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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81화 (81/438)

〈 81화 〉 울보 (1)

* * *

핸드폰을 꽤 오랫동안 붙잡은 거 같은데 잿더미는 계속 쿨쿨 잤다. 백지수도 뭐 하고 있는 건지 내려오지를 않았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서 잿더미의 턱에 왼손 검지를 비집어넣고 간질였다. 그르릉대다가 눈을 뜬 잿더미가 고개를 막 돌렸다. 검지로 계속 따라가서 턱을 간지럽혔다. 잿더미가 눈을 부릅 뜨고 두 앞발로 내 검지를 붙잡으려 했다. 긁히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는데 다행히 날카롭지는 않았다. 백지수나 누군가가 뭉툭하게 한 모양이었다. 잿더미가 내 검지 끝마디를 깨물었다. 조금 아팠다. 그러는 것마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잿더미가 내 오른손도 깨물려고 머리를 돌리다가 내 손바닥에 입이 막히고 도로 입을 다물었다. 잿더미가 내 허벅지 위에서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왼손 검지를 봤다. 피는 안 났다.

잿더미가 나를 보며 냐아, 냐아, 울어댔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잿더미가 내 다리에 박치기를 하고 몸을 비벼댔다. 배고파서 애교부리나. 백지수한테 문자 보냈다.

[잿더미 밥 뭐 줘야 돼?]

[츄르 꺼냈던 구석 선반 있지. 거기서 고양이용 참치캔 꺼내 가지고 까줘.]

[알겠어.]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잿더미가 따라붙어서 계속 냐아냐아 울면서 몸을 비볐다. 선반을 열어 캔 하나를 꺼내 뭔가 확인해봤다. 고양이용 참치캔이었는데, 맛이 무슨 참치 치킨이라 써있었다.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캔을 까 내용물을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액체에 잠긴 붉은 덩어리는 내가 먹어본 그 어떤 것과도 닮아 있지 않았다. 잿더미가 냐아냐아 울었다. 캔을 내려주었다. 잿더미가 머리를 숙여 챱찹챱 소리를 내며 먹었다. 폰을 꺼내 백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물은 어떡해?]

[물그릇 내 방에 있는데 일단 주지 마봐.]

[내가 올라갈까?]

[아니 오지 말라고.]

[그럼 어떡해?]

[캔에 수분 있으니까 잠깐 안 줘도 돼. 내가 내려갈 테니까 올라오지 마.]

[아니다. 다 먹고 캔에다 물 넣어주면 되잖아 멍청아.]

[오 그렇네.]

캔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잿더미가 내용물을 거의 다 먹어서 머리를 들이밀면 미는 대로 캔이 움직였다. 이윽고 잿더미가 고개를 들었다. 남김 없이 다 먹어서 깨끗했다. 무릎을 굽히고 왼손으로 잿더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욕심 엄청 많네 잿더미.”

잿더미가 냐아, 울면서 몸을 숙여 뒤로 걸으며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캔을 들어 언더싱크 정수기로 물을 2/3 정도 채우고 도로 내려주었다. 꽤 오래 혀를 날름대서 목을 축인 잿더미가어디로 도도도 걸어갔다. 조금 남은 물을 쏟아 버리고 따라갔다. 잿더미가 현관 앞 유리문에 앉아 냐앙냐앙 울어댔다. 나가고 싶은 건가, 유리문을 밀어 열어주니 잿더미가 바로 틈새로 빠져나갔다. 바로 현관문 앞에 가서 도로 앉길래 현관문도 열어주었다. 잿더미가 바로 밖에 나갔다. 약간 서운했다. 백지수에게 문자 보냈다.

[잿더미 먹자마자 바로 나갔어.]

[누구 같네.]

[누구?]

[먹튀한 사람 많잖아 연예인 중에.]

[어,, 어.]

[ㅇ]

[나 올라가도 돼?]

[와서 뭐하게]

[몰라. 그냥 너랑 얘기?]

[꺼져]

[욕은 좀 아니지 않아요?]

[죄송]

[근데 올라올 생각하지 마]

[응]

심심했다. 할 게 너무 없었다. 잿더미도 나가버려서 외로움만 찾아왔다. 김세은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당장이라도 찾아가 품에 끌어안고 한 침대에 누워 아무 말 없이 몇 분이고 있다가 잠들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잘 보지도 못 하고 연락도 내 쪽에서는 못 하는데, 이런 시간이 적어도 5년은 이어지리라는 생각에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 다만 질책 없는 한숨만 흘렸다.

폰을 꺼내 톡을 켰다. 이제 곧 생일인 친구가 얼마나 있나 확인했다. 수요일이 송선우 생일이었다. 줄 선물인 러닝화는 집에 있었다. 윤가영이 그것도 봤을까.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불편해졌다. 윤가영이 본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없었는데. 그냥 윤가영이 내 방을 뒤졌다는 사실을 상기한 것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밴드부실로 스탠딩 샌드백을 주문했다. 충동 구매였다. 일단 송선우 생일 선물로 같이 준다는 명분으로 거기다 두고 가끔 두드리면 스트레스 해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 정말 더 할 게 없었다. 게임이라도 하면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 컴퓨터 게임은 그나마 시간 죽이기라도 할 수 있어도 폰 게임은 영 아니었다.

연락처를 뒤졌다. 어머니는 지금 주무실까, 일단 전화 걸었다. 수신음이 4번 들리고 연결됐다.

ㅡ온유야.

외할아버지 목소리였다.

ㅡ지금 소연이 잔다.

“... 아직 잘 시간 아니지 않아요?”

ㅡ요새 잠이 부쩍 많아졌다. 왜 이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좋은 징존지 나쁜 징존지.

스피커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티슈를 뽑고 킁, 하고 코 푸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직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거예요?”

ㅡ아니. 빨리 내려가고 싶대서 오늘 퇴원하고 바로 내려왔다.

“근데 이거 엄마 전환데 어떻게 바로 받으셨어요?”

ㅡ네 외할머니가 또 어디서 스마트폰 전자파가 인체에 안 좋다고 듣고 와서 네 엄마 잘 때면 무조건 거실에다가 두게 했거든. 난 tv 보고 있었으니까 바로 받았지.

“엄마 엄청 싫어하지 않았어요?”

ㅡ싫어했지. 전자파가 사람 죽였으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 죽어서 난리났을 거라더라.

“엄마답네요.”

ㅡ그치.

하아, 하고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세요?”

ㅡ그냥 쉬었다.

“무슨 걱정 있으신 거 아니죠?”

ㅡ네 엄마 걱정하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요, 라고 외할머니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수 없긴 뭐가 재수 없어, 라고 말하는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재수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재수 없어. 아니, 재수 없다고 말하니까 재수 없어지는 거야. 걱정한다는 말이 시작이잖아요? 걱정되면 걱정된다 할 수도 있지. 그니까 걱정된다는 건 뭔가 안 좋은 걸 예상한다는 건데 그게 재수가 없는 거잖아요! 소연이 깨게 그렇게 소리 지를 거야? 당신이 지금 내는 소리는 소음 아니에요? 내가 당신처럼 소리를 앙칼지게 내기를 했어 뭘 했어? 지금 당신 말하는 건 누가 들어도 시끄럽다 해요! 전화나 끊고 말해요! 그래, 라는 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아마 어머니는 일요일에 내가 보고 생각한 것보다 몸이 훨씬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를 항상 지켜봐온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서로 조금만 불길한 소리를 해도 날을 세울 정도로. 두 분이 평소 얼마나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했는지 아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엄청 심각하리라는 막연한 짐작만 들어서 두려움만 커져갔다. 내일이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5초 정도 숨이 턱 막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통이 트이고 나서 한참 동안 숨을 골라야 했다.

앰뷸런스라도 부르듯한 간절함으로 백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좀 살려주라]

전화가 왔다. 백지수였다.

ㅡ무슨 일인데.

가다듬은 목소리였다. 아마 화를 내려던 것을 참고 꾸며 말하는 모양이었다. 내 상태가 불안정한 걸 아니까 내가 마냥 오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참아준 듯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 엄마가 많이 아픈가봐.”

이상했다. 난 분명 평소처럼 소리를 냈는데 목소리가 너무 흔들렸다. 말의 내용과 구조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금 전화했는데, 외할아버지가 받아서...”

울컥해서 목이 메여왔다. 물을 이틀 동안 안 마신 사람처럼 목 안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ㅡ야 내가 지금 내려갈게.

전화가 끊겼다. 그대로 울었다. 창피했다. 진짜 울보라도 된 것 같았다. 백지수가 쿵쿵쿵쿵 소리를 내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백지수가 나를 보고 달려와 내 왼편에 앉았다. 백지수가 한숨 쉬고 양팔을 벌렸다.

“안겨.”

창피해서 내 쪽에서 안기기 조금 그랬다. 전처럼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고. 어정쩡하게 얼굴을 감싸고 있으니 백지수가 하체를 밀착해와서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잡고 자기 가슴팍으로 끌어내렸다. 내가 버티는 게 더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아서 안겼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포근함에 파묻혀 이대로 죽거나 잠들고 싶었다. 백지수가 한숨 쉬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되는데 안 나온다. 나 위로 진짜 존나 못 하지, 안아주는 거 원툴이고.”

안긴 상태로 고개 저었다. 결과적으로 가슴에 얼굴을 비빈 게 됐다.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등을 팍 때렸다.

“존나 불순한데 울고 있으니까 한 대만으로 봐준다.”

“고마, 워.”

백지수가 흠칫 떨었다. 내가 말하면서 뿜은 숨결이 간지러웠던 듯했다.

“언제까지 울 거야?”

“나도, 몰라.”

“너 장가 못 가는 거 아냐? 툭 하면 울어서?”

“네가, 데려가든가.”

“... 진심이야?”

“장난.”

백지수가 또 내 등을 때렸다. 이번 건 꽤 많이 아팠다. 그러고는 백지수가 등을 쓸어주었다.

“내가 시발 왜 너 같은 놈 위로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진짜.”

“고마워.”

“그래, 이 울보 새끼야.”

울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백지수는 자기가 위로를 못 한다 했지만 백지수는 위로에 재능이 있었다. 곁에 있어주고, 함께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도록 꼬옥 안아주고, 말을 건네면서 기분을 풀어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지, 하고 다시금 다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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