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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4화 (14/438)

〈 14화 〉 김세은이랑 무인텔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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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김세은이랑 나는 썸 비스무리한 걸 타기는 했다. 사실 자의로 시작된 썸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주변에서 선배들이랑 친구들이 밴드부 신입 보컬 둘이라고 밀어붙이는 느낌으로 물타기를 해서 억지로 엮어 놨었으니까.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주변에서 더 난리니까 괜히 관심가게 되고 또 반발심도 생기는. 곰브로비치의 [포르노그라피아] 한국 학교판이라고 해야 됐나,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김세은이랑 나는 억지로 만들어진 희끄무레한 분홍빛 기류에서 어색하게 숨 쉬고 있었다. 그래도 마주하고 있으면 오래 쳐다보기도 황송한 예쁜 얼굴이라서 호감이 금방 생기긴 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호감을 표하진 않았다. 오히려 단 둘이 있는 상황 같은 건 피했다.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그때부터 사귄다니 뭐니 소리가 나올게 뻔했으니. 그렇게 우리가 서로 피하는 날이 지속되자 억지로 엮는 분위기도 사라졌다.

그러다 밴드부 회동이 있던 어느 날, 식당집 아들인 한 선배가 술을 가져와서 갑자기 술판이 벌어졌을 때였다. 나는 술이라는 게 맛대가리도 없는 백해무익한 음료라고 생각해 되도록 입을 대지 않아왔기에 내 주량이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술게임을 하니까 그 맛 없는 게 절로 넘어가더라. 그때 김세은 표정을 살피면서 한두번 흑기사도 해주고 몸에 술을 들이붓고 나니 정신이 완전 없어졌다. 난 진짜 내가 무적이라도 된 거 같은 기분에 취해서 오는 건 다 마셨다. 미친 짓이었지. 그런데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할 정도로 취할 즈음 되니까 다 꽐라가 되어가지고 조금 안심도 했었다. 화장실에서 한 번 토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잠깐 기절하고 일어나니까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김세은이 검지로 문을 가리켜 나가자고 수신호를 보냈고,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은, 잘 기억 안 난다. 조금 걷다가, 어디 좁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김세은이 내 허벅지를 만졌고, 김세은의 손에 이끌려 김세은의 옷 위로 가슴을 만졌고, 서툰 손짓으로 서로 바지를 벗기고, 보지 속이 막 젖지도 않은 상태에서 집어 넣으려고 하고, 그러다 김세은이 아프다고 해서 멈추고.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사귀자는 말도 한 적 없이 대뜸 몸을 섞은 관계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김세은이랑 나는 개인적으로 만나고 다녔다. 아프지 않게 섹스하는 법 같은 것들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차근차근 적용했다. 지금은 뭐 여자 가슴에 돌기가 올라오면 흥분했다는 신호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뭐 그런 잡지식들만 머리에 남아 있다. 결국에 인터넷에 도는 모든 내용을 종합한 결과, 중요한 거 두 가지는 교감과 애무였다. 그 둘을 통해서 보지가 자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삽입이 있고 섹스가 있는 거였다. 아, 그때 섹스의 위험성 같은 것도 동시에 알게 돼서 가다실9 같은 것도 접종하고 그랬다. 아무튼 세 번째 시도까지는 뭐 어떻게 애무를 해도 안 되다가 네 번째 시도 때 서로 아무 데도 안 만지고 그저 빈틈 없이 꼭 껴안아서 키스만 하는 것으로 김세은의 보지를 적시는 데 성공했다. 나도 쿠퍼액이 엄청 흘러나와서 그날 입고 있던 팬티를 버리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예민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처음에는 그리 둔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는지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그 뒤로 우리는 섹스를 해댔고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기분좋은지를 본격적으로 알아갔다.

우리가 그러는 줄은 주변에서 아무도 몰랐다. 학교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지도 않았으니. 김세은이 wx 연습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더 조심해서 정말 가끔 만났고, 여태까지 잘 숨겼다.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정립하지 않았다. 김세은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우리가 섹스까지 했는데 후시적으로 사귀자라고 말하면, 그냥 좀, 여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사귀자 소리를 하느냐는 꾸짖음을 들을 것 같기도 해서였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섹스파트너냐고 묻는 건 또, 김세은이 만약 나와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시 바로 헤어지는 길이었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관계를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라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sns에 자기 삶을 전시하기를 좋아하는 김세은이 나와 연애한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는 이유는 나를 연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섹스파트너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것은 그렇게 전시할만한 사실이 되지 않기에 알리지 않는 것이다, 라고 까지 머리를 굴렸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으니 굳이 리스크를 감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김세은은 내 생각보다 더 크게 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동안 나와 몸을 섞지 않아서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라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도. 그렇다면 이제 내가 어떡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김세은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됐다. 김세은이 나와 연애하는 사이가 되었음을 주변에 밝힌다면 그렇게 하고, 지금처럼 섹스파트너에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면 따르면 됐다. 만일 김세은이 내 개인적 욕심을 고려한다고 든다면, 솔직히 나는 모른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남용해서 이제는 그 외연이 너무 넓혀져 버린 간질간질한 그 말, 그 단어가 내포하는 게 뭔지 당췌 알 수 없는 용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김세은에 대해서 느끼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되물을 것이었다. 그게 대체 뭐냐고.

"나 다 씻었어."

아이보리 색 목욕 타월을 걸친, 연보라색 머리가 촉촉히 젖은 김세은이 말했다.

"예쁘다."

"나도 아니까 빨리 씻기나 해."

욕실로 들어가 머리에 물을 쏟았다.

물론 나는 김세은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고, 서로 얼굴을 보고 김세은이 웃으면 나도 마주 웃고, 슬퍼하면 나도 공감해 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친구 사이여도 가능한 것들이라 그것을 두고 김세은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제출할 수는 없었다.

혹자는 자주 생각하는 대상이 바로 사랑하는 대상이라고 하는데, 나는 요즘으로 따지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여성은 내 어머니와 이수아였다. 그럼 내가 이수아를 사랑하고 있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김세은은 어떨까. 나를, 사랑할까? 갑자기 목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일단 서로에게 준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자면 방금 내 앞에서 울기까지 한 김세은의 쪽이 더 큰 것 같았다. 문자나 통화 같은 것도 김세은이 더 자주 했고. 물론 거기에는 내가 연습생이라 바쁠 김세은을 배려하고 학교에 우리 둘의 관계가 탄로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두 개의 명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수는 김세은 쪽이 컸다. 만약 두 제약이 없어졌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봐도, 김세은이 더 많이 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증기 때문인가. 어질어질했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도 뭔가 정신이 흐물흐물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은 채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김세은이 손짓했다. 목을 축이고 걸어갔다.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 아닐까.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에서는, 어깨에 있는 빛 한 점으로 소울 메이트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는데. 김세은이 내게서 그런 것을 찾았다면 나라고 못 찾을 거야 없었다. 내가 침대에 오른손을 얹으니 김세은이 핸드폰을 끄고 옆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김세은의 어깨를 보았지만 빛은 찾을 수 없었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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