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하교
* * *
종례가 끝났다. 바로 밴드부실로 들어가지는 않고 건물 옆에 서서 이수아한테 전화 걸었다. 일단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두 번을 걸었는데도 받지 않았다.
“왜 안 들어가요 오빠?”
매점을 다녀왔는지 오른손에 봉투를 들고 있는 서유은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전화 좀 하려고.”
“누구한테요?”
“아는 사람. 먼저 들어가있어.”
“네. 근데요.”
서유은이 왼손을 봉투에 집어넣어 뒤적였다.
“오빠 이거 드실래요?”
“뭔데?”
“어, 이거요.”
서유은이 삼각 초콜릿과 초코 우유를 꺼냈다. 다가가서 양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오빠가 사탕 주신 거 어떻게 갚아야 하나, 하다가 사 왔어요.”
“잘했어.”
“근데 완전 제 취향에 맞춰서 초코 초코로 산 거라서요, 부담되지 않으세요?”
“뭐가 부담된다는 거야?”
“너무 달다구리해서 혀에 안 받는다거나 할 수 있잖아요.”
“아냐 딱 내 취향이야. 내가 말했잖아, 단 거에 환장한다고.”
“맞아요. 오빠 설탕에 환장하신다고...”
“이틀 전에 한 말인데 정확히 기억하네?”
“그냥 왠지 기억이 잘 나네요...?”
“사람 말 되게 귀담아 들어주는 타입이구나.”
서유은이 헤헤, 하고 멋쩍게 웃었다.
“부럽다, 네 미래 남자친구.”
“네? 왜요...?”
서유은이 눈을 크게 뜨고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갰다. 보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모르겠어?”
“어어...”
“아님 내 입으로 듣고 싶은 거야?”
“아, 아녜요오...”
피식 웃었다.
“너 너무 놀리기 좋아서. 너 맨날 보면 맨날 놀릴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예요오...!”
또 웃었다.
“장난이고, 너 되게 순수해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 맘 편해지고 기분 좋아지니까.”
“... 오빠 별명 중에 칭찬 폭격기 같은 거 있죠.”
“아니? 나 별명 없는데.”
“네? 제가 아는 것도 몇 개 있는데요?”
“뭔데?”
“첫 번째.”
서유은이 오른손검지를 세웠다.
“엄친아.”
피식 웃었다. 서유은이 중지를 더했다.
“육각형 아이돌 상.”
서유은이 약지도 더했다.
“‘그 오빠’도 있구, 또...”
서유은이 또 손가락을 피려고 해서 다가가 오른손을 포갰다.
“그만해주라 제발.”
“아, 안 할게요오...”
“진짜?”
“네에...”
오른손을 내려놓았다. 서유은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칭찬 폭격기는 너인데?”
“아뇨? 저 그냥 있는 말들만 나열한 건데?”
“그니까,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진짜요?”
“응.”
“아닌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들어본 적이 한 번 쯤은 있던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그건 무슨 뜻이야? 육각형 아이돌 상은?”
“아, 육각형이라는 게 게임 능력치 같은 거잖아요? 그니까 육각형 아이돌이 약간 뭐든지 평타 이상은 하는 그런 아이돌 말하는 거고? 오빠가 또 그런 아이돌 상이라는 거죠.”
“너무 금칠이다.”
“근데 이거 제가 한 소리 아니에요?”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오...!”
“아니 그냥. 너 그 명함 번호로 연락은 해봤어?”
“저 아직 고민 중이에요.”
“으음... 그 쯤 되면 나중에도 안 하는 거 아냐?”
“아뇨 제가 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요. 그래서 오빠는 거기 연락해봤어요?”
“나도 아직. 근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오! 알겠어요.”
부실의 유리문이 안에서 열렸다. 누구인가 확인하려고 서유은 뒤를 보았다. 서유은 뒤에 나타난 박철현과 눈이 마주쳤다.
“어, 온유. 너 왜 안 들어와.”
서유은이 뒤돌았다. 박철현이 서유은을 내려봤다.
“유은이 너도 빨리 드루와.”
“네 들어갈게요.”
서유은이 부실로 발을 옮겼다.
“이온유 너는?”
“나 전화 좀 하려고.”
“오키.”
박철현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수아한테 두 번 더 전화 걸었다. 계속 안 받았다. 차단은 안 건 거 같은데. 폰을 달고 사는 애가 무슨 일로 안 받을까. 그냥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과랑 화해는 집에 돌아가고 나서 해야 될 듯했다.
*
ㅡYou're the coffee that I need in the morning
You're my sunshine in the rain when it's pouring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벌써 가게?”
백지수가 물었다.
“어.”
“왜?”
“집에서 할 거 있어서.”
가방을 메고 케이스를 오른어깨에 멨다.
“이온유 지금 나가?”
의자에 앉아 폰을 보던 송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응.”
“같이 나가자.”
송선우가 일어났다.
“너 일렉은?”
“두고 가게.”
“응.”
“죽돌이온유 벌써 가?”
무대에서 정이슬이 노래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물었다.
뒤돌아 네, 라고 답했다.
“어 바이. 근데 선우도 가?”
“네.”
“모야모야. 둘이 뭐 있는 거야?”
“그건 아니고요.”
내가 답했다.
“으응. 잘 가.”
“잘 가고.”
다들 한마디씩 얹었다. 잘 있으라고 대충 답하고 송선우와 밖으로 나왔다.
“웬일이냐 지금 나오고?”
“가끔 집 빨리 갈 때도 있는 거지.”
“집에서 뭐 하는데?”
“몰라. 밥 먹고 운동?”
“으응.”
“넌?”
“저녁 탐이니까 일 도와주러 가는 거지.”
“너 부실에 늦게까지 있을 때가 더 많잖아.”
“그건 귀찮아서 안 들어가는 거고.”
웃음이 나왔다.
“그럼 안 가도 무방한 거야?”
“그렇다고 하고 싶은데, 간간이 얼굴은 비춰야 돼.”
“왜?”
송선우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왔다.
“말해줄 건데, 이거 진짜 자의식과잉 같은 거 아니다?”
“뭔데? 빨리 말해봐.”
송선우가 두 손을 자기 어깨 앞으로 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 내가 좀 명물이에요.”
“뭔 소리야.”
“가끔 출몰하는 미녀 알바생이라고, 아 씨 내가 웃지 말랬지.”
“아니, 큭큭, 너 웃지 말라고 한 적 없는데?”
“대충 그런 뉘앙스로 말했잖아.”
“알겠어. 네가 가끔 출몰하는 미녀 알바생이고, 또?”
송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긴 머리카락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게 중요한 거지.”
“왜?”
“왜냐뇨. 손님 중 일부는 내 실물을 보러 오는 거라구요. 아 씨 웃지 말라고오.”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내 왼어깨를 밀어냈다. 버티려면 버틸 수 있었는데, 그냥 조금 균형을 잃고 걷는 게 더 편했다.
“너 힘 세다.”
“안 때린 걸 다행으로 아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 짜증나. 나 어디까지 말했지?”
“손님들이 네 실물 보러 간다고까지 했어.”
“어, 그니까 내가 너무 얼굴을 안 비추면 손님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구나아.”
송선우가 오른 팔꿈치로 내 상완을 툭 쳤다.
“야 씨, 나랑 함 뜨자.”
“종목은 뭐로 하시게요?”
“복싱.”
“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럼 가드만 올리고 가만히 처맞으면 돼요.”
“봐주세요.”
송선우가 자전거를 꺼내 올라탔다.
“너 뭐 타고 가?”
“버스 아님 택시.”
“네 집 방향이랑 우리 가게 방향 좀 비슷하지.”
“몰라?”
“맞아. 내가 알아. 뒤에 타.”
“나 무거울 건데? 내가 페달 밟아야 되지 않아?”
“그럼 네가 밟아.”
송선우가 내렸다. 송선우가 오른팔을 뻗었다.
“기타 줘.”
“응.”
어깨에 멘 기타 케이스를 송선우에게 줬다. 송선우가 받아들어서 자기 등에 멨다. 뒤에 멘 가방을 돌려 앞으로 메고 자전거에 올랐다. 송선우가 내 오른 어깨를 짚고 뒤에 올라탔다.
“균형 잘 잡았어?”
“어.”
“간다?”
“어 야 근데 나 네 어깨 잡아도 되냐?”
“옆구리 잡기도 가능.”
송선우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페달을 밟아 출발했다.
“껴안기는?”
“진심 껴안게?”
“가능 불가능, 것만 말하세요.”
“하고 싶음 해.”
“난 사양 안 하죠?”
송선우가 두 다리를 내 허벅지 위에 올려 엉덩이를 살짝 띄워서 하반신을 밀착한 다음 도로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고꾸라졌음 어떡하려고?”
“널 믿었죠.”
“아 그러세요?”
“네.”
송선우가 두 팔을 내 옆구리로 넣어 나를 껴안았다. 등에 브래지어와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껴안았을 때 느껴지는 가슴은 김세은과 비교하면 좀 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수아보다 작았으니 송선우는 아마 c컵 쯤 되는 듯했다.
“근데 너 왜 가방 안 들고 다녀?”
“들고 다닐 필요 없어서?”
“일렉기타는?”
“똑같지 뭐.”
“으응.”
“야 근데 개 시원하다 레알.”
“근데 난 바람 직빵으로 받아서 살짝 추운 감도 있어.”
“으음. 근데 너 몸 존나 따뜻한데? 거의 식어가는 핫팩 느낌?”
“사람이 식어가면 죽는 거 아냐?”
“대충 느낌은 뭔지 이해했잖아.”
송선우가 오른손을 떼서 자기 주머니를 뒤져 폰을 꺼냈다.
“나 사진 찍는다?”
“갑자기?”
“원래 사진은 갑자기 찍어야 되는 거야.”
송선우가 왼손으로 펜을 뽑고 오른손을 쳐들어 앞으로 쭈욱 뻗었다.
“나 시선 렌즈 쪽으로 못 돌리는데.”
“걍 정면 주시해. 그런 감성으로 찍는 거니까.”
“네에.”
송선우가 왼손으로 펜을 눌러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갤러리를 확인했다.
“잘 나왔어?”
“어... 나 좀 예쁜 듯?”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송선우가 폰에 다시 펜을 꽂고 주머니에 넣었다.
“동의하는 의미에서 웃은 거였습니다.”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야 야.”
“응?”
“너 밴드부에 좋아하는 여자 있댔잖아.”
“응.”
“그거 나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아니이, 아니면 아니라고 할 것이지 뭘 웃고 뭐, 이러고 있어 짜증나게.”
송선우가 왼손으로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파.”
“너 왤케 살이 없어?”
“운동하니까요.”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애가 누군데?”
“화제가 왜 갑자기 거기로 돌아가?”
“그래서 누구냐고요.”
“아니 막말로 내가 너 좋아했어도 네가 그렇게 물어보면 너 좋아한다고도 말 못하죠.”
“왜 못하는데?”
“부끄럽잖아.”
“뭐야? 존나 귀엽게?”
송선우가 오른손으로 내 오른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송선우는 이런 스킨십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댔다.
“너 여태 남자친구 몇 명 사겼어?”
“왜?”
“개 많았을 거 같아서.”
“나 남친 있던 적 없잖아?”
“중학생 때도 없었어?”
“어. 나 모솔인데?”
“신기하네.”
“지도 모솔이면서 이게.”
송선우가 이번엔 양손으로 내 옆구리를 간질였다.
“간지러워.”
“근데 반응은 건조하다?”
“참는 거야. 막 웃으면 넘어질 수도 있잖아.”
“그럼 봐줘야지.”
송선우가 간지럽히기를 멈추고 다시 몸을 밀착해 나를 껴안았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도로를 주욱 달렸다. 익숙한 정경이 보인다 싶을 때 송선우가 폰을 꺼내서 봤다.
“슬슬 찢어지면 될 거 같은데... 저어기 신호등 있는 데에서 멈추자.”
“알겠어.”
신호등이 있는 곳 앞에서 송선우 먼저 자전거에서 내리고 나도 내렸다. 송선우가 기타 케이스를 빼서 내게 건네 주고 다시 자전가로 가 안장에 앉았다. 송선우가 잘 가라고 했다. 잘 가라고 말하고 내일 보자고 덧붙였다. 응, 이라고 한 송선우가 씨익 웃고 고개를 돌려 페달을 밟았다. 마침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 내 갈 길을 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