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김세은이랑 무인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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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잡으려 시가지로 나갔다. 어차피 근처에 있을 건데 부르지는 말자고 내가 졸랐다. 김세은은 팬티 속 콘돔 두 개가 신경 쓰이는지 양손을 콘돔이 있을 자리에 두고 걸었다. 그러니 걷는 폼이 영 어색했다.
개강을 해서 그런가 길가에 대학생이 많았다. 우리는 거리를 거니는 연인들과 대학생 무리들에 제법 잘 섞여들어 그들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김세은은 사람이 가까워오면 정면은 바라보지 못하고 땅바닥 언저리에만 시선을 두었다. 귀여워서 웃었다.
“너 S야?”
“아니.”
“그럼 지금 이렇게 한 이유는 뭔데?”
“너 부끄러워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게 S인 거잖아.”
“그럼 그렇다고 하지 뭐. 손 안 추워?”
왼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었다. 맞잡은 손이 차가웠다.
“그렇게 의식하고 있으면 더 시선 끌어.”
“... 근데 창피하잖아.”
택시 뒷문을 잡고 열었다. 김세은이 먼저 들어가 두 손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으면서 무인텔 주소를 말한다.
“대학생들이에요?”
“네.”
김세은이 재빨리 답했다.
“여기 근처 대학 다녀요?”
“네 뭐.”
이번엔 내가 답했다. 기사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제 아들내미가 요 근처 시립대학에 다니는데ㅡ”
말이 많은 택시기사님이었다. 자기 자식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장남이 인턴을 마치고 이번에 대기업에 입사했고, 장녀는 대학에 다니면서 면접을 봐서 유명 마케팅 사에 취직이 내정되어 있고, 차남은 시립대학교에서 조기 졸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늦둥이 막내는 중학생인데 과학고를 가려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그러면서도 아내 얘기는 일절 없으신 걸 보면 이혼을 했거나 사이가 소원하신 모양이었다. 말솜씨가 기가 막힌 게, 무인텔에 도착하니 이야기가 완벽하게 종결되었다. 이게 노하우인가.
“아이고, 이야기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택시가 떠나갔다. 김세은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밑을 쳐다보며 아기처럼 손을 죔죔 거리길래 꾹꾹 눌러 주물러주었다.
“저 아저씨 말 진짜 많다.”
“그러니까.”
“아저씨 되면 다 저러나? 너도 저렇게 될 거야?”
“나는 모르지.”
“나 저렇게 피곤한 사람은 못 견뎌.”
“왜. 나랑 그때도 볼 거 같아서 그래?”
“...”
“왜 그래 농담이야.”
“... 나 갈래.”
김세은이 등 돌려 빠르게 걸었다. 말실수했다. 아 병신인가. 왜 그랬지. 뛰어서 쫓아가 왼팔을 붙잡았다. 김세은이 멈춰섰다. 그대로 쭈그려 앉는다. 앞으로 가서 얼굴을 확인하려 하는데 두 팔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세은아. 미안해.”
“흐윽, 넌, 넌, 내가, 윽, 그냥 걸어, 걸어다니는 보지, 보지로, 보이지?”
“아냐.”
“아니, 면, 흡, 왜, 그러, 는데.”
“...”
할 말이 없어서 나는 그저 김세은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내가 병신이었다. 입이 좆도 아닌데 좆 같은 소리를 입으로 냈다.
생각해보면 김세은은 티팬티에 콘돔을 끼우는 일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내가 제안한 것이었으므로 들어주었다. 무리한 부탁도 들어줄 정도로 마음을 줬다는 뜻인데 나는 그런 속도 모르고 말을 가볍게 했다. 좆이 순간 뇌를 지배해버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역겨운 행태였다. 빵빵, 하는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차 온다.”
“흐윽, 흑, 윽...”
쭈그려 앉아 움직이지 않는 김세은을 그대로 들어올려 차도 밖으로 걸어가 내려놓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마냥 울고 있는 김세은을 보고 있다가 옆을 보았다. 틴트된 자동차 유리에 내 얼굴이 반사됐다. 그 위로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세은아.”
“흑, 왜.”
“미안해.”
“뭐가, 미안, 한, 건데.”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한 거. 내가 너한테 잘못한 일들 다.”
“...”
김세은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에코백을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오른팔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고 왼팔로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내 손이 차가워지고 김세은을 안은 품은 점차 따스해지면서 김세은의 울음도 잦아들었다. 어느새 김세은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나 용서해줄 수 있어?”
“여기서 바로 용서하면, 내가 뭐가 돼.”
“성인?”
“그런 거 하기 싫어.”
“그럼 김세은 하자.”
“재미 없어.”
“김세은이네.”
“재미 없다고.”
“응.”
“응이 뭐야. 똑바로 대답해.”
“알겠어.”
“풋.”
어이 없어서 짓는 웃음이었다. 일단 미소를 짓게 했으니 성공한 거였다. 김세은과 눈이 마주쳤다. 눈물이 흘러 물기 어린 맑은 눈 안에 내가 있었다. 나는 키스할듯 양손을 김세은의 얼굴 쪽에 가져가다가 김세은이 눈 감은 것을 본 순간 손을 뒤집어 두 손등을 김세은의 볼에 대었다.
“차가워!”
김세은이 내 두 손을 뿌리쳤다.
“그치. 추운데 안에 들어가자.”
“짐승!”
김세은이 벌떡 일어났다. 나는 에코백을 챙겨 일어나서 김세은을 껴안았다. 김세은이 버둥거렸다.
“놔.”
“싫어.”
“놓으라구.”
“싫다고.”
“아아. 놔.”
“안 놔줄 거야.”
“...”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간 김세은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김세은이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에도 퍼부었다.
“여기 밖이야.”
“그럼 안에 들어가자.”
“...”
“너 화장 번졌어.”
“진짜?”
“아니.”
“아 진짜 왜 그래.”
“귀여워서.”
“...”
결국엔 손 잡고 무인텔에 입성했다. 무인텔은 문 앞에 놓인 기기를 화면에 뜨는 대로 누르고 값을 지불하고 지정된 방을 찾아서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구조였다. 방은 특실에 숙박으로 잡았다. 위치도 별로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아서 들어가는 시간과 택시비 등도 고려하면 사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차피 내 돈 아니었다. 아버지 돈이었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점도 만족스러웠지만 진짜 좋았던 것은 방이었다. 싸구려가 아닌 조명, 마음껏 뒹굴 수 있는 크기의 침대, 침대라고 해도 속을 만한 넓고 둥근 소파, 가정집에 있는 게 아닌 영화에서나 볼 법한 분위기 있는 욕조, 안마의자, 티비, 컴퓨터, 에어컨 등. 난방 조절이 불가능해 따뜻하기보다는 선선한 실내 온도 등이 조금 아쉬워 역시 집만하지는 못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적당히 가져다놓으면 살아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할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건 김세은도 마음에 든 분위기였다는 거였다.
“같이 씻을래?”
“싫어.”
김세은은 단호하게 말하고 에코백에서 정화 필터 샤워기 헤드를 꺼내 먼저 씻으러 샤워실에 들어갔다. 유리벽으로 된 샤워실은 바깥에서 커튼을 칠 수 있는, 다분히 의도적인 설계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 커튼을 열어 젖혀서는 안 됐다.
김세은은 좀처럼 자기 몸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섹스를 할 때면 채광이 들어오는 창문에 모두 커튼을 치고 광원을 모조리 꺼서 되도록 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런 조치를 취해도 앞이 보인다 싶을 때에는 바지는 벗어도 상의를 벗지 않았다. 치마를 입고 왔다면 치마를 입은 상태로 섹스했다. 그렇게 치마를 입어서 가리는 것도 가리는대로 나를 흥분시켜서 별 불만은 갖지 않았지만 앞이 안 보일 때는 아쉬움이 남기야 했다. 한 번만 제대로 김세은의 나신을 볼 수 있다면 그 아쉬움이 풀릴 테지만 김세은은 해소시켜줄 마음이 없는 듯했다.
나는 김세은과 내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 원목 행거에 두고 옷을 벗었다. 남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킬까 했지만 누가 전화할까 두려워 관뒀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광원들을 일일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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