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아 존나 웃기네 진짜
* * *
“나 설거지도 하느라 늦었어.”
왼손으로는 콜라 1.5L 한 병을 들고 오른손 검지에 컵 두 개의 손잡이를 끼워온 백지수가 평상에 앉으며 말했다.
“나 뭐라 안 했는데요?”
“아니, 왤케 늦었나 궁금해 할 거 같아서 말한 거지 그냥.”
“응.”
설거지를 하기는 했을 거였다. 하지만 설거지만 했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 밥풀이 잘 안 닦이더라.”
열심히도 변명하고 있었다. 말을 덧붙일수록 본인의 발언이 말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꼴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게 나오는 것도 귀여웠다. 전화가 걸려온 걸로 추정되는 진동이 느껴졌다. 내 폰은 아니었다. 백지수가 왼엉덩이를 살짝 들고 왼손을 왼주머니에 넣어 폰을 꺼내 화면을 봤다.
“아 씨발 폰 괜히 켰네.”
“왜?”
“아니 존나 다른 애들 연락 씹기는 그러니까 폰 켰거든?”
백지수가 투덜대면서 왼손목을 돌려 폰 화면을 보여줬다. 강성연이 페이스톡을 걸고 있었다.
“존나 안읽씹 당하고 페이스톡 걸어대는 미친년이 있다아?”
“삐슝빠슝뿌슝.”
백지수가 풋, 하고 웃었다가 도로 표정을 구겼다.
“아 장난 아니야. 어떡할 거야 이거.”
“씹어. 눈치 있으면 더는 안 하겠지.”
“눈치가 있었으면 고백을 안 했겠지!”
“그건 또 그렇네.”
“어떡할 거야 진짜.”
“내가 대신 받아줄까?”
“... 미쳤어?”
“너 나랑 술 마시고 있었다고 하지 뭐.”
“술도 안 마시는데 왜 굳이 술 마신다고 하려고?”
“그냥 대충 눈치 챙기라는 거지.”
페이스톡이 끊겼다. 백지수가 왼손목을 도로 돌려 끊긴 걸 확인하고 어, 하고 소리를 냈다. 곧바로 다시 걸려왔다.
“아 씨발.”
웃음이 터졌다.
“웃지 마라.”
“네.”
“하... 그래서 너랑 나랑 술 마시고 있었다고 하겠다고?”
“응.”
“아니 그럼 강성연이 학교에서 우리 사귄다거나 하는 소문내고 그러면 어떡하게?”
“두들겨 패지 뭐.”
“... 농담이지?”
“응.”
“어디부터 농담이었던 거야?”
“때린다는 거.”
“그러면, 지금 진짜 네가 대신 받겠다고?”
“어. 다른 방법 없으면 그래줄 수 있어.”
“... 하.”
백지수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옹크린 다음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페이스톡은 여전히 끊기지 않은 채로 있었다. 받을 때까지 계속 걸 게 뻔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받아 봐.”
“응. 조용히 해.”
백지수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이 미소 짓고 표정을 지운 다음 마음을 가다듬었다. 화면을 눌러 페이스톡을 받았다.
ㅡ지수야.
억지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던 강성연이 나를 보고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 분노, 허망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놀라운 표정이었다. 근데 또 웃긴 구석까지 있어서 무심코 있었다면 빵 터지고서는 박수치며 감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ㅡ이온유? 네가 왜 백지수 폰을 갖고 있냐?
왼손을 들어 앞머리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나? 백지수랑 술 마시고 있었는데? 왜?”
ㅡ누구누구랑 마시는데?
“백지수랑 나랑 둘이서만.”
ㅡ... 나도 가도 되냐?
“백지수한테 물어봐야겠는데.”
ㅡ지수 어딨어?
웃을 뻔했다. 성을 떼고 지수라고만 부르는 게 왜 이렇게 웃긴 건지, 괜히 가드라인 너머로 보이는 빌라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웃음을 참아냈다. 잠시 뒤 다시 화면을 보았다.
“화장실 갔어. 나 오줌, 이러면서 가더라.”
주변시야에서 백지수가 나를 노려봤다. 평상 바닥을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ㅡ... 보통 화장실 가도 폰은 가져가지 않나?
“개 급했는가봐.”
ㅡ... 그 별장이지?
주변시야에서 백지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을 터뜨렸다. 백지수가 오른손 검지를 자기 입술 앞에 가져다대고 두 손 두 무릎으로 기어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ㅡ왜 웃냐?
“야.”
화면 속 강성연이 입을 벌렸다가 아무 소리도 안 내고 도로 다물었다.
“진짜 오게?”
화면 속 강성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번엔 진짜 웃음을 참아보려 했는데 또 빵 터져버렸다. 고개 숙여 끅끅대면서 웃었다. 솔직히 이건 진짜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존나 참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 하... 야. 미안.”
ㅡ야.
“왜?”
ㅡ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못 알아듣겠으니까 말 좀 똑바로 해봐.”
ㅡ백지수랑 너랑 둘이 막, 그런 사이 아니지...?
“그런 사이가 뭔데. 말 좀 똑바로 해보라니까? 알아들을 수 있게?”
ㅡ알잖아 씨발...
“몰라 미친년아.”
엄지로 화면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백지수가 으아아악, 하고 비명지르며 내게 달려들어 등 뒤에서 내 목을 약하게 졸라왔다. 손이 거의 승모근에 가 있고 그나마 목에 닿은 부분도 기도를 가리지는 않아 호흡이 곤란하지는 않았다. 마사지 같은 느낌이었다. 백지수가 내 목을 붙잡은 두 손을 흔들어댔다. 백지수가 힘을 주는 방향대로 목을 움직여줬다.
“야 이 개새끼야아아아! 너 뭔 생각인데!”
“수습하고 싶었으면 너도 끼어들지 그랬어.”
백지수가 내 목에서 양손을 떼고 내 오른쪽으로 기어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민소매 끈이 팔뚝 쪽으로 흘러내린 왼쪽 어깨로 눈이 갔다. 살구색 브라랑 쇄골이 너무 잘 보여서 괜히 낯부끄러워졌다.
“너 민소매 왼쪽 살짝 내려갔어.”
“어.”
백지수가 오른손을 들어 민소매 끈을 다시 올렸다. 말 없이 폰을 건넸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받아들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거기서 뭐 어떻게 끼어들어야 수습이 되는 거였는데? 거짓말 쳤다는 거만 들통나 가지고 괜히 더 오해사고 그러는 거 아냐?”
“몰라 나도.”
“존나 무책임한 새끼.”
백지수가 화면이 꺼진 폰을 내려보며 한숨쉬었다.
“시발 진짜 존나 심란하게 만드네 강성연 미친 개새끼.”
“좀 이따 갠톡 보내봐. 대충 화장실 갔다가 올라오는 시간 지난 다음에.”
백지수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이 상황에서 뭐라 보내야 되는데?”
“강성연이 톡 보낸 거 있댔잖아. 그거 보고 대충 보내면 되지.”
“이 새끼 지 일 아니라고 존나 대충 말하네?”
“아니 근데 진짜 정해진 답 같은 게 없잖아 지금은.”
“그렇긴 한데, 하아...”
백지수가 폰을 키고 카톡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렸다. 백지수의 오른손 엄지가 강성연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을 가렸다. 백지수가 나를 봤다.
“씨발. 누를까?”
“누르세요.”
“누르기 싫은데?”
“나 보고 어떡하라고요.”
“아 몰라 씨발 씨발.”
“분노의 최상급 표현인가요?”
백지수가 피식 웃고는 정색했다.
“아 지금 존나 심각하니까 드립치지 말라고.”
“너도 웃었잖아요.”
“아니 네가 존나 웃기려고 발악했잖아.”
“발악까진 안 했는데요?”
“아 존나 찐따 같애.”
백지수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왼손을 평상에 대고 왼다리를 들어 내 오른 옆구리 쪽으로 발길질해왔다. 몸을 살짝 틀어 양손으로 막았다. 계속 발길질을 해대길래 그냥 붙잡았다. 그 상태로 양손 엄지로 발바닥을 간질였다. 백지수가 야학, 하지 마하앗, 라고 말하며 발라당 누워 몸을 배배 꼬았다. 몸을 틀 때마다 가슴이 생동감 있게 출렁였다.
“너 간지럼 많이 타?”
“아하악... 응, 흐읏, 아학... 그니깟, 그만해앳...”
어떻게 간지럼 타는 것도 이렇게 야하지?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야.”
“왜해앳...”
간지럽히는 것을 멈췄다. 백지수가 흐읏, 흣, 하고 잔웃음을 흘리다가 하아, 거리며 숨을 골랐다. 크고 예쁜 가슴이 부풀었다 내려갔다. 백지수가 고개를 살짝 들어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었다.
“이제 내 발 놔.”
“응.”
양손을 놓아줬다. 백지수의 왼발이 그대로 내려왔다. 백지수의 발뒤꿈치가 발기한 내 자지를 툭 건드렸다. 백지수가 흠칫하더니 곧장 왼다리를 굽혔다. 그러고는 두 발이랑 두 손을 평상에 대고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은 다음 몸을 움츠렸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아 오른쪽 위 송곳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보통 이러면 사과해야 되지 않아?”
은은히 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 내가 왜?”
“왜냐니, 일단 네가 사과하고 내가 아니라면서 빠르게 넘어가는 게 정상적인 대화 흐름 아냐?”
“네가 나 보면서 자지 세운 거잖아.”
“...”
백지수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거, 라고 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지라고 하는 거지? 그래놓고 지가 부끄러워 하는 건 또 뭐고. 미친 년이 지금 여기에서 따먹어 달라고 라는 건가? 못할 거 없었다. 두드드, 진동이 울리며 전화벨이 울렸다. 백지수 폰이었다.
“너 전화 왔는데.”
“...”
백지수가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다 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다행인 것 같았다.
“아 씨발.”
“왜?”
“미친년이 이번엔 그냥 전화 걸었어.”
“성연이 너 찐사랑하는 거 같은데?”
“좆까 병신아.”
백지수가 폰을 내려놓고 쭈그려 앉아 양팔로 자기 다리를 휘감았다. E컵인 가슴 때문에 무릎에 턱을 얹거나 하는 건 불편해서 못 하는 듯했다. 전화가 계속 울렸다.
“이 정도면 일부러 안 받는 거 눈치챌 건데?”
“그러라고 눈치 주는 거잖아.”
“너무 심하다, 너 좋아하는 애한테.”
“너 적당히 해라 진짜.”
“그러지 말고 걍 말해, 싫다고.”
전화가 끊겼다. 백지수가 폰을 들었다.
“나 톡 본다?”
“나도 같이 봐.”
평상에서 기어서 백지수의 왼편으로 갔다. 백지수가 강성연 톡방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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