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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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세하게 된장찌개 냄새가 풍겼다. 윤가영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양이었다. 내 방에 들어가 가방과 기타 케이스를 지정된 자리에 내려놓고 이수아 방 쪽으로 걸었다. 이수아 방은 내 방 반대편에 있어서 그 사이에 주방이 있었다. 주방을 지나가며 고기 굽는 소리랑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유 왔어?”
오른손에 국자를 든 윤가영이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간만에 빨리 왔네.”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흐음, 하고 입을 다문 채 한숨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갔다. 이수아의 방문은 닫혀 있었다. 노래 음원 소리가 문 틈새로 새어나와서 그 안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수아.”
대답이 없었다. 다시 두 번 두드렸다.
“문 연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을 열려고 했는데 잠겨 있었다.
“문 열어.”
세 번 노크했다. 다시 문 손잡이를 잡고 밑으로 내렸다.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잠금 장치에 걸리는 소리가 짜증나게 많이 났다. 노래 소리가 끊겼다.
“씨발 적당히 해 병신아!”
“문 열어.”
“꺼지라고!”
“할 얘기 있어서 그래.”
“듣기 싫으니까 꺼져 좆 같은 새끼야.”
“사과하는 거 안 들어도 돼?”
“꺼지라고 그냥. 미친 귀머거리 새끼야.”
“그럼 이대로 들을래?”
“아악! 꺼지라고 병신아!”
“왜 소리를 질러.”
“네가 말귀를 못 처알아 들으니까 그렇지 씨발놈아.”
“수아야.”
“꺼지라고 했다.”
“미안해. 아침에 심하게 욕해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화날 일이 조금 있었는데, 애꿎은 너한테 괜히 화풀이한 거였어. 내가 씨발놈이었어.”
“할 말 다 끝났냐?”
“일단은?”
“그럼 꺼져.”
“미안해. 진심이야.”
“자기만족 다 했음 꺼지라고.”
진짜 그냥 자기만족인가, 이수아가 사과의 진정성을 못 느껴서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그 말이 맞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봐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자기 뜻을 호소할 수 있을까, 그냥 등 돌려 내 방 쪽으로 걸었다.
“온유야.”
주방에 있던 윤가영이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일단 멈춰서서 윤가영을 봤다. 윤가영이 된장찌개를 올린 인덕션을 끄고 고기를 굽던 휴대용 가스레인지 레버도 돌린 다음 내게 다가왔다.
“수아랑 무슨 일 있었어?”
윤가영이 두 손을 올려 가슴 위에 팔을 올려두듯이 해서 자기 팔을 감싸고 조곤조곤 물었다. 이수아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소리를 지르는 수준으로 크게 말하지 않는 이상 이수아는 듣지 못할 거였다.
“... 제가 오늘 아침에 욱해서 수아한테 화내 가지고, 방금 사과하려고 했던 거예요.”
윤가영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순순히 답해준 게 의외였나.
“으응... 수아는 받아줬고?”
“아뇨. 화해하고 싶은데 삐졌나봐요.”
“그래? 어떡하지...”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줄 수 있냐고?”
윤가영이 화색을 뗬다.
“도와줘야지! 어떻게 하면 돼?”
“그냥 밥 먹을 때 제가 얘기 꺼낼 테니까, 적당히 맞춰주시면 될 거 같아요.”
“알겠어. 밥은 다 됐거든? 언제 먹을래?”
“지금 준비해주세요. 저 빨리 씻고 나올 테니까.”
“응. 그럼 나 지금 수아 나오라고 한다?”
“네.”
윤가영이 미소를 띄웠다. 마주 웃어주기는 싫어서 못 본 척하고 뒤돌아 내 방에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교복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속옷을 벗어 던지고 머리에 물을 쏟았다.
윤가영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께 나한테 호되게 당해서 엉엉 울고 오늘 아침에도 위협당했으면서도 호의적으로 나오는 것만 생각해도 그랬다. 웃는 거야 뭐 원체 밝은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반감을 보이지 않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내가 꺼림직해도 그 마음을 숨기는 거라면 타고난 배우인 거고, 실제로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냥 악의라는 걸 모르고 사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 거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출산을 한 윤가영이 과연 순진한 걸까? 어쩌면 내가 편견에 사로잡힌 거일 수도 있었다. 섹스가 불순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 수 있었으니까.
빠르게 몸을 닦아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없앤 다음 옷을 입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밖에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사각 나무 탁자 앞에 이수아와 윤가영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를 흘깃 쳐다본 이수아가 다시 눈을 내리고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어 먹었다. 이수아의 맞은편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고 입을 열었다.
“수아야.”
이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수아.”
이수아가 또 무시하고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딸, 오빠가 부름 대답을 해줘야지.”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이수아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이수아가 표정을 살짝 구겼다 도로 폈다.
“왜 오빠.”
“용서해주라.”
“... 뭘.”
“오늘 내가 화낸 거.”
“...”
이수아가 500ml 콜라를 들고 마셨다.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무슨 일 있었는데?”
천진한 얼굴은 아무리 봐도 연기 같지 않았다.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이수아도 연기를 잘했는데 그건 윤가영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이었던 모양이었다.
“요즘 힘든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받고 그랬는데...”
말을 끌면서 윤가영을 봤다. 눈을 마주친 윤가영이 흠칫했다.
“응, 그랬는데?”
“아침에 평소 같았음 그냥 넘어갔을 욕 듣고 나서 순간 제가 욱해 가지고 수아한테 못된 말을 좀 했어요.”
이수아가 젓가락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뭐? 못된 말? 씨발놈이 그게 못된 말 같은 귀여운 말로 포장이 되는 거냐 병신 쓰레기 새끼야?”
“수아야. 오빠한테 그렇게 욕하지 말랬잖아.”
윤가영이 낮은 목소리로 이수아를 다그쳤다.
“엄마는 이 새끼가 뭔 소리한 줄 알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를 했든 지금 너처럼 욕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니?”
“아니 엄마...”
이수아가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을 억지로 삼키는 건지 입을 닫은 채로 자꾸 우물대기만 했다.
“제가 잘못한 거 맞아요. 미안해 수아야.”
“...”
이수아가 양손으로 탁자를 짚고 일어나 등을 돌렸다.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이수아.”
이수아가 멈춰섰다.
“다시 앉아.”
“...”
이수아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들어보니까 수아 네가 또 욕해서 온유가 너한테 욕 한 번 한 거지. 넌 그거 가지고 삐진 거고. 그래서 오빠가 사과까지 했는데 토라져서 투덜거리는 거고.”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맨날 너한테 욕하지 말라고 했지. 근데 하지 말라고 몇 번 반복해서 말해도 돌아보면 또 오빠한테 욕하고 있고.”
“엄마아...”
“여태 온유가 많이 참아줬잖아. 이번에 못 견뎌서 한 번 욕한 거고 심지어 그거 한 번 한 거도 미안해서 지금 너한테 사과하면서 용서 구하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
“...”
이수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이 보기 너무 기꺼워서 온몸에 기분 좋은 소름이 타고 흘렀다. 평소 이수아를 끔직이도 아끼는 윤가영이 이렇게까지 이수아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 나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수아한테 푸는 걸까? 윤가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수아. 오빠 사과 받아줘.”
“... 용서할게.”
“존댓말 써야지.”
“... 용서할게요 오빠.”
“그리고 이제 오빠한테 사과해.”
“...”
“사과해.”
“이 새끼도 나한테 욕한단 말야아...”
“... 이 새끼라고 한 거까지 다 사과해.”
“...”
이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다가 한줄기 눈물로 바뀌었다. 이수아가 윽, 윽, 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윤가영의 눈썹이 한껏 처졌다. 눈에서는 혼란이 비쳤다. 자기가 왜 그리 이수아를 궁지에 몰아세운 건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윽, 엄마, 엄마는, 끅, 내가 엄마 자식, 아니야? 읍, 왜, 오빠만, 흑, 편애하는데.”
“아냐 수아야...”
이수아가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윤가영은 의자에서 엉덩이만 띄운 채로 이수아의 등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옆얼굴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사이 좋은 모녀가 불화하는 걸 보며 이토록 희열감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어느 순간 발기해버린 자지를 억눌렀다.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미안해, 화해하는 거 망쳐버려서.”
“괜찮아요.”
“나 수아 위로 좀 하러 갈게. 밥 먹고 있어. 미안해.”
“네 가세요.”
윤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수아 방으로 갔다. 걸음에 맞춰 좌우로 흔들리는 바닐라베이지 색 단발과 낭창한 허리를 보며 수저를 들었다. 오랜만에 입맛이 돌았다. 된장찌개를 한 입 맛보고 삼겹살을 두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저녁 시간대에 아버지가 집에 없는 월요일 만큼은 오늘처럼 빨리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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