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흔한 주말 저녁
* * *
씻고 침대에 누워 폰을 하고 있는데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온유야. 오늘도 저녁 같이 먹을 거야...?”
윤가영 목소리였다. 솔직히 집에서 저녁을 먹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혼자 나가서 먹기도 싫었다. 톡을 켜서 누구한테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밴드부 단톡방을 켜서 저녁 고기 먹을 사람 손, 제가 쏨, 이라고 보냈다. 고기 아니어도 됨, 이라고 덧붙였다. 숫자가 차차 내려갔다. 손, 하고 세 명이 빠르게 답해왔다. 박철현, 김수원, 손정우였다. 손, 이 하나 더 올라왔다. 이지훈이었다. 남자만 받나요, 라고 송선우가 톡을 보내왔다. 아뇨, 여성분은 특별히 우대해드립니다, 라고 썼다. 그럼 나도 감, 이라고 송선우가 톡을 보냈다. 사람이 더 나올 것 같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서 뒤로가기를 눌렀다. 그런데 서유은한테서 개인톡이 와 있었다.
[저두 가도 돼요?]
[앗 저두 갈래요]
피식 웃었다.
[그냥 단톡에 손이라고만 쓰지. 그럼 됐는데.]
[어, 저 좀 창피해서요,,]
[뭐가 창피한데?]
[그냥 약간 그래요]
[알겠어. 와]
[넹]
다시 단톡방에 들어갔다. 나도나도나도 갈래, 라고 정이슬이 톡을 보낸 게 있었다. 그럼 이슬 누나까지만 받겠습니다, 라고 썼다. 정이슬이 오키 나이스, 라고 보내왔다. 김수원, 박철현, 손정우, 송선우, 서유은, 이지훈, 정이슬을 찾아 눌러 새로 단톡방을 팠다. 요리 후보군을 적어 투표를 열었다.
[투표 바로 해주세요]
[ㅇㅋ]
박철현이 답장해왔다. 텍스팅했다.
[답할 시간에 투표합시다.]
곧 양식점으로 결정됐다. 양식 요리점 후보군도 투표를 열고 투표하라고 톡을 보냈다. 잠시 후 결정이 났다. 건대입구 근처에 있는 곳의 주소 링크를 보냈다.
[근데 여기에 유은이도 있네?]
[유은이 손 안 했잖아?]
정이슬이 톡을 보내왔다.
[아 저 온유 오빠한테 갠톡 보내서 가도 되냐구 물어봤어요]
[아 그래? 오키]
[근데 우리 언제까지 가면 돼요 부장씨?]
[다섯 시 반까지 1번 출구에 모이죠]
[응응]
뭐 더 얘기가 나올 것 같지는 폰을 끄고 옷을 골라 입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아서 귀에 꼈다. 노래를 작게 틀고 폰을 보면서 방에서 나왔다.
“온유야. 어디 나가니?”
윤가영 목소리였다.
“네.”
짧게 대답하고 신발을 신었다. 도도도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밥 먹고 오니?”
“네.”
밖에 나갔다. 지하철을 타러 갔다. 운 좋게 열차가 온 타이밍에 도착해서 바로 올라탔다. 좌석에 앉고 단톡을 봤다.
[아야야야야야 이온유]
정이슬이었다.
[왜요?]
[건대 입구면 밥 먹고 놀자는 거지?]
[그치?]
[참고로 아니라는 답변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웃겼다.
[뭐 하고 노실 계획이신데요?]
[으음. 글쎄?]
[일단 8명이니까 vr이랑 방탈출은 좀 그렇고]
[걍 그 컨테이너 많은 데 가서 둘러보기나 할까?]
[의견은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
[응. 다른 사람들한테도 묻고 있는 거잖아]
[왜 다 대답 안 해줘 여기 mbti i밖에 없어? ㅠㅠ]
[끼기 어려워서요,,,,]
이지훈이 답장했다.
[아니 부담 없이 막 보내도 돼]
정이슬이 이지훈의 톡을 태그해서 답장했다.
[막말로 테러도 해도 돼고]
[아 그리고 답해줘서 고마워 :]]
두드드, 폰이 울렸다. 누구인가 확인했다. 정이슬이었다. 받았다.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네, 누나.”
ㅡ어 온유야. 아무리 봐도 너랑 내가 결정해야 될 거 같애.
“밥 먹고 뭐 하면서 놀지 결정하자고요?”
ㅡ응. 바로 아네. 역시 이온유.
“역시 이온유는 뭐예요?”
ㅡ걍 센스 있다구.
“근데 그거 결정하기 전에 밥 먹고 나서 뭐 따로 할 일 있는 사람 없는지 확인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ㅡ에이 저녁 먹으러 온 애들인데 그 이후에 약속이 있겠어?
“모르는 거죠 그건.”
ㅡ뭐 있었음 우리 톡으로 얘기할 때 말 꺼냈겠지.
“그것도 그렇네요.”
ㅡ암튼. 내가 말한 거기로 갈까?
“거기도 좋죠. 아, 근데 다른 애들 생각도 들어봐야 되는데.”
ㅡ몰라. 걍 애들 끌고 다니자. 밥 사준 대가로 같이 놀아주는 계약을 맺은 관계라고 대충 생각하고.
픽 웃었다.
“애들이 저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누나랑 놀아줘야 될 거 같은데요?”
ㅡ으음. 나 순간 이해했는데 이해 못 했다가 이해했어. 너 되게 고차원적으로 말한다, 중의적으로.
“말하는 거는 누나가 더 특색 있는 거 같아요.”
ㅡ응 고마워. 너 근데 지금 어디야?
“저 지금 잠실나루요.”
ㅡ지하철 타고 있어?
“네.”
ㅡ으음. 멋있어.
웃음이 나왔다.
“뭐가요?”
ㅡ돈 씀씀이가 헤픈 듯하면서도 검소해서. 자기 사람한테는 막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돈을 아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이잖아. 그래서 그런데 나랑 사귈래?
“그만해요 누나.”
ㅡ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댔는데 내가 너 열 번은 찍어줄게.
“요즘은 열 번 찍으려고 들면 스토킹하는 거예요.”
ㅡ널 가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스토킹해주겠어.
웃겼다.
“누나 요즘 진짜 내 웃음벨이에요.”
ㅡ너도 웃음벨이야.
“제가 왜 웃음벨이에요?”
ㅡ너 얼굴 보면 걍 웃음이 나와. 여자 후배들이 너 보면 걍 막 미소 짓고 그러지 않아?
“글쎄요.”
ㅡ글쎄요는 무슨. 그냥 네, 라고 대답해.
“네.”
정이슬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ㅡ그래서 그런데 나랑 사귈래?
웃었다. 정말 밑도 끝도 없었다.
“애들이랑 만나서도 막 그럴 거는 아니죠?”
ㅡ몰라? 네가 내 고백 받아주면 안 할 거 같은데?
“제 생각엔 좀 다른 방식으로 저 괴롭히실 거 같은데.”
ㅡ음... 어떤 방식?
“막 애정행각하면서 사람들 눈살 찌푸리게 만들 거 같애요.”
ㅡ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알고 싶다. 어떤지 알아보게 나랑 사귀어보지 않을래?
“누나 저 힘들어요.”
ㅡ왜? 너무 웃어서 어지러워?
“그 정도로 웃은 건 아니에요.”
ㅡ아 여기서 철벽을 치네. 멘트 기 막힌 거 하나 생각났는데. 걍 네, 라고 한번만 해주면 안 돼? 아니 해줘 봐.
“네.”
ㅡ아냐. 다시. 일단 내가 아까 한 말 되풀이 하고 나서 네, 라고 해봐.
“알겠어요.”
ㅡ왜? 너무 웃어서 어지러워?
웃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네.”
ㅡ매일 웃게 해줄 테니까 나한테 장가들래?
“이번엔 왜 사귀는 게 아니고 장가예요?”
ㅡ뭔가 대사가 듬직한 느낌 나서 확실히 책임져주겠다는 뉘앙스로 한 거지.
“아, 누나 진짜 개 웃겨요.”
ㅡ너 이래 놓고 나한테 안 넘어오면 그럼 넌 진짜 나쁜 놈인 거야.
“뭔 소리예요 또.”
ㅡ선량한 아는 누나를 단순한 노리개 어릿광대로 써놓고 책임을 안 지면 그게 나쁜 놈 아니고 뭐니?
“누나가 나 갖고 노는 거잖아요.”
ㅡ와. 너 진짜 만나서 봐. 공개고백으로 혼내줄 거야.
“아 하지 마요.”
정이슬이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ㅡ너 이제 건대입구 다 왔지?
“네. 이제 곧 도착해요.”
ㅡ그래. 그럼 지금 전화 끊고, 1번 출구에서 먼저 보자.
“네.”
전화가 끊겼다. 지하철에서 나와 1번 출구로 향했다. 밖에 나오자마자 정이슬이 보여서 다가갔다.
“이슬 누나.”
정이슬이 뒤돌아 나를 봤다.
“어 이온유.”
“저보다 먼저 온 사람 또 없어요?”
“그런 거 같애.”
“한번 톡 봐봐요.”
“오키.”
정이슬이 폰을 꺼냈다.
“같이 봐도 돼요?”
정이슬이 씨익 웃었다.
“너 선수다?”
“제 폰 볼게요.”
“아냐 같이 보자.”
정이슬의 왼편에 가까이 붙어서 봤다. 오고 있다는 톡이 많았다.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잡담을 나누는 사이 한 명씩 차차 도착했다. 곧 전원이 모였다. 정이슬이 갑자기 씨익 웃더니 애들의 면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얘들아. 너희한테 알려줘야 될 좋은 소식 하나 있어.”
“뭔데요?”
이지훈이 물었다. 정이슬이 갑자기 내 왼팔을 붙잡고 팔짱을 껴왔다.
“온유랑 나 사귀기로 했어.”
“네?”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요?”
“응.”
“와.”
이지훈의 넋이 나갔다.
“오. 언제부터 사겼는데요?”
손정우가 물었다.
“아냐 언니가 장난치는 거일 거야.”
송선우가 말했다.
“장난치는 거 맞지 이온유?”
“응.”
“너 내 마음 갖고 장난친 거야?”
정이슬이 울상을 짓고 나를 껴안았다. 서유은이랑 이지훈의 안색이 안 좋았다.
“그만해요 누나.”
“나쁜 남자 뭔데.”
박철현이 큭큭대며 말했다. 얄미웠다.
“아니 진짜 사귀는 거예요 뭐예요?”
김수원이 물었다.
“사겨 우리.”
“안 사겨.”
정이슬이랑 내가 동시에 말했다. 정이슬이 씨익 웃고 나를 봤다.
“이 정도로 잘 맞는데 우리 그냥 사귀는 거로 하자.”
“됐어요.”
정이슬이 배시시 웃었다.
“너 넘어올 때까지 찍을 거야 내가.”
“안 넘어가요.”
“그건 보면 알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어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송선우, 서유은, 이지훈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나도 비슷할 것 같았다. 모인 인원 절반의 기를 이토록 짧은 순간만에 빨아들이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정이슬이 앞장서서 걸었다. 뭔가 밥 먹고나서도 정이슬에게 휘둘리는 식으로 흘러갈 것 같았다. 아까 톡으로 정이슬까지 받았던 게 살짝 후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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