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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61화 (61/438)

〈 61화 〉 저녁 (1)

* * *

김세은이 달려와서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왼손으로 내 등을 쓸어주었다. 구역질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눈물도 조금 흘러나왔다. 김세은이 어제 맸던 웨이스트백과 다른 브랜드의 웨이스트백에서 물티슈를 꺼내 한 장을 뽑아 오른손에 펼쳤다. 일련의 동작이 빠르게 진행됐다. 김세은이 다시 왼손으로 내 등을 쓸어줬다.

“어어, 오빠 괜찮아요...?”

내게 달려올지 아니면 트렁크에서 기타를 꺼내야 할지 한참을 우왕좌왕하던 서유은이 택시 트렁크에서 기타를 꺼내고 뒤늦게 왔다. 김세은이 여전히 내 등을 쓸어주면서 고개를 돌려 서유은을 쳐다봤다.

“유은아. 너 언제부터 얘 보고 오빠라고 불렀어? 어제만 해도 선배라고 하지 않았어?”

“오늘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얘랑 버스킹하고 나서?”

“네.”

서유은이 내 왼쪽에 김세은처럼 쪼그려 앉았다. 김세은이 먼저 내 등을 쓸어주고 있어서 서유은은 그저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김세은이 서유은을 흘깃 보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 뒤 입을 열었다

“유은아. 그냥 안에 들어가서 기타 내려놓고 와.”

“네. 그래야겠어요.”

서유은이 일어서서 빠르게 걸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점차 진정되어갔다. 김세은이 물티슈를 건넸다.

“괜찮아?”

물티슈를 받고 입을 닦았다. 닦은 면이 안 드러나게 물티슈를 접었다.

“나 줘.”

“고마워.”

김세은이 내 토사물과 침이 묻은 물티슈를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더러운 건 못 참는 김세은은 나를 위해서라면 뭐가 얼마나 더럽든 아무 신경도 안 쓰는 사람처럼 굴었다. 김세은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면 당연스레 기꺼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김세은은 항상 내게 동등성의 원리를 들이댔으니까.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갚아야 할 부채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버거워지기만 했다. 김세은이 내게 요구해오는 관계상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동등하고 서로의 성장을 바라고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서로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유지되는 건전한 관계라기보다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에 가까웠다.

“어제도 상태 별로인 거 같았는데. 내일 병원 가봐.”

김세은이 걱정스럽다는 눈을 하고 내 얼굴을 살폈다.

“병원 가야 될 건 아냐.”

“그렇게 고집 부리면 내가 억지로 끌고가는 수가 있어요?”

“시간도 없으면서.”

“너 챙겨주는 건데 시간 쥐어짜서라도 만들어야지.”

미소지어보였다.

“고마워. 근데 나 진짜 괜찮아.”

김세은이 입을 다물고 다시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더니 양손을 뻗어왔다. 내 얼굴을 붙잡으려는 건가. 두 손으로 양손목을 잡았다가 바로 놓아주었다.

“애들 바로 근처에 있잖아.”

“온유 오빠아.”

김세은이 서운한 눈빛을 했다가 서유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2초 뒤에 바로 안색을 감췄다. 김세은은 표정을 꾸밀 줄 알았다. 김세은이 쪼그려 앉은 상태로 고개만 뒤로 돌렸다.

“정우도 왔네?”

“... 네.”

손정우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서유은이 도도도 달려와 내 옆에 선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어제의 창피함 같은 게 아직 남은 모양이었다. 김세은이 입을 열었다.

“왜 왔어?”

“형 몸 상태 별론 거 같다고, 부축해달라고 유은이가 저한테 부탁해서...”

김세은이 나를 봤다.

“필요해?”

“아냐 괜찮아. 고마워. 도와주러 와줘서.”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매장 안으로 함께 걸었다. 분위기가 어색했다. 말문은 내가 열어야 했다. 근데 말할 기분은 별로 안 들었다. 우선 자리에 앉고 싶었다. 안쪽 테이블을 선점해 앉아 있던 송선우가 벌떡 일어서서 손짓해왔다.

“종이 인형 온유씨 이리 오세요. 아니 내가 가서 업어드릴까요?”

피식 웃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필요 없어요.”

말한 순간 김세은이 갑자기 내 왼팔뚝을 잡았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딱 네 명이네. 여기 앉자.”

김세은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바로 앞이라 그냥 앉았다. 내 옆에는 김세은이 앉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손정우는 나를 바라보면서 도통 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

“저 화장실 좀 갈게요.”

“어.”

손정우가 자리를 떴다. 손정우 옆 자리의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오빠 어디 안 좋으세요? 낮에도 한 번 몸 별로셨던 거 같은데.”

“... 낮에도?”

김세은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어... 버스킹하고 같이 서울숲 갔을 때요.”

“으응...”

김세은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테이블 밑으로 김세은이 왼손을 뻗어 내 오른손을 잡았다. 그 상태로 검지를 세워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뭐 해명이라도 하라는 건가.

“단합할 때까지 시간 좀 비어서 산책 좀 하다 왔어.”

“왜 유은이 대신 답해줘?”

김세은이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나? 조금 답답했다. 김세은이 내 손등을 스윽 훑으며 왼손을 거둬갔다. 그 손길이 너무 간지러워서 손등에서 상완까지 소름이 타고 흘렀다.

“그래서, 어디 아팠어?”

“나한테 묻는 거야?”

김세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널 보고 있잖아요?”

“... 머리.”

“으음... 지금은 좀 괜찮아?”

“어. 안 아파.”

“오늘 부장 역할할 수 있겠어?”

“나 약골 아냐.”

김세은이 테이블에 오른팔을 대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볼에 닿는 손가락들이 각도가 절묘해서 한손으로 꽃받침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심."

어느새 다가온 송선우가 말했다. 송선우, 백지수, 김민우, 손정우가 옆 테이블을 들어서 우리 테이블 왼편에 붙였다. 김세은이 눈을 찌푸렸다.

“뭐해? 이래도 돼?”

“테이블 붙여도 되냐고 물어보고 왔어. 걱정 마.”

송선우가 답하고 내 왼쪽 자리에 앉았다.

“정우야 너 오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김세은이 물었다.

“아... 저 지수 누나한테 붙잡혀서요.”

“그래?”

김세은이 백지수를 봤다. 송선우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은 백지수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댄 채 김세은을 보았다.

“왜? 좀 도와달라 한 건데.”

“아니 그냥. 왜 굳이 후배 고생시키나 해서.”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후배를 아꼈는데?”

“... 너희 왜 싸워요?”

일어서서 우리를 보던 김민우가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일어나 있는 상태로 눈을 꿈뻑꿈뻑 뜨고 있는 모습이 백지수와 송선우를 도와주고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상황이 이상해져서 뭐 때문인가 파악을 해보려다가 아무래도 이해를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이해가 안 갔다.

“안 싸워요 오빠.”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답하는 순간,

“싸운 적 없는데요?”

김세은도 김민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 어. 내가 착각한 듯? 갈게?”

“네. 고마웠어요 오빠.”

송선우가 말했다.

“고마웠어요.”

백지수도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김세은을 봤다. 손정우가 아까보다 더 안절부절 못했다. 사람이 더 오면 얘기도 많이 하고 분위기도 풀릴 거라 계산한 거 같은데, 정말 그랬다면 생각이 짧은 거였다. 그렇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나름 머리 굴린 건데 누가 뭐라하면 억울하기도 할 거였고.

“어... 저희 슬슬 주문해야 되지 않아요?”

손정우가 말했다. 말하기 어려웠을 건데, 조금 대견했다.

“그치. 주문해야지.”

송선우가 받아줬다. 송선우가 메뉴판을 펼쳐서 자기와 나 사이에 뒀다.

“나도 봐야지.”

김세은이 그리 말하면서 메뉴판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김세은이랑 송선우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테이블에 팔을 댔다.

“그러지 말고 메뉴판을 더 달라고 하지?”

백지수가 말했다.

“부장이 안 불편하면 됐지. 너 지금 불편해?”

김세은이 물었다. 사실 존나 불편했다.

“안 불편해.”

“그렇대.”

“... 어.”

백지수가 떨떠름하게 답했다.

“추천 메뉴 있어?”

김세은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다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게 뭔데?”

“난 치킨 샌드위치. 근데 여기는 사이드 메뉴도 먹어줘야 돼.”

“으음... 그럼 사이드 같이 시키고, 버거는 메뉴 서로 다른 거 골라서 나랑 나눠먹자.”

“진짜 다 맛있어?”

송선우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

“그럼 우리 넷이 서로 다른 메뉴 네 개 시키고 사 분의 일로 나눠서 먹을까?”

“네 명이 누군데?”

김세은이 송선우를 보며 물었다.

“너, 나, 지수, 유은이.”

“나 부장이랑 나눠먹을 생각이었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왜? 뭐가 아닌데?”

“글쎄? 몰라. 근데 이게 편하지 않아? 여자들끼리 나눠 먹고. 남자는 남자끼리 나눠 먹고.”

“그럼 우리 자리 배치 바꿀까?”

백지수가 물었다.

“그러자.”

송선우가 답했다. 둘은 좋은 2인조였다.

“유은아 일어나.”

백지수가 말했다.

“자리 옮기기 싫음 안 일어나도 돼 유은아. 언니들이 시키는 건 아니고, 네가 싫음 안 할 거야.”

김세은이 말했다. 서유은이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본데도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 전 자리 바꿔도 상관 없어요오...”

서유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유은이 백지수 옆 자리에 앉았다. 결국엔 김세은도 일어나서 송선우의 옆으로 가 앉았다.

“정우야, 옆으로 와.”

백지수가 말했다.

“아 넵.”

손정우가 백지수 옆 의자로 옮겨 앉았다. 나랑 손정우 옆으로 의자가 하나씩 남아서 이제 두 명이 더 와서 앉을 수 있었다. 제발 누구라도 와줬으면 했다. 기왕이면 분위기메이커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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