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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4화 (24/438)

〈 24화 〉 귀가하고 이수아 썸남 전화 대신 받음

* * *

김세은과 나는 각자 샤워실에 들어가 씻었다. 같이 씻으면 꼴릴 게 분명했고, 그러면 또 섹스하려고 할 테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절제해야 했다.

테이블로 돌아와 식어버린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거의 반씩 남기고, 녹아버린 아이스크림도 그냥 버리기는 했는데 그거야 뭐 아깝지도 않았다.

바로 나가기에는 정 없어서 소파에 드러누워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굳이 소파에 누운 이유는, 침대는 도로 눕기에는 너무 더러워 보여서였다.

뜯어볼 수록 예쁜 얼굴이라 얼굴만 쳐다봐도 도통 질리지 않았다. 김세은도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으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내가 웃기게 생겼어?”

“아니. 재밌어. 네 얼굴.”

“뭔 소리야.”

“그냥 보면 웃음이 나와.”

“잘 생겼다는 거지?”

“응. 엄청.”

김세은이 안겨왔다. 고개가 내 목에 딱 달라붙었다.

“딱 맞아.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책임져야지.”

“책임?”

“이런 느낌 알려줘놓고 다시는 못 느끼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책임져 줘야지.”

“맘대로 해.”

“그럴 거였어.”

김세은이 웃었다. 한동안 의미 없는 말이 오갔다.

“시간차 두고 따로 나갈까?”

내가 말했다.

“왜?”

“혹시 몰라서.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으음... 그래.”

“너 소원 뭐로 할지 생각 해놨어?”

“아직.”

“사용 가능 기한 같은 거 정해야 되는 거 아냐?”

“왜? 처음부터 그러기로 한 것도 아닌데 무제한이지.”

“그건 완전 사기 아냐?”

“당한 사람 잘못도 있지요.”

“놀리지 마.”

“삐졌어? 대신 키스하게 해줄게.”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서, 싫어?”

“아니.”

짧게 혀를 섞었다.

“대가도 받았으니까 무르기 없다?”

“진짜 사기꾼 다 됐네.”

“너두 나한테 사기치려 해놓고서는.”

“내가 언제?”

“같이 가자고 해놓고 나만 보내려 했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건 사기가 아니지.”

“사기 맞아.”

“몰라. 사용 가능 기한 정해.”

“싫ㅡ어.”

“맘에 안 들어.”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김세은이 꺄르르 웃으며 옆으로 뒹굴었다.

“너 핸드폰에 사진들 지웠어?”

“사진? 아 맞다.”

김세은이 스마트폰을 켰다. 갤러리에는 내가 찍은 두 장의 사진이 맨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눈물로 팩을 한 쾌락에 젖은 여자 한 장과 보지 쪽이 젖은 타월 기저귀 한 장.

“첫 번째 거는 잡지 커버로 써도 되겠다.”

“미친 소리야 진짜.”

김세은이 두 사진을 지웠다. 곧바로 핸드폰을 뒤에 놓더니 내 품에 안겨왔다. 안아주었다.

그런 식으로 대충 한 시간을 보냈다. 브런치를 먹기 적당한 시간대였다. 김세은이 먼저 나갔다. 나는 잠시 소파에 누워 있다가 핸드폰을 켜 김세은에게 통화 걸었다.

ㅡ응.

“택시 탔어?”

ㅡ아니. 기다리는 중.

“바로 병원 가.”

ㅡ갈 거야.

“빨리 가. 다른 데로 새지 말고.”

ㅡ히힣. 응.

“왜 그렇게 바보 같이 웃어?”

ㅡ그냥.

이상하네.

ㅡ이온유.

김세은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따라 했다.

“어. 왜?”

ㅡ너 때매 자궁에 멍든 거 같애.

“... 너 밖에 있는 거 아냐?”

ㅡ그래서 조심조심 말한 거잖아.

“진짜 조심스러울 거면 아예 그런 말을 안 하는 게 맞지.”

ㅡ택시 온 거 같애.

곧 차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김세은이 작게 콜록거렸다. 김세은이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ㅡ탔어.

순간 목소리가 거칠었다. 김세은이 큼큼 거렸다.

“감기 빨리 나아야 될 텐데.”

ㅡ누구 때문에 생긴 감긴데.

“그래서 빨리 나으라고 하잖아.”

ㅡ입으로만?

뭘 바라는 건지.

“어떡해줄까?”

ㅡ네가 할 수 있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이런 게 제일 사람 힘들게 만든다.

ㅡ한숨 쉬지 마.

“네가 쉬게 만들잖아.”

ㅡ그럼 너도 조심조심 말하고 행동해.

“뭔 소리야? 뜬금 없이.”

ㅡ나 한숨 쉬게 만들지 말라구.

“...”

ㅡ알겠어?

“어.”

ㅡ그리구, 너도 진짜 병원 가봐. 그거 반 진담이었어.

“됐어.”

통화 너머로 김세은이 킥킥 댔다.

“왜 웃어?”

ㅡ그냥. 너 지금 뭐해?

“나갈 준비.”

기타 케이스를 등에 맸다. 그 외엔 챙길 게 없었다. 거울을 보고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

ㅡ오늘 뭐 할 거야?

“나도 몰라.”

일단 집에는 돌아가야 할 텐데. 항상 그렇듯 집은 그리 가고 싶지 않았다.

ㅡ그럼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소원권이야?”

ㅡ아니? 네가 먹자며!

김세은이 질색하는 표정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 아까 얼굴을 뜯어봐서 그런가. 웃었다.

“장난.”

ㅡ진짜 나빴다.

“어디서 먹을래?”

ㅡ뭐 먹을지 묻는 게 순서 아냐?

“난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거 먹고 싶어.”

ㅡ네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려구?

“우리 입맛 비슷하지 않나?”

ㅡ혹시 안 맞는다고 하면?

“그런 가정 안 하면 안 돼? 왜 어긋나는 상황을 고려해. 그런다고 실제로 일어난 적도 없는데.”

ㅡ궁금하잖아.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ㅡ이것저것.

“그냥 다 궁금하다고 하지?”

ㅡ응. 다 궁금해. 알려줘.

미치겠네.

“... 맛은 있는데, 내 입맛은 아니라고 하고 천천히 먹겠지. 네 먹는 속도 맞춰서. 네가 좋아해서 데려온 거일 텐데, 거기다 대고 맛 없다고 하고 안 먹을 순 없잖아. 그렇다고 너보다 느리게 먹으면, 맛있다고 말한 것도 억지라는 느낌도 들고. 입맛에 맞는다고 거짓말하는 건 또, 너한테 거짓말하는 거라 아예 하기 싫고.”

ㅡ으응...

“뭐야 그 으응은?”

ㅡ왤케 선수야?

“뭐 어떻게 대답하라는 거야 그런 질문은?”

ㅡ네가 생각해서 답해봐.

“뭐, 난 너밖에 없어?”

김세은이 끄악, 소리를 내고 큭큭 웃었다. 주먹으로 뭘 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걸 보면 자기 허벅지를 퍽퍽 때리는 모양이었다.

ㅡ미쳤어 진짜.

“탈락이야?”

ㅡ합격. 완전 합격. 프리 패스.

“그럼 이제 시험 더 없습니까?”

ㅡ네. 내일부터 wx 연습실로 출근하세요.

“아 저 내일은 등교해야 돼서요.”

ㅡ킥킥.

김세은이 병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우리는 대충 다섯 시에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은 왜 항상 강남인지 모르겠다. 무튼. 어디서 먹을 거냐고 물으니까 알려주지는 않았다. 평소 하던 대로 그냥 나오라는 식이었다.

밀린 메시지들을 대충 보고 답장해주다가 바깥으로 나갔는데 걷기 너무 귀찮아져서 택시를 탔다.

아버지와 윤가영은 어디 나가 데이트라도 하는 건지 집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수아도 안 보였다. 그런데 평소 쓰는 신발은 남아있고 지 방 옷들을 헤집어 놓은 것을 보면 밖에 나가기 전에 욕실에서 목욕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수아는 욕실에 있는 티비로 넷챠를 보는 걸 즐겼다. 그래서 종종 두어시간 씩 쳐박혀 있었다. 외출 준비를 할 때도 비슷했다. 한 시간은 쓰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널찍한 욕실 말고 그냥 화장실에서 대강 샤워나 하게 됐다.

방에 기타를 내려 놓고 옷을 운동복으로 갈아 입은 뒤 홈트룸에서 트레드밀부터 뛰었다. 프로틴 음료를 마시고 근력 운동 루틴을 돌렸다. 보조가 없으니 무게는 가볍게 했다. 그냥 생각 없이 땀이나 빼고 싶었다.

어디서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내 핸드폰은 아니었다. 소리를 따라 갔다. 이수아 방이 진원지였다. 침대 위에서 충전 중인 핸드폰을 들어봤다. 김해인? 이름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이 안 됐다. 그냥 통화를 받았다.

“후우... 여보세요.”

ㅡ여보세... 누구세요?

남자네. 뭐라 대답할까.

“그쪽은, 후... 누구신데요.”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착각인가.

ㅡ... 이수아 어딨어요.

“걔, 하... 지금 씻는데?”

ㅡ... 씨발. 그쪽은 왜 숨을 그따구로 쉬고 있는 건데.

“방금까지, 후우... 운동했으니까.”

ㅡ... 씨발...

끼리끼리 노는 건가. 껄렁껄렁 지 묻고 싶은 것만 묻고 대뜸 욕부터 박는 게 전화 너머로만 마주해도 존나 싸가지 없는 새끼 같았다.

ㅡ너 뭐하는 새끼야.

“이수아 오빠.”

ㅡ걔 외동인 걸로 아는데 오빠는 무슨 씨발 오빠야.

이수아도 지 친구들한테 말 안 했나. 당장 내가 그랬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이수아가 욕실에서 나왔는지 거실에서 시끄럽게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ㅡI'm gonna be a celebrity

That means somebody everyone knows

시카고라도 봤나. 헤어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통화 속 남자가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가 거의 묻히듯 했다.

ㅡ미친 씨발 걸레년...

전화가 끊겼다. 조용히 말한 걸 보니까 혼잣말을 한 것 같았다.

만약 썸 타는 관계 아님 연애하는 거였으면 이수아도 별 병신 같은 새끼를 다 만나는 거였다. 진짜 좋아하는 거였으면 미친 씨발 걸레년이라고 욕을 박지도 못하고 현실 부정이나 했을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개빡쳤다. 이런 개새끼가 다 있나. 핸드폰 번호를 기억해두고 이수아 방을 나섰다.

“어? 너 언제 왔냐? 근데 왜 내 방에서 나와?”

적당하 예쁜 폰트가 프린트 된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유명 브랜드 하얀 캡모자, 꾸민 차림은 아니었다. 방 안을 헤집은 걸 보면 일부러 그렇게 보이는 옷을 입은 거였다. 아마 썸 아니면 호감 있는 상태인 모양이었다. 이런 걸로 관계 유추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야.”

“왜.”

이수아가 괜히 움츠러 들어 말했다.

“사람 가려 만나.”

“그게 뭔 뜬금 없는... 너 내 핸드폰 봤냐? 어케 뚫었는데?”

이수아가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밀치고 지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가서 문 앞에 섰다. 침대에 풀썩 앉은 이수아가 아이씨, 라고 지껄이고 자판을 두들겼다. 뭐라고 막 쓰다가 갑자기 나를 올려다봤다.

“너 존나 전화 받아서 뭐라 했냐?”

“말 좆도 안 했는데 그 새끼가 끊던데?”

“그니까 그 좆도 안 한 말이 뭐냐고.”

“나 네 오빠고 너 지금 씻고 있다고 했지.”

“오빠고 씻고 있... 미친 새끼!”

이수아가 시발시발 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두들겨댔다.

“너보고 미친 씨발 걸레년이라고 하더라.”

“뭐?”

“김해인이라는 새끼가, 너보고 미친 씨발 걸레년이라고 했다고.”

“...”

순간 이수아가 멈췄다. 눈 감고 잠시 심호흡하더니 모자를 벗고 화면 한 부분을 꾸욱 눌렀다. 아마 썼던 걸 지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붉었다.

“존나 양아치 같긴 했어 개씨발놈.”

놀랐다. 조금.

“너 나 믿냐?”

“뭐? 그럼 거짓말이었냐? 이런 시발.”

이수아가 다시 화면을 봤다.

“아니 진짜였는데.”

“똑바로 말해.”

“진짜라고.”

“그럼 뭐 됐지 시발.”

이수아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현자타임이라도 온 것 같았다.

“뭐 해명은 안 해?”

“지가 좆 같이 오해한 거인데 왜 해명은 내가 해야 돼?”

“네 학교에 소문나면 어떡하게.”

“아 그렇네? 씹...”

이수아가 다시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분주한 게 여기저기에다가 말을 막 뿌리는 듯했다.

“근데 너 내 전화는 왜 존나 지멋대로 받고 지랄이냐.”

“전화 왔는데 받는 게 예의지.”

“네 좆같음은 유전이냐?”

“... 섹스는 해봤냐?”

이수아가 나를 봤다. 존나 어이 없다는 눈이었다.

“넌 그게 여동생한테 할 질문이냐?”

“불안해서 그래. 네 애미 노선 탈까 봐.”

“씨발 새끼.”

“네가 먼저 했다.”

“진짜 존나 유치해. 나이 두 살이나 더 쳐먹은 오빠라는 새끼가.”

“그래서, 해봤냐고.”

“넌 해봤나 봐?”

“질문은 내가 했다.”

“답하면 너도 말해라.”

“말해봐.”

“안 했어 병신아.”

“그래. 다행이네.”

등 돌리고 홈트룸으로 갔다.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는? 이 개새끼야!”

그걸 믿었네. 이런 모습을 보면 이수아는 의외로 순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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