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금요일, 밴드부 면접날
* * *
1학년 1반 앞.
“야 네가 먼저 들어가.”
김수원이 박철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서 뭘 빼고 앉았냐.”
박철현은 그러면서 자기가 들어갈 기미는 안 보인다. 내가 먼저 안 가면 여기서 어그로나 끌다가 신경 쓰인 선생님이 문을 열어줄 판이다.
“내가 간다.”
“오케이.”
“이번만 물러나 드립니다.”
미친 놈. 문을 두드리고 2초 기다린 뒤 열었다. 문을 붙잡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1학년 영어 쌤 수업이다.
“서브 동아리 홍보 좀 해도 돼요?”
“어, 어. 해.”
“감사합니다.”
내가 교탁 앞에 서니 김수원이랑 박철현이 어정쩡하게 양 옆에 섰다.
“홍보 보드 좀 보이게 해봐.”
그제야 김수원과 박철현이 애들 시선에 맞게 우드락 높이를 조정했다.
“한다?”
김수원이 나를 보고 물었다.
“어.”
김수원의 뻣뻣한 고개가 아이들을 향했다.
“어, 우린 밴드부야. 밴드부실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사실 알기야 다 알 거였다. 개학식날부터 점심시간이랑 방과후 때 달려가서 레파토리 연습만 죽어라 해댔으니 모르기가 도리어 어려웠다.
“급식실 근처에 작은 건물 있거든? 그게 밴드부실이야. 음, 밴드부 되고 싶은 사람은 오늘 학교 끝나고 그곳으로 찾아와서 잠깐 면접보면 돼.”
김수원은 임무를 다 했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땀도 흘리는 거 같다. 겨우 이거 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밴드부는 일렉, 베이스, 드럼, 키보드, 보컬, 이렇게 다섯을 뽑아. 세션은 두 명 정도씩 뽑고 보컬도 비슷하게 뽑아. 왜 이렇게 소수정예로 가냐면, 학교 행사 같은 거 할 때 밴드부가 나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안 돼서 그래. 악기가 남아나는 것도 아니고. 드럼도 한 곡에 한 명만 칠 건데 다섯 명이 자기가 나가겠다고 경쟁하고 있으면 학업이 뒷전이 될 수도 있으니까. 뭐 아무튼. 축제 나간다고 해서 프로처럼 연습 빡세게 시키는 건 아니고 공부 병행할 수 있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가볍게 하는 거니까 편히 신청하면 좋을 거 같아. 어차피 다 배우면서 하는 거니까 나 아무것도 모른다 하는 사람도 와도 돼.”
사실 좀 불편하게 왔으면 했다. 이렇게 뽑는 사람이 적다고 초장에 말해놔도 밴드부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온다. 무슨 로망 같은 게 있는 게 분명한데, 사실 쥐뿔도 없다. 즐기지 않으면 소화하기 어려운, 생각보다 지독한 연습량과 생각보다 음악을 진지하게 하는 선배들이 기다릴 뿐이다.
“다 했니?”
“네. 다 했습니다.”
“뭐 철현이는 할 말 없어?”
박철현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우물댄다. 뭐라도 해보라는 뜻에서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그게 트리거라도 됐는지 박철현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갔다.
“지금 밴드부가 남탕이라서 이번에 신청하는 여자애들은 가산점이 있을지도 몰라.”
신입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미친 놈이다. 회심의 드립이 성공해서 기쁘다는 양 뿌듯한 눈으로 보는데 나는 그게 더 웃겼다. 개그를 할 거면 하지 뭘 우물우물대다가 남이 시켜서 겨우 뱉는 건지.
“할 말 다 끝났어?”
“네. 근데 혹시 질문 있을 수도 있어서요. 질문 있는 사람?”
어떤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면접 방식이 어떻게 돼요?”
“그냥 왜 왔는지, 뭐 하고 싶은지 같은 거 간단하게 물어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보컬은 자신 있는 노래 몇 소절 들어보고. 그 정도. 아, 그리고 세션 지원하는데 본인이 이미 그 악기를 쳐봤다, 익숙하다, 하는 사람은 다른 애들 기선제압할 수 있는 기회도 줘. 또 질문?”
웃는 상의 남자애가 손을 들었다.
“버스킹도 해요?”
“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고 본인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돼. 네 달에 한 번 할 수도 있고, 본인이 의욕적이면 한 달에 두세 번 할 수도 있고 그래. 다음?”
없는 모양이었다.
“네 끝났습니다.”
“그래. 뒤에 다른 애들도 홍보하나?”
“아마도요?”
“후, 오늘 수업 못하겠다. 가.”
“예.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반에서 나왔다. 이제 이거를 여덟 번 반복해야 된다.
“아 존나 하기 싫다.”
김수원이 투덜댔다.
“가는 반마다 가산점 드립 칠까?”
박철현이 묘하게 흥분해서 말했다. 이것도 대충 네 반 넘어가면 가라 앉을 텐션이다.
“네 멋대로 해라.”
존나 하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왜 괜히 부장이나 되어 가지고.
*
매점에서 빠르게 컵라면을 먹고 밴드부실 앞으로 갔는데 사람이 몰려 있었다. 대충 보는데 마흔 명 넘는 거 같다. 경쟁률 보고 알아서 빠진 인원일 텐데 마흔이라니. 부실 문 앞에 서서 물었다.
“명단 다 썼지? 지금 갖고 있는 사람?”
“저요.”
키 큰 남학생이 이름과 연락처, 지원하고자 하는 부분을 적는 명단을 건네줬다. 25명씩 쓸 수 있는 표가 두 번째 장에서 일곱 칸만 남았다. 마흔 세 명이 지원했다. 아.
“보컬하고 싶은 사람?”
남자 일곱에 여자 다섯이 손을 들었다.
“보컬이 노래 불러야 돼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잖아. 그래서 순서 마지막으로 하는 게 관례인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꼼짝도 안 한다. 아무도 안 갈 생각인 거 같다.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저기 대기실에 들어가들 있어. 그럼, 일렉 기타부터 나와 봐.”
애들이 주춤주춤 걸어나온다. 일렉만 몇 명이야? 열 다섯 명?
“세 명씩 볼게. 이렇게 셋, 이렇게 셋, 이렇게 셋, 이렇게 셋, 그리고 나머지. 나머지부터 들어와.”
나머지가 쫄래쫄래 따라온다. 부실 문을 여니 부원들이 스테이지 앞에 둔 의자에 앉지도 않고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듯이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고 있다. 걷는대로 시선이 따라온다. 위압감이라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애들은 움츠러 든다. 그냥 처음 보는 공간에서 선배들이 고개 뻣뻣하게 하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겁먹는 게 신입생들이다.
“얘네 다 장난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입꼬리를 씰룩이던 박철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애들도 웃음을 더는 참지 못했다.
*
이름이 뭔지, 왜 지원했는지, 좋아하는 곡이 뭐고 무엇을 연주해보고 싶은지, 인생곡과 그 이유는 뭔지 등 정말 간단한 질문만 했다. 일렉기타 칠 수 있는 애 있으면 치라고 권유하는 것으로 면접은 끝난다. 조마다 한두 명은 꼭 있어서 시간을 잡아먹는다. 가끔 감탄할 수준의 연주를 하는 애들이 있는데, 보통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개 그닥 아니면 별로다. 그런 애들한테는 실력이 월등한 수준이 아니면 기타 친다고 뽑아주는 거는 아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데 그냥 꾹 참고 생수를 들이킨다. 사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니까. 요즘 따라 내가 너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면서 넘긴다.
간단한 질문들로만 구성돼도 면접은 시간이 걸린다. 면접이 너무 빨리 끝나면 나중에 결과를 발표했을 때 불만이 튀어나와서 모두 납득이 갈 수준으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취미'의 이름을 내세운 서브 동아리의 특성 상 질문의 심도가 너무 깊어지거나 압박 면접을 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면접하기 드럽게 까다롭다. 3학년 선배들이 괜히 신입 뽑는 건 2학년이 하는 거가 전통이었다고 말하고 발을 뺀 게 아니다.
면접은 일렉 다음엔 베이스, 다음엔 키보드, 다음엔 드럼, 마지막엔 보컬, 이 순서로 본다. 시간을 더 잡아먹는 것들을 뒤에 배치한 순서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드럼 치는 애들 중에는 자기 연주에 심취해서 시간도 잊고 존나 두들기는 애도 있다. 이기적인 건지 나르시시즘인지 가늠이 안 된다. 뭐가 됐든 그렇게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애는 면접에서 떨어진다. 적당히 센스 있게, 누구나 아는 난이도 있는 노래 연주하거나 누구나 아는 노래를 어렵고 듣기 좋게 치는 애가 붙는다.
그러니까, 지금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치는 애처럼. 얘는 센스 있게 템포도 더 올렸고 구간도 조절해서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서 쳤다. 그 덕에 끊을 필요도 없었다. 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합격이다. 근데 귀찮아 하는 거 같은데.
“짧게 쳤잖아, 준비해 온 거야?”
“준비한 건 다른 거고, 이 곡도 풀 버전 있는데, 빨리 집 가야 돼서요.”
거짓이 아니면 준비한 곡은 따로 있고, 오블라디 오블라다는 자기 레파토리에 있던 곡이라 즉석에서 편곡했다는 거다. 이런 애가 인재다. 현장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거면 하나만 주구장창 연습해서 그럴 듯해 보이는 사기꾼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준급인 거다. 이런 애일수록 밴드부에 배울 게 없어서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더 자주 온다. 이 수준까지 올린 건 연주가 즐거워서일 테니까.
“어. 그래.”
다른 애들 드럼도 들어 봤는데 링고 스타만한 애가 없다. 솔직히 축제 같은 거 할 때 얘만 있어도 될 것 같다.
이제 보컬만 남았다. 애들을 부르려 밖에 나가보니 멀리서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 자취를 감추고 운동장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대기실에 가보니 아직도 남자 일곱에 여자 다섯이 있었다. 폰 손전등에 의지하고 들어가게 생겼다.
“남자 이렇게 네명, 이렇게 세명, 여자 다섯 이렇게 조 할게. 네명부터 들어와.”
년마다 보컬 지원자 중에는 얘는 왜 예술고 안 들어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싶은 애가 있다고 한다. 남자 중에서 그런 애 하나 건졌다.
이제 여자 중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질문을 던지면서 음색을 파악했다. 보컬을 뽑을 때 답변 내용보다 중요한 건 목소리다. 흘려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목소리들에 밴드 곡들을 매칭시켜봤다. 노래를 들으면 이제 각이 확실히 잡힐 거다.
“이제 한 명씩 노래 들어볼게.”
감상평. 하나 같이 잘 부른다 할 수 있는 실력들은 가지고 있다.
“저 통기타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음색이 깨끗한 애다.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는데, 그 반동으로 날개뼈 아래까지 닿는 머리를 야무지게 끌어모아 만든 말총머리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머리카락이 연하고 밝은 갈색이라 신기해서 자꾸 눈길이 간다. 시선이 머리카락을 따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이동하게 된다. 스윙하는 길목에 있는 가슴이 도담하다. 얘가 이름이...
“서유은.”
“네!”
아 씨 왜 입으로 꺼냈지? 속으로 생각만 하려 했는데. 졸린가?
“통기타 치면서 노래 부를 거야?”
“네. 카포도 있어요?”
“있어.”
누가 센스 있게 내 어쿠스틱 기타를 꺼내 가져다주었다. 기타 바디를 끌어 안듯 건네 받은 서유은이 기타를 어깨에 매고 스트랩을 조금 조여 자기 몸에 맞게 했다. 카포는 1프렛에 끼운다. 피크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다. 아르페지오로 하다가 바꿀 모양인데. 폼이 제법 익숙해보였다.
나는 내가 앉던 의자를 주었다. 서유은이 감사하다는 듯 짧게 고개를 숙였다. 막상 의자를 주고 바로 돌이켜보니 이거는 대놓고 애들 앞에서 차별을 한 거나 다름 없었다. 면접 보는 애들이랑 친구 관계면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 빌미를 하나 준 것이고, 또 의자까지 줄 정도로 편애한 것이니 서유은 개인한테도 부담을 지워준 것이기도 했다.
아닌가? 서유은은 별 생각 없어 보였다. 무심한 눈으로 기타를 내려다보고 줄을 하나씩 튕겨가며 튜닝이 맞는가를 확인해 볼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긴 속눈썹이 눈을 제대로 못 보게 가려서 무심해 보이는 거일지도 몰랐다.
“이거 되게 좋은 기타네요.”
“내 거야 살살 다뤄줘.”
“아. 네.”
누가 들어도 농담인데 이제야 조금 움츠러든다. 신기하네.
“바로 시작해요?”
“무슨 곡인지만 말해주고.”
“‘밤하늘의 별을’이에요.”
“응. 시작해.”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다. 눈으로 왼손 코드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읽기 힘든 수준으로 빠르게 바뀐다. 저 속도면 노래 부르기 힘들텐데.
ㅡ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부른다. 그것도 잘. 옆에 앉은 경쟁자들의 눈에 절망이 차오르는 게 보인다. 원망도 읽힌다. 이럴 거면 지가 첫 번째로 하지, 대충 그런 내용들이다.
벌스 부분은 인트로보다 코드가 다채로워져 왼손이 기타 위를 뛰어다닌다. 어려움이 괴랄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노래에 심취한 가수가 눈을 감은 채 마이크 붙잡고 부르는 장면을 떠올릴 만한 감정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끊을 타이밍을 못 잡겠다. 어차피 마지막 면접자인데 다 듣자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다른 애들도 그런 거 같고. 서유은의 흔들리는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계속해도 되냐는 동의를 구하는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곡의 막바지, 하이라이트로 간다. 카포를 2프렛에 다시 끼운다. 오른손 중지와 검지에 있던 피크가 빠르게 검지와 중지에 잡힌다. 스트럼과 동시에 입이 열린다.
ㅡ많고 많은 사람 중에 너를 만나서
행복하고 싶어 두 번 다시 울지 않을래. 뭔 잡음인가 했는데 옆에서 따라부르고 있었다.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키보드 쟁이라서 화음도 뭣도 아니었다. 기어코 완곡하는 것을 들었다. 진심을 담아 박수쳤다.
“잘 들었어.”
“감사합니다아.”
서유은이 깊게 고개를 숙인다. 묶은 머리카락이 채찍처럼 오른볼을 때린다.
풍작이다. 올해는 밴드부 버스킹 좀 많이 해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