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미련한 신념
* * *
"거기 아가씨~ 대단하네, 마왕에게 직접 스카웃제의를 받고."
하기 싫다.
난 그냥 일 안 하고 방탕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
마왕성에서 일하면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싫다.
그렇다고 마법국에서는 방탕한 생활을 보낼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현재는 아니었다.
"으악! 놀고먹는 꿈만 같은 귀족라이프 어디 간 거야?!"
이것이다 쓸모없는 재능을 물려준 아비 때문이다.
여러 왕들이 탐내는 재능이 문제다.
'가끔 쓸모는 있어도, 내가 필요할 때만 쓰고 싶은데...'
이반왕을 개발을 하면서 구르라고 말하고, 마왕은 이종족들의 소통창구가 되라면서 구르라고 한다.
결론은 어디를 선택해도 구른다.
'차라리 왕국에 망명을... 아니다, 그건 무조건 목이 날아가는 길이야.'
아무리 구르는 것이 싫어도 똥밭에 가기는 싫다.
"거기 아가씨는 배가 불렀네. 우리는 평민에 강제로 징집돼서 잡혀 왔구만."
다른 곳 철창에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아저씨는 왕국출신?"
"그렇지, 왕국출신은 대부분 망명을 원하고 있어. 그 나라는 끝 물이거든. 하하하하! ...하아..."
망명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방금까지 적이었던 사람을 쉽게 받아드리는 것이 이상하지.'
이상하다.
이곳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전부 이상하다.
'내가 아무리 방탕하게 살아도 알건 알아.'
"그레고리님 저는 마법국출신입니다. 그레고리님이라도 도망치십시오."
자신을 마법국 출신이라고 소개한 남성을 흘겨보았다.
도주를 선택하기에는 마력이 봉인된 상태이다.
눈앞의 철창을 마왕이 휘어놓고 사라졌다고 해도 안전하게 도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얼마든지 도망치라는 것처럼 열어놓고 사라졌지.'
"난 그냥 이러고 있을란다. 아저씨나 도망치셔."
나의 것이 되라.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사람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왕성에 가두어질 만큼의 포로들을 자신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쉽게 생각하면 여기 있는 건, 감시이자 회유하는 사람들.
"팔자 좋구만, 귀족은 전부 그런가?"
"도망칠 경로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나 하나 감시하자고 열심히 준비했네, 의외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오늘 밥은 뭐려나? 마물고기가 맛이 좋던데..."
당분간은 감시자가 껴있는 느긋한 포로생활을 만끽하자.
☆☆☆
<소피아, 의외로="" 쉽게="" 받아드리는="" 구나.=""/>
"응? 아닌데? 나 아직 그레고리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어."
아쉽게도 눈치챈 듯하다.
같은 포로들이랑 있으면 어느 정도 자신을 들어낼 것 같아서 '얼굴 없는 자들'을 감시로 붙여 놓았다.
허술했다.
진짜 포로들 사이에 그들을 끼웠어야 했지만, 포로들을 이 마왕성까지 끌고오기에는 시간과 보안등의 문제가 생긴다.
굳이 그런 문제들을 떠안으면서 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었고, 단순하게 사람 하나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상황을 볼 때는 허술한 정도가 좋아.'
저 허술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힘껏 자신을 들어낸다면 그것뿐인 인간이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선인이든 악인이든 내 사람으로는 탈락이다.
적에게 아군의 정보를 쉽게 불어 버리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선인쪽으로 보이는 거야, 그리고 무턱대고 처벌하면 안 되니까."
'일단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지.'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이면 쓰레기다.
나는 악인, 마왕이 될지언정 쓰레기가 되려는 건 아니다.
<...카르마, 저게="" 만나자마자="" 목부터="" 따려고="" 했던="" 사람이="" 할="" 말인가요?=""/>
<쉿! 그때는="" 사냥꾼으로="" 오해했지="" 않았느냐,="" 소피아도="" 피하려고하는="" 화재를="" 말했다가는="" 혼난다.=""/>
...쓸데없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자.
<그레고리에게 휘말린="" 멍청이.=""/>
<자기가 편할="" 때="" 말바꾸는="" 머저리.=""/>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 무시하자, 반응하면 인정하는 꼴이 된다.
반응하지 말자.
<바보./>
<등신./>
<얼간이./>
<주정뱅이./>
참자.
<어떡해요, 카르마.="" 이거="" 재미있어요.=""/>
<다행이다, 본녀도="" 그리="" 생각하는="" 중이니라.=""/>
이것들이 슬슬 선을 넘으려고 한다.
<분노조절장애./>
<유쾌범./>
<속이기 쉬운="" 호구.=""/>
<돈귀신./>
<암컷 ㅁ...=""/>
턱.
<헤븝!/>
"좋아 거기까지."
암컷은 아니다.
'...아마도?'
"목걸아, 요즘 혼이 안난 듯싶다? 오랜만에 꿀밤 좀 맞자?"
<카.. 카르마랑="" 같이="" 했는데,="" 왜="" 저만?!=""/>
<본녀는 모르는="" 일이다!="" 본녀는="" 암컷="" 타락="" 다리성애자="" 마왕이라고는="" 안="" 했다!=""/>
<저도 거기까지는="" 안="" 했어요!=""/>
확실히 거기까지는 로자리아도 안 했다.
'너도 투력을 듬뿍 담은 꿀밤형이다.'
아주 알차게 꾹 눌러 담아주마.
<히익! 미..="" 미안하다,="" 소피아!="" 아니,="" 잘못했어요!=""/>
☆☆☆
마왕성에서 가녀린 비명이 울려 퍼질 무렵.
"크아아악!"
인족령 글리아스 왕성에서도 비명이 울려 퍼졌다.
"라인하르트!"
인족 최강의 기사를 너무도 쉽게 넘어 버리고 죽음에서 돌아와, 약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던 숙적에게 꼴사납게 도망을 쳤다.
"크윽! 으아악!"
로젤리아님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패라고 생각했다.
새롭게 얻은 힘에 취해서 오만한 생각을 했다.
이대로는 방패는 어림없고, 가죽옷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와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그는.. 그녀는 어수룩해 보여도 철저하게 안전을 확인하고, 할 수 있는 수를 모조리 해 보는 상태로 길을 나선다.
보통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그녀가 한 번 이상은 걸어간 길일 것이다.
"전하.. 마력을... 마력을 상승시킬 것을 모조리..!"
그러면 그녀가 꺼리던 길을 가면 된다.
나 자신의 몸이 망가지더라도, 내 검을 마왕에게 닫게만 만들면 된다.
나는 로젤리아님의 검이다.
소모품이다.
계속 휘두르면 언젠가 부러지는 검이다.
그 수명이 짧아지더라도 나의 주인만 지킨다면 상관없다.
"안 돼요! 이 이상은 당신이..!"
"상관없습니다... 큭..! 마왕만 쓰러뜨리면... 그러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겁니다..!"
지금의 로젤리아님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마왕에 의해서 자신의 힘을 못다하는 것뿐이다.
마왕을 죽인다면 예전의 지혜로운 분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미련한 인간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미련할 정도로 절대적인 충성심.
그것이 기사 라인하르트의 신념이다.
"라인하르트.. 내 기사... 알겠어요, 준비하죠."
영약의 부작용으로 인해서 조금씩 흐릿해지는 시야로 나의 주군을 바라보았다.
푸른 호수와도 같았던 머리결은 관리가 덜 된 건지 끝부분이 갈라져 있었다.
총명한 눈가가 어두워졌고, 백옥 같은 피부는 거칠어졌다.
예전의 아름답던 왕녀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행도 저지르겠습니다, 친우를 베겠습니다, 최악의 오명도 뒤집어쓰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아름답고 고고하게 서 있어 주십시오.
'나의 주군이시여.'
☆☆☆
"오호호호, 이거 참... 라인하르트님께서 마왕에게 패배한 일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나 보군요."
그린우드에서 급하게 돌아온 그의 신체는 기사가 아닌 자신이 보기에도 압도적으로 강한 자에게 가지고 놀아진 것처럼 보였다.
마왕이 용사였던 시절에 착용한 가장 강한 장비들로만 무장한 인족 최강의 기사가 마왕에게는 단순한 장난감과도 같이 다루어 진다.
어찌 보면 치욕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사가 아닌 자신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일뿐이다.
'단순한 집사가 이해할 세계는 아니지요.'
"오호호, 그날 발을 빠르게 빼지 않았다면 저 같은 건 그냥 죽어 버렸겠군요. 호호호!"
마왕의 장난감도 인류에게는 최강이다.
마왕군에서도 그를 대적할 인물은 분명히 손에 꼽을 것이다.
'우리 최고의 기사님이 장난감수준이라...'
여왕전하에게 진언해서 계획을 앞당겨야겠다.
마왕군에 있는 소수의 강자들에게는 벅찬 수의 병사들을 보내어서 마왕을 전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만든다.
'초월이고, 전설이고 수의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죠.'
그것은 과거의 마왕도 인정하던 것이다.
한 명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사용할 수없으면 무력한 강함이다.
'수'에 들어가지도 못 하는 상급들을 '수'에 억지로 끼워 넣는 계획.
"영약병들을 쓸 때가 왔군요. 오호호호!"
☆☆☆
"주인님."
"왜."
"꺼내주세요."
마왕성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파니아가 애원했다.
"넌 세계수의 딸이잖아? 세계수는 식물이고."
식물의 자손은 땅에 심어야지.
"거 봐! 우리 언니가 더 쎄지?!"
"흐윽... 하이엘프님..."
두 무구를 물리적으로 잠재우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과 한 약속이 생각나서 곱게 심어 주었다.
한 명의 동심이 무너지고, 한 명의 동심을 지켜냈다.
'레이나의 동심만 지켜줬으면 됐지.'
안 그래도 라인하르트를 놓친 것이 아쉬웠는데 잘됐다.
화풀이나 하자.
"잡초야, 물 먹자."
"끄어어.."
"히익! 아이는 보면 안 돼요!"
옳지, 가짜 아이 세계수가 마침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었다.
더하자.
"커헉! 살려.. 쿨럭!"
'타이밍 좋게 나타났어.'
"신혁아, 무슨 볼일이야?"
신혁파티가.
세계수는 아예 저 파티에 눌러 붙어 버렸다.
역시 회복역 부족에 화력만 올라가는 효율 안 좋은 파티.
"소피아, 이번에는 따로 행동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 알았어."
"응? 쉽게 허락하네?"
허락이고, 뭐고 내가 그들의 행동을 강제할 이유는 없다.
위험하거나 안 좋은 일이라면 막아야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의지에 따라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것은 해도, 선택은 그들이 하는 거지.'
이제는 스스로 선택할 때가 온 것이다.
"사장님, 한동안은 연구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머리가 자랐다고 좋아하는 선배들을 보기가 그런 거지만요.."
"그거 완성했어? 다행이네."
현대에서도 못 하는 걸 여기서는 가능하다.
탈모약.
리노와 안타까운 탈모인들에게 배포하자.
"소피아, 도련.. 아가씨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분은 그 영주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응, 뭐... 그런 것 같더라."
프레디도 정이 너무 깊다.
기사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서 기사가 된다지만, 정이 너무 깊은 건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저러고 뒤통수 맞으면 많이 아픈데... 내가 할 소리는 아닌가?'
정을 줬다가 발밑의 잡초에게 뒤통수를 맞고, 또 정을 깊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파니아, 좀 더 파뭍히자."
"어븝! 브브븝! 븝...!"
내가 그들에게 해 줄 말은 하나.
"조심하고, 필요할 때는 따로 연락할게."
길을 준다면 한 곳.
"더욱 강해지고 싶다면 중심숲에 들어가, 거기는 너희를 한 단계 이상의 경지로 이끌어 줄 거야."
이 세상은 강자존의 세계.
무언가를 하려거든 강해져야 한다.
물리적으로 강해지거나, 계급적으로 강해지거나.
"하고 싶은 걸 이루려고하면 강해져야지. 신혁아, 프레디, 올리비아. 너희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본 것을 바꾸려면 강해지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아랫계급의 대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빈민, 안전한 곳에서 배를 불리는 고위층, 타락한 신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군주, 엇나가는 군주를 막지 않는 미련한 신하.
"내 다음 세대는 너희가 될 거야, '용사'라는 제약으로 뿌리뽑지 못한 일들을 '마왕'으로서 뽑아야지."
그 말과 동시에 땅에 심어져 있던 파니아를 뽑았다.
"푸하! 윤회 할 뻔했네!"
그리고 다시 심었다.
"떠넘기는 일이 되는 것 같네, 내 선에서 끝낼 생각이어도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
물론 절대로 그 만약이 오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소피아는 항상 신중하네, 너처럼 강하면 생각안 할 법도 한데."
"하하! 나도 방심하면 죽어, 실제로 한 번은 죽어 봤고."
목만 떨어져서 공중을 도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거 많이 어지럽다고.'
그리고 보고 싶다.
미네르바에게 생길 수도 있는 아이가.
그녀들은 내가 엇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오래 살고 싶다는 의지를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라파엘의 방어막을 막으려면 강해져라, 너희의 주장을 듣게 하려면 강해져라, 네 의지를 증명하려면 강해져라."
'너희의 신념을 지키려면 강해져라.'
"흐읏...! 난 할 일들이 있어서 이만 갈게, 너희도 열심히 하렴. 자, 두 사람도 그만 놀고 가야지?"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강해지면 업무도 줄여주시나요?"
'올리비아, 넌 지금도 충분히 적은 일을 하지 않니?'
결과는 잘 내고 있으니, 상관은 없다만.. 욕심이 과하다.
"할 일이라니, 어떤 거?"
"보고."
"""?"""
세 사람이 모두 의문을 띄웠다.
그래, 궁금할 만하다.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보고라니, 모순되는 행위이다.
'문제는 집안 권력은 허울뿐인 최고권력이야.'
"2세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 장모님에게 지원요청하면서 내가 직접하러 가야해서."
'덤으로 아버지에게도 알려 줘야지.'
그 아저씨가 또 이상한 걸 주웠다.
주운 건가? 자세하게는 못 들었다.
그냥 키울맛이 나는 청년을 만났다고만 말했다.
'한동안 같이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뭘 하려는 걸까? 그 아저씨는...'
상대가 적이라면 자신의 딸내미에게 거대한 엿... 아니, 방해를 하는 것이다.
"그래... 지금 그게 뭔 상관이야... 두려우신 장모님에게 사고 친 것 같다고 보고해야 하는데.."
☆☆☆
"껄껄껄! 청년! 이건 대결이 아니라고 했지 않나?! 껄껄껄!"
"무슨..! 싸움도 더럽게 하네!"
"껄껄껄! 칭찬 고맙네!"
갑자기 한 번 싸워 보자며 다가온 프라이드의 함정에 빠져서 온몸이 구속된 마르스가 불평했다.
"이럴 시간이 없다고 말했지 않았습니까!"
"껄껄껄! 약하면 애인을 지켜 주지 못한다네!"
"크윽..! 비겁하게 대결 장소에 함정을 파놓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지! 하하하하!"
만약 이 장면을 소피아가 목격했다면, 아저씨가 나잇값 못하고 젊은 사람을 괴롭힌다면서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없지! 아하하핫!"
"뭔 소리를... 아저씨! 비웃지말라고!"
"껄껄껄! 패배자의 얼굴에 낙서를 해 보자꾸나! 바..보.. 껄껄껄! 다음은 이겨보게나!"
"크윽.. 다음에는 반드시 아저씨의 얼굴에 낙서를 하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