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월요일 (1)
* * *
점심 시간, 양치를 하고 본관 밖으로 나오는데 문 앞에 1학년 후배 둘이 서있었다. 둘이 동시에 나한테 머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들고 있어서, 정면, 즉 내 얼굴을 보는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안녕하세요 온유 선배!””
“어 안녕.”
인사를 받아주고 밴드부실로 향하는데 두 후배가 붙어왔다.
“선배 선배.”
“저희 이름 아세요?”
고개를 양옆으로 바삐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알지. 김예빈, 그리고 우지연. 기억하지 같은 연극부인데.”
“허얼. 선배 저 지금 좀 감동했어요!”
김예빈이 가슴을 짚으면서 말했다. 김예빈은 와이셔츠 맨윗 단추를 둘 풀어두고 있었다. 아직 그리 더울 땐 아닌데.
“밴드부실 가세요?”
우지연이 물었다.
“어. 버스킹 연습해야 돼서.”
“저희 구경해도 돼요?”
“해도 돼. 해. 근데 너희는 급식 안 먹어?”
“몇 곡 들을 시간은 있어서 괜찮아요.”
“선배 선배.”
“응?”
“선배 여자친구 없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뭐... 없다고 할 수 있지.”
“에이 그게 뭐예요? 없으면 없는 거죠.”
“그래, 없어.”
“선배는 왜 여친 안 사겨요?”
“사귈 사람이 있어야지.”
“헤. 선배 좋다는 사람 되게 많을 건데.”
“아니 그 뜻이 아니겠지. 선배 눈에 차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런 거는 아냐.”
“헉. 그럼 누구 맘에 드는 사람 있어요?”
김예빈이 물었다.
“글쎄.”
“있는 거죠? 누구예요?”
“아냐 없어. 뭐 듣고 싶은 거 있어? 아는 거면 불러줄게.”
“말 돌리신다.”
“저요 저. 그, 뭐였지? 근데 여자 노랜데 괜찮아요?”
김예빈이 말했다.
“아는 거면 해주지.”
“그 처음에 ‘All the colors and personalities’ 하는 거요.”
“‘square’. 백예린 노래. 맞지?”
“맞아요! 진짜 불러주실 거예요?”
“응.”
“예빈스! 지연스! 어디 가?”
멀리 운동장에서 다른 여자애가 외치는 소리였다. 김예빈이 뒤돌았다.
“밴드부실 구경!”
“진짜?”
김예빈이 검지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선배. 다른 애들도 봐도 돼요?”
“응. 당연하지.”
김예빈이 다시 뒤돌아 바삐 손짓했다. 몇 명이나 올까. 우지연이 입을 열었다.
“저도 신청곡해도 돼요?”
“어? 어. 무슨 노래?”
“저 아이유 ‘blueming’이요.”
“어 그거 나 작년 축제 때 한 건데.”
“저 진짜 그 영상 수십 번 돌려봤어요. 실제로도 보고 싶어서 신청한 건데, 안 돼요?”
“돼. 해줄게.”
““꺄아악!””
귀 아프다. 자기들끼리 붙어서 어깨를 때리고 난리도 아니다. 밴드부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게 했다. 보컬은 없고 세션들만 있는지 지들끼리 방향성 없이 막 악기를 가지고 노는 소리가 들려왔다. 3학년은 강당을 빌려 그곳에서 연습하고 있으니 지금 안에 있을 부원은 2학년들 뿐일 거였다. 구경 온 후배들한테 대충 의자 있는 데 가서 앉으라고 말하고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들어 낮은 무대로 갔다.
“아 이온유 또 여자애 데려왔어.”
“야 여자애가 아니라 여자애들인데.”
강성연이랑 박철현이 개소리로 반겨줬다.
“모셔온 관객님들인데 개소리를 하면 어떡해.”
“또 뭔데.”
김수원 옆에서 베이스를 만지고 있던 백지수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얘 원래 신청곡 받아오는 거 이렇게 싫어했나.
“스퀘어랑 블루밍.”
“블루밍은 작년에 백지수랑 한 거 아냐?”
김수원이 물었다.
“어.”
“그럼 그때 난 빠져 있어?”
“응.”
“야. 내 의사는?”
백지수가 어이 없다는 눈으로 나를 봤다.
“듣고 싶다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좀 해줘.”
“아니 뭐 그러면 먼저 말을 해줘야 내가 할지말지 서로 같이 결정한 다음에 뭐 어떻게 하는 거지 자기가 막 결정해놓고 지금 나한테 하라고 시키면 그건 내가 네 하인도 아니고...”
“미안해.”
“나 그때 후로 그 곡 연습 한 번도 안 했단 말야.”
“잘 할 수 있잖아.”
“... 망해도 뭐라 하지 마라. 하면 진짜 너는 그때 나한테 죽는 거야.”
“아니 나는 존나 막 뒷전이네.”
어느새 드럼 의자에서 기어나온 강성연이 팔짱을 끼고 투덜거렸다.
“걍 해. 후배들 도망가겠다.”
관객들 눈치를 보던 송선우가 말했다.
“아이 씨 어쩔 수 없지.”
이마를 검지로 긁은 강성연이 도로 드럼 의자에 앉았다.
“나 먼저야?”
김수원이 물었다.
“어.”
“바로 간다?”
강성연이 성질 급하게 물었다.
“잠깐만.”
줄을 퉁겨 튜닝이 됐는지만 확인하고 왼손으로 곡에 나오는 코드들을 짚어본 뒤 입을 열었다.
“가자.”
틱, 숨을 들이쉬고, 틱, 틱, 틱, 소리를 냈다.
*
노래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김세은이 서유은의 머리에 턱을 얹고 몸을 끌어안은 채로 뒤뚱거리며 밴드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매점에서 사온 먹을 게 담겨 있는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서유은의 두 팔은 놀이기구를 처음 타본 사람이 바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자기 몸을 두르고 있는 김세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둘이 저러고 있으니까 뭔가 펭귄들로 보였다.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오늘 월요일, 그러면 서로 안지 사흘 밖에 안 됐다는 건데. 여자들의 친화력이라는 건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김세은은 무대 구석에 있는 등받이 없는 원형 의자 두 개를 내 옆으로 가져와 서유은과 같이 앉았다. 그러고는 봉투 속에서 매점 햄버거와 콜라를 꺼내 서유은에게 주고 자기는 저칼로리 통밀 도넛과 200ml 우유를 꺼내 먹었다.
ㅡyou're the only one, who saw my yesterday
the one who knows i'm here alive today
comfort me say, what i'm meant to you
노래가 끝날 때까지 김세은이 입을 오물오물 대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서유은은 급식을 안 먹어서 그런가 햄버거를 빠르게 먹으면서 비싼 스틱형 감자칩을 꺼내 두었고. 무대 위에 있는 사람 중 혼자 1학년이라서 긴장돼서 음식에만 집중한 건지 순전히 배고파서 그런 건지 분간이 안 됐다. 복합적인 건가.
“오늘 선곡 기준이 뭐야?”
김세은이 물었다. 아직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아서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후배들 신청곡 그리고 버스킹 할 거.”
“뭐 누구한테 들려주려고 한 거 아니고?”
김세은이 웃는다. 또 나 놀리고 있다. 가사가 어제 상황이랑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탓에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거다.
“선배 누구 좋아해여?”
어느새 햄버거를 끝장내고 스틱형 감자칩을 마구 으적대던 서유은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자연스레 내게로 시선이 몰렸다. 난감했다. 김세은이 이해가 안 됐다. 어제 진지하게 얘기한 건 어디다 버리고 이런 농담을 했을까. 조금 많이 화가 나서 머리가 하얘졌다.
김세은은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바랄까. 김세은이 입을 꾹 다물고 내게 눈을 마주쳐온다. 아 또. 바다에 홀로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너 세은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어느새 다가온 백지수가 눈을 찌푸리고 물었다. 나는 그냥 김세은에게로 시선을 돌려 김세은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야, 진짜 사귀나보다?”
“... 아냐.”
김세은이 말했다.
“안 사겨. 야. 넌 왜 바로바로 말 안 해서 오해 사고 그래. 화났어? 조금 놀린 거 갖고?”
김세은이 주먹을 쥐고 내 팔을 때렸다. 조금 아팠다.
“쫌생이다 진짜.”
김세은이 옅게 웃었다. 한 순간 떨린 입꼬리가 씁쓸했다.
“자자 얘들아. 다음 곡 해야지 애들 떠나겠다.”
송선우가 말했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자 다음 곡.”
“무슨 곡인데?”
김세은이 짐짓 밝은 목소리를 냈다. 감기 탓에 그리 밝지는 않았다.
“블루밍.”
내가 답했다.
“유은아 같이 부를래?”
김세은이 서유은을 끌어 안으며 말했다.
“네? 네. 좋아요. 근데 저 기타 좀요.”
서유은이 기타를 꺼내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시작하자.”
내가 말했다. 강성연이 드럼스틱을 들었다.
틱, 틱, 어째 숨이 잘 안 쉬어진다, 틱, 틱, 소리를 낸다.
*
메인 멜로디는 서유은이 부르고 김세은은 낮은 음으로 화음을 깔아줬다. 이미 얘기가 된 내용이었던 건지 시작부터 끝까지 그 양상은 바뀌지 않았다. 감기가 생각보다 심했던 걸까. 아니면 서유은을 예쁘게 봐서 그만큼 챙겨주는 걸까.
블루밍을 하고 3학년 선배들이 연습하는 걸 구경하라며 1학년 애들을 내보낸 다음에 버스킹 곡들을 할 때도 김세은은 자기 목을 아꼈다. 내일부터 본인 스케줄도 빡빡한 거 같던데. 토요일에는 본인이 부를 수 있을까.
“세은아 같이 화장실 가자.”
자기 베이스를 케이스 안에 집어 넣은 백지수가 말했다. 김세은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밴드부실을 나가는 둘의 등을 마냥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뭘 존나 뚫어지게 쳐다보냐. 김세은 사랑하냐?”
강성연이었다. 뒤돌아봤다. 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었다. 눈을 질끈 감고 마른 세수를 한 다음 눈을 떴다.
“점심 먹고 물 대신 술 마셨냐?”
“뭐래.”
“연습이나 열심히 해 성연아.”
어느새 다가온 송선우가 강성연을 쏘아붙이며 내 오른 어깨를 주물렀다. 송선우가 밴드부원들을 둘러보았다.
“부장이랑 매점 가서 간식 좀 사올게. 먹고 싶은 거 있음 단톡 팔 테니까 거따 보내.”
송선우랑 밴드부실을 나섰다. 핸드폰을 두드리다 주머니에 집어넣는 걸 보고 입을 열었다.
“강성연 요즘 왜 저래?”
“요즘이라니.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피식 웃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유독 저 지랄일까.”
“이유는 너도 알지 않아?”
“몰라. 어떻게 미친 사람 심리를 꿰뚫어봐.”
“그렇긴 해.”
“넌 아는 거지.”
“아니.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걍 알려 주지.”
“아냐. 안 듣는 게 나아.”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는데.”
“그냥 추측이라서 그래.”
송선우가 가격 스티커가 붙여진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쳐다보았다.
“아이스크림은 에반가?”
“에바 아닌데.”
냉동고를 열어 초코 소프트콘을 하나 집으며 말했다. 송선우가 흘깃 보고 폰을 꺼냈다.
“나도 똑같은 거 꺼내줘.”
“응.”
“고마워.”
송선우가 폰을 스크롤링했다.
“사달라는 거 개 많네 미친놈들.”
“스크롤까지 해야 돼?”
“아니 사달라는 게 많은 것도 많은 건데, 이거 사달라고 했다가 저거 사달라고 막도 말 바꿔서 길어지네.”
“인당 두 개씩만 고르라 해.”
“그래야겠다.”
송선우가 폰을 두드렸다. 아이스크림을 계산대에 내려놓으려 매점 안에 들어갔는데 물병을 든 김세은이랑 초코 우유를 든 백지수가 보였다.
“너희 왜 여깄어?”
“지수가 불러서.”
백지수를 쳐다보았다.
“뭐. 우리 연습 끝났고, 화장실 갔다가 매점 갈 수도 있는 거지.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되냐? 그리고 김세은.”
김세은과 백지수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째려보는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은근 살벌했다. 백지수가 한숨 쉬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 너 서유은한테 다 주게?”
“아니라니까.”
“목 관리 좀 잘 해. 너도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느끼지 않아?”
“알아.”
“안녕하세요ㅡ 뭐야 지수랑 세은이 화장실 간 거 아녔어?”
매점에 들어온 송선우가 물었다. 왼손에는 아이스크림 세 개, 오른손에는 폰을 들고 있어서 팔이 w자를 그렸는데, 그러고 있으니 꼭 미국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는 거 같았다.
“갔다가 매점 왔어.”
백지수가 대답하고 초코 우유를 빨아마셨다.
“그럼 우리 다 같이 돌아갈까?”
“... 응.”
백지수가 답했다. 김세은은 묵묵부답이었다.
“뭐야 둘이 싸웠어?”
아이스크림과 폰을 계산대에 내려놓은 송선우가 팔을 벌려 왼쪽엔 김세은, 오른쪽엔 백지수를 품었다.
“왜? 싸울 일 없었잖아. 둘이 싸운 적도 없었고.”
“안 싸웠어.”
“세은양. 지수씨 말대로 정말 안 싸웠나요?”
“풋. 안 싸웠어.”
“지수씨가 폭력을 행사해서 지금 억지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요?”
“너한테나 김세은한테나 싸우면 내가 지거든요?”
백지수가 웃었다. 보는데 괜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당장이라도 깨질 수 있는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김세은이 나를 보았다.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 나를 무섭게 했다.
종례하고 다섯 시 반까지 남아 버스킹 연습을 하면서도 김세은은 무표정했다. 이따가 통화로라도 물어봐야 할 거 같았다.
부원들과 찢어져서 습관적으로 아무 버스에 올라 맨뒷 좌석에 앉은 뒤 김세은한테 전화 걸었다. 두 번 걸었는데 다 받지 않았다. 뒷목 왼쪽에 식은땀이 한방울 흐르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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