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송선우 생일 (3)
* * *
“몇 분이세요?”
남자 직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물어왔다.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네 명이요.”
“이쪽으로 오세요.”
안으로 걸어간 직원이 오른손바닥을 내보이며 의자가 양옆으로 네 개 있는 한 테이블을 가리켰다. 송선우가 오른손바닥으로 내 오른팔뚝을 툭툭 쳤다. 송선우를 봤다. 송선우의 검지가 안쪽 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송선우가 내 옆에 앉았다.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백지수가 앉았고 그 옆에 정이슬이 앉았다.
“이거 온유가 바깥쪽에 앉아서 심부름해야 되는 거 아냐? 자리 바꿔야 될 거 같은데?”
정이슬이 말했다.
“그니까요. 나와 이온유.”
백지수가 맞장구쳤다.
“아냐 내가 편해서 이러는 건데. 괜찮아요 언니.”
송선우가 말했다.
“네가 그렇담 어쩔 수 없지.”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정이슬이 모두 볼 수 있게 들었다. 시선이 쏠렸다.
“뭐 시킬까? 여기 세트 중에 시킴 될 거 같은데.”
“저거 3인분 세트 시키고 밥이랑 음료수 주문하면 될 거 같은데요.”
송선우가 말했다.
“역시 전문가. 벨 누를까?”
정이슬이 말했다.
“네.”
송선우가 답했다. 정이슬이 벨을 눌렀다.
“아 맞다. 음료수 뭐로 시킬까?”
“저 콜라요.”
송선우가 말했다.
““저도요.””
백지수랑 내가 동시에 말했다. 정이슬이 흐응, 소리를 내며 눈꼬리를 휘었다.
“밥은 먹을 거야?”
송선우가 물었다.
“먹어야지. 안 먹을 나약한 사람 있나?”
정이슬이 둘러보며 말했다. 직원이 왔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저희 3인분 세트 삼겹살로 주시고요, 밥 네 공기랑 콜라 넷. 이렇게 주세요.”
“네엡.”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갔다. 곧 돌아온 직원이 철판에 불을 올리고 운반 카트에서 고기와 찬거리, 쌈채소가 담긴 바구니와 소스가 담긴 식판을 늘어놓았다. 식탁 끝자리에는 된장찌개를 놓고 철판 한구석에는 계란찜과 매실 소스를 내려놓았다.
“여기 매실 소스에 고추랑 마늘 잘라 넣어서 드시면 맛있어요.”
직원이 말하면서 고기와 떡, 양파와 버섯을 철판에 깔고는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기 덕트를 밑으로 내렸다.
“밥이랑 음료수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돌아갔다. 송선우가 자연스럽게 집게를 들어 철판에 마늘이랑 김치를 올렸다.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사진 찍을게?”
“네.”
정이슬이 사진을 몇 장 찍고 폰을 두드렸다. 나도 폰을 꺼내 확인했다.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와있었다. 집게를 든 송선우의 손이랑 상체가 나온 것도 있었고 송선우랑 내가 같이 나온 것도 있었다.
“근데 생일인 사람이 하면 어떡해. 나 줘.”
“아뇨 언니한테는 못 줘요.”
“억. 조금 상천데?”
정이슬이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었다. 정이슬은 언제봐도 리액션이 후했다.
“그럼 내가 할까?”
백지수가 물었다.
“아니. 이온유 네가 해.”
송선우가 내게 집게와 가위를 넘겼다. 응, 이라고 답하고 철판을 관리했다. 밥이랑 콜라가 왔다. 송선우가 콜라캔을 따 차가운 잔에 따르고 내 식판 옆에 밥이랑 잔을 놓아주었다.
“고마워.”
“집게랑 가위 줘봐.”
“응.”
송선우에게 넘겼다. 송선우가 능숙하게 고기를 잘랐다. 여기에 오려던 직원이 송선우가 하는 것을 보고 그냥 도로 돌아갔다.
“이게 경력이다.”
정이슬이 말했다. 송선우가 오른손에 든 집게를 내려놓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집게 나 줘. 이제 내가 할게.”
내가 말했다. 송선우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가 집게를 순순히 넘겨줬다. 철판 위에 올린 것들이 타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 먹어도 될 거 같아요, 라고 송선우가 말했다. 젓가락 쌍들이 철판 위로 분주히 올라갔다.
“입 벌려.”
송선우가 말했다. 고개를 돌렸다.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얼굴 앞에 쌈을 들이밀고 있었다. 입을 벌렸다. 씹을 수는 있었는데 크기가 꽤 컸다.
“먹여주기 뭐야아?”
정이슬이 말하면서 폰을 들어올렸다. 뭐해요, 라고 묻고 싶었는데 음식물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저작운동을 해서 음식을 넘겼다. 정이슬이 바로 폰을 내렸다. 왼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뭐 찍은 거예요?”
“너 볼빵빵 우물우물 영상.”
“뭘 그런 걸 찍어요, 말도 없이.”
“그냥 딱 보니까 찍어야겠다 싶더라구.”
백지수가 폰을 보고는 풋, 하고 살짝 웃었다.
“넌 왜 웃는데요?”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백지수의 폰을 들여다봤다.
“방금 찍은 영상 단톡에 올렸는데 그거 보고 웃은 거 같애.”
“나 웃기게 나왔어?”
“어 개 웃기게 나왔어.”
“어? 아닌데? 찍을 때 화면 예쁘게 나왔어.”
“근데 지수가 웃기다잖아요.”
“글쎄? 약간 그런 거 같은데, 씹덕 터지는 느낌?”
“씹덕 터진다는 게 뭐예요?”
“씹덕사는 알지.”
“네.”
“거의 그만큼 귀엽다는 뜻일 거야. 아마도.”
“아 그래요?”
“그래서 지수야.”
“네?”
백지수가 정이슬을 바라봤다. 정이슬이 뭔 말을 할지 너무 뻔히 예상이 갔다. 백지수도 나랑 같은 예상을 하는지 약간 긴장한 기색이었다.
“너 온유 좋아해?”
“뭘 그런 걸 물어봐요.”
내가 말했다.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두 점 집고 왼손에 상추를 들어 고기를 올렸다. 쌈장 조금이랑 밥, 구운 양파랑 구운 김치도 올리고 쌈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 질문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백지수는 나를 상상하며 자위하는 음란한 애였으니까. 이런 데에서 쐐기를 박기보다는 차라리 옹호해주면서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관계상 훨씬 나았다.
“나 빨리 밴드부에서 커플 생기는 거 보고 싶어.”
정이슬이 고기를 집으며 말했다. 정이슬이 팔을 뻗어 고기를 매실 소스에 찍어 먹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밴드부에 커플 이미 있잖아요.”
“응? 진짜? 누구랑 누구?”
“언니랑 김민우 오빠요.”
“아냐 나 걔랑 지인짜로 안 사겨.”
“그럼 썸이에요?”
“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걔랑. 왜 이런 얘기가 나온 거지?”
“민우 형이랑 누나가 캐미가 좋아서 그런 가봐요.”
내가 말했다. 정이슬이 흐음, 소리를 냈다.
“캐미 좋다고 다 사귀는 건 아니잖아?”
“근데 사귀는 경우가 많잖아요.”
송선우가 답했다. 정이슬이 또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긴 하지.”
뭔가 불길했다.
“보니까 온유랑 유은이랑 캐미 좋던데, 둘이 사귀는 거야?”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괜히 긴장됐다.
“안 사귀어요.”
“사귀어요 또박또박 발음하는 거 보니까 약간 이상한데?”
정이슬이 웃었다. 또 물린 느낌이었다.
“국립국어원에서 ‘사겨’ 말고 ‘사귀어’라고 발음하는 게 맞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발음하는 사람 안 많지 않아?”
“암튼 전 그렇습니다.”
고기를 집어 바베큐 소스에 찍어 먹었다. 더 말하기 싫었다. 두드드, 내 폰이 울렸다. 저장은 안 해뒀지만 아는 번호였다. 다시 말해 윤가영 번호였다. 뺨을 두 대씩 때린 날에 차단을 풀어뒀는데 괜히 한 듯했다. 바로 끊었다.
“누구야?”
송선우가 물었다.
“모르는 번호.”
“으응.”
또 전화가 걸려왔다. 윤가영이었다. 존나 끈질기네, 조금 화났다.
“저 좀 받고 올게요.”
“어, 어.”
정이슬이 답했다. 송선우가 일어나줬다. 자리를 벗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뭔데요?”
ㅡ어 온유야. 밥 먹었어?
챙겨주는 척이다. 미친 년이.
“본론이나 말해요.”
ㅡ으응... 수아가 집 오고 방에 들어가서 계속 울어 가지고... 혹시 우는 이유 뭔지 아나 해서 전화 걸었거든...
“몰라요. 끊어요. 앞으로 이렇게 갑자기 전화 걸면 차단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ㅡ응... 미안해...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왔다. 이수아는 왜 울어 가지고 윤가영이 나한테 전화를 걸게 만들었을까. 마음에 안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금 미안했다. 계속 있을 수는 없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본 송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내가 안쪽 자리에 앉았다.
“입 벌리세요.”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턱 아래쪽을 받쳐주고 또 쌈을 들이밀어왔다. 얼굴을 앞으로 해서 받아먹었다.
“아 소스 뭔데.”
송선우가 물티슈로 왼손을 닦았다. 맛을 느껴보니 고기에 바른 바베큐 소스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맛있어?”
송선우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렇게 맛있으세요?”
백지수가 물었다.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겠지, 선우가 만들어 준 건데.”
“언니도 줄까?”
“응.”
송선우가 쌈을 만들어 정이슬을 먹여주었다. 그걸 보며 밥에 된장찌개를 비벼 한 입하고 고기를 먹었다. 조화가 만족스러웠다. 정이슬이 고기가 부족한 거 같다며 삼겹살 1인분을 더 시켰다.
“근데 누구한테서 전화온 거야 온유야?”
정이슬이 물었다.
“보험 관련 전화였어요.”
“관심 없다고 바로 얘기하고 돌아오지.”
“그러려고 했는데, 말 꺼내고 숨도 안 쉬고 너무 열심히 얘기하셔 가지고 중간에 끊기 미안해서 잠자코 듣다가 말했어요.”
정이슬이 살폿 웃었다.
“너무 착하게 산다 온유는.”
“저 그렇게 안 착해요.”
“그렇게 말하는 게 착한 거야. 기만이나 괜한 거짓말은 안 하는 거잖아.”
멋쩍게 웃었다. 나는 여태 거짓말을 많이 했다. 거짓말로 나를 지켜왔다. 심지어 방금도 거짓말을 했고. 앞으로도 몇 번이고 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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