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어머니가 생겼다-8화 (8/438)

〈 8화 〉 늦게 온 김세은

* * *

“기타도 잘 치고 피아노도 잘 치면 반주할 거 고르기 어렵겠다. 둘 다 동시에 연주할 수는 없으니까.”

“그 정도는 아녜요... 띄워주지 마요...”

서유은이 손사래를 쳤다. 히죽히죽 웃는 게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슬슬 시작했을지도 모르는데 들어갈래?”

“아아뇨.”

“왜?”

“시작 안 했음 또 뻘쭘하잖아요.”

설득력 있었다. 내 심정 상 네 시가 되기 전에 서유은을 안에 집어넣어서 한 번 애들이랑 연습 합주를 시켜보고 싶었다. 정식 연습 시간에는 못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까. 고민하는데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이 기타 무슨 기타인지 아세요?”

“글쎄.”

바디에 접하기까지 플랫이 열 네 개 있다. 어쿠스틱 기타다. 컷어웨이도 돼 있고, 헤드에는 마크라고 써져 있다. 더 알 수 있는 건 없다. 기타종 외우는 취미는 없는데.

“모르겠어.”

“마크 c 시리즈, gsx­c2e예요. 가격 얼만지 한번 맞춰보세요.”

“백만원은 돼 보여.”

“맞아요! 980,000원 주고 샀어요!”

“그래? 내 기타는 750,000원 짜린데.”

“그래요? 소리 되게 좋던데? 저도 그거 살 걸 그랬나봐요.”

“네 목소리엔 컷어웨이 기타가 더 어울리는 거 같은데.”

“히. 저 사실 선배가 지금 해주신 그 말 들어보고 싶어서 컷어웨이 산 것도 있었어요.”

“응? 이미 많이 들어보지 않았어?”

“컷어웨이 한 거랑 안 한 거 구분도 못하는 사람도 많아서, 잘 못 들어봤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 기타는 언제부터 배웠어?”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학원 다녀서요. 근데 지금은 안 다녀요.”

“혼자 연습해도 될 수준이 됐으니까. 맞지?”

서유은은 멋쩍게 웃었다.

“네. 오빠는 기타 누구한테 배우셨어요?”

“... 아버지.”

“와. 왠지 엄청 멋있으실 거 같아요!”

이번엔 내가 멋쩍게 웃었다.

“근데 아버지한테 배운 건 클래식 기타였어. 중학생 때부터 밴드부해서, 실력은 그때 키웠고.”

“그래도 아버지한테 배운 걸 토대로 지금 이렇게 된 거 아녜요?”

“그래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근데 넌 음악으로 먹고 살 생각이야?”

“음, 조금 있어요.”

“예술고는 왜 안 갔어?”

“예고 안 가도 노래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노래 부를 때 징크스 같은 건 있어?”

“그을쎄요... 없는 거 같아요. 선배는 있으세요?”

“공연 전에 배 채워놓기? 언제 한 번 공복 상태로 버스킹한 적 있었는데, 그 날 삑사리 두 번 내고 나서 꼭 뭐 먹고서 노래 불러. 나중에 영상 확인했는데 꼬르륵 소리도 마이크에 담겼더라.”

“아이쿠.”

“너는 버스킹해봤어?”

“아뇨.”

의외네.

“근데 하고 싶은 거지?”

격하게 끄덕인다. 지금이다.

“그럼 지금 애들이랑 호흡 한 번 맞춰 볼래?”

“좋아요!”

“바로 가능해?”

“네.”

악보 앱을 켜서 보여주었다.

“이게 2학년 레파토린데 함 골라봐봐.”

서유은이 옆에 바싹 달라 붙어오더니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했다. 숨결이 가닿았다. 고개만 돌리면 볼에 입술이 닿게 되는 거리였다.

“저 이거요.”

서유은이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내 손을 잡아’?”

“네.”

“원키로 가능해?”

“돼요.”

“그래. 가자.”

혹시 서유은이 가던 와중에 나를 붙잡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같은 소리를 할까봐 달려가듯이 걸었다. 스테이지 있는 연습실 문을 열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애들에게 고함쳤다.

“김수원! 박철현! 강성연! 송선우! '내 손을 잡아' 하자! 여자 보컬은 서유은이 한대!”

멤버들이 에이씨 따위의 소리를 내며 폰을 집어넣더니 스테이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권태에 사로잡힌 3학년 선배들도 볼거리가 생겼다며 눈을 밝혔다. 주춤대는 서유은의 옷소매를 잡고 스테이지 위로 데려가 세웠다.

“거봐 작업친다니까.”

강성연 이게 진짜. 키보드 앞에 선 박철현이 피식 웃었다.

“너 존나 이온유랑 사귀냐? 왤케 질투함?”

“아니 배 아프잖아. 보면.”

강성연은 말하면서도 고분고분 드럼 의자에 앉았다. 송선우가 내 기타를 가져 와 내게 건네주면서 입을 열었다.

“근데 김세은은?”

“땡큐. 오고 있겠지. 우리 먼저 하자.”

서유은이 내 팔뚝 쪽 옷자락을 잡고 두 번 당겼다.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해도 되는 거 맞아요?”

“응. 연습이잖아.”

마이크 스탠드 두 개를 가져와 서유은과 내 앞에 하나씩 세웠다.

“소리 잘 안 들린다고 목소리 막 높여서 부르지 마. 목 나가.”

“야 씨 네가 엄마냐?”

박철현이 면박을 주었다. 나는 대답 없이 마이크 스탠드를 서유은의 키에 맞춰줬다.

“녹화해줄까?”

어느새 의자를 끌어 와 완벽한 관중이 된 드러머 선배 김민우가 물었다. 관객들 사이에 있는 백지수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뭐야. 쟤 왜 저래. 정신 차리고 서유은을 봤다.

“너 영상 찍어도 돼?”

“네. 괜찮아요.”

“준비들 다 됐냐?”

강성연이 물었다. 큐는 보컬의 영역이었다.

“하자.”

강성연이 드럼 스틱으로 시작 박자를 알렸다. 틱, 서유은과 아이 컨택했다. 틱, 숨을 들이키고, 틱, 틱, 소리를 냈다.

ㅡ느낌이 오잖아 떨리고 있잖아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니

서유은은 눈은 질끈 감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띄우며 노래 부르고 있었다. 두 손은 마이크 스탠드를 꽉 쥐고 있었다.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움츠린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몸과 대조적으로 한껏 뻗어나간다.

너무 쳐다보면 영상을 못 쓰게 될 거였다. 시선을 바꿔 정면을 보았다. 옆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지만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의지로 버텼다.

*

노래가 끝나자 답가로 박수갈채가 들려왔다. 서유은에게로 관심이 집중되어 서유은이 선배들 틈바구니에 붙잡혔다. 김민우 선배가 음료수나 사러 가자며 나를 불렀다. 연습실을 나가니 미친 사람처럼 대뜸 킥킥 웃어댔다.

“야, 부장아. 영상은 못 쓰겠다.”

“왜요?”

노래는 좋았는데.

“네가 함 봐봐.”

처음엔 내가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서유은을 보고 있었다. 중반부터는 여유를 찾은 서유은이 나만 보면서 자꾸 아이컨택을 시도하고 있었다. 애타게. 영상이 끝날 때까지 쭈욱. 다이너마이트 부를 때 처음부터 끝까지 눈 마주치고 한 게 문제였나.

“... 불안했나 보죠. 얘기해보니까 이런 거 처음인 거 같던데.”

“불안한데 왜 너를 보냐 이 말이지.”

“딱히 달리 의지할 데가 없었겠죠.”

“그렇겠지. 실제로 처음 보는 3학년 선배들에 처음 보는 연습실. 너희도 면접 보고 처음 보는 거 아니냐?”

“그쵸.”

“야. 요즘 애들 진도 빠르다.”

“뭔 소리예요.”

“요즘 애들은 시치미도 잘 떼네.”

“형 나랑 한 살 차이예요.”

“그니까 한두 살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인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니까.”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음료수를 사고 들어갔다. 김민우는 서유은한테 녹화 취소 버튼을 눌러버렸다고 변명했다. 나랑 상의해서 골라낸 변명이었다. 선배들의 질문 공세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던 서유은은 잘 속아 넘어간 듯했다. 아마도.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3시 44분이었다.

“한 곡 더 해볼래?”

“좋아요!”

뒤에서는 강성연이 불경하게 쳐다봤고, 앞에서는 관객 김민우가 우리를 보고 킬킬 웃고 있었다.

*

브릿지 구간에서 김세은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허리 부근까지 기른 머리를 연보라빛으로 염색해서 눈에 확 튀었다. 검은 기모 레깅스를 입어 자연스레 드러나는 골반과 긴 기럭지, 루즈한 회색 니트 티셔츠 아래에서 슬쩍 존재감을 비치는 크지 않은 가슴, 생각을 알 수 없는 차가운 눈과 굳게 닫힌 입술, 검정 롱코트와 당당히 걸어오는 폼새까지 하나하나 모델 같아서 시선을 잡아 끌었다.

음. 확실히 4시 되기 전에 왔다.

김세은은 의자를 두 개 챙기고 말 없이 스테이지 앞으로 다가와 2학년 애들 옆에 앉았다. 인사는 대충 손짓으로만 나누고 무대만 쳐다본다. 지금 이 곡 원래 나랑 김세은이 듀엣하는 곡이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팔짱을 끼고 보는 폼이 오디션 심사위원 같았다.

그래도 김세은은 노래가 끝나고 박수는 쳐줬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스테이지를 내려가는 서유은을 덮치기라도 할 기세로 걸어오더니 와락하고 서유은을 품에 안았다. 키 차이가 나서 서유은이 파묻힌 모양새다. 얜 또 왜 이래.

서유은이 나보다 훨씬 더 놀랐는지 그물망에 잡힌 야생동물처럼 눈만 크게 뜨고 있다.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낸다. 김세은은 3초 정도 허그하다 떨어지고 서유은의 양 팔목을 붙잡은 채 입을 연다. 억양을 찾기 힘든 차분한 저음이 들린다.

“노래 진짜 잘 부른다. 목소리랑 곡이 어울려서 내가 부르는 것보다 듣기 좋은 거 같애. 신입생이지?”

“네.”

“이름은 뭐야?”

“저, 이름, 서유은이요.”

“난 김세은인데. 이름 한 글자 똑같다.”

“네, 맞아요. 우으, 저 언니 알고 있었어요.”

서유은이 발을 동동 굴리며 말한다. 초면인데 언니라. 김세은도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응? 어떻게?”

“밴드부 공식 인별 계정 보구서 알았어요.”

“그래? 유은이도 인별하는 구나.”

“저 근데 계정만 있고 뭐 올리는 건 없어요.”

“그럼 나랑 맞팔하고, 유령 계정 한 번 살려보자.”

“네.”

“음식은 뭐 좋아해?”

“저는...”

저런 내용의 말을 김세은 특유의 높낮이 없는 차분한 어조로 말하니 뭔가 이상했다. 몸이 가려웠다. 쟤 진짜 왜 저러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인 거는 알고 있었는데 저런 면은 처음 본다. 후배한테는 원래 저렇게 살갑게 구나.

김세은이 서유은의 손목을 이끌고 자기가 가져온 의자에 앉힌다. 그러곤 염색 예쁘게 잘 됐는데 나중에 염색 빼면 엄청 아깝겠다느니, 키가 작은 게 단점이 된 게 아니라 자기에게는 없는 귀여움을 극대화한다느니, 피부도 애기 같아서 너랑 사귈 애는 죄책감 들겠다느니, 한참을 종알댄다.

그렇게 서유은의 정신을 빼놓던 김세은이 갑자기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부장.”

“... 왜 부장이라고 부르는데.”

김세은이 어깨를 으쓱였다.

“부장이니까. 배달 주문은 했어?”

“아니 아직.”

“우리 음식 지금 미리 주문해둬야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저녁 시간대에 주문하면 주문이 밀려 연습할 기력도 빠져서 음식만 목 빼고 기다릴 수도 있었다. 현명한 선택은 미리 주문을 해서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쯤 뒤에 오는 음식을 받아 먹는 것이었다.

나는 관객석에 있는 3학년들을 보며 물었다.

“메뉴 뭘로 할까요?”

다들 눈빛을 밝혔다. 베이시스트 형이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띠었다.

“요 근처에 국밥집 있던데...”

“으.”

보컬 누나가 질색했다.

“국밥 드립 좀 치지 마.”

“컵밥? 아님 밥버거?”

“별론데. 자취생이세요?”

“이럴 땐 치킨이 국룰이지.”

“피자가 딱 떨어져서 더 좋지 않나?”

“간단하게 치킨이랑 피자 반씩 하자.”

김민우가 정리하듯 말했다. 다들 수긍했다. 다음 안건인 몇 개를 시킬 건지, 뭐를 시킬 건지로 논쟁이 활발해졌다. 나는 메모를 켜서 나오는 내용들을 일단 적어두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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