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인간성
* * *
둥지를 나왔을 때는 달이 은은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만월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달을 보면 보름달이 뜨기까지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날씨도 맑네, 평화로울 때였으면 제법 볼 만한 구경거리가 됐을 텐데."
새삼스럽지만 인족땅이 얼마나 깨끗한 땅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하늘이다.
전후에 마왕국의 사람들도 이 좋은 땅에서 터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감상은 이정도로하고 용병에게 들은 내용을 리우스씨에게도 들어봐야겠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그레고리와 같이 영약의 제조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처분도 있다.
'처분이라...'
요즘 들어서 언어의 선택이 이상해졌다.
'처분'은 어디까지나 영약의 제조와 관련된 것뿐일진대, 마치 그들의 존재를 처분 할 것처럼 생각했다.
'제조법이 있으면 태우고, 살아남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제조법을 외우고 있다면...'
말 그대로 '처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것들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에휴.. 바쁘다, 바빠..."
☆☆☆
"하하하하! 저 멍청한 짐승놈들! 새끼짐승을 인질로 잡으니까, 어쩌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거 보았느냐?! 크하하하!"
긴 시간 동안 음주를 한 것인지, 실내에는 진한 술의 냄새로 잠식되어 있다.
"짐승은 결국에는 짐승입니다. 짐승을 사냥하는 데에, 새끼를 건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건 따로 없습니다."
"그렇지! 내가 팔자에도 없는 옥살이를 했지만, 이게 다 너희 같은 놈들을 만나기 위해서 였던 것 같구나! 하하하!"
지휘관, 정도를 넘는 훈련과 가혹행위로 병사 여럿을 사망하게 만들고, 덮을 수 없는 수준에서야 겨우 감옥에 간 악인.
"예, 지휘관님이 있어서 우리도 같이 풀려났지 않습니까? 은인입니다요. 아하하하!"
지휘관과 같은 감옥에서 나온 죄인들과 정신을 놓고 술판을 벌이고 있다.
요새는 이미 이들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은 이들에게 밀려서 잡일을 맡게 되고, 지휘관의 비위를 맞추면서 꼬리치던 애완견같은 작자들은 한 자리씩 차지한 부실한 요새.
이곳은 자그마한 소국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크하하하! 그렇지! 나만한 은인은 또 없을 것이다! 네가 사냥꾼을 하던 때에 지식도 도움이 되었으니, 자! 우리의 위대하신 여왕 전하께서 하사하신 영약이다!"
그것도 간신과 우왕이 지배하는 소국.
이 소국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감사합니다, 지휘관님! 이히히히..."
가장 추악한 욕망의 짐승들이 탐욕에 물든 얼굴로 영약을 받아들였다.
'저게 마왕님이 말씀하신 영웅의 영약인가...'
이곳에 잠입하는 것은 다른 곳보다 매우 쉬웠다.
"크으~! 역시 지휘관님! 자비로우십니다!"
"그럼! 이 내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데! 고작 훈련 하나 못 따라오는 덜떨어진 놈들이 멍청한 거지!"
'덜떨어진 것은 당신이다.'
비위를 맞추면서 꼬리치는 정도로 별다른 의심조차 하지 않을 줄이야.
"음... 네놈의 전과가 뭐였더라... 자주 못 보던 놈인데..."
'아주 덜떨어진 놈은 아닌가.'
"예, 하하.. 고아원을 운영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노예매매를 했습죠. 마탑에 많이 팔았는데, 직원놈이 내부고발을 하는바람에 독방신세를..."
물론 거짓이다.
이곳의 인질들을 최대한 내 쪽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거짓.
"크하하하! 상인이었네, 독방에 박혀 있었으면 모를 만도 하지! 내덕에 바깥 공기도 마시고, 감사하게나!"
"아휴,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게 전부 지휘관님 덕분이지요."
하지만 의심은 그걸로 끝이다.
"저도 들었습니다. 맞네, 저놈이었습니다. 저놈이 노예관리는 겉으로 보면 어떤 이상이 안 보일 정도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있는 인물의 설정을 가지고 왔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그 인물은 더 이상 실제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이미 있는 사람을 연기하고 변장하는 것은 우리 '얼굴없는 자들'에게는 늘 있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가? 음... 그러면 자네가 노예를 관리하도록. 일단 겉보기에는 멀쩡해야 하니까."
"예, 지휘관님."
☆☆☆
결행일.
리우스씨는 되도록이면 일의 진행을 보름에 진행하자고 했다.
인질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보름이 최적의 시기라면서 내게 기다리기를 부탁한 것이다.
요새 내부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아이들은 '얼굴없는 자' 덕분에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아이'에 한해서.
인질이 되지 못한 성인은 지휘관과 그의 애완견들의 노리개가 되었다.
내가 당장에 달려 나가려던 것을 리우스가 말렸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피를 토하면서 참고, 또 칼을 갈고 있는 것이라고.
요새에 있는 자들의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라고.
"리우스씨 왜 하필이면 보름이에요?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는 길은 확보했잖아요?"
그 '복수'를 존중한다.
과거의 오랜 노예 생활을 겪은 종족은 대를 이어서 노예 생활을 겪지 못한자들에게까지 분노가 이어질 정도로 뿌리 깊은 복수심이었으니까.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위며느리, 답답한가?"
...
"고통받지 않을 수 있었요. 안에 있는 놈들은 딱히 배려받을 만한 인간들도 아니에요."
구출을 대기 중인 구출조들, 한 인간을 처리하고 그를 연기하는 잠입조원.
"모두가 구하고 싶어 하지, 나라고 안 그러겠나. 미네르바였으면 참지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왜..!"
"그 '모두'가 자네처럼 강하지 않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지."
"..."
그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미네르바랑 다른 점은 그저 '연륜'이다. 자네와 내 딸은 아직 어려. 다 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직 참을성 없는 아이라네."
참아야 할 때라고 보지는 않는다.
<본녀도 동감이다.="" 왕이란="" 감정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로="" 하는="" 일일지라도...="" 하지.=""/>
"잘 알고 있구만, 물론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했다면 공격했을 거야. 자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했을 것이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어 자신들이 고통 받을 줄 알면서도 말이야."
리우스씨는... 그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서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 다만 자네에게 기댄 우리들은 한없이 무능해지고, 어떤일이 생길 때마다 자네를 찾겠지."
"알겠어요, 죄송해요."
리노도 이 사람도 오랜 시간을 족장으로서, 지도자로서 살아왔다.
이들은 내가 없을 때까지 생각하고 행동한 거였다.
왕을 자칭한지 고작 일 년의 시간도 채우지 못한 내가 할 수 없는 생각을 이들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르침 감사합니.."
"아직 설교 안 끝났네, 애초에 자네는 말이야. 너무 자신의 희생을 강요하는 성향이 있어. 혼자서 다 떠안지 말라고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세상은 없어, 으이! 나때는 말이야,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배웠다고 미네르바도 자네도 일순의 감정으로만 행동하고, 어휴 저기 다 때려 부시면서 모두를 구할 수 있나? 내가 왜 보름을 선택했냐면..."
꼬.. 꼰대! 꼰대아저씨!
"알겠어요! 일 시작하기 전에 교란만 하고 있을게요!"
튀자, 일단은 튀고 나중에 설교를 듣자.
'리노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
혼났다.
매우 혼났다.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생각이 너무 짧고 감정에 취우친다면서 혼났다.
<리우스의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할="" 때에="" 손을="" 벌리는="" 것도="" 하나의="" 선택,=""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하는="" 선택이니라.=""/>
"알았다니까..."
리우스씨의 유지를 이어받은 카르마에게도 혼나는 중이다.
<전 소피아님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돼요!=""/>
'모.. 목걸아!'
우리의 성녀님이 나를 구원하셨어!
<질서선은 조용히="" 해!=""/>
<넵!/>
호기롭게 출항한 로자리아선이 손쉽게 침몰했다.
<소피아의 선택도="" 틀린="" 건="" 아니다만...="" 그건="" 그들의="" 선택을="" 짓밟는="" 행위니라,="" 리우스도=""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아니라면서?=""/>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
<왜 도와주고="" 싶지="" 않겠느냐,="" 자신의="" 동족이="" 고통받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잘 안다.
잘 알기에 더욱 신경 쓰이는 거다.
<그대는 강하다.=""/>
그 강함은 존재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무력하게 했다.
<전대 용사도="" 강했다.=""/>
내가 보았던 전대 용사이자, 마왕은 내가 보았던 그 누구보다 강했다.
<그래서 패배했다.=""/>
우리는 그래서 죽음을 맞이했다.
<단 한="" 사람이="" 무너진="" 것으로="" 힘의="" 균형이="" 깨졌으며,="" 단="" 일어선="" 인족은=""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다.=""/>
균형을 부수는 존재, 세계의 이물들.
<떽! 또="" 헛생각!="" 리우스는="" 그것을="" 안다,="" 리노도="" 알고="" 있다.="" 소피아라는="" 존재에게="" 기대기만="" 한다면="" 기다리는="" 건,="" 결국에는="" 파국뿐이라는="" 것을.=""/>
파국일지라도 당장에 떨어진 동아줄을 잡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대만을 몰아세우면="" 그대의="" 인간성조차="" 파국을="" 맞이="" 할="" 것을="" 잘알고="" 있는="" 것이다.=""/>
'내 인간성...'
<요즘 들어서="" 본녀의="" 성향이="" 마검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대가="" 악인의="" 목숨을="" 매우="" 가볍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니, 난..!"
<틀렸느냐?/>
맞다.
포로로서 잡아들이는 것이 아닌, 전사자로서 처리하려는 생각이 잦아졌다.
"...틀려."
이건 자그마한 고집이다.
<거짓말, 본녀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대와="" 가장="" 오래="" 붙어="" 있는="" 그대의="" 검이니라.="" 스토커,="" 시연보다는="" 모를="" 수도="" 있지만,="" 본녀는="" 그="" 누구보다="" 그대를="" 잘="" 안다고="" 자부하느니라.=""/>
아직은 내 인간성이 존재하기에 부리는 고집.
<그대가 신혁과="" 시연을="" 전장에서="" 떨어뜨리는="" 것도="" 그대처럼=""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러는="" 안다.=""/>
이럴 때마다 내 속마음이 전부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대라면 얼마든지="" 제압가능할="" 것이다.="" 특정인물도="" 아닌자에게는="" 자제하거라.="" 그대를=""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그래서 더욱더 고집이 생긴다.
<알겠느냐, 삐순아.="" 잔소리="" 좀="" 들었다고="" 그만="" 삐치거라,="" 한="" 번만="" 더="" 삐치면="" 정말로="" 다="" 이를="" 거다?=""/>
"알았다니까!"
안 삐쳤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