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나 보고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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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마지막으로 본 곳입니다, 라고 쓰인 지점 밑으로 강성연의 고백문이 있었다. 백지수가 바로 스크롤을 내려서 넘겨버렸다. 맨밑에서 세 번째에 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랑 사귈래?]
“씨발.”
백지수가 말했다. 피식 웃었다.
“뭐 보고 씨발 한 거예요?”
“나랑 사귈래가 안 보이세요 너는?”
“왜요 존나 풋풋하고 귀여운데.”
“좆까 막상 네 입장 되면 하나도 안 귀여울 거니까.”
“아무리 그래도 성연이가 이성애자는 아니잖아.”
백지수가 나를 째려봤다.
“넌 진짜 나중에 언젠가 고백으로 세게 혼나봤으면 좋겠다.”
“빨리 답장부터 하자. 강성연 봤는지 안 봤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도 있어.”
백지수가 몸서리쳤다.
“존나 소름돋는 소리 좀 하지 마.”
“빨리 보내 장난 아냐.”
백지수가 화면을 눌러 키보드를 띄웠다. 그러고는 한 글자도 안 적고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뭐라 보낼까?”
“걍 네가 하고 싶은 말 보내.”
“하아...”
백지수가 다시 폰을 보고 텍스팅하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는 카톡으로 할 건 아니지 않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어 그래서 전화로 얘기하려 했지]
[너 톡 계속 암 보길래 전화로 얘기하고 톡 보게 하려 했는데]
[톡 먼저 봤네]
“암 보길래는 뭐야 씨발 진짜...”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오타는 낼 수 있지. 너무 억까 아냐?”
“아 몰라 걍 다 맘에 안 들어 지금.”
백지수 폰에 전화가 왔다. 강성연이었다.
“아 씨발 존나 눈치 좀 챙겨 병신년아!”
백지수가 전화도 안 받고 폰에 대고 작게 소리쳤다. 전화가 끊겼다. 백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나 전화 연결 안 했는데?”
“그냥 알아서 눈치 챙긴 거 아닐까?”
다시 백지수의 폰으로 전화가 왔다. 이번엔 영상통화였다.
“존나 알아서 눈치 챙기기는 무슨 씨발.”
“왜 나한테 화내.”
“너한테 화낸 거 아냐.”
“전화 받을 거야?”
“몰라. 존나 받기 싫어. 하... 밥도 못 먹고 뭐야 이게 존나 씨발.”
“너 오늘이 존나랑 씨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말한 날인 거 아냐?”
“몰라 그런 거 같애 씨발 진짜 존나.”
“이제 전화 좀 받아줘 성연이 초조하겠다.”
“너 존나 강성연 사랑하냐?”
“뭔 소리야.”
“존나 계속 성연이 성연이 노래 부르잖아.”
“내가 그럴 때마다 너 반응하는 게 개 웃겨서.”
“이런 개새끼가.”
백지수가 상체를 뒤로 젖히고 오른다리를 굽힌 다음 내게 발길질을 해댔다. 엉덩이를 번갈아 들었다 내려 뒤로 빠지면서 양손을 뻗어 방어했다.
“전화 안 받을 거야?”
“네가 받든가.”
“그럼 폰 줘.”
“진짜 네가 받게?”
“응. 싫음 말고.”
“...”
백지수가 발길질을 멈췄다. 전화가 끊겼다. 백지수가 폰을 내려봤다.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씨발 존나 끈질겨 미친 놈이. 이 정도면 나 존나 싫어하는 거 아냐? 이런 거 내가 개 싫어할 거 뻔히 알 텐데?”
“미움 받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내는 것, 그런 게 사랑 아닐까요?”
백지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하아아... 진짜 존나 싫어 씨발...”
“내가 받아?”
“어 네가 받아 걍.”
오른손을 뻗어 폰을 들었다. 통화를 연결했다. 강성연의 얼굴이 보였다.
ㅡ... 왜 또 이온유 네가 받냐?
“지수가 너 싫대 성연아.”
ㅡ... 백지수 옆에 있어?
“옆에 있고 없고 걍 너 싫대.”
화면 속 강성연이 표정을 구겼다.
ㅡ그걸 왜 네가 나한테 전달해? 말해도 백지수가 해야 될 거 아냐?
“야 폰 줘봐.”
백지수가 말했다.
ㅡ허... 옆에 있었네.
화면 속 강성연이 말했다.
“응.”
답해주고 백지수에게 폰을 넘겼다. 백지수가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고 화면을 봤다.
ㅡ너 그런 얘기는 톡으로 할 건 아니라면서 왜 넌 이온유 통해서 나한테 그런 거 얘기해?
화면 속 강성연이 내는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건 미안해. 그래서 이온유한테 바로 폰 내놓으라고 한 거야.”
ㅡ너 이온유가 화장실 갔다고 했을 때도 옆에 있었어?
“어.”
ㅡ...
“나 너랑 사귀기 싫어 성연아. 나 이성애자야... 애초에 너랑 나랑 썸 같은 게 없었잖아...”
ㅡ... 너 이온유랑 사겨?
백지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나 레즈 아니라고... 그리고, 나는 네가 남자라고 했어도 너랑은 안 사귀어... 못 사귀어...”
ㅡ... 알겠어. 끊을게.
“어.”
전화가 끊겼다. 백지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 나 술 마셔야겠는데?”
“그만 마시세요.”
“한 입도 안 마셨는데? 아직 술도 안 가져 왔고?”
“점심에 마셨잖아.”
“근데 지금 필요한데요.”
“너 내일 어떡하게 그럼.”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럼 진짜 가져와?”
“어. 칵테일, 알지?”
“너 숙취로 고생해도 난 진짜 모른다?”
“걍 가져오기나 하세요.”
“응.”
주방으로 내려갔다. 하이볼 글라스에 얼음을 채워 넣고 지거의 큰 부분으로 보드카 하나랑 오렌지 주스 둘을 넣었다. 그레나딘 시럽을 넣고 색이 예쁘게 나도록 유리 머들러로 휘저었다. 완성된 보드카 선라이즈를 오른손으로 잡아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백지수가 고기를 구우면서 하나씩 집어먹고 있었다. 옆에 앉아 테이블에 보드카 선라이즈를 내려놓았다. 백지수가 글라스를 보고 나를 봤다.
“왜 네 거는 없어?”
“나도 마셔야 돼?”
“술 혼자만 마시게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럼 내 것도 만들어 와?”
“어. 근데 잠깐 있어봐.”
백지수가 상추에 깻잎을 겹치고 구운 김치 두 조각이랑 삼겹살 네 점을 올려 쌈장을 바른 다음 내용물이 안 튀어나오게 접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쌈을 든 오른손을 뻗었다.
“입 벌려.”
“너무 큰데?”
“그럼 크게 벌리세요.”
피식 웃고 입을 벌렸다. 쌈이 안에 들어왔다. 씹기도 조금 버거웠다. 백지수가 미소지었다.
“맛있어?”
말을 못 하니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씹어먹으면서 주방으로 내려갔다. 보드카 선라이즈를 만들고 올라갔다. 백지수가 고개만 돌려서 나를 보더니 또 큰 쌈을 만들었다. 옆에 앉았다. 백지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또 쌈을 들이밀었다.
“입 벌리세요.”
“아니 나 아까 네가 준 것도 칵테일 만드는 동안 계속 씹다가 왔어요.”
“그래서.”
“그냥 정상적인 쌈은 못 싸주세요?”
“이것만 먹어 봐 그럼 만들어줄게.”
“나 한 입만 마시고.”
보드카 선라이즈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벌렸다. 백지수가 내 입에 쌈을 집어넣었다. 아삭한 식감이 느껴지면서 알싸한 맛이 올라왔다. 왼눈썹을 치켜올렸다. 백지수가 나를 보고 킥킥댔다.
“매워?”
고개를 끄덕였다. 청양고추를 얼마나 넣었으면 이렇게 맵지?
“복수해줬다.”
백지수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기를 집어먹었다. 그냥 빨리 씹어넘겼다. 술을 마시면서 가라앉혔다.
“복수할 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넌 입을 너무 놀렸어요. 입 다시 벌리세요.”
백지수가 정상적인 크기의 쌈을 들이밀었다.
“막 청양고추만 넣고 그런 거 아니지?”
“아니야. 먹어.”
순순히 입을 벌렸다. 쌈이 들어왔다. 씹어봤다. 고기 한 점 없는 청양고추 쌈이었다. 못 참고 오른손에 뱉었다. 백지수가 왼손을 배에 대고 몸을 숙여 악동처럼 막 웃었다. 휴지를 뽑아 위에 올리고 물티슈로 손을 닦아냈다.
“재밌으세요?”
“어. 진짜 개 존잼.”
백지수가 자기 보드카 선라이즈를 들고 자기 눈높이에서 살짝 위로 올리면서 내게 눈짓했다. 나도 내 걸 들어서 잔을 부딪쳤다. 함께 마셨다. 차가운 칵테일이 부드럽게 목을 넘어갔다. 잡담을 나누며 먹고 마시기를 반복했다. 백지수가 빠른 템포로 마셔서 술을 리필해야 했다. 주방으로 내려가 각자 마시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나는 그냥 보드카 1온스에 주스를 필업하고 시럽을 넣었다. 백지수는 취해야겠다며 얼음 없이 보드카를 3온스나 넣고 오렌지 주스를 거의 9부까지 필업한 다음 시럽을 넣었다. 도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마시고 먹었다. 백지수의 귀랑 목이 붉어졌다. 백지수가 두 번째 보드카 선라이즈를 입에 다 털어넣고 잔을 내려놓았다.
“아아아...”
“왜 그래?”
백지수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봤다. 심술난 아이처럼 입술이 살짝 튀어나온 표정이었다.
“난 왜 존나 알쓰일까?”
“알쓰인 게 왜?”
“걍 존나 금방 뻗잖아.”
“그게 싫음 마시지 마.”
“근데 마셔야 되는 상황이면?”
“꼭 그래야 되는 상황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 않아?”
“뭐 분위기상 마셔야 된다거나 할 수 있잖아.”
“넌 그런 거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잖아.”
“야.”
“응?”
백지수가 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다리를 감쌌다. 그 상태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넌 나 걱정 안 돼?”
“... 걱정이라니?”
“내가 대학생 돼서 mt를 가. 거기서 술 취하고 누워 있는데 누가 나 덮칠 수도 있잖아. 걱정 안 돼?”
“... 그런 건 당연히 걱정 되지.”
백지수가 시선을 내려 내 하반신을 봤다. 다리를 움츠렸다.
“... 너 지금 섰지?”
지금 정신이 나갔나? 원래 이렇게 선을 넘은 적은 없었는데. 술에 취했다고 저돌적으로 나오는 건가? 술이 깼을 때 날 어떻게 대하려고 이렇게 달려드는 걸까. 속이 들끓었다. 눕혀서 가슴을 움켜쥐고 보지에 정액을 싸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뭘 그런 걸 보고 그래. 봤어도 얘기는 하면 안 되지. 창피하게.”
“너 나 보고 존나 자지 세우잖아.”
“... 남자는 가만히 있어도 막 서고 그래.”
“그게 변명이야? 나한테 안길 때마다 자지 세워놓던 놈이?”
“... 너 취했다. 자러 들어가.”
“...”
대답이 없었다. 백지수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우는 건가. 왜? 나 보고 어쩌라는 걸까. 백지수가 오른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나 자러 갈 거야.”
백지수가 평상 밑으로 발을 내려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 그렇게 옥상문 너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마냥 지켜보았다. 진짜 자러 들어간 건지 또 자위하러 내려간 건지. 알기 무서웠다. 한숨쉬고 조용히 테이블을 뒷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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