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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65화 (65/438)

〈 65화 〉 밤 (1)

* * *

일어나세요.

손님? 일어나세요.

흔들렸다. 눈 떴다.

“병원이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려 마른 세수를 하고 택시 문을 열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다시 감사하다고 말한 다음 택시 문을 닫았다. 폰을 켜봤다. 외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온 게 있었다.

[왔음 전화해라. 내 나가마.]

무뚝뚝한 어투가 문자에도 묻어났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모는 덤덤해도 외할아버지는 속이 깊고 여리셨다. 전화 걸었다.

“저 도착했어요.”

ㅡ어. 그러냐. 알겠다.

콜록콜록 소리가 들렸다.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와 함께 곧 문 열리는 소리도 들렸다. 카악, 가래 끓는 소리와 투, 하고 침 뱉는 소리가 들렸다.

ㅡ너 보이는 거 같다. 끊어라.

“네.”

전화를 끊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외할아버지가 흡연실 쪽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외할아버지를 향해 걸었다.

“담배 안 피우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외할아버지는 애연가셨는데 어머니가 집에서 살게 된 이후로 담배를 끊기로 하셨다. 사실 어머니가 보루나 담뱃갑만 보이면 보이는 족족 가져다 버리시는 바람에 담배를 못 피우셨다.

“끊었지. 근데 이게 외투에 또 개비가 하나 남아있더라.”

피식 웃었다. 외할아버지도 웃으셨다.

“담배 냄새 많이 나나?”

“좀 많이 나요.”

“담배 냄새 가실 때까지만 잠깐 있자.”

“네.”

외할아버지가 외투를 벗어서 양손으로 잡은 다음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탁탁 털었다. 내가 담배 냄새를 안 맡도록 거리를 조금 두신 상태였다.

“저녁 뭐 먹었냐? 큼큼.”

“수제 버거 먹었어요.”

“매일 버거 같은 거나 먹으면 안 되지. 언제 또 내려와라. 건강식 좀 먹이게. 아, 그리고 네 엄마가 이번에 또 스무딘가 만들어서 줬는데 맛있더라.”

“알겠어요.”

“그래.”

외할아버지가 도로 외투를 입으셨다. 외투 오른 주머니를 주섬대서 주유소 티슈를 꺼내고 두 장을 뽑아 왼손에 펼친 다음 주유소 티슈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으셨다. 카악, 하고 가래를 끌어모아 겹쳐 놓은 티슈 위에 뱉으시고는 잘 접어 왼주머니에 넣으셨다.

“이제 냄새 안 나나?”

“안 나는 거 같아요.”

“가자 그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함께 병원 쪽으로 걸었다. 병원 안에 들어서고는 외할아버지가 앞장섰다. 계단을 올랐다. 어머니가 폐활량 좀 챙기셔야겠다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걷게 시킨 것을 잘 지키시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 숨이 차오르시는지 가쁘게 숨을 내쉬셨다.

“괜찮으세요?”

“어. 괜찮다. 후우, 이게 계단이, 조금 높은 거 같다. 밭일을 해도, 하아, 이래 힘들진 않은데.”

“외할아버지가 가꾸는 건 텃밭이잖아요.”

“그래도 어려운 건, 후, 어려운 거지. 쉽게 볼 게 아니다. 식물이래도, 하아, 살아있는 걸, 온전히 제 몫으로, 하아, 기른다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냐. 하아, 매일 관심을 쏟고, 후, 뭘 해줘야 잘 자라는지 알아보고, 뭘 하면 안 되는지도, 하아, 찾아보고, 흙 상태는 어떤가, 하아, 벌레는 꼬였나 어떤가, 하아, 줄기랑 이파리가, 잘 자라나 안 자라나, 하아, 어디 썩어들어가는 건 아닌가, 하아, 꼼꼼히, 살펴보고, 하아, 그래야지. 애 키우는 거랑, 하아, 비슷해. 하아, 사랑하는 거랑도, 하아, 비슷하고. 근데, 하아, 애는 좀 자라면, 하아, 뭐 안 해줘도, 하아, 제 앞가림하고, 하아, 하는데, 식물은, 하아, 안 돼 그게. 하아, 자기 맘대로, 하아, 못 움직이고, 하아, 땅에 붙박여서, 하아, 있으니까.”

얘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병실이 있는 층에 도달했다.

“조금 쉬실래요?”

“그래. 후, 먼저 가라.”

외할아버지가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으셨다. 병실 번호들을 보며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찾아가 문을 열었다. 2인실이었는데 한쪽 침대는 불이 꺼져서 어두웠다. 불이 켜진 곳을 봤는데 어머니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고개만 꾸벅여 인사했다. 아주머니가 불 꺼진 곳을 가리키며 입을 여셨다.

“아들이에요?”

아주 조용히, 새어나가는 듯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도 조용한 목소리로 네, 하고 답했다.

“지금 소연씨 자고 있거든요.”

“아 네. 감사합니다.”

“되게 잘생겼다. 효자기도 하고. 소연씨 자랑이겠어요.”

멋쩍게 웃으며 감사하다 말하고 커튼을 걷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침대 왼편으로 삼분의 이 정도 빠진 듯한 노란 수액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정자세로 누워 두 손을 배 위에 올린 상태로 잠들어 계셨다. 바늘이 꽂히지 않은 오른손이 아래로 가고 그 위에 왼손이 포개어져 있었다. 왼손등 위에는 바늘이 꽂혀 하얀 테이프가 짧게 세 겹, 그리고 한 번 빙 둘러감아서 한 겹 붙여져 있었다.

한 발짝 더 디뎌 완전히 안에 들어가고 커튼을 다시 닫았다. 어두웠지만 식별은 가능했다. 외할아버지가 앉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형 의자에 앉아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전보다 얼굴이 수척했다. 시골에 내려가면 살이 찐다는데 어머니는 도리어 살이 빠졌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 사유를 신체에서 찾으신 건지도 몰랐다. 오른팔을 뻗어 어머니의 오른 팔꿈치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엄지와 네 손가락을 조금씩 좁혀 고리를 만들어봤다. 팔꿈치가 한손에 들어오다 못해 조금 남기까지 했다. 원래는 내 큰 손으로도 중지와 엄지가 맞닿지는 않았었다. 가장 최근 만져봤을 때도 닿을락 말락 할 정도였었는데. 어머니는 차차 말라가고 있었다. 앞에서 누가 커튼을 걷었다. 외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침대 아래에서 앉을 것을 꺼내 어머니의 왼편에 앉은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의 왼어깨를 살살 흔들었다.

“소연아. 일어나라. 온유 왔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오히려 잘 자라고 동화라도 읽어주는 듯 나긋나긋했다.

“네 아들 왔어.”

“으으응...”

어머니가 몸을 뒤척였다. 자세가 불편했는지 두 손을 움직이셨다. 놀란 외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의 왼팔을 두 손으로 잡았다. 덕분에 어머니도 잠에서 깼는지 느리게 눈을 꿈뻑꿈뻑 감았다 뜨셨다.

“왜요 아빠...?”

외할아버지가 은은히 미소지으셨다.

“옆에 봐라.”

어머니가 나를 봤다. 미소지으셨다. 얼굴 근육이 떨리는 게 보였다.

“왔어 아들?”

어머니가 오른손을 뻗어왔다. 상체를 내밀어 두 팔꿈치를 무릎 쪽 허벅지에 댔다. 왼볼이 쓰다듬어졌다.

“미안해. 연락도 안 하고 답장도 안 보내서. 무슨 사정인지는... 얘기 안 해도 알지?”

“알아요 엄마.”

“무슨 일 있었니?”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모자 간의 비밀이야 아빠.”

“네가 얘기 안 해줌 손자한테 들음 되지 뭐.”

“엄마가 둘만의 비밀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알려드릴 순 없죠.”

“그래. 둘만 가져라.”

어머니가 살풋 웃으시고 입을 여셨다.

“아빠. 엄마는요?”

“네가 병원 밥 맛 없대서 무슨 죽을 사오겠다더라.”

“배달 시키면 되는데.”

“그러게 말이다. 주문은 전화로 하고 직접 차 끌고 가 가지고는. 근데 곧 올 거다. 받아서 지금 가고 있다고 방금 전화왔다.”

“나 진짜 엄마 아빠밖에 없는 거 같애.”

어머니가 아, 라고 하고 나를 보셨다. 다시 오른손을 뻗어 내 왼볼을 어루만지셨다.

“그리고 우리 온유도 있었지. 미안해.”

“안 까먹으셨으니까 됐죠 뭐.”

“이해해줘서 고마워?”

“네.”

미소지었다. 어머니도 마주 웃으시면서 내 왼볼을 장난스레 꼬집으셨다.

“온유야.”

어머니가 말했다.

“네?”

“오늘 인별에 올린 영상 있잖아.”

“네.”

“그 키 작은 여자애 신입생이니?”

“네.”

“왜 둘이서만 버스킹한 거야?”

“그 애가 원래 혼자하려 했다가 막상 할 거 생각하니까 부담감이 몰려와서 부장인 저한테 부탁했다더라고요.”

“으음... 그렇구나.”

“온유야. 네 영상은 어디서 보냐? 유트븐가 하는 거에 올라온 건 다 봤는데, 뭐 더 있는 모양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잠잠히 듣고 계시다가 물으셨다.

“인별이요. sns예요. 폰 주세요 깔아드릴게요.”

“그래.”

외할아버지가 외투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셨는데 담뱃갑도 같이 꺼내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폰을 건네받아 앱을 까는데 분위기가 어색했다.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쏘아봤다.

“아빠.”

외할아버지가 오른손으로 주먹을 말아서 입을 막고 큼큼, 하고 헛기침하셨다.

“담배 뭐예요.”

“이게 일년 동안 안 쓰던 외툰데, 안에 있더라. 나 안 피웠다.”

어머니가 말 없이 나를 봤다.

“피웠어요.”

어머니가 다시 고개를 획 돌려 외할아버지를 봤다.

“온유가 피웠다는데요?”

“... 미안하다.”

“담배 다시 피우시기만 하시면 저 따로 살 거예요.”

“안 피운다. 온유야. 가져가서 버려라.”

외할아버지가 담뱃갑을 주워서 내게 주려하셨다.

“아무리 잠깐이래도 온유가 그걸 어떻게 소지하고 있어요 아빠!”

“아 그렇지.”

“바보 같애.”

어머니가 쿡쿡 웃으셨다. 어머니가 웃는 건 간만에 보는 듯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외할아버지 계정을 만들어 밴드부와 내 계정을 팔로우하고 돌려드렸다. 갑자기불이 켜졌다. 다들 눈을 감았다가 느리게 다시 떠 눈을 적응시켰다. 외할아버지 뒤편에서 누가 커튼을 걷었다. 외할머니였다. 일어서서 봉투 저 주세요, 라고 말하고 죽이 담긴 봉투를 받았다.

“응 고맙다. 왜 소리 질렀어 우리 딸. 환자는 절대 안정이어야 하는데.”

외할머니가 다가가서 양손을 어머니의 양볼에 대고 비비셨다. 어머니가 배시시 웃었다.

“엄마 나 배고파. 빨리 죽 줘.”

“알겠어요. 대신 남기면 안 돼요?”

“먹을 수 있는 만큼은 먹을게.”

“그래.”

일어서서 죽이 담긴 봉투를 의자에 두고 외할아버지를 거들어 빠르게 식탁을 세팅했다. 어머니가 죽을 보고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작게 한 스푼을 떠서 드시는 걸 다들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때?”

외할머니가 물었다.

“맛있어. 고마워 엄마.”

어머니가 웃었다. 외할머니도 마주 웃었다.

“안아보자 우리 딸.”

“응.”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안았다.

“저도 안아도 돼요?”

내가 물었다.

“응. 와.”

어머니가 답했다. 나도 외할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안았다.

“큼큼. 나도.”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의 뒤에서 팔을 크게 뻗어 외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를 안았다.

“이만하면 사랑은 먹을 만큼 다 먹은 거 같아요. 나 이제 죽 먹을래요.”

어머니가 말했다. 다들 떨어져서 도로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죽을 한 입 드신 어머니가 다시 미소를 머금으셨다. 나도 미소지었다. 알코올 냄새가 배어 있는 이곳이 집보다 훨씬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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