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명분
* * *
"아악! 거미줄 닿았어!"
'끄악! 싫어! 역겨워! 끈적거려!'
거미줄에 팔이 닿는 즉시 한 마리의 거미가 달려왔다.
함정에 먹이가 걸린 것을 파악하고 달려오는 속도가 경이적이도록 역겹다.
"닉스! 저거 좀 잡아줘! 에베베! 벌레! 벌레..!"
카르마의 통신을 듣고서 찾아온 닉스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공포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내 행동에 기분이 좋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다.
"남편이 싫다고 하잖아, 저리 가."
쾅!!!
그녀의 철권에 거미는 물풍선 터지듯이 터져 버리고 나는 그 육즙을 바람마법으로 날려 버렸다.
"흐어억... 징그러.. 못생겼어..."
'왜 저딴 생물이 있는 거야..'
용병 찾는 것은 뒤로 밀려났다.
일단 여기부터 소탕하고 생각하자,거미들 소탕하다 보면 용병도 보이겠지.
<으어... 닉스,="" 그대도="" 조심하거라.="" 여기="" 무너진다.=""/>
"괜찮아, 안죽어."
<둘만요, 안에="" 있는="" 용병들은="" 전부="" 생매장일="" 거예요.="" 심문하자면서요.=""/>
"응, 난 남편이 우선이야. 그런데 남편도 무서워 하는 게 있었네?"
나도 사람이다.
혐오스럽고 싫어하는 것쯤은 있다.
"으.. 어렸을 때, 거미무리가 득실거리는 대야를 뒤집은 쓴 이후로 트라우마가 돼서.. 으악! 또 온다!"
쾅!!
우르르...
또 한 마리의 끔찍한 생물이 죽었다.
"거미한테 약해져?"
<더 강해져서="" 문제다,="" 적당히="" 힘="" 조절하는="" 것="" 없이="" 쓸="" 수="" 있는="" 가장="" 힘으로="" 소멸시킨다.="" 흔적도="" 없이.=""/>
흔적 남으면 징그럽잖아...
세○코도 울고 갈 구충실력으로 그곳에 거미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살한다.
아무리 토벌 난이도가 높아도 얻어가는 것이 적은 거미에게 딱 어울리는 최후다.
"남편, 메티스가 리우스에게 도착할 거라는데? 루시퍼? 그 사람은 벨제부브한테 찾아갈 거라고 말했어."
"응응,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거미들 좀..."
진짜로 이곳을 불길이 흐르는 강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아.
"에휴... 남편은 나한테 꼬옥 붙어 있어. 알았지?"
왜 좋아하는 건데? 닉스, 입꼬리 좀 내려줘.
"으아악! 막내야! 무슨 생각으로 거미줄을 건드렸냐?!"
"튀어! 튀어! 튀어!"
"막내야! 몸으로 막아라! 몸빵! 탱킹! 어그로! 산제무우울!"
저 멀리서 용병무리가 달려온다.
무언가에게 쫓기듯이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끼에엑!!"
"꾸에에엑!!"
"하아..."
깜찍한 거미새ㄲ.. 거미들을 끌고서.
'태우면 꼬순내 나니까..'
"[ICE AGE]."
그 마법을 끝으로 나는 잠깐동안 기절했다.
☆☆☆
이자들은 누구인가.
"으어..."
"남편, 열나. 많이 아파?"
왜 같은 여성을 보고 남편이라고 부르고 있는 줄은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거미 둥지에서 살아남은 것 같아 보였다.
"거미.. 싫어.. 다 태울 거야... 꼬순내가 안나.."
"이제 거미들 없어, 진정하자 남편?"
조금 무서운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자.
"대장, 둥지가 무너질 것 같아서 도망쳤는데요. 뭔가 다른 위험한 곳에 온 거 같네요."
"막내야, 말은 바르게 하자. 네가 거미줄 건드려서 도망친 거잖아."
둘 다 맞는 말이다.
거미를 피해서 안전한 곳을 탐색하던 중에 불안하게 울리는 둥지와 천장에서 떨어지는 흙더미.
우리는 둥지가 무너질 것이라 판단하고 탈출하던 도중에 건드린 거미줄에 반응한 거미들에 쫓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마주친 세 명의 여자와 한 명의 소녀.
그중에 겁먹은 듯이 떨고 있던 여자가 사용한 마법에 거미는 전멸했다.
매우 깔끔하게 얼음 조각상으로 변했고, 둥지는 문외한인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생각될 정도의 얼음 동굴로 바뀌었다.
그 마법을 시전한 여자가 저리도 누워 있으니, 아마도 마력탈진으로 생각된다.
이 정도의 마법을 시전했다.
마력탈진으로 쓰러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봐, 자네들..."
"쉿! 조용... 남편이 누워 있잖아."
흑발로도 보이는 푸른 머리의 여자는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면서 조용하라고 지시했다.
'무엇이냐, 이 위압감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생물을 마주하는 것 같다.
거미들 따위보다 더욱 거대한, 우리 같은 것들은 바닥을 기는 개미를 죽이는 것처럼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그런 위압감...
한순간이라도 실수를 하면 우리는 전부 죽는다.
"허윽.. 닉스.. 심문... 심문해..."
<거미보고 실신한="" 것은="" 조용하거라.=""/>
<어휴 이건="" 회복시켜="" 주기도="" 싫어요.=""/>
심문.
우리 같은 것들에게 무엇을 얻어가려고 그러는 것인가, 저들은 무엇인가.
'마왕군? 왕국군으로는 안 보인다. 그러면 마왕군의 별동대 같은 존재들...'
"너희들..."
"예?! 아이고 누님들 말만 하십쇼! 다 불겠슴다!"
"알고 있는 건, 사돈에 팔촌의 첫사랑까지 다 불겠슴다!"
"동네 똥개의 털 갯수까지 불겠슴다!"
...제 목숨구하는 데에 참으로 이골난 녀석들이다.
☆☆☆
네 명의 용병들.
자신들을 요새에서 도망친 용병들이라고 소개한 자들이다.
"누님, 우리도 마지막 양심은 있습니다. 애새.. 크흠! 애들을 인질로 잡는 건 아니죠."
성인은 인질로 잡는 것은 상관없어도 애들까지는 아니란다.
'폐기물이 화학폐기물은 아니다, 뭐 이런 건가?'
"맞습니다, 아무리 내 목숨이 귀해도 해서는 안 될 짓이 있는 거지 않습니까? 그 지휘관... 범죄자 출신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뭔가 걸렸습니다."
"하하... 범죄자가 지휘관을? 로젤리아, 그것도 급할대로 급한가 보네?"
'아니면 그 요새자체가 대규모 실험실이든지...'
실험체로 쓰기에 양심에 덜 찔리는 인원을 배치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리있는 추론이다.
'어디까지나 덜 찔릴뿐이지.'
딱히 올바른 행동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들은 어떡할까... 영약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고.."
"살려만 주신다면 개처럼 일하겠슴다!"
어딘가의 귀쟁이가 떠오르는 대사였다.
"목숨이 위험하면 도망치는 용병을 뭘 믿고?"
용병에게 기사의 신념이나 전사의 마음가짐을 바라진 않는다.
그렇다고 곁에 두기에는 싫은 그런 종류의 용병들.
이자들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너희는 저기 있는 놈들보다 덜한 놈들이잖아, 더하지 않을 뿐인 그냥 그저 그런 인간들."
자신의 목숨이 우선인 것을 '악'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해당되고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그런 자그마한 욕망중에 하나니까.
오히려 목숨보다 소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적을 정도로 아주 당연한 욕망.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네.'
"놓아줄때 그냥 가, 저기 요새에 있는 놈들처럼 되기 싫으면 가."
그냥 적당히 양심적이고 적당히 이기적인, 매우 인간다운 자들.
"쓰레기 같은 인성은 비교적으로 상대적인 거야, 물론 누가 봐도 쓰레기 같은 놈들이 있기는 하지."
시야를 누구에게 맞추냐에 따라서 악은 선이 되고, 선은 악이 된다.
후대에 악이라고 탄압을 받는다고 해도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는 그것을 선으로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내게 이들의 행동을 탄압 할 자격은 없다.
패색이 짓고 애국심이라고는 조금도 생길 수 없는 국가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고 탄압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야속해 보여도 이들에게는 명분이 없어.'
썩어 버린 지도층은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겠다는 더럽혀진 명분이라도 있다.
비록 이들같이 명분없는자들을 사지로 내몰아서라도 버티지 않으면 결국에는 처형될 것이니까.
"가요, 아저씨들."
"""넵! 누님!"""
☆☆☆
<대족장, 잠입에="" 성공했습니다.="" 지하="" 수로를="" 돌면서="" 수인과="" 다른="" 노예들이="" 있는="" 곳으로="" 전진하겠습니다.=""/>
"알겠네, 혹시 있을 경계병을 조심해서 진행해주게나."
구출조에게서 잠입에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다.
습격에 동족이 또다시 인질이 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임무다.
실패한다면 인질과 구출조 또한 위험해질 수 있는 임무였다.
그럼에도 지원자들은 많았고, 효율적인 구출조를 편성할 수 있었다.
인족의 행위가 불러들인 결과다.
"리우스, 제가 왔을 때부터 화가 상당히 나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런 이유였네요."
역시 메티스에게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나름 화를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부대를 책임지는 자신까지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에 화를 죽였다.
"우리가 몇 년을 같이 지냈다고 생각하나요? 후후후, 당신이 속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전 알 수 있어요."
생각해 보면 대족장으로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할 때도 메티스는 곁에서 내 감정을 눈치채고, 대화하며, 공감해주었다.
'...좋은 여자를 잘만났어.'
"좋은 소식을 들고 왔는데... 상황이 이러니까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리우스."
지금 말하기 힘든 희소식이면 나중에 듣는 것이 맞다.
그 희소식이 현 상황에 희소식은 아닐 것이니까.
"음, 알겠네. 그런데 미네르바는 뭐 하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가장 먼저 화내면서 달려 나갔을 텐데..."
이런 점에서는 대족장 후보로서 감점이다.
수많은 수인들을 책임지는 대족장이 감정에 휩쓸려서야 되겠는가, 물론 종족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그 모습이 미네르바의 좋은 점이긴 하다.
"어... 네? 아... 지금 알려드릴가요?"
"무엇을?"
'사위며느리와 같이 행동하는 건가? 아니, 사위며느리는 혼자왔는데...'
"우리 손녀 생겼어요."
...
<...축하드립니다, 대족장?=""/>
자네는 왜 의문형인가?
그것보다 통신구가 안 꺼져 있었다.
"손..녀?"
메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미네르바 대신으로 왔어요."
상당히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희소식이다.
그런데 지금 알면 자칫 감정 조절이 힘들 수도 있겠다.
"리우스, 입. 입꼬리 올라가요."
"크흠! 고맙네, 진정했어."
나중에 메티스가 오면 들으라는 소리가 이거였나보다.
최고의 판단이다.
오랜 시간을 대족장으로 일하면서 얻은 감정조절능력도 손녀소식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아버지가 미네르바를 끔찍하게도 사랑하는 걸 알겠군, 소식만 들어도 좋으니, 어쩔도리가 있나.'
"기뻐하는 건, 저 요새안의 인질들을 구출한 뒤에... 요새 내부에 있는 짐승들을 정리한 후에 하자고."
화를 뿜어내는 것도 요새 내부에서만.
자신의 대검 자루를 만지면서 짐승의 우리를 바라보았다.
"메티스, 당신은 마법으로 지원을 부탁하네. 최악의 경우에는... 미안하지만 당신이 보이기 싫어하는 그 모습도 부탁해."
나와 함께 살면서, 마수가 아닌 수인으로 살아가면서 자신 이외에는 미네르바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던 그 모습이 될 것을 부탁했다.
"후후후, 누구의 부탁인데요. 미안할 것까지 있나요?"
내 여인의 미소가 자애롭다.
"고마워."
☆☆☆
"대족장, 특공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구출과 보른달이 뜨는 즉시 투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메티스가 특공조들에게 강화마법을 걸고 방패조, 후발공격조등의 준비도 끝나간다.
"특공조는 나를 따르도록, 나머지는 부관 자네의 지시를 따르도록해라."
'사위며느리에게는 미안하게 됐어, 지금은 불가피하게 나와 부관이 빠지면 안 되니...'
"그... 대족장?"
부관이 옆으로 슬쩍 다가와서 조용하게 속삭였다.
"축하드립니다?"
자네도?
그 말을 전한 부관은 후다닥 도망쳤다.
"어디까지 소문이 난 건가..."
나중에 구출조의 조장을 조ㅈ... 아니, 진득하게 대화를 나누어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