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39화 (39/438)

〈 39화 〉 버스킹하는 날 (3)

* * *

집 문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이수아!”

“왜!”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고 다시 소리를 냈다.

“뭐하냐?”

“영화 보니까 닥쳐!”

맨날 영화다. 영화 보는 거 아니면 어디 드러누워서 텍스팅이나 해댄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빼면 활동량이라는 게 없는 수준이다.

2층에 있는 거 같은데 영화를 보는 거면 빔 프로젝터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존나 유난이었다. 그냥 tv 스크린도 넓은 편이어서 tv로 봐도 무방했다.

주방을 살펴 점심으로 뭘 만들어 먹을지를 고민했다. 아일랜드 위에 놓인 시즈닝 된 채끝살이 눈에 띄었다. 아마 윤가영이 이수아 먹으라고 만들어 둔 모양이었다. 별로 길게 생각 안 하고 그냥 알리오 올리오에 채끝살 스테이크를 먹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많지는 않았다. 고기를 꺼내놓고 2층으로 올라가서 이수아가 앉은 2인용 소파 손잡이에 걸터 앉았다.

“왜 왔냐?”

그러면서 이수아가 엉덩이를 움직여 내가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 옆에 앉았다. 표정이 뚱한 게 괜히 귀여웠다.

“웬일이냐? 자리도 내주고.”

“점심 내 거까지 챙겨주려는 거 아냐?”

“어.”

이수아가 두 손을 내 팔에 대고 밀어내려 했다. 소파 손잡이에 팔을 대니 나는 하나도 안 밀려났다. 밀려난다고 할 수 있는 건 오히려 힘을 주는 이수아였다.

“가.”

“운동 좀 해라.”

“뭐래. 집중 안 되니까 가세요.”

“이거 언제 끝나냐?”

“몰라 대충 한 시간 안 돼서 끝나겠지.”

“모른다면서 아는 건 뭐냐.”

“아 존나 유치해! 말꼬리 좀 그만 잡아!”

웃으며 일어섰다.

“지금 네 거까지 만들고 올 테니까 다음 영화는 같이 봐야 된다.”

“... 어.”

“소리 좀 줄여서 봐. 주방까지 들려. 그러다 청력 나빠진다.”

“내가 알아서 함. 잔소리 니은.”

주방으로 가면서 폰을 키고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47분. 곧 있으면 서유은한테 전화를 걸어야 할 시간이었다. 일단 환풍 스위치를 누르고 손부터 씻었다. 아일랜드에 휴대용 가스버너를 놓고 물을 담은 냄비를 올린 뒤 불을 켰다. 손으로 성의 없이 소금을 치고 재료들을 꺼냈다. 도마에 양파와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올려놓고 엄지와 검지로 파스타를 집어 2인분 양을 가늠했다. 고기도 먹을 거였으니 손가락으로 그린 원을 조금 좁혔다. 고기를 구울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조금 두르고 버터도 잘라서 넣어놨다. 불은 나중에 올릴 거지만 이렇게 해두는 게 편했다. 냄비 물이 끓는 것을 보고 파스타를 집어넣은 뒤 다른 프라이팬을 꺼내 올리브유를 넉넉히 둘렀다. 불을 올리고 서유은한테 전화 걸었다. 이쯤 되면 정확히 11시는 아니어도 뭐라 안 할 시간대였다. 스피커폰을 키고 도마에 올려놓은 채소들을 썰어두고 있으니 어느 순간에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네에 선배애...

“잘 잤어?”

ㅡ아마도요오... 선배 지금 뭐해요오...?

“요리. 시끄럽지.”

ㅡ네 조그음, 이 아니라 저 이 도마 두들기는 소리 좋아해요.

웃기는 애였다.

“왜 갑자기 말 바꾸고 그래. 내가 혼낼 거 같았어?”

ㅡ아뇨 저 진짜 요리하는 소리 듣는 거 좋아해요. 도마에서 재료들 써는 소리 다 다른 것도 재밌고, 고기 지글지글 거리는 소리랑 냄비에서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도 좋아해요. 흐암... 근데 선배 지금 만들고 계시는 거 뭐예요?

“알리오 올리오랑 스테이크.”

ㅡ우와아... 멋있다... 전 요리할 줄 아는 거 없는데.

“하기 쉬워서 만드는 거야. 너도 배우면 금방일 걸.”

ㅡ몰라요 저 그런 거 귀찮아서 못할 거예요.

올리브유가 달아오른 걸 보고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집어넣었다. 스패츌러로 슬슬 섞었다.

“귀차니즘 있어?”

ㅡ네. 저 좀 심하게 있어요. 아마 현대인 아니었으면 죽었을 걸요? 이것저것 다 알아서 해야 됐어서. 전 할 줄 아는 게 먹는 거랑 누워 있는 거랑 노래 부르는 거 정도 밖에 없거든요. 아 근데 이거 자랑 아니에요.

“되게 자랑스러운 말투였는데?”

ㅡ아니에요오...

고기용 프라이팬에 불을 올렸다. 기름이 튀지 않게 고기들을 팬 안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통마늘과 허브도 넣었다.

ㅡ으아아... 이 소리 엄청 좋아요오...

피식 웃었다. 서유은이랑 대화하면 웃을 일이 많은 거 같았다.

“나도 좋아해.”

팬을 기울여 녹은 버터를 숟가락으로 퍼 대충 끼얹었다. 고기를 뒤집어 확인했다. 다시 아로제하고 옆 프라이팬을 스패츌러로 휘저었다. 마늘이 예쁘게 익어갔다. 아일랜드에 둔 버너 불을 끄고 채를 써 면을 건져 올렸다. 보울에 면을 담은 채를 두고 다시 스패츌러로 프라이팬을 휘저어 봤다. 아주 살짝 더 익히고 면을 올리면 될 거 같았다. 옆의 고기를 뒤집고 다시 아로제했다.

ㅡ되게 바쁘신가봐요...?

“아 미안. 요리에 신경이 쏠려 가지고.”

ㅡ아뇨오 저 진짜 이 소리 듣는 거 엄청 좋아해서 괜찮아요.

페퍼론치노와 마늘을 구운 프라이팬에 면을 올리고 섞었다. 면수를 조금씩 끼얹으며 농도를 조절했다.

“유은아. 나 할 말 있어.”

ㅡ어... 어어...? 네...? 네... 네 말씀하세요...

왜 당황하지?

“버스킹 있잖아.”

ㅡ아 네. 버스킹. 버스키잉... 네...

“너 점심 먹고 시간 좀 있으면, 나랑 연습 좀 같이 하자. ‘내 손을 잡아’.”

ㅡ만나서요?

“응. 핸드폰으로는 딜레이 있어서 연습 못해.”

ㅡ아 그쵸오... 그럼 언제 만나는데요...?

“내가 3시 전까지만 연습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장소는 내가 문자로 보낼게. 아니면 네가 원하는 데 찍어주면 내가 갈게. 노래방도 되고.”

ㅡ그럼 저희 집에서 하는 건 어떠세요...?

“응? 가도 돼?”

ㅡ네에, 아마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럼 문자로 보내줘. 나 요리 집중해야 돼서 전화 끊을게. 아니 네가 끊어줘. 미안해.”

ㅡ네에.

구워진 고기를 도마에 꺼내고 호일을 덮어 열기를 가둔 채 레스팅시켰다. 고기가 있던 프라이팬에 채소들을 넣고 시판 스테이크 소스를 눈대중으로 넣은 뒤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사실 난 소스를 별로 안 좋아하고 차라리 마늘 플레이크를 만들어 먹는 걸 선호하긴 하는데 이수아가 뭔 종류의 스테이크를 만들든 곧잘 먹어서 그냥 만드는 거였다. 그러는 동안 전화 끊기는 소리가 안 들렸다.

“왜 전화 안 끊어?”

ㅡ아 저 소리 들으려구... 죄송해요! 끊을게요!

어, 라고 대답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지금은 요리하는 소리랑 영화 소리 섞여 들렸을 텐데. 따지자면 영화 소리가 더 컸을 거고. 근데 본인이 그렇다니까 뭐.

파스타를 한 가닥 집어 후후 불어 먹어봤다. 괜찮았다. 두 프라이팬 다 불을 끄고 접시 두 개와 그릇 하나를 아일랜드에 세팅했다. 파스타를 접시에 옮겨담고 그릇에 소스를 넣었다. 레스팅된 고기는 도마 위에서 썰고 그대로 서로 기대듯이 쌓아서 플레이팅했다. 쟁반에 다 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고했음.”

“그게 끝이냐?”

“그럼 뭐 어케. 똥꼬 빨아줘야 돼?”

“미친 년.”

얼굴이 아까웠다. 가만히만 있어도 사랑 받을 이목구비인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천박한 수준을 넘어섰다. 작은 원형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말하는 수준이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남자애 같네.”

“응 나 중3.”

“초2 수준이었네.”

“어쩔.”

“와.”

“크.”

이수아가 포크를 들고 고기를 찍은 뒤 스테이크 소스에 푸욱 담가 입에 넣었다.

“그럼 맛있어?”

“존맛탱.”

“이해가 안 가네.”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찍고 먹었다. 이대로 맛있었다.

“넌 그럼 뭔 맛으로 먹음?”

“고기 맛.”

“이해 안 됨.”

“... 근데 너 음슴체 쓰는 건 알겠는데, 초성체는 안 쓰면 안 되냐?”

“뭐. 크, 니은, 이런 거?”

“어.”

“싫음.”

“한 대 쥐어박고 싶네.”

“때리면 가정폭력 신고 수고 비읍.”

“미친 년.”

이수아가 영화를 틀었다.

“뭔 영화냐?”

“걍 보셈.”

연극 무대라고 쳐도 파격적이기 그지 없는 초록색 바닥의 세트장 속에서 배우들이 열연했다. 도그빌이었다.

“이거 청불 영환데.”

“어쩔.”

이수아가 파스타 접시를 들어서 입 안에 우겨넣고 있었다. 보면서 저게 들어갈까.

“야 이거 좀 적나라하게 나와.”

“넌 어케 아는데? 너도 본 거 아님? 그럼 나도 봐도 됨 수고 비읍.”

“알아서 해라.”

폰을 켰다. 1분 전에 서유은이 문자로 주소를 보내왔다.

[1시에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

[근데 그 전에 와주셔도 돼요!!]

“영화 보는데 핸드폰 키는 건 존나 무슨 버릇임?”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내 맘.”

“적당히 하셈.”

“영화나 보셈 수고 비읍.”

“와 네가 하니까 존나 안 어울려.”

“니?”

“왜.”

“두 살 많은 오빠한테 ‘네가’라고 했냐 지금?”

“하면 안 됨?”

“어.”

“내 맘 수고 비읍.”

도마를 내 쪽으로 끌었다.

“뭐함?”

“먹지 마.”

“그거 엄마가 나 먹으라고 해준 거거든!”

이수아가 몸을 숙여 도마를 집으려 했다. 내가 먼저 붙잡았다. 이수아가 반대편을 잡고 자기 쪽으로 끌려 했다.

“아 내놓으라고오!”

이수아가 도마를 차지하기 위해 두 팔에 힘을 줬다 뺄 때마다 d컵 가슴이 출렁였다. 아니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목이 늘어진 하얀 긴팔 티셔츠에 검은색 브라를 입고 있어서 그 명조 대비 때문에 더 눈에 띄었다. 발기했다.

“야. 손 떼. 줄 테니까 힘 빼.”

“구라면 뒤짐.”

이수아가 손을 놓았다. 나를 안 믿는지 상체는 기울인 상태로 유지했다. 그러니 가슴이 더 잘 보였다. 도마를 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자지를 억눌렀다.

“진짜넹.”

이수아가 도마를 가운데에 놓았다. 그러고는 상체를 원상복구하고 고기 두 점을 푹 찍어 입에 넣고 으적댔다. 나는 신경도 안 쓰고 곧장 영화에 빠져 들었는지 시선이 스크린에 고정되었다. 그러면서 뜸하게 포크질을 했다. 미친 년 같았다. 누구에게나 지금 내게 하는 식으로 무방비하다면 언젠가 한 번 강간이라도 당하는 거 아닐까 두려웠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어. 화장실.”

“존나 개 씹 tmi.”

뛰어가듯 걸어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바지를 내렸다. 변기에 앉아 휴지를 뽑아 왼손에 든 뒤 눈 감고 김세은의 나신을 상상하며 자위했다. 눈부신 하얀 허벅지를 상상했다. 후배위를 할 때 좁혀진 두 다리와 엉덩이와 옆구리와 기립근을 떠올렸다. 뒷구멍에 새끼 손가락을 반 마디 넣으면 곧장 조여오는 음란한 보지를 되새겼다. 욕하면서 한 섹스를 상기했다.

‘느끼고 있네 변태 같은 년.’

‘아냐, 시발, 흑... 강간, 범, 새꺄...’

상상 속의 김세은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나는 김세은의 머리채를 끌어쥐고 있어야 했는데 오른손에 머리카락을 쥐고 있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보라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나는 왼손으로 여자의 왼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김세은의 것이 아닌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목소리도 김세은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온 여자는 이수아였다.

‘성폭, 하악... 력이랑, 흑... 앙... 가정, 앙... 폭력, 흥... 으로, 앙... 항... 신고, 헤윽... 응... 할, 항... 거야. 항... 하앙...’

멈출 수 없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따먹고 싶었다. 당장 김세은을 따먹고 싶었다. 따먹어야 할 것 같았다. 보지에 싸지르고 싶었다. 휴지에 대고 사정했다.

“하 씨발...”

자지를 씻어내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수아를 마주치지 않고 이수아가 있는 쪽으로 소리쳤다.

“내 파스타 남은 거 버리고 설거지 해라!”

“좆까! 근데 너 영화 안 보냐?”

“나 나가!”

기타를 챙기고 서유은한테 문자 보냈다.

[점심 먹었어? 나 30분 정도면 거기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가도 돼?]

[점심 먹었어요! 근데 12시 반에 와주시면 안 돼요? 저 준비 좀 해야 돼서요]

[알겠어. 나 카페 갈 건데 너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사 갈게.]

[저 핫쵸코요]

[어. 그럼 열두 시 반에 갈게.]

[넹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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