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리허설 연습
* * *
타협안대로 주문했다.
4시가 되니 버스킹 멤버가 모두 모였다. 곧장 3학년 선배들부터 시작을 끊었다.
오늘 연습의 과정 자체는 간단하다. 스테이지에 나가 곡 소개부터 노래까지 실전처럼 리허설을 하고 다른 조는 틀린 점이나 곡 해석이 부족한 점을 찾아 피드백을 한다. 이후 조마다 다른 방으로 가서 미흡한 점들을 보완하는 연습을 사오십 분 동안 한 후 재차 점검한다. 이것을 자정까지 반복한다. 이 단순한 과정에 저녁 먹는 것 정도만 포함해도 세 번 밖에 못한다. 그리고 그 세 번은 사람을 녹초로 만들기 충분하다.
보면대 위 악보를 넘기며 듣던 김민우가 노래가 끝나자 드러머에게 소리쳤다.
“김씨! 곡을 안 외운 거야 악보를 못 보는 거야? 브릿지에서 크래쉬 심벌을 쳐야지 하이햇을 조지면 어쩌자는 거야?”
그걸 시작으로 3학년 선배들의 물어뜯기가 이어졌다.
“벌스 2에서 해머링 몇 번 씹혔어. 음 튀니까 커팅도 대충 하지 말고. 네가 소리 다 뭉갠 거 알아? 실전처럼 해. 기본적인 거 틀리지 말고!”
“베이스 들어가는 박자 자꾸 놓치던데 잠 못 잤어?”
“키보드는 연습을 안 한 거 같아서 뭐 할 말이 없네.”
“원곡처럼 진성으로 안 되면 가성 써. 네 목소리에 맞추려고 곡도 살짝 건드린 거 아냐? 왜 하지도 못할 거면서 원곡 따라 가려 그래?”
마음 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지적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속삭임으로 관객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야유가 더 아픈 것을 알아서 쓴 약을 삼키듯 담담히 받아들였다. 설령 마음이 조금 상했어도 겉으로 드러낼 정도로 유약한 사람은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상처 받은 건 서유은 같았다. 툭 건드리면 눈물도 흘릴 기세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서유은이 핸드폰을 보고 열심히 두드린다.
[선배]
[원래 분위기 일케 험악해요?]
무심코 웃을 뻔했다. 참았다. 답장을 보냈다.
[아니. 다음주가 공연인 것도 있고, 3학년 선배들은 이번 버스킹이 사실상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있어서 최선을 다 하려고 독기 품은 거야.]
[너 노래 부르고 나서 호응 좋았잖아. 보통은 그런 분위기에서 연습해. 실수나 연습 부족이면 지적은 좀 당하겠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무섭게는 안 할 거야.]
서유은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짓궂은 생각이 든다.
[심해도 아마 지금 분위기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만 가라앉힐 걸]
서유은이 울상을 하고 나를 봤다.
[너처럼 실수 없이 잘하면 욕 안 해. 칭찬만 받지. 너랑 같이 연주하게 된 세션은 욕 먹을지 몰라도.]
화면을 보는 서유은의 얼굴이 파래진다. 자기가 아니라 같은 팀이 욕 먹는다는 것을 상상한 것만으로 힘든가 보다.
[장난이야. 다 배우는 처지고 즐겁자고 하는 부활동인데 욕 안 해. 더 연습하자고 으쌰으쌰는 해도.]
[그러지 마요 저 거짓말에 진짜 잘 속는단 말예요 ㅠㅜ]
전신의 힘이 빠졌는지 서유은의 몸이 축 늘어진다.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서서 조용히 연습실을 나간다. 화장실 가는 건가.
시선을 무대로 돌렸다. 선배들이 다시 피드백을 받기 위해 다른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
돌아온 서유은은 열정이 재충전되어 있어서 야망 넘치는 견습생처럼 참관하고 있었다. 자세히 말하면, 스테이지와는 조금 떨어진 데에 앉아서 노래에 맞춰 아주 작은 소리로 허밍을 하고 있었다. 보컬의 라인을 따라하거나, 라인보다 높거나 낮은 화음을 내기도 했다. 나는 애들과 서유은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차지해 잘 들리지도 않는 허밍에 더 집중했다.
어느새 내 왼쪽으로 의자를 옮긴 김세은이 3학년 1조의 마지막 피드백 시간에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왜?”
대답은 안 하고 손을 까딱인다.
“들리잖아.”
“안 들려.”
들리고 있는 거다. 아니, 들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김세은이 이렇게 고집을 부릴 때는 맞춰줘야 한다. 안 하면 내게 앙심을 품고 언제 어떤 독특한 방식으로 복수할지 모르니까. 얼굴을 가까이 해 김세은의 왼쪽 귀에다 속삭였다.
“왜.”
김세은도 웃으면서 내 왼쪽 귀에 속삭인다.
“잠깐 나가자.”
“뭐하게.”
“나오라면 나와.”
김세은이 먼저 일어나 걸었다. 뒤따랐다. 연습실 문을 닫는데 서유은이 우리를 보고 있는 걸 봤다. 놀이공원에서 보호자를 놓친 아이가 할 법한 눈이었는데. 아 쟤 근데 백지수랑 인사는 했나. 뒤에서 발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김세은은 계속 앞장서서 빠르게 걷고 있었다. 잠깐 뛰어서 따라잡았다.
“어디 가는데.”
“물 사러.”
“뭐?”
“네가 음료수만 사서 물 사러 간다고.”
“음료수를 샀는데 왜 굳이 물을 사?”
김세은이 고개를 옆으로 꺾어 흰 목을 드러내고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틈틈이 물 마시는 게 목 관리 방법이래. 음료수 말고. 생각 날 때마다 물 한 입 씩. 생각 못 할 거 같으면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의식적으로 마셔서 습관화하기.”
“그럼 네가 연습실 들어오기 전에 물을 샀으면 되는 거 아냐?”
“난 네가 샀을 줄 알았지.”
무책임한 소리다. 내가 독심술을 원격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고.
“코앞이 편의점인데 나를 대동할 이유는 없지 않아?”
“있어.”
“그런 게 있으면 먼저 말해주는 게 맞지 않아?”
“부르면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묵묵히 따라주는 게 사내된 도리 아냐?”
“누가 보면 네가 남자인줄 알겠다.”
“너 왜 이리 유치해졌어? 덩치 값 좀 해.”
뾰로퉁해진 김세은이 뒤돌아서 검지로 내 가슴을 꾹 눌렀다. 그러게. 왜 이리 유치해졌지. 아마 이수아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염색한 거 되게 예쁘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마땅한 타이밍이 없어서?”
“타이밍 이러네.”
김세은이 툴툴대며 편의점 문을 열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편의점 바구니를 둘 들었다.
“넌 타이밍 안 잡히면 아무 말도, 행동도 못하겠다?”
“그게 정상이지 않아?”
“으으, 싫어. 극혐.”
김세은이 500ml 물을 쓸어 담았다. 같은 브랜드를 열네 개나 집어 넣고는 유류 제품 쪽으로 간다. 계산대에 내려놓고 새 바구니를 가져오니 이번엔 커피나 커피우유를 쓸어 담는다.
“예쁘다 한 마디로 퉁칠 거야?”
“그럼 됐지. 뭐 더 덧붙여야 돼?”
“너 그런 식이면 친구 안 생겨.”
“아니, 너 이미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듣잖아. 나한테 더 들어서 뭐해. 안 질려?”
커피만 보던 김세은이 눈을 마주쳐 왔다. 그러고는 너무 환하게 웃는다.
“어. 안 질려. 하나도 안 질려. 해줘. 세세하게.”
순간 혹했다. 얼빠진 소리를 낼 뻔했다. 김세은에 내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마 헙, 하고 숨을 참지 않았을까. 김세은은 그런 반응을 바라고 이런 짓을 했을 것이었다. 골려주고 싶었다.
“수능 끝났다고 신나서 염색한 고3 같애.”
“성숙해 보인다는 거지?”
“알아서 생각해.”
차마 부정은 못하겠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차가운 인상이고, 입을 열면 차분한 어투에 몽환적인 음색이 섞여 분위기 깡패가 되었다. 키도 커서 초면이라면 김세은을 보고 선뜻 고등학생을 떠올리기는 어려울 듯했다. 아마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주문하고,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할 때 째려보기만 하면 알아서 패스되지 않을까. 후카에리처럼 말이다.
“다 골랐어?”
“응.”
나는 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려 놓고 종이컵을 가져와 같이 계산했다. 배달 음식이 오면 쓸 거였다. 양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김세은이 스테이지 연습실 쪽으로 안 가고 개인 연습실 쪽으로 갔다.
“뭐 할 거면 나한테 말해주고 하면 안 돼?”
“어차피 하게 될 거 시간 낭비 안 하는 게 낫지 않아?”
“얘기해주는데 시간이 들면 얼마나 든다고.”
“너는 내가 한마디 하면 말대꾸 꼬박꼬박 하니까 시간 들잖아. 조용히 들었음 말해줬지.”
김세은이 보컬실 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가니 바로 문을 닫는다.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뒤 다리를 꼰다. 뭔가 할 말이 쌓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세다. 비닐 봉투들을 내려놓았다.
“물 줘.”
“...”
물을 꺼내 주었다. 안 받았다. 뚜껑을 따서 주니 그제야 받았다. 김세은이 벽에서 등을 뗀 뒤 입을 벌리고 목을 꺾었다. 꾸울꺽, 꾸울꺽, 눈에 보이게 김세은의 목이 올라갔다 내려간다. 원래 물 마시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거였나. 발성 연습의 일환으로 배운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리가 인상적이다. 절반을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른다.
“무슨 용건이야.”
김세은이 고개를 들었다. 나를 째려본다.
“... 용건?”
“잘못했어. 미안해. 넘어가줘.”
“... 너 오늘 바빠?”
“바쁘지.”
자정까지 연습하는데. 농담을 알아 들었는지 김세은이 정색했다.
“말장난하지 말고.”
“내일은 하는 거 없어.”
“끝나고 같이 노래방 가자.”
“... 미성년자는 10시부터 금지 아니야?”
“되는 데 아니까 묻는 거 아냐.”
“... 왜 굳이?”
“싫음 말아.”
김세은이 보컬실 문을 열어 나갔다. 봉투들을 챙기고 뒤따라갔다. 바쁘냐고 묻기 전에 한 침묵은 뭐였을까. 할 말을 다 못 들은 거 같아서 마음이 찜찜했다. 백색광이 반사되는 흰 복도로 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말 없는 검은 롱코트와 그 위로 흔들리는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왜 다 말을 안 하지? 괜히 김세은이 야속했다. 이수아에게 느끼는 감정이 김세은에게로 옮겨진 것 같았다. 이런 걸 전치라고 했나. 하지만 전치라고 하기에는 이수아는 두려운 대상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게는 나를 더 잘 아는 김세은이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아, 나는 이토록 내 마음을 몰랐다. 이런 내가 감히 다른 누구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수아에 대해 내가 내린 추측이 옳지 않을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
스테이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밴드부 죽돌이라 연습만 주구장창해왔기에 지적을 별로 받지 않았다. 내 조 세션인 김수원, 박철현, 강성연, 송선우도 내가 연습할 때 반주를 받쳐준다고 본인들도 연습을 엄청하게 됐기에 지적할 부분은 많지 않았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무대에서 노래 부르며 관객석을 보고 있었는데 서유은 바로 옆에 백지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알던 사이였나? 아니면 편의점 간 사이에 인사를 나누고 저 정도 거리감을 냈다는 건데. 나와 눈을 마주친 백지수가 서유은의 귀에 뭐라 계속 속삭였다. 백지수가 더 많이 말할 수록 서유은의 낯이 시무룩해졌다. 뭔 얘기를 하길래.
김세은과 첫 번째 듀엣 곡을 하는데 중간에 배달이 왔다는 전화가 왔다. 다들 빠르게 먹어치우고 리허설을 재개했다.
김세은은 자기가 말한 대로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입에 물을 머금었다. 물을 마신 만큼 요기도 올라왔는지 듀엣 두 곡을 할 때 한 번, 솔로 세 곡을 할 때 한 번, 다 끝나고 또 한 번 화장실을 들락였다. 물을 강박적인 수준으로 과다하게 마시는 거 같았다. 김민우가 피드백 내용으로 '물을 너무 많이 마신다'라고 까지 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5분 쉬는 시간을 가진 뒤 각 조의 연습실에 들어가 따로 연습하기로 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서유은이 검지로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선배 저 가봐야 될 거 같아요.”
“어? 어. 다른 선배들한테도 인사 하고 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네. 오늘 저 오는 거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냐 뭘. 집은 어떻게 가?”
“엄마가 와주신대요. 2분 후에 도착한다고 전화 왔어요.”
“잘 됐네. 라운지까지 바래다 줄게.”
연습실 문 앞에서 뒤돌아보고 말했다.
“서유은 이제 귀가한대요.”
핸드폰을 보고 있던 눈들이 이쪽을 향했다.
“간다고?”
“어, 응. 잘 가.”
“유은이 바이.”
“구경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안녕히 계세요!”
고개를 꾸벅 숙인다. 두 번, 세 번. 이러다 절 두 번까지 가겠다 싶어서 그만 숙이게 어깨를 짚어 줬다.
“어 잘 가고.”
“톡 보낼게. 집 가서 꼭 확인해.”
“월요일에 부실에서 보자.”
“네! 저 이만 가볼게요!”
양손을 뻗고 열심히 흔든다. 문 뒤에 가서 선배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문을 닫고 본 서유은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네!”
“어디가 좋았는데?”
“음악에 진지하게 임하는 거요. 다들 심심풀이로 노래방 가고, 피아노나 기타 치고 하는 건 흔히 보잖아요, 근데 이런 식으로 관객을 의식하고 만족시키려고 연습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처음 보는 거 아닐 걸?”
“네? 왜요?”
“네가 연습하는 거 거울로 본 적 있으면 그게 네 첫경험일 거야.”
“에이, 그게 뭐예요.”
그러면서도 미소를 띄운다. 말한 내가 다 오글거리는데도. 웃음 자판기 같다. 무슨 말만 하면 웃음을 지어준다.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뿌리는 사람이다. 이수아가 이런 바이브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잘 대해 줬을 거다. 아, 또 이수아 생각이다. 유리문을 열어 줬다.
“잘 가.”
“네. 담에 봬요.”
건물 앞에는 검은 세단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고급으로 보인다. 서유은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세단으로 뛰어가 문을 연 뒤 다시 내게 손을 흔든다. 잘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마다 저렇게 손을 흔들어 준다면 손목이 바스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다. 백지수가 서유은한테 안 좋은 말 안 했나. 마주 흔들어주고 등을 돌렸다. 김세은이 쟤 남자친구는 죄책감을 느낄 거랬는데. 글쎄다. 행복감은 확실히 느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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