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월요일 아침 (1)
* * *
vibin', we could talk all night or sit in silence
일어나.
watchin' shitty movies, gettin' high and
일어나라고 병신아.
laughin' about notting much at all
존나 일어나라 했다.
왼뺨이 두드려지는 느낌이 났다. 왼손을 들어 왼뺨을 가리고 오른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아마 내 알람이 울리는 걸 듣고 나를 깨운 모양이었다.
“으응. 일어났어. 잘 잤어?”
“잘 잤냐고?”
“응.”
눈을 떴다. 시야 왼편에서 백지수가 오른손으로는 매트리스를 짚고 왼손은 내 왼어깨 위 허공에 띄워 고양이 자세를 하고 있었다. 시선이 저절로 가슴 쪽으로 가서 황급히 눈을 위로 올렸다. 백지수의 머리는 평상시처럼 부스스 했다. 근데 얼굴이 상당히 퀭했다.
“잠 못 잤어?”
“잠? 잠을 못 잤냐고?”
왜 이리 되묻지.
“잠이 오겠냐 미친 놈아?”
백지수가 왼손으로 자기 베개를 집어 내 얼굴에 던졌다. 가격 당하기 전에 오른팔로 가려서 막았다.
“미안해.”
“존나 내가 시발 왜 네 부탁을 들어줘 가지고.”
뒤로 사족보행해 침대에서 내려가 바닥을 디딘 백지수가 누가 봐도 화난 걸음걸이로 창가에 가서 커튼을 화악 걷어 젖혔다. 아직은 해가 얼굴을 들이밀어 빛을 뿜어내는 시각이 아니어서 눈을 질끈 감지는 않아도 됐다. 피식 웃었다. 백지수가 뒤돌아 나를 째려봤다.
“뭐가 그렇게 좋냐?”
“그냥.”
“똑바로 말해라.”
“햇빛 공격하고 싶었음 나 잘 때 하는 게 차라리 효율적이었을 건데 지금 한 거 때매. 한마디로, 너 귀여워서.”
“... 미친 놈.”
백지수가 방을 나갔다. 어느새 깨어난 잿더미가 박스에서 폴짝 튀어나가 백지수를 뒤따라갔다.
“나 화장실 쓴다?”
“안 돼!”
쿵쿵쿵 하고 백지수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지방을 밟은 백지수가 나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서 밭은 숨을 내쉬었다.
“하아... 안 들어갔네...”
“왜?”
“하... 넌 무조건 1층 화장실 써. 후... 알겠어?”
“알겠어.”
“너 내려가서 아침이나 차려.”
“차리라고? 만들어서?”
“하... 어. 하숙비는 몸으로 때워야지?”
“하숙이라 함은 오랫동안 여기에서 재워줄 생각이라는 거지?”
“좆 까.”
“아침으로 뭐 해줘야 되는데?”
“냉장고 열어서 재료 쓰고 싶은 거 다 써서 암거나 만들어봐.”
“몇 분 정도 걸리는 거 원하는데?”
“그런 것도 조절 가능하냐?”
“얘기나 해줘.”
“대충 사십 분 넘어가고 한 시간은 안 넘는 거. 나 잠깐 다시 잘 거니까 다 만들고 깨워라.”
“응. 근데 나 요리하면 잿더미가 달려들 수도 있는데.”
“내보내면 돼.”
폰을 집어들고 내려갔다. 뒤따라 내려온 백지수가 잿더미를 현관문 바깥으로 내보냈다. 잿더미는 뒤돌아 냐옹, 한 번 울고 순순히 나갔다. 고맙다는 건가, 피식 웃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소변을 누고 세수한 뒤 나왔다. 잿더미를 내보내고 바로 2층에 올라가서 침대에 누운 것인지 백지수는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 가 냉장고를 뒤졌다. 재료는 풍성했다. 그런데 도막내서 남긴 게 없이 거의 다 온전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요리는 안 하는 모양이었다. 냉장고를 보고 느껴지는 감상을 가감 없이 말하면, 요리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트 싹쓸이를 해놓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는 패턴으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한번 채소들을 다 뒤집어도 보면서 맛이 가지는 않았는가 확인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육안으로는 다 괜찮아 보였다.
40분 넘어가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아침이라. 사실 아침하면 보통 비몽사몽한 상태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레시피밖에 없었다. 주방 아일랜드 한구석에 있는 빵바구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 바구니에 담긴 스콘 같은 거 하나랑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은 대충 때울 수 있었다. 그런데 반 즈음 잘린 바게트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이걸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머리를 굴리다 결국 에그 베네딕트로 도달했다.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들면서 시간을 태워먹으면 될 거 같았다. 만드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두어번 돌이켜보고 일단 손을 씻으며 한숨부터 쉬었다.
오븐을 200도로 예열부터 돌려 놓고 사용할 기구와 그릇과 재료를 다 꺼내 늘어놓았다. 바게트 방에 바를 버터를 조금 잘라 밥그릇에 담고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바게트 빵을 그리 두껍지는 않게 여섯 조각 잘라 오븐 팬 위에 올려놓았다. 전자레인지를 열어 버터에 꿀과 다진 마늘을 넣고 새끼손가락을 찍어 맛봤다. 괜찮아서 바로 실리콘 오일 브러쉬를 써 바게트에 고루 발랐다. 팬을 오븐에 넣고 6분 타이머를 맞춰 돌렸다. 바게트는 됐으니 소스랑 채소를 준비해야 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조금 크게 잘라 넣어 불을 올렸다. 그 옆에 또 다른 프라이팬을 올리고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다음 레버를 돌렸다. 손을 가까이 대 온도가 오른 걸 보고 방울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를 올렸다. 버터가 녹은 프라이팬에 거품이 오른걸 보고 숟가락으로 걷어냈다. 채소들이 타지 않게 집게로 관리하면서 보울에 계란을 까 흰자를 흘려보내고 노른자는 다른 보울에 넣었다. 버터가 들어간 프라이팬의 불을 끄고 노른자 세 개가 들어간 보울을 휘핑했다. 버터가 들어간 프라이팬을 아일랜드에 옮기고 물을 넣은 커다란 냄비를 레인지 위에 올려 불을 켰다. 아일랜드로 돌아가 버터에 적외선 온도계를 가까이 대 온도가 59도인 걸 확인하고 밑바닥에 가라앉은 게 안 들어가도록 다른 그릇에 조심히 옮겨담았다. 보울을 냄비 위에 올리고 정제 버터를 조금씩 흘려넣으며 다시 섞어댔다. 채소를 굽는 프라이팬을 집게로 뒤섞어주고 소금이랑 후추로 간했다. 어느새 6분이 지나버려서 띵 소리를 낸 지 오래인 오븐에 다가가 열고 팬을 꺼냈다. 가장자리가 조금은 탄 바게트가 달콤하고 고소한 향을 뿜어냈다. 오븐 팬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채소를 구운 팬의 불을 끈 다음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드는 노가다를 재진행했다. 때깔이 나왔다 싶을 때 보울을 빼 레몬즙을 넣고 또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 다음 파슬리를 뿌려 소스를 완성했다. 이제 수란을 만들어야 했다. 소스를 중탕한 냄비에 식초를 넣었다.하나씩 하기에는 너무 귀찮아서 한 번에 세 개씩 계란을 집어넣었다. 수채 구멍이 있는 국자를 써서 건져 올리고 접시에 옮긴 다음 밑바닥에 생겨난 물을 도로 냄비에 흘려보냈다. 수란 가장자리는 가위로 잘라 다듬고 키친타올로 물기를 없앴다. 뭔가 이유 모르게 불안해져서 홀랜다이즈 소스가 담긴 보울을 다시 냄비 위에 올려 잠깐만 재중탕하고 꺼냈다.
이제 쌓기만 하면 됐다. 또 한숨을 쉬었다. 그냥 시장토스트나 만들었으면 될 걸 너무 사서 고생한 느낌이었다. 바게트 위에 훈제 연어를 얹고 수란을 얹었다. 그런데 하나를 쌓아놓고 보니 너무 채소가 없는 느낌이라 연어와 수란을 도로 돌려놓고 냉장고에서 양파와 어린잎채소를 꺼냈다. 양파를 슬라이스하고 바게트 위에 어린잎채소와 함께 조금 올린 다음 다시 연어와 수란을 얹었다. 홀랜다이즈 소스는 백지수가 내려오면 뿌리기로 했다. 방울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는 언뜻 보면 주변부에 대충 툭툭 놓은 듯하면서도 균형감이 느껴지게 배열했다. 적당히 봐줄 만했다. 사진을 다섯 장 찍었다.
사용한 그릇과 기구들을 싱크대에 때려박아 물을 채운 다음 커피를 만들었다. 시럽까지 넣지는 않고 알아서 조절할 수 있게 탁자에 올려두었다. 빨리 먹어야 돼서 백지수를 깨우러 2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2층에 올라오니 갑자기 백지수가 2층에 숨긴 게 뭘까 궁금해졌다. 막 뒤지지는 않았지만 중앙부터 서재까지 다 눈으로 스윽 훑어보았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수상한 게 있다면 백지수 방에 딸린 화장실에 있을 거 같은데, 백지수가 보게 허락해줄 거 같지는 않았다.
백지수의 방에 들어갔다. 백지수는 침대 오른편에서 하얀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아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잠든 잿더미가 연상됐다. 귀여웠다. 침대 왼편에 걸터 앉아 백지수의 왼어깨를 조심히 흔들었다.
“지수야. 아침 다 했어. 일어나.”
백지수가 말 없이 왼어깨를 돌려 내 손을 걷어냈다. 입술을 내밀고 뚱한 표정을 짓는 게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아침 먹자.”
“하암... 뭐 했는데.”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려 하품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기지개를 켰다.
“에그 베네딕트. 빨리 내려와야 돼.”
“진심 그걸 만들었다고?”
“응.”
“그래 빨리 먹어야지 그건.”
백지수가 침대 오른편에 발을 빼 등을 내보이며 일어났다. 하얀 티셔츠 너머로 검은 브래지어가 비쳐보였다. 엉덩이만 가린 검은 돌핀팬츠 아래로 주물러보고 싶은 허벅지가 드러났다. 뒤돌아 1층으로 내려갔다. 더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머리와 가슴이 한 차례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었다. 주방에 가 백지수가 앉을 의자를 먼저 빼고 내가 앉을 의자를 빼 앉았다.
“센스 있네.”
라고 뒤에서 말한 백지수가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백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요리 왤케 잘해?”
웃었다.
“먹어보지도 않고?”
“아니 딱 보면 각이 서잖아, 이게 먹을 만한 건지 쓰레긴지. 이건 걍 존나 맛있어 보이는데?”
“여기서 소스 부음 더 먹음직스러워져. 봐봐.”
홀랜다이즈 소스 그릇을 왼손으로 들어 숟가락으로 퍼서 수란 위에 부었다.
“미쳤다...”
“그치.”
백지수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쳐다봤다.
“너 요리 어케 배웠냐?”
“인터넷 보면서 독학.”
“평소에 누구한테 해줬는데?”
“내가 만들고 내가 먹었지. 어머니한테 해주거나.”
“으음... 나 먼저 먹어봐도 돼?”
“응.”
“감사. 손으로 들고 먹기 가능?”
“가능.”
“오키.”
백지수가 오른손을 뻗어 바게트 하나를 들고 한 입 베어물으며 왼손으로 턱 밑을 받쳤다. 바게트 부스러기와 소스 한두 방울이 왼손바닥에 떨어졌다.
“으음, 음.”
백지수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수가 바게트를 내려놓고 커피로 손을 뻗었다.
“그거 시럽 안 넣었어.”
백지수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럼 넣어줘.”
“얼마나?”
“많이.”
“멈추라고 해.”
“응.”
시럽 뚜껑을 열어 조금씩 흘러나오게 기울였다.
“멈춰.”
각도를 되돌렸다. 스푼으로 휘저어준 다음 내 커피에도 시럽을 붓고 섞었다. 백지수가 자기 커피를 한 모금했다.
“야.”
“응?”
“너 내 요리사나 해라.”
“싫은데?”
“너 요리 안 하면 담부터 여기서 안 재워줘.”
“그렇게 협박을 하시면 요리해드려야죠.”
“존나 잘 생각하셨어요.”
백지수가 다시 바게트를 들어 한 입 베어물고 방울토마토를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나도 바게트를 하나 집어 먹었다. 반응을 살피려 계속 백지수를 보았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서 눈이 마주쳤다. 백지수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존맛.”
백지수가 미소지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간만에 잠도 푹 자서 기분이 좋았다. 가능만 하다면 이대로 백지수랑 동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