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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59화 (59/438)

〈 59화 〉 서유은 (6)

* * *

“근데요 선배.”

“응?”

다리 위를 걷고 있는데 서유은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 전화번호 주신 분한테 연락하실 거예요...?”

“왜?”

“그냥 궁금해서요.”

“글쎄. 일단 나 미성년자라고 얘기해서 거절 정도는 해줘야 되지 않을까?”

“굳이요? 그냥 연락 안 해도 알아서 이해하지 않을까요?”

“그냥 내가 사람이 무시 당하는 상황이 죽도록 싫어서, 나는 다른 사람 최대한 무시 안 하려고 그러는 게 좀 있어.”

“선배 왜 멋있는 거 혼자 다 해요?”

피식 웃었다.

“뭔 소리야 그건 또.”

“그냥 말 그대로요. 취미도 멋있고 마인드도 멋있고.”

“꽁깍지.”

“아니라구요오!”

“알겠어.”

“저 놀리는 거 재밌어요?”

“응.”

반대편에서 흰 털에 푸른 눈을 가진 시베리안 허스키 성견을 산책시키는 견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 애 눈 되게 예쁘다.”

“네?”

서유은이 내 시선을 좇아 개를 보았다.

“오! 진짜 예뻐요!”

서유은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허스키를 바라보면서 내 뒤로 숨었다. 그 상태에서 내 외투 자락에 두 손을 조심스레 대고 얼굴만 빼꼼 내밀어서 허스키를 보았다.

“예쁘다면서 왜 숨어?”

“근데 엄청 크잖아요.”

“너 안 물어. 괜찮아.”

“어? 어어?”

우리 옆을 지나가던 허스키가 갑자기 머리를 틀어 서유은 쪽으로 도도도 걸었다. 당황한 서유은이 몸을 웅크리고 양손을 뻗어 허스키의 얼굴을 막으려 했다. 허스키가 혀를 낼름거려서 서유은의 오른손을 핥았다.

“이안! 죄송해요!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눈을 크게 뜨고 달려온 젊은 남자 견주가 무릎을 굽히고 오른팔로 허스키의 목에 헤드락을 건 뒤 양손으로 허스키의 얼굴을 막으려 더듬어댔다. 허스키가 머리를 막 흔들면서 견주의 손에 얼굴을 비벼댔다.

“괘, 괜찮아요오... 저 한번 만져봐도 돼요...?”

“아, 네.”

서유은이 쪼그려 앉은 상태로 뒤뚱뒤뚱 걸어 오른손으로 허스키의 등을 느리게 세 번 쓸었다. 허스키가 잠잠해졌다.

“털 느낌 되게 좋아요... 관리 엄청 잘해주셨나봐요?”

“네, 아껴주려 하고 있죠.”

견주가 헤드락을 풀었다. 자유를 되찾은 허스키가 서유은에게 다가가 머리를 들이밀면서 몸을 막 비벼댔다. 서유은이 귀엽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허스키를 쓰다듬었다.

“... 제가 너무 아껴주기만 했나봐요. 얘가 이젠 주인도 선택하려 하는 거 보면.”

“네에? 얘 그 말 들으면 섭섭해 할 걸요?”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허스키가 헥헥대며 얌전히 앉는 자세를 취하고 서유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유은이 네 손가락으로 턱을 간질였다. 허스키가 간지러운지 고개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피하면서도 앉아있는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얘 말 엄청 잘들어요오!”

서유은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견주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나를 봤다.

“남자친구분도 한번 만져보실래요?”

“네...? 남자친구요...?”

서유은이 견주를 쳐다봤다. 견주가 눈을 크게 떴다.

“사귀는 사이 아니세요?”

“네에... 선후배 사이예요오...”

서유은이 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옆에 쭈그려 앉아 허스키의 머리를 쓰다듬어봤다. 허스키가 눈을 감고 손길을 감미했다.

“사람을 되게 잘 따르는 애네요.”

“얘가 이런 애인줄은 저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견주가 하하, 하고 꾸며 웃었다. 서유은이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섰다.

“만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오...”

서유은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만지는 거 허락해주셔서.”

“아뇨. 얘의 새로운 모습을 봐가지고... 제가 더 감사하네요.”

서로를 보며 짧게 웃었다. 만지는 손길이 없자 이안이 일어섰다. 견주가 이안을 바라봤다. 이안이 발걸음을 뗐다. 견주가 목줄을 한 번 감아잡았다.

“이안이 움직이고 싶나봐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내가 말했다. 서유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안녕히 가세요오...”

“네. 두 분도 안녕히 가세요.”

이안과 견주가 가던 길로 갔다. 나도 서유은과 함께 가던 길로 걸었다.

“그냥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됐는데.”

“네?”

서유은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의미예요오...?”

“그냥 그래도 됐다고. 해명하는 것도 한두 마디 더 해야 되니까 귀찮았잖아.”

“하아... 선배애...”

서유은이 한숨 짓고 책망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왜?”

“그렇게 간단하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오...”

“뭐가 문젠데?”

“아니이... 별 연관 없는 사람이래두, 다른 사람이 선배랑 저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구요오...? 그래도 괜찮아요...?”

“응.”

“네?”

서유은이 멈춰서서 나를 올려봤다. 나도 서유은을 마주봤다. 서유은이 그 상태로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서유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 아니, 선배애... 그렇게 툭툭 던지시면 안 된다니까요오...? 무심코 던진 돌에 죽는 개구리가 제가 될 수도 있어요오...”

피식 웃었다.

“너 뒤에 사람 있어.”

“네? 죄송해요!”

서유은이 말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서유은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유은이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어, 없잖아요...!”

“응.”

“웃지 마세요오...!”

“너도 나였음 웃었을 걸.”

“... 웃는 건 그래도, 선배 왜 거짓말한 거예요...?”

“뒷걸음질치다 넘어지면 안 되잖아.”

“이유가 납득돼서 더 나빠요...!”

웃었다.

“납득되는데 왜 나빠?”

“뭐라 말하고 싶은데 말문이 막히잖아요...! 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이라고요오...”

“너도 나한테 장난치면 되잖아.”

“안 돼요.”

“왜?”

“선배는 뭔가 아무 것도 안 당할 거 같은 느낌이 있어요.”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 설명은 못 하겠어요.”

“그럼 앞으로도 나만 장난치겠네?”

“아, 안 돼요오...!”

서유은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눈앞에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난 곳이 보였다.

“여기서 사진 찍자. 나 먼저 찍어줘.”

카메라 앱을 켜서 서유은에게 건넸다. 서유은이 받았다. 펜스에 밀착해서 카메라 렌즈를 보며 포즈를 두 번 바꾸고 다가갔다.

“잘 나왔어?”

“아마도요?”

확인했다.

“사진도 잘 찍네.”

“... 저 이제 선배 못 믿겠어요.”

서유은이 뾰로퉁해졌다.

“응? 왜?”

“선배가 진심으로 얘기해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습관으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습관 아냐. 나 빈말은 못해. 사진 찍어야지. 자리로 가.”

“... 네.”

서유은이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장을 찍었는데 포즈를 한 번도 안 바꿨다. 귀여워서 웃었다.

“유은아.”

“왜요.”

“웃어주면 안 돼? 응?”

서유은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그 모습을 두 장 담았다.

“찍으신 거예요...?”

“응.”

“표정 엄청 이상할 건데 찍으심 어떡해요오...!”

서유은이 다가와서 내 오른팔에 왼팔을 붙여 내 폰을 보려했다. 팔을 위로 뻗어 안 보여줬다.

“보여주세요오!”

“소리 그렇게 높이면 사람들 다 너 본다.”

“... 보여주세요오...”

“사진 제대로 찍혀주면 보여줄게.”

“... 선배 진짜 나빴어요오...”

서유은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엔 포즈를 막 바꾸는데 표정이 침울했다.

“유은아.”

“네...?”

“웃어주라.”

서유은의 입꼬리가 또 실룩였다. 내가 먼저 미소지었다. 입꼬리가 열릴 듯하면서 계속 닫혀있다가 한 순간 터져서 푸흡 소리가 났다. 서유은이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서유은이 왼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찍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동시에 카메라 렌즈를 가려보려 애썼다.

“아, 안 돼요오... 이번 건 진짜 안 돼요오...”

“근데 이미 찍었어.”

“선배애...”

“제대로 찍히면 다 보여주고 지울게.”

“진짜예요...?”

“응.”

서유은이 이제야 협조적으로 나왔다. 사진을 열두 장 찍고 확인했다.

“잘 나왔다.”

서유은이 옆으로 와 가까이 붙어서 고개를 내밀었다.

“넘기면서 보여주세요.”

다 보여줬다.

“선배 사진기사하셔도 되겠어요.”

“습관성 칭찬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하는 거 같은데?”

“네? 저는 그런 거 없거든요? 그리고, 이제 사진들 보여주세요.”

“응.”

서유은이 내 폰을 가져가서 갤러리를 확인했다.

“... 이것들 다 톡으로 보내주세요.”

“안 지워도 돼?”

“네. 왠지 이것들도 잘 찍혔어요.”

“걷자. 다른 사람들도 사진 찍어야 되니까.”

“네.”

함께 걸었다. 서유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선배 무슨 안드로이드 아니죠...?”

“뭔 소리야?”

“우리나라가 비밀 개발해서 얼마나 잘 굴러가나 아무도 모르게 테스트해보는 만능 안드로이드라거나, 아니죠...?”

웃었다.

“너 진짜 사고가 자유롭다.”

“인간 맞죠?”

“어. 나 근데 너처럼 칭찬 창의적으로 하는 사람 처음 봐.”

“저는 선배 만큼 칭찬 많이 해주는 사람 처음이에요.”

“네가 만난 사람들이 다 칭찬이 각박했나보다.”

“... 지금 이것도 칭찬이잖아요.”

“응.”

“진짜아...”

서유은이 한숨 쉬었다.

“힘들어? 벤치에 앉을래?”

“아뇨 힘든 건 아닌데, 네. 앉아요.”

벤치를 오른손으로 툭툭 털고 앉았다. 서유은도 따라했다.

“벤치 앉으시는 것도 뭔가 남달라요.”

“또 뭐가?”

“보통 그냥 앉잖아요? 근데 선배는 털고 앉으시구.”

“너도 털고 앉았잖아. 그럼 됐지. 근데 너 반려동물 키워?”

“네? 아뇨오?”

“근데 허스키가 왤케 널 좋아했을까?”

“저도 모르겠어요.”

“그럼 너 동물은 좋아하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동물은 자기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거든. 암튼. 너 동물 안 기르는 것도 네가 책임지기 어려울 거 같아서 안 키우는 거지.”

서유은이 눈을 크게 떴다. 서유은이 양손으로 자기 가슴 앞을 가렸다가 머리를 감쌌다.

“선배 제 마음 읽으시면 안 돼요...!”

“마음이라서 가슴 가렸다가 생각이라서 머리 가린 거야?”

“그러시면 안 된다구요오...!”

웃었다. 서유은이랑 있으면 정말 별일을 안 해도 많이 웃었다.

바람이 불어 서유은의 머리카락이 뒤로 나부꼈다. 서유은이 두 눈을 감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다시 카메라 앱을 키고 사진을 찍었다.

“또 찍으셨어요?”

“응. 나 너 전속 사진기사라도 될까봐.”

서유은이 배시시 웃었다.

“안 돼요. 선배는 노래 불러야 돼요.”

다시 바람이 불었다. 방금과는 역방향으로 불어와서 서유은의 머리카락이 내쪽으로 물결 같은 흐름을 간직한 채 나부껴왔다. 서유은이 자기 머리카락 때문에 왼눈을 감았다. 너무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정신이 아찔해져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서유은이 양손으로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어쩌면 귀도 이렇게 예쁠까, 서유은의 귀연골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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