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86화 (86/438)

〈 86화 〉 화요일 아침

* * *

자지를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옷을 입고 나왔다. 교복을 꺼내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갈아입고 주방으로 가 설거지했다. 폰을 봤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너 언제 나갈 거야?]

[왜?]

답이 바로 오지는 않았다. 문자를 보내놓고 또 자위에 빠져든 건가, 존나 음란했다. 백지수가 변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나밖에는 없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곳을 구했을 거고, 백지수도 마냥 터놓고 얘기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반대로 왜라는 질문은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대화 철학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백지수는 터놓기보다는 숨기는 편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러니 이런 부끄러운 비밀은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할 백지수가 왜 발각되기 쉽게 자기 방문도 안 잠그고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는 걸까? 방문을 잠그고 소리를 조금 삼키기만 했어도 방음이 잘 돼서 아무 소리도 못 들었을 거 같은데. 어쩌면 백지수는 나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자위의 흥분을 돋구는 조미료 내지는 향신료로 썼을 수도 있었다. 음탕하기 그지없었다.

백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자위를 마친 걸까 아니면 한 번 쉬는 타이밍인 걸까.

[그냥 등교 너 먼저 할 건지 묻는 건데?]

[같이 가자고?]

[네가 같이 가고 싶음 같이 가]

[너 언제 나올 건데.]

문자를 보내고 조금 잘못 보내지 않았는가 싶었다. 언제 나갈 건데, 아니면 언제 내려올 건데 정도로 썼어야 했다. 10초 정도 흐른 거 같은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들켰나, 라고 생각할 때 답장이 왔다.

[몰라 한 7시 반?]

[너무 늦지 않아?]

[걸어서 갈 것도 아닌데 왜?]

[난 걸어가게.]

[그럼 너 먼저 나가.]

[너 집에서 뭐 하는데?]

[알 거 없어.]

또 자위하겠지. 갑자기 백지수가 가끔 1교시에 몇 분 지각해서 선생님께 봐달라고 비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자위하다가 나올 타이밍을 놓쳐 늦었을까? 학교 가기 전에도 자위에 빠져 사는데 성적 유지는 어떻게 하고 취미 생활에 책까지 읽으면서 살까. 백지수가 자위를 모르고 살았다면 백지수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수재로 주목받지 않았을까? 그 똑똑한 머리를 타고난 백지수가 성욕에 패배해 멍청해진다니. 다시 몸이 더워지는 듯했다. 자위밖에 모르는 백지수를 내 자지밖에 모르는 바보로 만들고 싶었다.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하고 기타와 가방을 챙긴 다음 밖에 나왔다. 백지수에게 문자 보냈다.

[나 먼저 간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직도 자위하고 있을까, 대문을 열 열쇠도 없으면서 당장이라도 안으로 도로 들어가 백지수를 몇 번이고 따먹고 싶었다. 음탕한 백지수는 내가 어떤 설명도 없이 자지를 들이밀어도 다리를 벌리고 보지를 대주리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자지를 잡고 걸었다. 한숨이 나왔다. 백지수는 왜 자위하는 걸 나한테 들켜서 나를 이렇게 심란하게 할까. 머리가 뜨거웠다. 식힐 게 필요했다. 주변이 트인 길을 걸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몇 분을 걸어도 바람만으로는 충분하지 못 했다. 백지수의 신음과 질척한 소리들이, 볼로 느껴진 솟아오른 유두의 느낌이 자꾸만 상기되어서 몸은 식혀지는 대로 도로 더워졌다. 어플로 근처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받자마자 한껏 빨아마셨다. 머리가 띵했다. 참을 만 해졌다. 계속 걸었다.

“야 이온유! 탈래?”

송선우 목소리였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교복을 입은 송선우는 어제 탔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잠만. 이거 다 마시고.”

남은 카페라떼를 다 빨아마셨다. 페달을 느리게 밟아 코앞으로 온 송선우의 눈이 커졌다.

“그걸 한 번에 빠네?”

“내가 폐활량이 좀 좋아서.”

내용물이 비워진 페트컵을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 담았다. 송선우가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케이스를 어깨에서 빼서 송선우에게 건넸다. 송선우가 케이스를 등에 멨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자전거에 올랐다. 송선우가 뒤에 앉았다.

“말 안 해도 다 아네?”

송선우가 하반신을 밀착하고 나를 껴안으며 물었다. 가슴이 느껴졌다. 자지가 섰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생각 없이 타 가지고는. 후회가 막급했다.

“어제랑 같으니까. 근데 왜 껴안으세요?”

송선우가 쿡쿡 웃었다.

“어제랑 같으니까.”

“맞는 말이네.”

상체를 살짝 뗀 송선우가 내 오른 날개뼈를 찰싹 때렸다.

“왜 때리세요?”

“감히 여자를 때리려고 들어?”

“뭔 소리야?”

“맞는 말이라매.”

“와.”

송선우가 또 쿡쿡 웃었다. 송선우는 엉뚱한 면이 있었다. 송선우가 다시 상체를 붙여와 나를 껴안아서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왜 얘도 나를 미치게 하는 건지, 소리 없이 한숨 쉬었다.

“왜 걷고 있었어?”

“그냥.”

“근데 너 걸어오는 방향이 네 집이랑 다르다?”

“...”

대답이 궁했다. 뭐라 해야 될까, 머리가 하얘졌다.

“진짜 이상하네. 그 방향에서 걸어온다고?”

뭐라도 답을 해야 되는데 입이 안 열렸다. 뇌가 빠지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집 갔다가 나가서 놀고 다른 데에서 잤어?”

뭐라고 답해야 믿을까. 거짓말을 떠올려야 했다. 그런데 백지수 집 근처에 놀 게 뭐가 있는 줄 내가 어찌 안다고 말을 지어낼 수 있을까. 요 주변에 놀 거 있느냐고 물어봐둬야 했다.

“백지수 별장에서 잤어?”

송선우가 오른손 검지로 내 뒷목을 쿡쿡 찌르며 물었다. 감이 너무 좋았다. 추론을 척수로 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즉각적이었다.

“잤구나?”

가슴이 탈 듯했다. 입이 저절로 벌려졌다.

“무슨 뜻이야?”

“아니, 그냥 백지수 별장에서 잤구나ㅡ 그 정도?”

“...”

“근데 지수 거기에서 자취한댔는데. 근데 같이 잤구나.”

받아칠 말이 도저히 안 떠올랐다.

“왜 말을 안 해? 둘이 섹스라도 했어?”

온몸에 열이 팍 올랐다가 다시 차게 식었다.

“미쳤어?”

“안 했지? 둘이 막 뭐 한 것도 아니면서 왜 말을 안 하고 그랬어.”

송선우가 오른손 검지로 내 오른볼을 쿡 찔렀다. 오른손을 올려 검지를 붙잡았다. 검지를 쥔 상태로 손을 내려서 오른 허벅지에 올려뒀다.

“너무 선 넘는 거 아냐? 농담 수준이 아닌데?”

“아, 야, 미안해. 아파.”

놓아줬다. 허공에 오른손을 휘휘 턴 송선우가 다시 나를 껴안았다.

“성질 있네 이온유.”

“화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지, 방금 거는.”

“화날만 했다는 거는 인정할게. 근데 그럼 가서 뭐 했어?”

“... 술 마셨어.”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이렇게 뜸들일 일?”

“아니 이상하잖아, 백지수 자취하는 데에서 술 마시고 잤다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으음, 그렇긴 하네.”

“사과하세요.”

“미안합니다.”

“한 번만 봐드리는 거예요.”

“네. 선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약속드리겠습니다.”

송선우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다. 피식 웃고 마주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걸었다.

“근데 너 넷챠에서 그거 봤어? 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

송선우가 또 오른손으로 내 등짝을 때렸다.

“야 그거 진심 꼭 봐. 내 인생 영화임.”

“나 안 봤다고 한 적 없는데요?”

“아 그래? 쏴리. 근데 그거 개 대존잼이지?”

“어 재밌었지.”

“시간 되돌리는 능력 가지고 사랑에다 쓰는 거 진짜 존나 로맨틱하지 않아? 사랑이 그만큼 중대사라는 느낌 빡 들고.”

송선우가 이렇게 흥분한 건 또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좋았나. 웃음이 나왔다.

“너 왤케 소녀소녀하세요?”

“야 씨, 뭐 소녀소녀? 사람이 진지하게 감상평 얘기하고 있는데 똑바로 대답 안 해도 되는 거?”

“미안해. 제대로 답할게.”

“너도 감상평 얘기해보세요.”

“레이첼 맥아담스 존예.”

“레알 개 씹인정.”

그렇게 잡담을 계속 이어가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자전거 보관소 앞에서 내리고 송선우에게서 케이스를 건네받았다. 자전거 바구니에서 페트컵을 꺼냈다.

“너 밴드부실 갈 거야?”

송선우가 물었다.

“어.”

“나 먼저 들어간다?”

“응.”

송선우가 본관 쪽으로 걸었다. 페트컵을 버린 다음 밴드부실에 들어갔다. 한창 배우는 1학년들이랑 노는 게 좋은 2, 3학년 몇몇이 아침부터 악기를 만져대고 있었다. 문 근처에 조용히 케이스를 내려놓고 있는데 박철현과 눈이 마주쳤다. 이온유, 하고 나를 불러서 하는 수 없이 가까이 가 인사를 나누고 노래도 한 곡 부른 다음에야 빠져 나와서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1교시가 시작하기 4분 전인데도 백지수는 반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임인 하회탈 쌤이 누가 전화 좀 한번 걸어보라고 했다. 폰을 책상 아래로 숨기고 문자 보냈다.

[뭐 하는데 아직 안 옴?]

[나 가고 있음.]

어떤 여자애가 백지수한테 전화 걸었다. 너 언제 와? 어, 으응. 백지수 오고 있대요. 언제 온다냐? 1교시 시작하고 2분 정도 지나면 들어올 거 같대요. 어. 나도 1교시 수업해야 되니까 나간다, 라고 하회탈 쌤이 말하고 교실을 나섰다. 곧 수학 쌤이 들어왔다. 통화로 말한 것과 다르게 4분 늦은 백지수는 케이스를 어깨에 멘 채로 교실에 들어와 선생님께 목례하고 케이스를 교실 뒤에 둔 다음 자리에 앉았다. 수학 쌤이 뭐 하다 늦었니, 라고 물었다.

“아 저 새벽에 깨서 도로 잤는데 그게 늦잠이 돼버렸어요.”

반 애들이 웃었다. 나도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주머니에 왼손을 넣어 발기한 자지를 위로 올려 감췄다. 내 왼쪽 앞자리에 앉은 백지수의 더벅머리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이 정돈 안 된 머리는 너무 오래 자위하다가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게 돼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밖에 없었다. 신음 소리와 질척한 소리가 다시 귀에 감돌았다. 앞으로 백지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가 막막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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