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그슬음
* * *
여섯 번 자위하고 나니 땀이 꽤 많이 흘렀다. 정액이 묻은 벽이랑 자지를 물로 씻어냈다. 팬티랑 바지를 입고 나가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도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했다. 한숨이 나왔다. 돌이켜 볼수록 나는 그냥 존나 미친 새끼였다. 어떻게 술에 취해서 깊게 잠든 여사친의 보지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입술에 자지를 가져다 댄 다음 그걸로 자위를 여섯 번이나 해댈 수 있었을까. 깨어나면 따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떠올렸을까. 옷을 입고 밖에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2층으로 올라가 백지수 방으로 갔다. 백지수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침대 옆에 있던 등받이 없는 원형 의자에 앉았다. 백지수가 새근새근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었다 내려갔다. 상체를 기울여 입 가까이에 코를 대서 냄새를 맡아봤다. 자지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백지수의 살 내음만 은은할 뿐이었다. 다시 꼴릴 것 같았다. 상체를 일으켰다.
“지수야.”
미동도 없었다. 아직도 깊이 잔다니, 괜히 심술이 났다. 양어깨를 잡고 살살 흔들었다.
“지수야, 일어나봐.”
1분 정도 백지수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백지수가 어깨를 털었다. 깨우지 말라는 몸짓인 듯했다. 존나 귀여웠다. 키스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너 왜 애교부려?”
“아 좆까 씨발...”
백지수가 웅얼거리면서 내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이불을 끌어안았다.
“해장 어떻게 할래?”
“아 몰라 고기 먹어...”
“고기?”
“남은 거 짬처리해야 돼...”
웃음이 나왔다.
“응. 더 자.”
“깨우지 마...”
“응. 미안해.”
백지수가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방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가 소파에 눕듯이 앉고 폰을 꺼내봤다. wx 공식채널에 올라간 티저를 눌러봤다. 화요일에 업로드된 동영상인데 조회수가 벌써 317만이었다. 단순한 티저가 이렇게 높을 수는 없을 거였다. 그것도 데뷔도 안 한 걸그룹이라면 더욱 그랬다. 인기 급상승 동영상으로 갑자기 팍 떠서 가능했던 듯했다. 댓글창을 열어봤다.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들이 위에 올라와 있었다.
ㅡ응애예요: ㅇ하 wx 신인 걸그룹 거의 백만년만 아님???
김지은: 22222 ㄹㅇㄹㅇ
kgh3792: 8년만인데요
엄: kgh3792 찐
ㅡHae Mul Tang: 데뷔도 안 했는데 댓글창 왜 벌써 외국인들이 점령하려고 하냐 ㅅㅂ ㅋㅋㅋ ㅋ ㅋㅋ
wx장조아: 그저께인가루미나리아 랴가 인별 라방에서 언급한 거 때문인 듯
김준호: wx장조아 랴가 뭐예요?
상 상: 김준호 루미나리아 멤버 리아 말하는 거예요. 예전에 예능 나왔을 때 지은이가 리아 다급하게 불러서 랴라고 약간 호통 비슷하게 발음한 적 있는데 팬들이 그 영상 보고 애칭처럼 쓰는 거예요.
김준호: 상 상 ㅇㅎ
ㅡ잘먹을게: 어떻게 걸그룹 이름이 시크네스 ㅋㅋㅋㅋㅋ
이주영: 처음엔 이러다가 결국엔 적응됨
파리: 이주영 ㅇㄱㄹㅇ
ㅡ정이슬: 완전 칼 갈고 준비했나바,,, 비주얼부터 미쳐따 진짜..☆
Yeji kim: ㄹㅇ wx상만 있음..
설마 내가 아는 정이슬인가, 괜히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래로 스크롤해서 다른 댓글을 봤다. 대체적으로 맨 위에 있는 댓글들이 한 말을 되풀이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영상 속 김세은을 보고 그 인별의 김세은이랑 동일인물인가 자문하는 댓글이었다. 그 댓글을 쓴 사람이 그 댓글에 스스로 답글을 달아서 인별 다시 보고 왔는데 동일인물 맞는 듯 ㄹㅇ 인별 그대로임, 이라고 썼다. 인별 아이디를 내놓으라는 다른 사람이 쓴 답글도 달려 있었다. 네에 알려드렸습니다, 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고 진짜 인별 아이디를 달아준 답글도 있었다.
영상을 재생하고 전체화면으로 봤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에 소소한 오브젝트들과 함께 그룹 멤버의 얼굴을 한 번씩 잠시동안 비추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방금 본 한 댓글의 말마따나 어지간히 애들 얼굴에 자신감이 있어서 가능했던 연출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다 예뻤지만 김세은은 특히 눈에 띄었다. 그냥 내가 꽁깍지가 씌어서 그런 걸까, 확인해보고 싶어서 김세은이 나온 부분만 십수번을 돌려봤다. 다 보고 생각해보니 꽁깍지가 씌인 걸 확인하려면 김세은만 보는 게 아니라 멤버들을 다 다시 봤어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김세은을 좋아하는 것은 맞는 듯했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봤다. 대형 기획사 wx에서 오늘(2021년 3월 16일) 8년만에 만든 걸그룹의 티저 영상을 선보였다, 시크네스는 세련됨을 뜻하는 영단어 ‘Chicness’에서 따왔다, 이 두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사가 웬만한 언론사마다 다 있었다. 조금 늦게 써진 기사 같은 경우에는 시크네스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김세은이 만에 하나 걸그룹이 망하면 어떡하냐고 했었는데, 그럴 리는 절대 없을 듯했다.
폰을 꺼 주머니에 넣고 소파에서 일어나 냉동고를 열어봤다. 백지수가 말한 짬처리해야 할 게 냉동 보관 중이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건 딱히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고기를 확인하고 도로 닫았다. 다시 소파에 눕듯이 앉아 텍스팅을 하고 넷챠로 영화를 두 편 봤다. 나른해졌다. 그냥 제대로 눕고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폰을 봤다. 8시 26분이었다. 백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 일어났어?]
[응]
[몸은 괜찮아?]
[존나 별로]
[밥 차릴까?]
[어]
[근데 옥상으로 가서 구워먹자 냄새 나]
[물부터 갖다 줄까?]
[꿀 타서?]
[응]
좀 큰 유리잔에 물을 2/3 쯤 채우고 꿀을 넣어 섞은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있는 백지수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물을 건네주었다. 백지수가 양팔을 뻗어 두 손으로 감싸쥐어 받고는 꿀꺽꿀꺽 들이켰다. 거의 다 마시고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백지수가 컵을 도로 내게 주려는 듯 양팔을 뻗어왔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들었다.
“고마워.”
“일단 내가 굽고 있을게. 다 되면 문자 보낼 테니까 쉬고 있어.”
백지수가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알겠지?”
백지수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등돌려 걸었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백지수의 목소리가 들려 멈춰섰다.
“야.”
뒤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응?”
백지수의 귀랑 목 부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숙취 때문에 저런 건가.
“너 원래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잘해줘?”
“그렇지?”
“어. 나가.”
“... 어.”
1층으로 내려갔다. 백지수의 입술이 닿은 쪽을 중점적으로 닦아 설거지하고 건조대에 놓았다. 괜히 또 싱숭생숭했다. 고기부터 꺼냈다. 선반을 뒤져 뚝배기를 찾아 물로 한 번 씻고 가스레인지 위에 두었다. 압력솥을 찾아 싱크대에서 헹구고 쌀 한 컵을 넣은 다음 물을 넣어 쌀을 씻었다. 물을 한 번 버리고 두 번째 쌀뜨물의 일부는 뚝배기에 넣었다. 세 번까지만 씻어준 다음 물을 채우고 테이블에 두어 불렸다. 냉장고를 열어 된장찌개에 넣을 대패삼겹살과 두부, 채소와 장을 꺼냈다. 두부와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고 뚝배기에 된장 두 스푼과 쌈장 한 스푼 반을 넣었다. 불을 올리고 고춧가루를 한 스푼 넣고 두부도 넣었다. 끓기 시작할 때 대패삼겹살을 넣고 마늘을 한 스푼 넣어 풀었다. 칼칼한 향이 화악 풍겼다. 애호박이랑 양파랑 고추도 넣었다. 마무리로 대파를 넣었다. 넘치지는 않나 하고 보글보글 끓는 걸 잠시 봐주다가 압력솥을 봤다. 대충 불긴 한 듯하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쌀을 씻어주고 물을 채웠다. 겉을 행주로 닦아주고 뚜껑을 덮은 다음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레버를 돌렸다. 중불 상태에서 신호추가 달그락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약불로 줄였다. 찌개를 휘휘 섞어주다가 한 입 맛보았다. 적당히 맵고 짜서 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감칠맛도 감돌아서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압력솥과 뚝배기의 불을 둘 다 껐다. 밥은 이제 뜸을 들이면 됐다. 우선 옥상에 올라가 조명을 키고 물티슈를 여러 장 뽑아 평상을 닦았다. 주방으로 돌아가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두 개랑 불판을 찾고 집게, 채소, 고기 등을 챙겨 옥상에 있는 평상으로 옮겼다. 밥이랑 된장찌개도 안 챙겼는데 세 번을 올라가야 했다. 마지막으로 솥이랑 뚝배기를 들고 위로 올라간 다음 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이제 올라오시면 될 거 같아여]
[여????]
[오타야]
[애교 진짜 듀ㅣ진다]
[듀ㅣ지기 싫어요]
“일루와 이 개쉑아.”
옥상문 쪽에서 백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베이지 크롭 가디건을 걸친 백지수가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두 손을 뻗었다. 백지수가 충돌하기 전에 속도를 줄여갔다. 그래도 관성이 남아서 백지수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양손을 맞잡고 백지수를 받아줬다. 어깨가 맞닿을 법한 거리여서 백지수가 내게 안겨온다고 표현해도 좋을 모습이었다. 일부러 이러나, 발그레한 귀를 장난스레 깨물어 보고 싶었다. 백지수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손 놔.”
“응.”
손을 풀어줬다. 세팅하고 된장찌개와 불판을 올렸다. 압력솥의 밥을 나눠 그릇에 나눠 담았다.
“압력솥 싱크대에 두고 올게.”
백지수가 말했다. 알겠다고 하고 고기를 구웠다. 백지수는 금방 오지 않았다. 압력솥만 놓고 온다기에는 너무 늦었다. 또 자위하는 건가, 나랑 손만 잡고 제대로 껴안지도 않았는데 그게 또 그렇게 꼴려서 자위를 한다고? 성욕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년이었다. 차라리 나한테 따먹어 달라고 말하지 왜 미련하게 혼자 보지를 쑤시는 걸까.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하면 매일 보지에 자지를 박아줄 텐데. 민감한 곳을 애무해주고 기분 좋다는 곳을 끝없이 쑤셔줄 텐데. 치익, 고기가 익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고기를 뒤집었다. 살짝 그슬려 있었다. 심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