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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10화 (10/438)

〈 10화 〉 김세은이랑 노래방에서 (1)

* * *

두 번 째 각 조 연습까지는 음료수를 마셨는데, 세 번 째 리허설부터는 물을 마셨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음료수를 마시면 뭔가 목에 당이 남아서 끈적하고 미묘하게 마른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도 싫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싶어서 물을 마신 거였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는 몰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김세은은 물을 마시는 나를 보고 말 없이 눈웃음 지었다.

*

“아 씨발 좀 쉬자...”

세 번째 각 조 연습, 두 번째 솔로 곡을 연주할 때 강성연이 드럼 스틱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나는 목과 허파 사정 상 지적을 못 할 상황이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아마추어냐? 그런 말 할 거면 끝내고 해.”

“야 우리 아마추어 맞아.”

“다시 집어. 이것만 끝내고 쉬자.”

“십 분. 십 분 쉬자.”

송선우가 나를 봤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알겠다.”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한 강성연이 드럼 스틱을 줍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입을 열었다.

“브릿지부터 가자.”

진짜 뒤지게 힘들다.

*

복도에 좀비들이 걸어다녔다. 좀비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 좀비들치고 발성 기관이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다. 발성 기관이 무너진 좀비는 다섯으로 이뤄진 무리 하나에 한 명 씩 있다. 유리문으로 좀비들이 몰린다. 손으로 안 열고 어깨로 문을 밀어낸다. 쌀쌀한 밤이다. 몸은 후끈한데 땀으로 젖은 겉은 추워진다. 염병. 김민우가 입을 열었다.

“고생들 했다. 월요일에 보자 얘들아.”

“안녕히 가세요.”

“밴바.”

“자 이제 집에 드가자.”

“드가자.”

“월요일에 봐요.”

좀비들이 입구에 부른 택시에 몸을 구겨 넣거나 길가를 걸었다. 너무 피곤해서 나도 무심코 행렬에 끼어 집으로 갈 뻔 했다. 이성이 망가지니 본능이 몸을 이끈 것이었다. 나를 뒤쫓아 온 김세은이 팔꿈치 쪽 옷자락을 잡아 끌어서 정신이 들었다.

“뭐해.”

추궁의 눈이다. 기억 안 나냐는 듯한. 설마.

“안 돼.”

“돼.”

얘는 진짜 강철 성대인가. 노래를 그렇게 불렀을 텐데 목소리가 그대로인 것도 신기한데, 아직도 노래할 기력이 남았다고.

“봐줘.”

“너 나한테 죄 지었어?”

“몰라. 근데 네가 지금 나한테 벌 주는 거 같아서.”

“야. 나랑 노래방 가는 거면 포상이지.”

김세은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찌르는대로 밀려났다.

“뭐해?”

“지금 힘이 없어.”

“아 덩치 값 좀 하라고.”

이번엔 내 등을 팡팡 때린다. 앞으로 고꾸라질 수는 없어서 그냥 꼿꼿이 서서 걸었다. 김세은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옳지. 꼭 때려야 말을 들어요. 우리 온유는 맞는 게 좋아요?”

“싫어요.”

“그럼 때리는 거?”

“... 그런 취향 없어요.”

“그럼 왜 이리 뜸들이고 말해? 진짜야?”

“아니.”

택시 문을 열었다. 김세은이 주소를 읊었다. 연습실에서 멀지는 않았다. 택시로 4분 거리면, 그냥 걸으면 되는 정도지. 값을 치르고 감사하다 말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너 힘들어 보여서 택시 탔어.”

“근데 계산은 내가 했네.”

“돈 흥청망청 쓰는 게 네 취미 아니었어?”

취미는 아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때 돈 쓸 일이 생기면 내가 내는 쪽으로 가는 것 뿐이다.

“노래방 비는 내가 낼게.”

“아냐 내가 내.”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본 김세은이 시선만으로 왜냐고 묻고 있었다.

“너 연습생이잖아. 돈 들어올 데도 없고, 오히려 나가면 나갈 건데 내가 낼게.”

“... 누가 보면 너 벤쳐 사업 두세 개 대박난 청년 사업가인 줄 알겠어.”

“청소년 사업가 아니고?”

“네 덩치 값 합쳐서.”

건물 겉은 멀쩡했다. 계단도 멀쩡했고. 김세은이 카운터에서 한 시간을 요청하고 마이크 커버를 달라고 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로 방들을 지나가는데 소음이 잘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방음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주어진 방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내부는 더럽지 않았다. 나는 소파가 뜯어져있고 테이블엔 꽁초 버려진 재떨이가 안 치워진 광경을 예상했는데. 그냥 시설 좋은 노래방이었다. 바닥에 기타와 책을 내려놓고 코트를 소파에 대충 던져놓았다.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을까.

“맘에 들어?”

“응. 좋다, 여기.”

그렇다고 지금 노래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롱코트를 벗은 김세은이 문을 잠그고 마이크를 둘 다 집어와 바투 붙어 앉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가느다란 검지와 엄지로 커버 끝을 잡아 마이크에 정성스레 씌웠다. 두 번째 거에도 씌우고 내게 건네주었다.

“빼지 마.”

미치겠네. 김세은이 라인이 잘 잡힌 몸을 쭉 뻗어 테이블 위의 기기를 잡아 익숙하게 번호를 눌러 엄청 예약해댔다. 첫 곡은 peder elias의 bonfire였다.

“이거 노래방에 언제 추가됐어?”

“좀 됐어. 너만 몰랐어.”

김세은이 내 허벅지를 때렸다. 전주랄 게 없어서 바로 시작되는 곡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틀어야했다.

“제대로 해.”

“응.”

ㅡhit me up

김세은이 또 내 허벅지를 때렸다. 입은 노래를 부르고 눈은 억울해하면서 김세은을 봤는데 김세은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렇게 눈싸움하다가 김세은이 빵 터져서 노래는 흐지부지됐다.

“뭔데.”

“때려 달라며.”

“재미 없어.”

“난 지금 최고 웃긴데.”

빈말은 아닌지 양손으로 내 왼쪽 어깨를 잡고 머리는 가슴에 파묻듯이 해서 끅끅대며 웃었다. 김세은이 입은 상의가 하필 루즈한 티셔츠라 왼쪽 어깨가 훤히 드러나서 눈에 살색이 가득찼다. 머리카락이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아까부터 발기돼서 위험했다. 김세은의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너 무슨 일 있었어?”

“으응? 아니? 왜?”

“이상하잖아. 아까부터.”

“아까부터라니?”

무슨 헛소리냐는 눈친데. 진짜 아무 일 없는 건가.

“너 나 보컬실에 불러세워서 할 말 숨기고, 목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물 강박적으로 마시고 그랬잖아.”

“으음. 나 신경 써준 거야?”

“당연하지. 다음 주가 버스킹인데.”

“...”

김세은이 표정을 살짝 구겼다 도로 펴고 어깨를 흔들었다. 손을 놔주었다.

“야.”

“응.”

“내가 말을 숨기면 그럴 이유가 있어서 숨기는 거야. 넌 알지 말라고.”

“내가 왜 알면 안 되는데?”

“당연히 그것도 못 알려주지.”

“뭐 내가 못 돕는 큰일이야?”

김세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답답했다.

“일이 없다는 거야 있다는 거야.”

“없어.”

김세은이 소파에 오른쪽 무릎을 꿇어 올리고 왼 다리를 박차 내 허벅지에 올라 탔다. 자지가 지그시 짓눌리고 내 눈높이에 김세은의 크지 않은 가슴이 자리했다. 김세은식 돌발 행동이다. 이럴 땐 보통 연계가 들어 온다. 곧 내 목 뒤쪽에 팔을 휘감는다. 표정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 시동이 걸린 눈이었다. 얼굴이 가까워진다. 복숭아빛 입술이 벌어진다. 팔과 다리를 죄어와서 몸을 밀착한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엄지는 김세은의 오른볼에 두고 나머지 손가락은 왼볼에 둬 턱을 붙잡았다.

“너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김세은이 미간을 막 찌푸린다.

“이거 모욕저기야.”

붙잡던 손을 풀고 왼볼을 쓰다듬었다.

“너 걱정 돼서 그래.”

대답 없이 다시 밀어붙여온다. 막무가내다. 하는 수 없이 입을 맞췄다. 오랜만에 맞닿은 입술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두 번, 세 번 프렌치 키스를 하고 눈을 뜨니 김세은의 얼굴이 멀어졌다. 복숭아 향만 코에 감돌아 방금을 증명했다. 미러볼의 빛이 내 얼굴에 쏟아졌다.

“... 사장님이 의심하시겠다.”

김세은이 대답 없이 뒤로 왼팔을 뻗어 마이크를 집었다. 빠져들고 마는 몽환적인 음색이다. 소리는 들려오지만 가사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세은의 눈이 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나는 혼란 속에서 표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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