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월요일 (2)
* * *
네 번째로 전화를 걸었을 때에야 김세은이 전화를 받았다.
“세은아.”
ㅡ응.
“뭐해? 왜 전화를 지금 받아.”
ㅡ그냥.
“... 그냥?”
ㅡ응.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세 번째까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거나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일 테다. 그냥이라는 반응을 보면 아마 후자일 텐데, 네 번 전화를 걸고 나서야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고.
“백지수랑 무슨 얘기했어?”
ㅡ몸 관리 잘하라던데.
“그 전에 한 다른 얘기 없어?”
ㅡ너랑 나 사귀냐고.
“걔는 왜 너랑 내가 사귀는지 안 사귀는지를 궁금해 했대?”
ㅡ너 때문이겠지.
해석될 여지가 많은 말이었다.
“무슨 의미야?”
ㅡ떠올릴 수 있는 여러가지 의미들 다.
“그렇게 애매하게 말할 거야?”
ㅡ설명 안 해줄 거야.
“...”
일단 김세은이 점심 시간에 했던 말에 내가 반응을 아예 못해서 백지수의 의심을 사긴 했다. 그게 의미 중에 하나일 거고.
ㅡ나중에 생각해. 사람한테 전화 걸어 놓고 머리 굴리는 게 할 짓이야?
“지금 너 너무 공격적이지 않아?”
ㅡ내가 이러는 거, 다 너 때문이야.
“... 그래서, 백지수가 사귀냐고 물었을 때 백지수한테 대답 뭐라 했어?”
ㅡ안 사귄댔지.
“... 잘 했어.”
ㅡ나 어지럽다고 한 거 기억나?
“기억하지. 지금은 괜찮아?”
ㅡ아니.
김세은이 전화를 끊었다. 이게 무슨 예의야.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짓은 오늘 한 적이 없었다. 화났다. 짜증나서 괜히 손아귀로 허벅지를 쥐어뜯듯 했다. 다시 전화 걸었다.
“김세은.”
ㅡ뭐.
“미안해.”
ㅡ뭐가 미안한데.
솔직히 난 정말 잘못한 거 하나 없었다. 그래도 김세은이 뭐가 마음에 안 든 거 같았으니까 억지로라도 쥐어짜야 했다.
“... 너 어제 어지럽다고 했는데 오늘 넌지시라도 안 물어 본 거. 그리고 밴드부실에서 네가 말한 거 부드럽게 못 받아 친 거.”
ㅡ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라니. 나는 진짜 잘못한 게 없었다. 오히려 잘못한 사람은 순간 그런 농담을 해서 나를 난처하게 만든 김세은이었다.
ㅡ더 없어?
“더 뭐.”
ㅡ송선우.
“하.”
ㅡ웃어? 너 그래도 돼?
“과민반응하지마.”
ㅡ약속했잖아. 안 가까워지기로.
“매점 같이 가는 것도 안 돼? 네가 말하는 대로 하면, 그건 가까워지지 않기가 아니라 아는 여자애들이랑 멀어지기고.”
ㅡ어. 맞아. 멀어져. 붙지 마.
“... 세은아.”
ㅡ야.
“...”
ㅡ내가 너랑 처음으로 한 다음 날부터 내가 다른 남자 선배나 친구랑 막 친근하게 군 거 봤어? 존나 비싸게 군다고, 재수 없다고 욕하는 거 내가 듣고 얼마나 속상했는지는 알아? 너는 나 말고 다른 여자애랑 잘 지내는 거 보면서 내가 얼마나 속 썩였는데. 너는 그래도 돼? 너 나 사랑한다매. 그럼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내가 그러라고 한 적도 없잖아.”
ㅡ개소리하지마 이온유. 다 알아.
“...”
ㅡ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 없는 동안 잘 해. 토요일에 어떻게 하나 볼 거야.
“...”
ㅡ한숨 쉬지 마.
“나 한숨 쉬었어?”
ㅡ어. 그리고, 시간 나면 전화할 거니까 폰 옆에 달고 살아.
“... 응.”
ㅡ더 할 말 없어?
“뭔 말을 더 해.”
ㅡ장난이지?
이 모호한 화법 때문에 미치겠다. 전화를 끊을 타이밍이니까, 아마 그 말일 텐데. 그냥 듣고 싶으면 듣고 싶다 하지 뭐 이런 식으로 요구하고 그러는 건지.
“사랑해.”
ㅡ나도 사랑해.
“끊을게.”
ㅡ응.
“사랑해.”
ㅡ내가 더, 큼, 내가 더 사랑해.
감기 때문인가, 순간 긁힌 목소리가 왠지 꺼림직했다. 전화를 끊었다.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카드를 찍고 내렸다. 심호흡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전혀 모르는 장소였다. 피로했다. 안정이 필요했다. 차라리 집에 가 누워있는 게 낫다 싶을 정도였다. 택시를 타서 집으로 갔다. 택시 안에서는 집에서 곧장 꺼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상하고 최적 동선을 짰다.
집 문을 열고 신발을 던지듯 벗었다.
“아들?”
2층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월요일인데 왜 지금 집에 있지? 이유야 어쨌건 계획이 모두 도루묵이 됐다. 붙잡히기 전에 방으로 뛰었다. 방문을 잠갔는데 얼마 안 가 노크 소리가 났다. 손잡이가 덜컥거렸다.
“온유야. 얘기 좀 하자. 언제까지 이럴 거야, 사춘기 어린애도 아니고. 그럴 때 지났잖아.”
“할 말 없어요.”
손잡이가 덜컥임을 멈췄다. 남의 호감을 쉬이 사는, 설득력 있는 저음이 방문을 넘어왔다.
“저녁 안 먹었지?”
“먹었어요.”
“이맘때에 온 거면 저녁 안 먹은 거잖아. 맨날 밴드부 연습하다가 이 시간에 슬금슬금 와서 부모님 늦은 저녁 먹게 만든 게 누군데.”
“...”
“안 먹을 거야?”
“먹고 왔다고요.”
“온유야.”
“뭐요.”
“여기 남는다는 선택은 네가 한 거잖아. 너한테는 여기에 온 사람들 안 불편하게 할 책임도 있는 거야.”
“...”
“온유야. 너 똑똑한 거 알아. 네가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안다고 믿고 있고. 근데 왜 그걸 못할까?”
“...”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네 몫도 준비할 테니까 나와라.”
“...”
발소리가 멀어졌다. 선반을 뒤져 언젠가 숨겨 놓은 버번을 찾았다. 따를 잔이 없어서 그냥 병째로 마셨다. 머리가 쉽게 지끈지끈해졌다. 생각이 마비됐다. 기억이 사고의 빈 틈으로 흘러들었다.
목을 타고 흘러 빈속을 태우는 술. 언젠가 했던 아버지와의 독대. 엄마가 먼저 뭐 잘못했던 거예요? 이해할 수 있다면 이해하고 싶었다. 온유야. 사랑의 생물학적 수명은 3년이 채 안 된대. 지끈지끈한 머리. 제가 지금 가르침 받으려는 게 아니잖아요. 네 엄마랑 나는 오래 간 거야. 3년은 훌쩍 넘었잖아. 역겨웠다. 지랄하지 마요. 탁자에서 식기들이 떨어졌다. 바닥에 닿은 고기가 철퍽거렸고 그릇이 하나 깨졌다. 그런 행동거지랑 말버릇은 너한테, 네 꿈에 도움이 안 돼. 나이프가 그릇과 맞닿아 끼릭끼릭 소리를 냈다. 고쳐봐. 붉은 육즙이 가득한 고기가 어두운 입속으로 사라졌다. 직원이 왔다. 제 아들이 주울 거예요. 뭐해? 주워야지. 안 주웠다. 반항하니? 직원이 나 대신 허리를 숙였다. 대답 없이 식당을 나갔다. 목을 타고 흘러 빈속을 태우는 술.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온유야아.”
윤가영 목소리였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밥 안 먹어?”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 앞에 무릎 꿇었다. 신물 때문에 목이 따끔따끔했다. 손잡이 덜컥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온유야? 이온유? 너 지금 토하니? 괜찮아?”
마저 토했다. 눈물이 났다. 세수했다.
“괜찮으니까 가요.”
“안 괜찮잖아. 문 열어 얼른.”
뭔데 지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거처럼 이러는 거지? 비틀대며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열어서 어쩌려고요.”
윤가영이 얼굴을 찡그렸다.
“... 너 술 마셨어...?”
“왜요. 냄새 나요?”
“응. 위스키 냄새...”
“술 잘 아나 봐요?”
창녀라 그런가? 말을 삼켰다.
“... 밥 안 먹을 거야...?”
“안 먹어요.”
“따로 가져다줄까?”
축 늘어진 눈썹에 담긴 걱정은 기만이 아니었다. 찐득찐득한 감정이 방향을 잃었다.
“됐어요.”
윤가영의 어깨를 밀어내고 방문을 닫았다. 옷들을 벗어던지고 불을 끈 뒤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자는 시간도 아니었고 배도 고팠으니 잠이 올 리 없었다. 다시 불을 켰다. 핸드폰을 키고 어머니에게 전화 걸었다.
“엄마.”
ㅡ응 아들. 왜?
어머니의 목소리는 영 맥아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서 그곳으로 생기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루하루 긍정적인 것들을 잃어갔다.
“이유가 있어야 전화하는 건 아니잖아.”
ㅡ으응. 그치. 엄마 목소리 듣고 싶었어?
“응.”
ㅡ근데 어떡해. 요즘 재밌는 일이 없어서, 엄마가 해줄 말이 없네. 아들은 무슨 일 없었어?
“나? 나. 그냥. 나도 별 일 없었어.”
어머니가 메마르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ㅡ어떡해. 서로 해줄 말 없어서.
“... 내가 노래 불러줄까?”
ㅡ응.
“뭐 부를까?”
ㅡ음. 엄마는, ‘Like a star’ 듣고 싶어.
“알겠어.”
기타를 꺼냈다. 폰을 거치대에 두었다.
“영통으로 안 걸어도 돼?”
ㅡ그냥 소리만 들어도 좋아.
“응.”
자주 부르던 노래라 곧바로 부르기 시작했다. 통화 너머로 어머니가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ㅡstill wonder why it is
I don’t argue like this with anyone but you
어머니가 따라부르기를 멈췄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억눌린 울음소리가 들려도 꿋꿋하게 불렀다. 내 목소리에 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묻히도록 불렀다.
“어땠어?”
ㅡ응. 좋아. 역시 잘 부르네. 우리 아들 최고.
“나 버스킹하는 날에 꼭 와야 돼.”
ㅡ무조건 갈 거야.
“이번 주 토요일. 알지?”
ㅡ알아. 강가 위에 있는 카페. 밤 7시. 스케줄러에 다 기록해놨어.
“그때 봐. 애들 많을 거니까 예쁘게 차려 입고.”
ㅡ풉. 엄마가 차려 입어서 뭐해.
“선후배랑 친구들한테 엄마 자랑할 거란 말야.”
ㅡ엄마 안 예뻐.
“예뻐. 내가 알아.”
ㅡ엄마가 예뻤으면...
어머니가 말을 삼켰다.
ㅡ그때 봐 아들.
“... 응.”
ㅡ끊어.
“알겠어. 잘 자 엄마.”
ㅡ잘 자.
전화를 끊었다. 노래가 흐르지 않아 정적이 방을 메웠다. 주린 배가 뭐라도 채워넣을 것을 강요했다. 페트병을 찾아 물을 들이켰다. 여전히 배가 고팠다. 폰 전원을 오프하고 전등을 끈 뒤 눈을 감았다. 잠이 들 때까지 억지로 참았다.
2시 27분에 깼다. 대충 씻고 기타를 챙긴 뒤 밖으로 나섰다. 당장 열 곳은 별로 없었다. 우선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은 뒤 24시간 운영하는 사우나를 찾아갔다. 욕탕에서 다시 씻고 불가마에서 간 밤에 온 문자들을 확인했다. 새벽에 보내온 다른 문자들은 다 답해줬는데 김세은의 문자가 답장하기 참 난감했다.
[너 내가 핸드폰 달고 살랬지.]
고민하다가 해야 할 말을 하기로 결정하고 보냈다.
[일 있어서 그랬어. 미안해. 그리고 이 문자 기록 지워.]
땀이 빠지니 묵은 것들이 뽑혀나가는 느낌이었다. 금요일까지 이런 패턴으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