 화장실을 나서고 폰을 켜서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오지는 않았나 확인해봤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내가 문자를 보낸 걸 알고는 있는데 창피해서 확인을 안 했거나 그냥 잠들어서 모르거나 할 거였다. 어쩌면 알고 있는 상태로 잠든 것일지도 몰랐고. 셋 중 뭐가 됐든 내일의 백지수는 술을 마시고 내가 도주하듯 다급하게 나갔다는 사실을 알 거였다.
폰을 꺼서 침대에 대충 던져두고 방을 나서서 주방으로 갔다. 목이 늘어난 하얀 티셔츠에 분홍 돌핀팬츠를 입은 이수아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작은 초코 아이스크림 통을 왼팔로 끌어안고 오른손에 든 스푼으로 마구 퍼먹고 있었다. 이수아가 나를 흘깃 보고 계속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고 옆에 앉았다. 이수아가 말 없이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일어서서 자기 방 쪽으로 갔다. 왜 피하지? 일단 나도 일어서서 살짝 뛰어 따라갔다. 이수아가 돌아보지도 않고 문손잡이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내가 먼저 문손잡이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이 맞닿았다. 그대로 쥐어서 붙잡았다. 이수아가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서 나를 쳐다봤다. 무표정했다.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입을 열었다.
“수아야. 왜 또 나 피해?”
“피하는 거 아냐. 걍 방에 들어가서 먹으려는 거지.”
“말은 왜 안 하고?”
“하잖아 지금. 내 손 계속 잡고 있을 거야 오빠?”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뭔가 이상했다. 윤가영이 보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이수아가 나서서 오빠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나한테 오빠라고 부를까. 당황스러워서 손을 놓아줬다. 이수아가 오른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나 문 닫게 비켜.”
“...”
불길했다. 뭔진 몰라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가 뭔지도 파악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결을 할 수가 있을까?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나 이제 씻을 건데. 여동생 보지 보고 싶어서 그래?”
무서웠다.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 왜 그래.”
“나 뭐.”
말문이 막혔다. 싸가지 없고 당돌한 건 평소의 이수아였다. 그래도 어딘가 달랐다. 일단 말을 뱉었다.
“너 오늘 좀 이상해서 그래.”
“어디가?”
이수아가 어조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였다. 이게 내가 느낀 이상함의 정체였다. 이수아는 겉으로는 까칠하고 틱틱대도 속은 한 없이 감상적이어서 평소 표정이 다양했고 어조가 다이내믹했다. 지금은 정반대였다. 표정에서든 어조에서든 읽어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떤 우울도 분노도 찾을 수 없었다. 이수아로서는 있을 수밖에 없는 감정일 것인데. 무슨 의미에서든 억누르고 있지 않고서는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없었다. 억누르는 것은 쌓이고 쌓여서 압력을 만들고 종국에는 견디지 못해 폭발하는 결과를 낳는데, 이수아는 어느 순간에 어떤 식으로 표출할지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수아는 터진다는 사실만 확실한 시한폭탄이었다.
“너 무슨 일 있지.”
“없어.”
“무슨 일인데.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까.”
“그럼 딱 하나만 부탁할게.”
“응.”
“오빠 방으로 돌아가.”
“...”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눈 먼 화살이라도 쏘듯이 막 던져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화를 끌어올리고 입을 열었다.
“김해인 그 새끼가 너한테 뭐 했어?”
죄인은 김해인이었다. 나는 김해인과 적대하고 이수아를 아끼는 오빠였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 거였다. 이수아가 내 얼굴을 스윽 훑더니 피식 웃었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김해인 걔가 나한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올바른 답이 뭐가 있을까? 나는 모르지? 이건 아니었다.
“걔가 너 괴롭힌다고 네가 말해줬잖아.”
“그래서 내가 지금 괴로운 거 같애?”
“어. 억지로 괜찮은 척 하는 거잖아.”
“오빠가 뭘 아는데? 내 속마음 다 꿰뚫어 볼 만큼 그렇게 날 잘 알아?”
“속마음은 모르지. 그래도 너 걱정은 해.”
“걱정할 필요 없어. 이미 괜찮은데 뭘 걱정해.”
“...”
이수아가 왼손에 든 아이스크림 통을 봤다. 바닥을 보이는 초코 아이스크림이 차츰 녹아흘러서 빈자리를 채우려 들고 있었다.
“먹을래?”
이수아가 물었다. 얘가 이런 식으로 양보한 적도 드물었다. 아니 아예 없던 것 같았다.
“너 먹던 거잖아.”
“난 먹을 만큼 먹어서. 싫음 말고.”
“먹을게.”
“어.”
이수아가 왼손을 뻗어 아이스크림 통을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든 스푼도 내게 주었다. 둘 다 오른손으로 받았다. 이수아가 오른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들어올래?”
이건 또 뭔 소릴까.
“나 씻는 거 보면서 내가 쓴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퍼먹고 싶으면 들어와서 지금처럼 가만히 서 있어.”
“... 너 말 좀 예쁘게 해.”
“욕하는 거보다는 낫잖아.”
“그렇게 비꼴 거면 차라리 욕을 해.”
“알겠어.”
이수아가 미소지었다.
“그럼 이제 좀 꺼져봐 오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