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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87화 (87/438)

〈 87화 〉 학교 끝나고 (1)

* * *

종례가 끝났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밴드부에 같이 가자고 하는 듯했다. 가방을 메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나 오늘 밴드부 안 가.”

백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너 때문에. 근데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네가 말해준 거 해보게.”

“내가 말해준 거 뭐?”

“사탄 짓이요.”

“그걸 진짜 하게?”

“어.”

“뭐 어떡하게?”

“일단 짜증나게 해야지.”

“그러고 나서는 어쩔 건데?”

“걔가 자기 엄마한테 이르면 성공인 거지. 거기서 양자택일 걸리는 건데.”

“...”

“납득돼죠?”

“어.”

밖에 나와 교문 쪽으로 걸으며 이수아한테 전화 걸었다. 백지수가 따라 걸으며 맘에 안 든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이수아가 전화를 끊었는지 연결이 끊어졌다. 일단 폰을 주머니에 넣고 입을 열었다.

“왜?”

“전화는 왜 거는 건데?”

“어딨는지 알아야지.”

백지수가 흐음, 하고 입 다문 채 한숨을 흘렸다.

“뭐가 맘에 안 드는데?”

“맘에 안 드는 건 아닌데?”

“그럼 왜?”

“...”

백지수가 한숨 쉬었다.

“너희 둘 사실 사이 좋은 거 아니지?”

“뭔 소리야.”

“현실 남매 느낌으로 투닥대면서 내심 서로 오빠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걔 나 원수로 생각할 건데?”

“그게 현실 남매 느낌인 거잖아.”

“너 지금 질투하는 거야?”

“뭐래 존나? 질투 이 지랄.”

백지수가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어느새 정문에 다다랐다. 피식 웃고 멈춰섰다.

“너 밴드부 안 가게?”

“갈 거야.”

“잘 가.”

“... 어.”

백지수가 등 돌려 걸어갔다. 뒷모습을 잠시 봤다. 더벅머리와 하체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신음 소리가 다시 고막에 들려오는 듯했다. 발기했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지를 위로 올렸다. 백지수는 쓸데없이 존나 음탕해서는, 한숨이 나왔다. 폰을 꺼내 확인했다. 이수아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뭔데 전화하냐?]

[문자도 안 보내고 갑자기 전화 걸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전화 걸었다. 한 5초 뒤에 바로 끊겼다.

[내가 전화 걸지 말랬지 ㄱㅆㅂㄹㅁ]

다시 전화 걸었다. 10초 정도 뒤에 연결됐다. 반주와 함께 곳곳에서 들리는 소음이 익숙했다. 노래방에 있는 듯했다.

“온유 오늘 밴드부 안 해?”

밖에 있는 매점에 갔다 돌아오는 건지 손에 비닐봉투를 든 정이슬이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정이슬 옆에는 서유은이랑 손정우가 있었다. 뭔가 기분 나빴다.

“네. 저 갈 데 있어서.”

“요즘 이상하다아?”

“요즘이라뇨, 오늘로 겨우 이틀인데.”

두드드, 폰이 울렸다. 이수아였다. 안 받고 비행기 모드로 돌렸다.

“뭐야?”

“모르는 번호요.”

“으응. 암튼. 그니까. 너 평소엔 하루도 안 빠지고 밴드부에서만 있었잖아.”

“빠질 수도 있죠. 근데 누나는 공부 안 해요?”

“난 수시잖아. 내신만 챙기고 실기 연습해야지.”

“네.”

정이슬이 살폿 웃었다.

“어디 가 이번엔?”

“집이요.”

“집에 꿀단지 숨겨놨어?”

“없어요 그런 거.”

“이온유가 밴드부를 버리고 챙기는 게 있다라.”

“없다니까요.”

“으응, 알겠어.”

“근데 정우야.”

내가 왜 손정우를 불렀을까.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느닷없이 나한테 불려진 손정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그, 잠깐만.”

가방을 어깨에서 빼고 오른손으로 가방 안을 뒤져 AOU 엔터 김민준 실장의 명함을 꺼내서 내밀었다. 손정우가 받아들고는 들여다봤다.

“뭐예요 이게?”

“AOU 엔터 실장님 명함. 주변에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있음 건네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나를 보는 손정우의 눈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서유은이 내가 손정우한테 준 명함을 노려봤다.

“형 진짜 고마워요.”

“정우 부럽네, 온유한테 그런 거도 받고.”

정이슬이 말했다.

“누난 이미 계획 있지 않아요?”

“그치. 근데 내 마음이가 좀 그렇네?”

“두 개 남았는데 하나 드릴까요?”

“아냐 됐어. 유은이한테나 줘. 엄청 뚫어져라 보는데.”

“네...? 네? 아뇨! 저 이미 실장님이 주신 거 있어요!”

서유은이 손사레쳤다. 정이슬이 이상한 눈초리로 서유은을 바라봤다.

“그럼 왜 그렇게 본 거야?”

“그게, 정우는 온유 오빠한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라서...”

정이슬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안면 근육이 아주 춤을 췄다.

“어, 으응. 그렇구나.”

정이슬이 내 목에 왼팔을 걸어왔다. 그러고 귀에 뭐라 속삭였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작위한 발음이었다. 세 발짝 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서유은의 눈이 커졌다. 서유은의 표정을 흘겨본 정이슬이 미소를 띄우며 다시 속삭여왔다.

“유은이가 너 좋아하는 거 같지? 아무리 봐도.”

“글쎄요.”

정이슬이 씨익 웃고는 목에 건 왼팔을 풀고 왼손으로 나를 툭 밀었다. 그러고는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가자 유은아 정우야.”

“어, 어어... 네...”

“넵.”

정이슬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며 왼손을 흔들었다.

“온유 잘 가.”

“실기 연습 잘하세요.”

“풋. 어.”

서유은이랑 손정우도 뒤돌아 나를 보며 목례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잘 가요 오빠.”

“잘 가세요 형.”

“어. 내일 봐.”

뒤돌아 걸었다. 폰을 꺼냈다. 비행기 모드를 풀고 문자 앱을 켰다. 이수아한테서 문자 폭격이 와 있었다.

[개 ㅆㅂㄹㅁ 싸가지 존나 없는 거 봐]

[존나 개 좆 같은 새끼가]

[누구한테 배워먹은 버릇이냐 ㅅㅂ?]

[내가 네 전화 받아주나 봐 미친 시발놈아]

초성체도 잘 안 쓴 걸 보면 꽤 화난 듯했다. 전화 걸었다. 4초 만에 끊겼다. 다시 걸었다. 연결됐다. 여자애가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잘 부르지는 않았다.

“이수아.”

ㅡ...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고 닫았는지 들려오는 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ㅡ왜 전화 걸었어요 개 씨발 새끼야?

안에 있는 일행한테 욕이 안 들리게 하고 싶었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작았다.

“목소리 모기냐?”

ㅡ좆까.

“어디야? 주소 찍어서 보내봐.”

ㅡ왜.

“보내봐.”

ㅡ내가 왜 보내야 되는데?

“안 보내면 네 엄마한테 이름.”

ㅡ이런 개 씨발놈이.

“안 보낼 거야?”

ㅡ... 끊어.

“보내라.”

ㅡ아 끊으라고오.

“어.”

전화를 끊었다. 곧 주소가 왔다. 카택을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비슷하게 차를 기다리는 처지인 애들이랑 잡담을 나눴다. 어느새 지정 차량이 왔다. 자기가 가는 방향을 말하면서 태워 달라고 앵겨오는 애를 밀어내고 혼자 올라타서 문을 닫았다. 폰을 꺼내 이수아에게 문자 보냈다.

[뭐 하냐?]

[노래방]

[에 있는데 너 누구냐고 존나 캐묻잖아 시발]

[내 목소리 들렸대?]

[그게 아니라 전화 존나 거는 사람 누구냐고 그러는 거지 ㅂㅅ아]

[네 친구들 다 너 같냐?]

[뭔 개솔?]

[욕 찍찍 싸냐고.]

[좆까 꺼져 너랑 문자하니까 또 물어보잖아 씨발]

[이 정도면 네가 즐기는 거 아니냐?]

[네가 우리 엄마 꺼냈잖아 개 씨바알]

웃음이 나왔다.

“여자친구랑 문자 하나봐요?”

기사 아저씨가 뜬금 없이 물어왔다.

“아뇨 여자친구 아니에요.”

“에이, 거짓말이죠? 제가 사람 많이 봐와서 표정은 잘 읽는데.”

“아니에요 진짜로.”

“그럼 나중에 여자친구 되겠네요.”

“아 예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건성인 게 티 나서 그런가 더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솔직히 정당했다. 잘못한 건 나를 짜증나게 한 기사 아저씨 쪽이었다.

[기사 아저씨가 나 보고 여자친구랑 문자 하녜]

[그게 무슨 개 씨발 잡소리임?]

[너 좆 같아 하는 거 보고 고소해하는데 그렇게 물으시네?]

[씨발 새끼]

웃었다.

“진짜 여자친구 아니에요?”

생각보다 끈질긴 아저씨였다.

“여자친구 맞아요. 죄송해요 아저씨.”

“그쵸? 역시.”

아저씨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이 아저씨가 억지로 만든 커플 수는 양손을 다 써도 못 세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다음부터는 내릴 때까지 조용했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택시를 나섰다. 노래방이 있는 건물로 걸어가면서 이수아한테 전화 걸었다. 12초 정도 걸리고 연결됐다.

ㅡ다짜고짜 전화 걸지 말라고 씨발놈아.

여전히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노래방 특유의 소음도 들려왔다. 기특하게도 자리를 뜨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발소리가 안 나게 조심히 계단을 밟았다.

“아직 노래방에 있나봐?”

ㅡ그럼 내가 어디 가냐?

“혹시 다른 데로 가지 않았을까 하긴 했어서.”

ㅡ좆까고. 왜 전화했는데?

“너 좆 같으라고?”

ㅡ이런 개 씨발...

작게 들리던 노래 소리가 커지면서 누구야, 라고 어떤 여자애가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전화 거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던 애가 문을 열고 이수아한테 직구를 날린 모양이었다. 노래방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걸었다.

ㅡ있어, 나 괴롭히는 새끼.

근데 그걸 받아줘? 어지간히 잘생겼나봐?

ㅡ아냐 걍 개 병신이야.

멀리서 이수아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였다. 전화를 끊고 다가갔다.

“아 씨발 전화 끊었네 좆 같게...”

이수아가 핸드폰을 내려보며 말했다. 웃음을 참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도록 적당히 큰 소리를 냈다.

“내가 개 병신이야 수아야?”

이수아랑 옆에 있던 여자애가 고개 돌려 나를 쳐다봤다.

“저 오빠야?”

눈을 휘둥그레 뜬 여자애가 이수아를 보면서 오른손 검지로 나를 가리키고 물었다.

“... 응.”

이수아가 답해주고 입을 다물었다. 다가가며 미소 지었다. 참아보려 했는데, 웃겨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이수아가 흐음, 하고 입 다문 채 화를 삭이는 한숨을 흘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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