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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89화 (89/438)

〈 89화 〉 송선우 생일 (1)

* * *

눈 떠보니 새벽이었다. 교복도 안 벗고 한참 동안 폰을 붙잡고 있다가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웠을 때 거의 곧바로 잠들어버린 탓이었다.

일단 얼굴만 씻고 주방으로 가서 뭐 먹을 게 있나 봤다. 불을 쓰기는 싫었다. 우유를 꺼내 씨리얼을 먹었다. 이것만 먹고 학교에 가면 2교시나 3교시를 할 즈음 배가 고파질 것 같았다. 바게트랑 잠봉햄, 버터랑 디죵 머스타드를 꺼냈다. 바게트를 반 자르고 두 조각 모두 옆구리를 베어냈다. 버터를 조금 잘라 머스타드 소량이랑 섞어주고 바게트 안쪽 면에 발랐다. 버터를 슬라이스했다. 잠봉햄을 부피감이 느껴지도록 반으로 접고 부분부분 겹쳐지게 쌓은 다음 그 위에 슬라이스한 버터를 올렸다. 바게트 윗부분을 덮고 내용물이 안 튀어나오게 조정한 다음 유산지로 감싸 테이프를 붙여 포장했다. 두 번째 것도 똑같이 했다. 잠봉뵈르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 책상 위에 둔 다음 머리 감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송선우 생일 선물로 줄 러닝화를 가방 안에 챙겼다. 등교 시간이 될 때까지 폰을 만졌다.

똑똑,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와 오빠.”

이수아 목소리였다. 나갈 시간인 모양이었다. 잠봉뵈르 하나는 내 가방 안에 넣고 하나는 왼손에 든 다음 문을 열었다. 문 옆에 서 있던 이수아가 내 왼손에 들린 포장된 잠봉뵈르를 슬쩍 보고 앞장섰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섰을 때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뭐냐 그건?”

“잠봉뵈르. 가져.”

이수아에게 건넸다. 이수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양손으로 받았다.

“학교에서 먹어. 인증샷 찍고.”

“...”

“왜?”

“이거 꺼내 먹으면 애들이 물어볼 거 아냐. 어디서 파는 거냐고.”

“파는 거 아니잖아.”

“그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병신아.”

“욕할래?”

“... 미안해.”

“근처에 살아서 등교도 같이 하는 아는 오빠가 새벽에 일어나서 만들어서 줬다고 그래.”

“... 장난해?”

“왜.”

“즐기는 거야?”

“뭘.”

“씨발...”

이수아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잠금을 빠르게 풀고 톡을 켰다.

“봐봐.”

단톡방이었다. 내 영상 링크를 달은 애가 이 오빠 맞지, 라고 올렸다. 이수아는 답하지 않았고 대신 다른 어떤 애가 ㅇㅇ 백퍼임, 이라고 썼다. 그 다음은 나에 대한 낯부끄러운 칭찬이랑 나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 톡이 이어졌다.

“근데.”

“학교에서 내가 네 여친으로 알려지면 너도 주변에 내가 네 여친인 거로 돼서 좆 되는 거 아냐?”

“난 안 좆 되는데. 근데 너 은근슬쩍 계속 욕한다?”

“... 입에 붙어서 그랬어. 미안해.”

“조심해.”

“... 응.”

“여기서 커피 좀 사고 가자.”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텀블러 주문을 택하고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골라 폰으로 결제한 다음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건넸다. 이수아도 뭐 음료를 고르고 텀블러를 건넸다. 이수아가 옆에 있는 내가 무안하게 폰만 봤다. 내가 입을 열었다.

“너 뭐 골랐어?”

“나 카페라떼.”

“우리 입맛 좀 비슷한 거 같다?”

“뭐래. 그냥 호불호 안 갈리는 것들만 먹어서 그런 거지.”

“나한테 동의하면 죽기라도 하는 병에 걸리셨어요?”

“바닐라 라떼랑 카페라떼 나왔어요.”

알바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각자 텀블러를 들고 같이 밖에 나왔다.

“동시에 말했네?”

“어쩌라고.”

피식 웃었다. 자꾸 틱틱대는 게 귀엽기만 했다. 웬일로 이수아가 한동안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나도 입을 다물고 말 없이 걸으면서 이수아를 바라봤다. 그러다 이수아가 멈춰서서 입을 열었다.

“나 소문 안 나게 해줌 안 돼?”

“뭐 어떡하라고 나한테?”

“잠봉뵈르 만든 거 나라 하고 인증샷도 안 찍고 그럼 안 돼?”

“안 되지.”

“왜?”

“내가 만들어준 거잖아. 공로는 똑바로 돌려야지.”

이수아가 눈을 찌푸리고 오른발을 땅에 대고 앞뒤로 질질 끌어 긁어댔다.

“아니... 김해인 그 병신 새끼가 앙심 품고 좆 지랄 할 수도 있단 말야아...”

“나한테 말해.”

“아니 뭐 어쩌게? 패기라도 하게?”

“원하면?”

“아니, 걔 응징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서 내 평판이나 위신 같은 게 있잖아.”

“뭐 그 양아치가 말하는 거로 깎이기는 얼마나 깎인다고.”

“네가 몰라서 그래. 애들 존나 순진하면서 더러워 가지고 얼마나 역겨워질 수 있는지 알아 네가?”

“... 그 새끼가 지 혼자 썸인 거로 착각했다고 하면 되는 거 아냐?”

“걔가 지 혼자 착각한 거 맞거든?”

“그럼 뭐가 문제야.”

“그 새끼가 그렇게 믿어서 지가 아는 애들한테 그따구로 말하고 다니는 게 문제가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나랑 사귄다는 뉘앙스 풍겨지면 지랄이 더 거세질 거 같다고?”

이수아가 어, 하고 길게 끌어서 점점 소리를 높였다. 귀가 따가웠다.

“언성 높일래?”

“아 진짜 존나 개 짜증난단 말야아...”

이수아의 목소리에 물기가 조금 섞여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왜 웃는데에에?”

“미안. 좀 쓰레기였다.”

“아 존나 개 짜증나...”

이수아가 오른발로 땅을 한번 찼다. 화났다는 표시였다.

“화나면 맛있는 거 먹고 풀어.”

“아 좆까 씨발 좆 같애 진짜...”

“욕 또 할래?”

“아 욕 듣기 싫으면 짜증나게 하지 말라고오...”

살폿 웃었다.

“걷자. 얘기만 하다가 지각할 수도 있겠다.”

“... 어.”

걸었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나 인증샷 안 찍는다?”

“찍어. 아는 오빠가 새벽에 일어나서 만들어줬다고 하고.”

“아 에바야.”

“그럼 아는 오빠가 만들어서 아침에 줬다고까지만 해.”

“아 개 빡쳐 진짜아...”

오른손을 들어 하품하는 척하며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가렸다. 학교에 가서 거짓말이나 하면 될 일을 순진하게 내게 허락을 구해간다는 게 너무 귀엽고 웃겼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나한테 들킬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데 나는 이수아가 거짓말을 했나 확인하려고 알아볼 정도로 집요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 집요함은 악독함의 영역에 있는 거였다.

중간에서 이수아와 찢어졌다. 예상대로 2교시를 마치고 허기가 져왔다. 잠봉뵈르를 꺼내 먹었다. 한 입만을 부르짖는 하이에나들이 다가와서 조금 떼어달라고 하고 어디서 샀냐고 물어왔다. 내가 만들었다고 답했다. 씨발 다 잘하지 말라고 이온유, 라고 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발 꼬추는 3센치, 라고 작은 목소리로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하는 애도 있었다. 3교시 영어랑 4교시 체육을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폰을 꺼내 확인했다. 스탠딩 샌드백이 부실 앞에 와있었다. 이수아가 잠봉뵈르를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

[후기는?]

1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양치하고 나서 스탠딩 샌드백을 부실 안으로 옮겼다. 박철현이 나를 보고는 오 이거 이온유가 산 거였어, 라고 말하면서 다가왔다.

“한 번 쳐봐도 돼?”

박철현이 물었다.

“쳐.”

“전력으로 갑니다?”

“어.”

박철현이 몸을 뒤로 빼서 두 발짝 전진한 다음 샌드백을 때렸다. 샌드백이 뒤로 밀려났다가 도로 올라왔다.

“괜찮네.”

“그러게.”

“송선우 생일 선물이야?”

“어.”

“근데 네가 갖고 놀려고 산 거 같다?”

“정답.”

“이거 공공재가 되겠네요.”

“그건 선우가 결정하는 거고.”

“송선우면 쿨하게 쓰게 해주겠지. 사준 네가 결정하라고 하거나 하면서.”

“그럴 듯하네.”

“백퍼야.”

박철현이 샌드백을 뒤로 하고 키보드 쪽으로 갔다.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폰을 꺼내 봤다.

“뭐 해?”

“나 저번에 문 가까이에 기타 둬서. 폰 보다 그거 챙기고 하게.”

“그거 저기 구석에 뒀을 걸?”

박철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를 확인하고 시선을 내렸다.

“알겠어.”

이수아가 보내온 문자가 있었다.

[맛있었어]

[그게 끝?]

웬일로 곧바로 1이 사라졌다.

[더 할 말은 욕밖에 없는데?]

[해봐]

[개 미친 씨발새끼]

[왜 화났어?]

[아침에 다 말했잖아 병신아]

“누구랑 문자해?”

송선우 목소리였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봤다. 내심 놀랐는데 안 그런 척 잘 감췄다.

“아는 애.”

“어. 저건 뭐야?”

송선우가 샌드백을 가리켰다.

“저거 네 생일 선물.”

“부원들이 돈 모아서 사준 거야?”

“내가 걍 산 건데.”

송선우가 피식 웃었다.

“고마워. 안아라도 줄까?”

느닷없이 안아준다니, 백지수가 말해주기라도 했나? 그럴 리 없었다. 입이 가벼운 애는 아니었으니까.

“됐어요.”

폰을 내려다보며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알아서 잘 해봐.]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송선우가 샌드백 앞으로 가서 복싱 폼을 잡고 잽을 한 대 날렸다. 송선우한테는 맞을 일이 없었으면 했다. 송선우가 산뜻하게 몸을 돌려 나를 봤다.

“어때?”

내가 물었다.

“괜찮네. 고마워.”

“어.”

“어, 가 뭐야 싱겁게.”

“왜 선물 받은 네가 생색내는 느낌으로 말하세요?”

“좀 이상하잖아.”

잡담하며 부원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놀면서 시간을 죽였다. 어느덧 5교시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5, 6교시는 동아리 시간이었다. 동아리가 같은 송선우랑 연극부실로 걸어갔다.

“오늘 뭐하는지 알아?”

내가 물었다.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만들기라던데. 저번에 쓴 시놉시스 가지고.”

“문예창작부 같은 거 들어온 느낌이네, 연극부 들어온 게 아니라.”

“근데 재밌지 않아? 배우 이전에 작가로 접근해본다는 거? 맛보기로 시야 확장시켜 놓고 본격적으로 연기 배운다는 느낌 들어서 난 더 기대되는데.”

부실 문을 잡았다.

“그래? 근데 선우야.”

“응? 갑자기? 문은 왜 안 열어?”

“학교 끝나고 어디 바로 가지 말고, 뒷문 쪽으로 나와주라.”

대답이 없었다. 고개 돌려 송선우를 봤다. 멍한 표정을 한 송선우가 그제야 입을 움직였다.

“어, 어. 어.”

다시 정면을 보고 문을 열었다. 동아리가 은근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는 건가, 살폿 미소가 머금어졌다.

“오 온유 선배 안녕하세요! 선우 언니도!”

“안녕하세요!”

라며 쾌활한 애들이 아는 체해왔다.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고 얘기를 나누며 강사를 기다렸다. 송선우가 말이 적어진 것 빼고는 평소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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