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78화 (78/438)

〈 78화 〉 옛날 얘기

* * *

내가 밥그릇을 비우고 다시 밥을 퍼 절반 쯤 먹었을 때에야 윤가영이 돌아왔다. 낯빛은 그리 밝지 못 했다.

“이수아 밥 안 먹는데요?”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온유야...”

“왜요?”

“네가 오늘 아침에 무슨 말 했는지 수아가 말해줬거든...”

“그래요?”

“... 응. 그거 진짜야?”

“수아가 뭐라 했는데요?”

“개새끼라는 욕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너한테나 어울리는 거라고... 맞아?”

“네.”

윤가영이 잠시 얼었다. 침묵 속에서 윤가영이 입을 뗐다.

“... 오해가 조금 있는 거 같아서 얘기해줄게. 그런데 내용이 조금 길거야. 두서 없어서 답답할 수도 있고.”

맥락상 자기는 헤픈 여자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 같은데, 그게 과연 내가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일까? 가만히 응시했다.

“안 듣고 싶으면 말고...”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오른팔을 뻗어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는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급도로 궁금해졌다.

“얘기해줘요.”

“응? 응...”

윤가영이 삼겹살을 도로 내려 놓고 젓가락도 밥그릇 위에 두었다.

“내가...”

윤가영이 목 막힌 소리를 냈다. 윤가영이 물컵을 들어 물 한 모금 마셨다.

“여기서 말하기 좀 힘든데 자리 좀 옮길 수 있어...?”

“옮겨요.”

“고마워.”

윤가영이 일어섰다. 윤가영을 뒤따랐다. 윤가영은 아버지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 앉았다. 방 안에 있는 의자를 가지고 윤가영을 마주 보는 자리에 둔 다음 앉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어서 대면해도 부담이 가지 않는 위치였다.

“내가 어린 나이에 애를 가졌잖아...?”

윤가영이 두 손을 다소곳이 자기 허벅지 위에 올리고 내 눈치를 봤다. 가만히 들었다.

“그게 원래는, 내가 과고 가려고 입시 준비하면서 중 3때부터는 과외를 받았단 말야...? 과고 나오고 대학은 과기원 간 대학생 오빠한테 과외 받으면서 내신 준비하고 그랬는데... 그 오빠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덮쳐 가지고 그날 수아가 생겼어...”

대답하지 않고 들었다. 윤가영이 두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하얀 트레이닝 바지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윤가영이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님이, 낙태하라고오... 너 하고 싶은 거 하려면, 그래야 된다고오... 그렇게 말하는 데에...”

난감했다. 위로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스러웠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자의 울음은 사람을 다분히 불편하게 했다. 그 불편은 도통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라리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도록 한 요인을 없애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위로를 하도록 만들었고. 하마터면 나도 일어서서 윤가영에게 다가가 위로해줄 뻔했다. 어머니의 가늘어진 팔뚝과 울먹임을 상기하면서 겨우 자리를 지켰다.

“수아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어...”

더는 참기 어려웠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일어서서 곽티슈를 가져다 주고 도로 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여기까지였다. 윤가영이 티슈를 두 장 뽑아 눈을 감고 톡톡 두드려 닦았다.

“고마워.”

윤가영이 심호흡했다. 추스리려는 시도인 듯했다. 윤가영이 한 30초 정도 그러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는 일반고로 가서 입학만 했다가, 한 달 지나니까 배불러오는 게 너무 티 나서 관뒀어. 내가 좋아하는 다른 거로 직업해야겠다 해서 헤어 디자이너 자격증 준비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준비하고... 검정고시 본 다음에 바로 일 시작했단 말야...? 그래서 수아 어릴 때 많이 못 챙겨주고 그랬고... 사진이라도 많이 찍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어려서 괜히 수아가 막 밉고 그래서 남긴 게 별로 없어... 수아한테는 늘 미안해... 엄마 노릇 제대로 못 해줘서...”

윤가영이 다시 울려고 했다. 봐주기 힘들었다. 자리를 뜰 수는 없어서 괜히 엉덩이만 들썩였다. 결국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수아가 의지 많이 하는 거 같던데요.”

윤가영이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어 보이려 했다.

“고마워.”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짜로요.”

“으응...”

윤가영이 말을 잇지 않았다. 까먹은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가 입을 열었다.

“...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데까지 했어요.”

“그래...? 그럼... 응. 수아가 세네 살 됐을 때, 수아도 아빠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남자를 만나볼까 생각을 했어... 근데 나한테 호감이 있다고 말하면서 접근하는 남자를 볼 때마다 그 오빠가 자꾸 생각나서 도저히 못 만나겠더라...?”

오빠, 라는 말이 자꾸 귀에 거슬렸다.

“왜 꼬박꼬박 오빠라고 해요? 그런 강간범 새끼를 두고?”

“나이가 더 많으니까...”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됐다. 한숨이 나왔다.

“그 새끼 인생은 뭐 어떻게 좆 됐어요?”

“... 형량 다 채우고 나와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자살했다고요?”

“응...”

다시 한숨이 나왔다. 아까와는 다른 한숨이었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무릇 남성을 끌어들일 외모를 가졌지만 남자복은 지지리도 없는 여자였다.

“아버지는 어떻게 만났는데요?”

“으응...”

난 왜 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걸까?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윤가영을 보았다. 속눈썹이 길어 고개를 숙일 때면 눈동자를 정확히 볼 수 없는 이 여자가 바로 어머니를 상처 입힌 장본인이었다. 어머니와 통화하고 나면 분노와 복수심이 차올라 목이라도 졸라서 눈물 짓게 만들고 싶어져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기만 하면 머뭇거리게 되고 말았다. 주먹질은 고사하고 항상 기껏해야 팔을 쥐고 힘을 주는 데 그쳤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밝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처연함이 얼굴에 물들어져 있었다. 애처로웠다.

“컨퍼런스 열렸을 때, 내가 가서 머리 세팅하고 메이크업 해줬거든...”

“뭐가 달라서 반했는데요?”

“몰라 그냥... 모르겠어. 왜 준권씨만 다른 건지.”

“대충 얘기해봐요 첫만남부터.”

“... 컨퍼런스 날에 처음 만났다고 했잖아, 거울을 앞에 두고 준권씨가 앉아 있었어. 인사 나누고 메이크업해주고 있는데 준권씨가 귀걸이 보고 예쁘다고 해줬어. 그때 내가 되게 작은 별 귀걸이 하고 있었거든...”

어느덧 표정이 조금 밝아진 윤가영이 양손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귀걸이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귀걸이 많은데 왜 별 귀걸이를 하고 있냐고 물어봤어. 신기하게 얘기를 술술 하게 되더라. 천체가 좋아서 과고 가려고 했다고. 그렇게 되게 단순한 애였다고. 그런데 수아가 생겼고... 진짜 별 소리를 다 했어. 그럴 정도로 엄청 편했어. 준권씨가 가지는 분위기가 그랬어.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보통 수아 얘기는 절대 안 하는데, 준권씨한테는 다 털어놨어. 메이크업 마치고 준권씨가 다음에도 볼 수 있겠냐고 물어서, 알겠다고 했지. 준권씨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다고 하고, 그 뒤로도 무슨 일 있으면 내가 가서 전담으로 일했어. 그러다가 가끔 서로 시간 내서 같이 놀기도 하고... 그러다 내 생일 됐는데, 운석 조각 귀걸이라고, 생일 선물을 그런 귀한 거로 준 거야. 너무 예뻐서 염치도 없이 바로 받으려 했다? 근데 준권씨가 자기 오른손에 쥐고 안 놔주면서 하는 말이, 아직도 천체 좋아하냐고, 만약 아직 좋아하면, 귀에 걸 때마다 놓친 꿈 돌이키게 돼서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고, 그런 거라면 다른 선물이 있으니 차라리 그걸 받으라고, 그렇게 말해주더라. 아마 그때 내가 반했던 거 같애. 아니 반한 걸 인정했다고 해야 하나. 그거 보여줄까?”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머니에 대한 죄악감과 알 수 없는 긴장이 나를 옥좼다. 윤가영이 화장품대에 있는 서랍을 열어 귀걸이함을 꺼냈다. 귀걸이를 집은 윤가영이 거울을 보며 조심조심 귀에 끼웠다. 윤가영이 돌아와서 침대에 걸터 앉았다.

“어때?”

옆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옆머리 치워야 보일 거 같아요.”

“아, 알겠어.”

윤가영이 두 손을 올려 옆머리를 걷어냈다. 목선이 드러나고 운석 조각을 가공한 귀걸이가 보였다. 일련의 동작과 외모는 더운 한숨이 나올 정도로 고혹적이었다. 입을 꾹 다물어 참았다.

“예뻐?”

윤가영이 물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나를 유혹하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네.”

“고마워.”

윤가영이 미소지었다. 윤가영이 귀걸이를 빼 도로 귀걸이함에 넣고 서랍에 돌려놓은 뒤 서랍을 닫았다. 윤가영이 그럴 동안 엉거주춤 일어나 바지를 정리했다. 윤가영이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윤가영이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리고 꼼지락거렸다.

“어머니 빈 자리를 차지하려는 내가 맘에 안 들 수도 있다는 거 알아.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으면서 다른 여자를 찾은 준권씨가 미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이해가고... 그치만, 내가 속된 말로 얘기하는 꽃뱀이나 창녀는 아니야... 여태 사귄 사람은 준권씨밖에 없고... 그리고 준권씨도 좋은 사람인 건 너도 알잖아...”

빈 자리,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소리가 귀 한쪽으로 들어왔다 반대편으로 새어나가는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윤가영은 어딘가 잘못 알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