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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50화 (50/438)

〈 50화 〉 버스킹하는 날 (14)

* * *

“뭔 얘기했어?”

백지수가 여전히 폰을 보며 물었다.

“별 얘기 안 했는데?”

“존나 꽁냥꽁냥거리는 거 같던데.”

“어떤 지점에서?”

“몰라. 걍 느낌이 그래, 너 말하는 거 들어보면.”

몸을 틀어서 백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어떻게 말하는데?”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백지수가 팔을 뻗어서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보지 마. 부담돼.”

“내가 어떻게 말하는데에.”

백지수가 피식 웃었다.

“더 귀여운 척하면 죽여버려?”

“죽인다면서 왜 웃어.”

“어이 없어서.”

“진짜?”

“어. 앞에 봐. 내려야 돼.”

“응.”

택시에서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엡.”

트렁크에서 기타와 베이스를 꺼냈다. 택시가 떠나갔다. 모르는 장소였다.

“주소 별장 찍은 거 아니었어?”

“술 마실 거라매. 소화 시켜야지.”

백지수가 툭 말하고 앞장서서 걸었다. 백지수는 무심한 척 속이 깊었다. 뒤따라 걸었다. 백지수가 왼팔을 몸과 수직이 되게 뻗었다.

“내 베이스 줘.”

“내가 들어도 상관 없는데.”

“그럼 네가 들어줘.”

“어.”

“고마워.”

“별말씀을.”

“대답 존나 고리타분해.”

백지수가 풋,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미소지었다. 함께 걷는 길은 산책하기 좋게 조경이 되어 있었고 가로등도 바닥에 어둠이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오밀조밀 세워져 있었다.

“되게 예쁘다.”

“뭐?”

“여기 길.”

“아, 어. 그치.”

백지수의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옆을 봤는데 백지수가 빠르게 고개를 틀었다.

“왜 고개 돌려?”

“넌 왜 내 얼굴 보려고 하는데.”

“보고 싶어져서.”

“미친 새끼 너 입 꼬매야 돼 진짜.”

피식 웃었다. 왜 이리 과민반응하는 건지.

“고개 그렇게 돌리고 걸으면 안 힘들어?”

“너나 앞에 보고 걸으세요.”

“앞에 보고 걷고 있는데?”

“구라치지 마. 그럼 나 고개 틀고 있는 건 어케 아는데.”

“왤케 두뇌 회전이 빠른 거야.”

“내가 호구로 보이디?”

“보이디? 그건 어느 나라 말이야?”

“이거 쓰는 말투거든.”

“난 첨 들어 보는데.”

“그건 네 식견 부족인 거고.”

“못 들어봤다는 거에 식견?”

“책 같은 거에서 얻은 지식 포함하면 식견이지.”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검지로 삿대질했다. 가로등이 비추는 얼굴이 빨갰다.

“너 내가 말꼬리 잡지 말랬지?”

“죄송해요 과외 선생님.”

“적당히 해 진짜.”

웃음이 나왔다. 모순적이게도 동시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행복할 때면 반대로 불행해 할 어머니가 떠올라서 나는 어떤 순간이 되었건 기쁨에만 차올라 있을 수는 없었다.

“나 지금 전화 걸어도 돼?”

“누구한테?”

백지수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우리 엄마.”

“네 엄마?”

그리 말한 백지수가 자기가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지수의 두 팔이 내 쪽으로 오다 말아서 그 상태로 갈 곳을 잃고 허둥지둥댔다.

“어, 야. 미안. 진짜 미안. 의도한 건 아니고. 진짜로. 내 맘 알지?”

“알아. 해도 돼?”

“어? 어. 해. 걸어.”

전화를 걸었다.

ㅡ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안 받네.”

“폰 꺼진 거 아냐? 좀 이따 걸어봐.”

“아냐.”

문자를 보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전화 걸게요 엄마.]

“안색이 안 좋다?”

백지수가 고개를 꺾어 내 얼굴을 살폈다.

“술 마시고 얘기해야 되는 거야?”

“응.”

“으응...”

백지수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꽂아넣고 걷는 속도를 빨리 했다. 발 맞춰 조용히 걷는데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야.”

“응?”

“내가 안아줄까?”

피식 웃었다.

“왜?”

“왜냐고? 싫음 말아. 위로해주려고 어렵게 어렵게 선심 써서 얘기했는데 거따 대고 왜 이러네.”

“야.”

“뭐.”

“안아주라.”

“...”

멈춰서서 양팔을 벌렸다. 백지수가 팔짱을 끼고 나를 쏘아봤다.

“네가 나한테 안겨야지. 왜 네가 나 안아주려 해.”

“그렇네.”

“일루와.”

백지수가 양팔을 벌렸다. 상체를 기울이고 안겼다. 케이스 때문에 불편해서 오래 안기지는 못했다. 좁은 어깨에 턱을 얹고 커다란 가슴에 내 가슴이 맞닿아 있는 그 짧은 몇 초 동안 사람의 크기는 육신 아닌 마음으로도 결정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백지수는 그 순간 나를 품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발소리의 가까움만이 우리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내린 곳이 집과 그리 멀지는 않아서 우리는 꽤 금방 별장 앞에 도착했다.

백지수가 주머니를 뒤져 키링을 꺼냈다. 백지수가 대문에 열쇠를 꼽더니 갑자기 뒤돌아 나를 올려봤다.

“야.”

“응?”

“함부로 내 방 들어오면 뒤져.”

뭔가 익숙했다. 누구를 닮았다 싶었는데, 딱 이수아였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걔가 뭐라고 요새 자꾸 머리에 떠올려지는 건지.

“뭐, 뭐 뭘 그렇게 보냐?”

백지수의 얼굴이 바알개졌다. 얼굴이 가깝긴 했다. 몸도 반 발짝만 앞으로 디뎌도 비벼질 수준이었고.

“걍 딴 생각하다가 쳐다본 거야. 네 방 안 들어가. 걱정 마.”

“... 응.”

백지수가 도로 뒤돌아서 대문을 열었다. 휑한 마당이 괜스레 반가웠다. 백지수가 바로 현관문도 열고 신발을 벗었다. 따라서 신발을 벗고 기타방에 기타와 베이스를 내려놓았다. 백지수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주 줘?”

“어.”

“몇 병?”

“일단 다섯 병.”

주방으로 갔다. 소주 다섯 병뿐 아니라 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백지수가 나를 봤다. 테이블 위에는 유리잔도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소주잔이고 하나는 350ml 비어 머그였다.

“근데 술 들어갈 배는 있냐?”

백지수가 물었다.

“몰라. 근데 술 없음 안 돼.”

“토하지 마라.”

“그건 장담 못하고.”

“할 거면 화장실 뛰어들어가서 변기에다가만 하세요.”

“네.”

백지수가 그대로 의자에 앉았다.

“여기서 먹자고?”

“밖에 춥잖아.”

“응.”

나도 앉았다. 백지수가 맥주잔을 내 쪽으로 밀었다.

“넌 소주잔이고?”

“응. 취해야 되는 건 너잖아.”

“안주는요?”

“선반에. 알아서 챙겨. 난 먹을 생각 없어.”

“근데 술은 넣겠다고?”

“사실 술도 마실 생각 없는데.”

선반을 열어 과자를 대충 두 개 집어와 테이블 위에 놓고 봉지가 펼쳐지게 뜯었다. 다시 자리에 앉고 맥주잔이 반 정도 채워지게 소주를 따랐다. 이제 마시고 풀어낼 시간이었다.

심호흡하고 목을 꺾어 두 번에 다 넘긴 뒤 감자칩 네 개를 씹었다. 썼다.

“소주를 누가 그따구로 마셔 미친 놈아!”

벌떡 일어선 백지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마땅히 할 동작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냥 날 바라볼 뿐이었다.

“너 진짜...”

백지수의 눈빛이 측은했다.

“그냥 따라줘.”

“안 돼.”

백지수가 물을 반 쯤 채워줬다.

“일단 마셔.”

“어.”

마시고 도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소주 줘.”

“너 계속 그따구로 마실 거야?”

“취해야 얘기할 수 있다니까. 안 들을 거야?”

“사람 걱정되게 하니까 이러는 거 아냐.”

“맥주잔 준 게 이러라고 준 거 아녔어?”

“귀찮게 계속 따라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너 술도 잘 안 취하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한 번에 들이 부으라고 준 거는 아냐.”

그냥 내가 새 소주병을 따서 따랐다. 거의 찰랑일 정도까지. 내가 다 따르자마자 백지수가 비어 머그를 들어서 술을 싱크대에 버리고 도로 내 앞에 섰다. 탕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 놓고 팔짱을 낀 채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게 내게 한 소리할 것 같았다.

“너 그러다 존나 훅 가. 급성 알코올 중독 몰라? 너 실려가거나 죽어서 나 범죄자 만들 거야? 병신 같이 처마실 생각하지 마.”

백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기 안위를 걱정하는 말을 만들어내는 혀는 남을 귀하게 생각하는 백지수의 마음씨를 감추는 가면이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다. 나를 바라보는 백지수의 눈은 한없이 따스했다. 백지수의 눈빛은 그 자체로 위로였다. 고개를 숙였다.

“... 너 울어?”

팔짱을 푼 백지수가 코앞까지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다리를 굽혀 내 얼굴을 보려 했다.

“아 나 위로 존나 못하는데...”

백지수가 다시 일어나서 나를 안았다. 창피한 줄 모르고 안겼다. 온기와 미약한 심장 박동과 부드러움을 느끼며 백지수의 가슴팍을 눈물로 적셨다. 백지수가 말 없이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존나 어린애야 이온유...”

울음이 잦아들 즈음에 수치감이 몰려왔다. 계속해서 내 머리를 보듬는 백지수를 어떻게 떨어뜨려야 할지, 백지수를 떨어뜨리고 나서는 아까부터 눈치 없이 발기해버린 자지를 어떻게 숨겨야 할지, 이런 분위기에 어떻게 다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할지가 까마득했다.

“다 울었어?”

“... 응.”

“그럼 이제 그만 안아줘도 돼?”

“어.”

백지수가 나를 놓았다. 나도 팔을 풀었다. 백지수가 가슴팍의 옷자락을 양손 엄지와 검지로 잡고 늘였다. 생겨난 틈으로 크고 하얀 가슴이 보였다.

“나 옷 갈아 입고 올게.”

“응.”

“술 급하게 마시지 마.”

“알겠어.”

백지수가 2층으로 올라갔다.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한 모금 홀짝였다. 백지수는 언제고 자기 동반자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줄 사람이었다. 문득 백지수의 미래 남편이 부러워졌다. 질투심이 싹틀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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