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60화 (60/438)

〈 60화 〉 서유은 (7)

* * *

“유은아.”

“네?”

“너 남자친구 사겨본 적 있어?”

“아뇨오? 왜요?”

“고백 받아본 적은?”

“몇 번 있어요. 왜요오?”

“많이 받아봤을 거 같아서.”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저는 선배가 더 많이 고백 받아봤을 거 같은데.”

“난 별로 받아본 적 없는데.”

“손 꼽는 정도는 아닐 거 아녜요.”

“손 꼽는 정도 맞아.”

“네에? 왤까요?”

서유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약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여서 그런가...?”

“내가 차가운 스타일이야?”

“아뇨. 첫인상은 몰라도, 만나보면 그런 느낌은 아닌데, 으음... 제 얘기는요, 사람들이 선배를 약간 예술품 대하듯이 한 거 아닌가 싶어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되는...? 대충 서로 감상만 가능한 느낌으로.”

“또 콩깍지.”

“아니...! 하아... 몰라요.”

서유은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뒤통수도 귀여웠다. 웃었다.

“미안해.”

“뭐 무슨 말만 하면 콩깍지라고 하시면 어떡해요오...”

“네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랬어. 안 그럴게 앞으로.”

“아까도 안 한다고 하셨으면서 지금 또 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 말을 믿어요?”

“진짜 안 할게 유은아.”

“... 저 선배 장난감 아니에요오...”

“알지. 이제 안 한다니까.”

“또 하시면 저 말 안 할 거예요.”

“응.”

서유은이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분홍빛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괜스레 침을 삼키고 폰을 꺼냈다.

“포스트잇 네가 갖고 있어?”

“네? 제가 안 줬어요?”

서유은이 허공에 시선을 던지며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곧 포스트잇이 서유은의 손에 잡혀나왔다. 서유은이 포스트잇을 건네줬다.

“지금 전화하시게요?”

“응. 나중엔 까먹을 거 같아서.”

왼손에 포스트잇을 들고 오른손으로 폰을 두드려 번호를 기입했다. 바로 전화 걸었다. 수신음이 세 번 들리고 연결됐다. 스피커폰을 키고 소리를 조금 줄였다.

ㅡ여보세요.

“저 오늘 번호 주신 버스커예요.”

ㅡ아, 네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 게 티 났다. 서유은이 폰을 노려봤다. 웃었다.

ㅡ두 분 안 사귀시는 거죠...?

“네. 근데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ㅡ아 네. 말씀하세요.

“제가 열여덟 살이거든요.”

ㅡ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네.”

ㅡ허억...

“저랑 사귀시면 큰일나실 텐데, 괜찮으세요?”

ㅡ... 솔직히 말해서, 저는 기다려줄 수 있어요. 성인될 때까지. 그때 돼서 저 만나준다는 약속만 해주면.

서유은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오?”

서유은이 툭 튀어나와서 말해놓고는 양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ㅡ혹시 지금 옆에 버스킹할 때 같이 노래 부르신 분 있으세요?

“네.”

ㅡ왠지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더니. 암튼. 두 분 지금까지 같이 있어서 뭐하세요?

“오늘 밴드부 단합해서 그거 시간될 때까지 잠깐 산책하고 있어요.”

ㅡ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둘이 막 썸 타는 거 아니죠?

“아, 아니에요오...!”

통화 너머의 여자가 웃었다.

ㅡ남자분한테 들어봐야겠는데요?

“얘가 썸 타는 거 아니라는데 아닌 거죠.”

ㅡ다른 생각 있는 거죠?

서유은을 흘깃 바라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아뇨. 근데 저 진짜 기다리실 생각이에요? 2년이잖아요.”

ㅡ군대 가는 거 기다려주는 사람도 많은데 기다려 줄 수 있죠.

“근데 저 군대가는 것도 기다리셔야 할 건데?”

ㅡ싸이처럼 군대 두 번 갔다고 생각하죠 뭐.

“저기 혹시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오...?”

서유은이 두 손을 벤치에 대고 내 폰 쪽으로 머리를 내밀어 말했다.

ㅡ저 스물 넷이요.

“그럼 온유 선배 스무 살일 때 언니는 스물 여섯 살이신 거네요...? 아, 저 언니 보고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통화 너머 여자가 서유은이 스물 여섯이라고 짚어주는 대목에서 끅끅대며 웃었다.

ㅡ아, 알겠어요. 눈치 없게 끼어들어서 미안해요.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이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건데, 나중에 제가 하는 카페 오실래요? 얘기 들어보고 싶은데.

“무슨 얘기요오...?”

ㅡ그냥 시간 지나면 얘기할 거리 생길 거예요. 그때 찾아와요. 이 번호로 연락하면 주소 문자로 보내줄게요. 근데 나 반말해도 돼요?

“네 언니.”

“저한테도 말 놓으셔도 돼요.”

ㅡ고마워. 우리 동생 이름 뭐야?

“저 서유은이요.”

ㅡ응. 유은아, 이 번호로 문자해서 연락처 알려주고. 온유? 이름 온유 맞지?

“네.”

ㅡ노래 부른 거 녹음한 파일 있음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 카페에 틀고 싶어서.

“네. 보내드릴게요.”

ㅡ고마워. 나 남자친구 웬만하면 안 만들 테니까 어른 돼서 생각 있으면 얘기해.

“어, 언니이... 진심이에요...? 남자친구 없음 쓸쓸하실 텐데...?”

여자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ㅡ아, 너 진짜 귀엽다 유은아. 너도 노래한 거 파일 있음 나한테 보내줄래? 너희 목소리 너무 내 취향이라 계속 듣고 싶네.

“아, 알겠어요. 집 가서 보낼게요.”

ㅡ응 고마워. 이제 둘 시간 안 뺏을게. 아 근데 내 이름 얘기해줬나?

“아뇨. 안 알려주셨어요.”

ㅡ박다솔이야. 바로 말해줬어야 됐는데 얘기 흐름이 이렇게 돼 가지고. 암튼, 끊어?

“네. 끊을게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서유은을 보았다. 두 손을 여전히 벤치에 대고 있는 서유은이 동글동글한 눈을 깜박였다. 뽀뽀를 기다리는 연인이 할 법한 자세였다.

“너 그 자세 안 불편해?”

“아, 맞아요.”

서유은이 다시 똑바로 앉았다. 그러고는 다소곳하게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렸다. 뭔가 모션이 어색했다.

“전화하니까 생각난 건데, 어제 내가 명함 줬잖아. 거기에 연락해봤어?”

“아뇨오?”

“한번 연락해서 약속 잡고 얘기는 들어보지. 좋은 회사 같던데.”

“그래야 할까요... 선배는 그 회사 들어가실 거예요?”

서유은이 나를 올려다봤다.

“몰라. 일단 고려는 하고 있어.”

“고려한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그냥. 별 뜻 없어. 여기는 절대 안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정도?”

“대충 선택지로 남겨둔다는 거네요?”

“그렇지.”

“으음... 네. 생각해볼게요.”

“응.”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성수 갈까?”

“벌써 그럴 시간이에요? 별로 한 것도 없잖아요?”

“근데 시간이 빨리 갔네.”

“보여주세요.”

폰을 켜서 보여줬다.

“허얼... 말도 안 돼...”

일어났다. 폰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

“일어나. 가야지.”

서유은이 폰은 안 주고 왼손으로 내 손을 맞잡으며 일어났다.

“나 폰 달라고 한 거였는데.”

“아, 그런 거였어요...?”

서유은이 그제야 폰을 주었다.

“선배 잘못이에요...!”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선배가 너무 배려를 잘 해주니까 이런 행동도 배려하는 건줄 알고 사양을 안 했잖아요...!”

웃었다. 조금 오랫동안.

“왜 이리 웃으시는 거예요오...?”

“너 화법 너무 좋아서.”

“그런 얘기 막 하심 안 된다구요오...”

“네가 하게 만들잖아. 네 책임도 있어.”

“억지예요...”

서유은이 도로 벤치에 앉았다.

“왜 도로 앉아? 안 가게?”

“저 너무 많이 걸어서 움직이기 싫어요. 카택 타고 가요.”

“그러려고 해도 도로까지는 걸어야지.”

“그니까아, 좀만 더 앉아 있다가 가요오...”

“알겠어.”

나도 다시 앉았다. 짧은 침묵이 사이를 메웠다.

“선배.”

서유은이 나는 안 바라보고 정면을 보며 물었다.

“응?”

“... 저 선배한테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웃었다.

“그게 그렇게 비장하게 말할 일이야?”

“그, 그럴 수도 있죠오...!”

“돼. 이미 허락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네? 언제요?”

“너 나한테 오빠라고 부른 적 있어.”

“네? 제가요? 진짜로요?”

“응. 기억 안 나? 너 회기 연습실 혼자 찾아왔을 때, 혼자 라운지에 있었어서 내가 말 걸었지. 그때 같이 기타 연습실 들어가서 dynamite 부른 다음에 얘기하던 중에, 네가 나한테 오빠라고 했어.”

서유은이 눈을 찡그리고 뭔가 골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표정을 풀고 눈을 크게 뜬 다음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맞아요오... 창피해... 오빠는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아요?”

“몰라. 네가 한 말이라서 그런가.”

“아... 진짜 그러지 마요 오빠아...”

“뭘 하지 마.”

“막, 막, 아, 아무튼 하지 마요오... 그럼 안 돼요 진짜아...”

손바닥에 막혀 안 그래도 작은 소리가 더 작게 들렸다. 폰을 꺼내고 택시 앱을 켰다.

“택시 불러놓는다?”

“네에...”

서유은이 여전히 얼굴을 감싼 채로 답했다. 고개를 기울여 서유은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려 했다.

“얼굴 언제 보여줄 거야?”

“오빠가 그런 짓만 안 하면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런 짓이 뭔데?”

“지금 이러는 거요오...”

미소지었다. 충분히 재밌었다. 다시 벤치에 등을 기대는 자세로 바꿨다. 얼마 안 가 서유은이 양손을 얼굴에서 떼고 손부채질을 했다. 서유은이 먼저 일어났다.

“가요.”

“응.”

택시를 호출하고 함께 서울숲 밖으로 나갔다. 버스킹하고 밥 먹고 산책만 했는데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서유은이랑 자주 이렇게 놀 수 있었으면. 서유은을 바라봤다. 서유은이 나를 올려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 할 말 있냐고 눈으로 물어보는 건가, 그냥 미소로 답했다. 서유은도 미소지었다. 택시가 와서 트렁크를 열고 기타를 집어넣었다. 서유은이 뒷자리에 먼저 들어가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택시가 출발했다.

이제 밴드부원들을 만날 시간이었다. 갑자기 또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슴이 내려 앉은 상태로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한숨 쉬었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 괜찮아.”

서유은을 보며 미소지어보였다. 몸이 왜 자꾸 이러는 건지. 이상했다. 뒷목 오른쪽으로 식은땀이 한방울 흘렀다.

“유은아.”

“네?”

“나 잠깐만 손 좀 잡아주면 안 돼?”

서유은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서유은이 침을 삼켰다.

“... 꼭, 필요한 거예요...?”

“응.”

서유은이 오른손을 내밀어주었다. 양손으로 그 작은 손을 절벽 위 지푸라기처럼 잡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드드,

“오빠 전화 울려요...”

“응.”

오른손으로 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세은이었다. 다시 집어넣었다.

“누구예요...?”

“밴드부원.”

“안 받으셔도 돼요?”

“곧 만나니까.”

다시 서유은의 손 위에 오른손을 포갰다.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 도착할 때까지 말 없이 있었다. 택시 문을 열고 나왔다.

“유은이랑 같이 왔네?”

가게 문 앞에서 폰을 보던 김세은이 택시에서 나온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대답을 해야 했는데 욕지기가 치밀었다. 빠르게 바닥을 훑어 하수구를 찾아 무릎 꿇었다. 토가 쏟아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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