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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화 (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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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 방학 중 하루, 그리고 개학식

* * *

개학식 하기 이 주 전 화요일.

빨리 나가려 신발을 대충 구겨 신었다. 부엌에서 들리던 도마질 소리가 멈췄다.

“온유! 어디 나가니?”

“네.”

마룻바닥을 도도도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 후 바닐라베이지로 염색한 단발로 꽁지머리를 묶은 윤가영이 현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무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윤가영은 자기가 가정주부라는 것을 티내기라도 하려는 듯 멋 없는 암청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밖은 아직 겨울인데 집이라고 저런 차림을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보일러를 꺼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어디 가니?”

“옷 사러요.”

“그래? 어느 쪽으로 가게?”

“홍대요.”

“수아도 옷 사야 되는데.”

현관 벽을 짚어 몸을 지탱한 윤가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수아랑 같이 나가줄 수 있어?”

“알아서 사겠죠.”

“아냐, 잠깐만.”

이라고 하더니, 이수아의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이수아! 일어나!”

찰싹찰싹,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수아는 집에서 긴소매에 돌핀팬츠를 입으니 아마 이수아의 허벅지를 때렸을 것이었다.

“아! 엄마! 왜에!”

매트리스가 삐걱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워 있던 이수아가 등으로 침대보를 밀어내면서 몸을 비틀고 있을 게 뻔했다. 이수아는 친구를 만나지 않을 때면 저렇게 침대에 누워서 꼼지락대기만 했다. 아무래도 저게 나갈 준비를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역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눈이 뽀득뽀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걸었다.

윤가영은 뻔뻔하게도 나와 사이가 좋아지기를 원했다. 나아가 이수아와 내가 사이 좋게 지내기를 바랐다. 나까지 공략해야 이 집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일 테니 그녀로서는 당연한 생존전략일 테지만 내가 그걸 두 팔 벌려 환영해 줄 의무는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건 우리 어머니와의 의리를 저버리는 짓이기에 나는 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려고 들었다.

그런데 윤가영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여러 전략을 구사했다. 퉁명스러운 단답부터 무시까지, 상상할 수 있는 대응 방식은 다 동원해봤다. 다 실패했다.

아예 무시를 하면 살금살금 다가와서 악동 같은 웃음을 짓고 옆구리를 찔러대면서, ‘온유 도련님은 왜 저를 무시하실까아?’ 같은 소리나 해댔다. 하지 말라고 하면 무시가 아닌 것이 되기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웃음도 참으면서 도망치려고 하면 내 앞길을 막으면서, ‘저녁 뭐 먹을래요?’라고 했다. 문을 막는 팔뚝을 힘으로 걷어내고 밖으로 나가려 하면 백허그를 하는 수준으로 달라붙어왔다. 그럴 때면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뭉클한 감촉에 추잡스럽게 발기해버렸다. 아니 근데 진짜 어쩔 수 없는 게, 윤가영 가슴이 G컵이라, 남자인 이상 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윤가영이 문을 막아올 때면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무 음식이나 입에 주워섬겨서 답을 해주었다. 그러면 ‘돈까스? 돈까스. 알겠어요.’ 하고, 배시시 웃으면서 길을 터주었다. 정말 내가 이길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싸늘하게 대하고 언쟁하려 해도 미소를 지으며 얼음을 녹여버렸다. 그렇다고 주먹질을 하기에는 너무 연약해보여서 나는 어떤 방식의 싸움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윤가영을 무시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단답만 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윤가영도 일단은 그 선에서 만족했는지 과도하게 달라붙는 것은 자제했다.

문제는 이수아와 나의 관계였다. 윤가영은 억지로 이수아와 나를 붙이려했다. 밖에 나갈 때면 같이 나가라고 부채질하고 식사 자리에서는 공통되는 대화 주제를 찾으려 열심이었다. 이수아에게 듣기로, 이수아와 나의 등교 시간을 맞춰서 같이 내보내려는 계획까지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윤가영과 이수아와 잘 지내볼 생각이 없는 나와, 싸가지라고는 일절 없는 이수아가 섞이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이수아가 연기를 제법 잘 해서 겉으로는 이수아와 나의 관계가 퍽 원만해 보였다. 윤가영 말이라면 껌뻑 죽는 이수아는 나와 친하게 지내보라는 윤가영의 지시를 표면적으로 착실히 수행했다. 내심 나를 불편히 여기면서도.

하루는 이수아가 이런 말을 해왔다.

‘너랑 내가 잘 지내는 척 해야 되잖아. 엄마 앞에서.’

‘어.’

‘연기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하지 마. 갑자기 친해진 것처럼 보이면 오히려 이상하니까. 너는 평소처럼 좆 같이 단답만 툭툭 해. 내가 차근차근 쌓아올릴테니까, 나중에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해. 알았어?’

‘알겠는데, 왜 그리 말을 좆 같이 하냐?’

‘이게 입에 붙었는데 어떡해.’

뒤에서 누가 내 등을 때렸다.

“아 씨 같이 나가면 어디 덧 나냐?”

뒤돌아 봤다. 머리도 안 감아서 모자를 푹 눌러 쓴 이수아가 눈을 비비고 있었다. 얼굴에 물만 대충 끼얹고 급히 화장하고 나온 모양인지 옆머리에는 물이 미처 마르지 않았다. 마르기는커녕 물방울이 맺히기까지 했는데, 그 물방울이 타고 흘러 이수아의 쇄골에 안착했다. 예상을 못 했는지 이수아가 읏,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맨투맨 위로 드러나는 가슴이 잘게 흔들렸다. 이수아는 중학교 3학년인 주제에 D컵이었다.

“넌 일찍 일어나면 덧 나냐?”

이수아는 패딩을 앞뒤로 당겨 접힌 부분을 펴고 지퍼를 잠갔다. 두 손을 주머니에 쑤욱 집어 넣고 목을 움츠린다.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오늘도 눈이 내리고 있는 탓에 바깥은 많이 추웠다.

“방학에 늦잠 좀 잘 수 있지 존나 비꼬네. 와, 코트 뭔데? 진짜 존나 꼴불견이다. 패딩이나 입지 이런 건 왜 입냐? 관종이냐?”

“... 너 길치 아니지?”

“갑자기?”

“대답이나 해. 길치야 아니야.”

“아마?”

“길치라는 거냐?”

“지랄이야 또. 나 길치는 아냐. 그냥 처음 다니는 길은 헤매는 정도지, 평소 다니는 길 정도는 기억해.”

“홍대 몇 번 가봤냐?”

“넌 그런 걸 일일이 세냐?”

“익숙하다는 거야? 그럼 안 알려줘도 되겠네?”

이수아가 어깨로 내 팔을 쳤다. 이게.

“그건 아니지.”

멈춰 서서 길을 가로 막았다. 아까부터 툭툭 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어깨로 치냐.”

“... 왜 갑자기 진지 빰?”

“하... 넌 오빠 대접 좆도 안 하고 오빠 역할 다 하라고 부려먹겠다 이거지?”

“뭘 어떻게 해야 오빠 대접인데.”

“지금 너처럼 안 하면 돼.”

이수아가 팔짱을 껴왔다. 그러곤 목소리를 낮춘다.

“사람들 존나 꼬라보잖아. 걸으면서 얘기해.”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내 시선을 피했다. 존나 평가하는 눈들이었는데. 이수아 말대로 걸었다.

“지금 존나 과잉반응하고 있는 거 알지? 어깨 좀 칠 수 있는 거 아니냐? 오빠 동생 사이면?”

“너랑 내가 평범한 남매냐?”

“그럼 내가 존댓말 쓰고 오라버니, 이 지랄하면 만족하시겠다는 거야?”

“선을 지키라는 거야.”

“선 개 빡빡하네. 미친 놈.”

“말하고 뒤에 욕 붙이는 거 좀 빼면 안 되냐?”

“버릇이니까 냅둬.”

“버릇이니까 고치라는 거지.”

“지금 너는 선 넘는 거 아니냐?”

“뭐가.”

“존나 내비두면 될 거 선 넘어서 바꾸려고 하고 있잖아.”

“... 내가 듣기 거북하다고. 이해력이 딸리냐?”

“그런 건가?”

“병신 년.”

이수아가 멈춰서 뒷굽으로 땅을 찼다. 눈이 튀었다. 이수아는 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저렇게 발로 땅을 차곤 했다.

“아 진짜 존나 재수 없어. 개새끼.”

“욕 빼라고.”

“좆까.”

이수아가 나를 앞질러서 먼저 가려고 했다. 뒤에서 엄지와 검지로 패딩을 붙잡았다.

“어디로 가야 되는 줄은 아냐?”

이수아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내 쪽을 향해 키고 보여주었다.

“핸드폰 있는데요ㅡ 병신아.”

배터리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7에서 8퍼센트쯤이었다.

“네 배터리 봐.”

“어?”

이수아가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했다.

“찢어질까?”

“... 아니.”

“찢어지자.”

이번엔 내가 앞질렀다. 뒤에서 탓탓탓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코트가 붙잡혔다. 뒤돌아봤다. 이수아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인다.

“... 네 핸드폰 비번 없애서 나 줘.”

“내가 왜?”

“그래야 되는 거 아냐? 넌 길 알잖아.”

“싫은데.”

“그럼 나 집 돌아가?”

“저기 북카페나 가서 기다리든지. 내가 집어 갈 테니까.”

“그럼 옷 사러 나와서 암 것도 안 사는 건데 엄마가 의심할 거 아냐.”

“적당히 사서 줄게.”

“아, 지랄하지 마.”

결국엔 같이 갔다. 같은 매장에 들어가려 할 때면 서로 모르는 사이인 척 하려고 시간차를 두고 각자 들어갔다. 전에 한 번 그렇게 하지 않고 나란히 들어갔을 때에 슬금슬금 다가온 직원이 말을 붙이려고 이수아와 나를 슬쩍 스캔해서 관계를 유추한 뒤‘혹시 두 분 연인 사이세요?’라는 말을 지껄인 적이 있기에 꼭 필요한 절차였다. 남매라기에는 얼굴부터 많이 다르고, 단순히 아는 오빠 동생 관계라기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얽힌 것이 겉에 드러나기에 내리는 추측이겠지만, 그것이 사고 싶지 않은 오해임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수아와 나는 되도록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게 피했다. 그렇게 다섯 군데를 돌고, 이수아 혼자 화장품점까지 가고 나니 이수아의 양손에는 쇼핑백이 일곱 개나 들려있었다.

“개 많이 샀네 집에 옷 없냐?”

“지는.”

나는 쇼핑백이 세 개 밖에 없었다.

“내가 든 게 많아 보이냐?”

“알면 도와주든가 병신아.”

“싫어.”

“개새끼.”

끝까지 안 도와주다가 집 앞에 섰을 때 세 개를 거들어주었다. 이수아는 땀에 젖어 옆머리가 볼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점점 친해지는 척해야 되니까.”

“하... 하, 어이가 없어서. 너...”

대꾸도 않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살짝 여니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수아는 얼굴 근육만 씰룩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줘.”

“뭐?”

“오른손에 하얀 쇼핑백. 엄마 줄 선물이란 말야.”

오른손을 뻗어주니 흰 쇼핑백을 빼앗듯이 가져가고 화장품 쇼핑백을 걸쳐주었다. 무거웠다. 피식 웃었다.

*

비가 와 질퍽질퍽한 월요일이 지나, 신입생들한테는 입학식, 재학생들한테는 개학식 날인 화요일이 됐다.

애들이 대강당에 모였다. 눈으로 훑어 같은 학년 애들이 있는 곳을 찾고 그 쪽으로 이동했다. 키보드 치는 박철현이 손을 흔들어 인사해왔다.

“온유 하이.”

“올만.”

베이시스트 김수원이 내 쪽을 봤다.

“우리 버스킹 언제 하기로 했냐.”

“담주 토요일.”

“접수.”

다른 애들이랑도 인사하고 대충 시간을 떼웠다. 개학식이라는 건 일단 빨리 온 애들을 강당에 때려박아 놓은 뒤 다 모였다 싶었을 때 천천히 시작하는 행사였다.

“국어 쌤 온다.”

멀리서 생글생글 웃는 상의 선생님이 걸어오셨다. 좀처럼 정색을 안 해서 평상시에 보면 꼭 미소를 지으신 상태인데, 광대가 나와서 언뜻 보면 하회탈처럼 보이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애들 사이에선 하회탈이라고 불렸고.

“너희 방학 동안 모여서 술 안 마셨지?”

“안 마셨어요.”

드럼 치는 강성연이 재빨리 답했다. 그러니까 괜히 뜨끔한 사람처럼 보였다.

“진짜지? 마시지 마라?”

“네ㅡ”

하회탈 선생님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별 말 없이 돌아섰다. 내 왼팔이 쿡 찔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봤는데 교복 치마를 입고 검은 스타킹을 쓴 송선우가 오른 팔꿈치를 세운 채 나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어깨 어림까지만 딱 지켜서 단정하게 커트하던 머리를 방학 동안 더 기른 건지 긴 머리카락이 송선우의 등 뒤로 모습을 감췄다. 바로 지적하려 했는데 송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올해 동아리 뭐할 거냐.”

“메인 동아리가 중요하냐 밴드부가 중요하지.”

“나랑 같이 연극부나 하자.”

“연극부가 있어?”

“신설됐대.”

믿기지 않아서 가만히 송선우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보냐? 진짠데.”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왜 연극부를 해?”

초등학생때와 중학생 때 육상부였던 송선우는 중학생 때부터 동아리하면 운동 관련된 것만 해왔다. 그런 애가 갑자기 연극을 한다니.

“난 그런 거 하면 안 돼?”

“그냥 이유가 궁금해서.”

송선우가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재밌을 거 같아서?”

“하.”

“왜 웃냐. 내가 웃겨?”

“너 무슨 학과 갈 건데?”

“갑자기? 음. 스포츠과학과였나? 아무튼 그거.”

“수시면 동아리도 보는데 갑자기 연극부면 이상하지 않겠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 같이 할 거야 말 거야.”

“쪽팔려서 안 해.”

송선우가 어쭈, 소리를 내고 잔소리를 쏟아낼듯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밴드부 홍보는 언제 해?”

다른 애랑 얘기하던 김수원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송선우가 김수원을 흘겨봤다.

“이번 주 금요일.”

내가 답했다.

“그 날이 애들 면접 보는 날 아냐?”

“맞아.”

“홍보물은 어째?”

“밴드부실에 있잖아.”

“그거 쓴다고?”

“쓰려고 만들었잖아 병신아.”

홍보 보드에 공을 들인 강성연이 쏘아붙였다.

“알겠어. 그럼 누가 돌아다니는데?”

“너. 나. 그리고 한 명 더.”

내가 답했다.

“내가 왜?”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 되는 거 아냐?”

“나 목 안 말랐는데?”

“일단 네가 물어봤으니까 책임지는 걸로 하고. 다른 한 명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홉 개의 반을 돌아다니는데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 피곤해 죽는다. 그런 점에서 초면인 애들한테는 쑥쓰럼을 많이 타는 김수원은 좋은 멤버였다. 또 성향이 비슷한 애를 찾자면, 누가 있었지.

“박철현.”

팔짱을 끼고 조용히 관망하던 송선우가 말했다.

“오. 명분은 뭐로 하지?”

“홍보 보드 만들 때 진지하게 안 하고 개드립만 쳤잖아.”

“좋아.”

명분이 생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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