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포로의 대우
* * *
탁탁탁.
포로수용소를 찾아왔다.
그곳에서 수감 중인 한 인물.
"용건이 있으면 말하지, 마왕언니."
탁탁탁.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면서 그 인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보고서의 내용으로 보면, 오히려 피해자에 가까웠다.
"데카라비아, 이 보고서에 누락은 없는 거지?"
"그레고리란 인물이 제 능력을 뛰어넘는 인물이 아니라면... 예, 그렇습니다. 소피아님."
그녀의 우수함은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녀 이상으로 우수한 자를 찾으라고 말한다면, 리리스와 싫기는 해도 버틀러 쯤 되어야 겨우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리리스보다도 우수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지.'
일을 보조하는 것에서만큼은 그렇다.
리리스와는 우수의 방향성이 다르다.
각종 조사업무,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많은 것들을 내가 말하지 않아도 준비둔다.
비록 리리스나 다른 사람에게서 내 성향을 들은 다음에 준비하는 것이어도, 잘 분석하고 한 사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부터가 데카라비아의 우수함을 들어내는 일이다.
다만, 그레고리란 인물도 만만치 않게 뛰어난 인물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데카라비아."
"예, 소피아님."
데카라비아의 조사망을 피했던 한 가지가 그레고리에게 있으니까.
"너도 몰랐지? 그레고리가 여자였다는 거."
"...면목 없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어떤 사유가 있어서 확인을 못 했다는 뒷말도 없는 깔끔한 인정이었다.
실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피했으니까, 조사가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뿐이다.
"더 나오는 것은 없는지 조사해 봐."
"예, 이번에는 그녀의 사소한 습관들 하나까지도 철저하게 알아내겠습니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다.
'아닌가? 이미 한번은 피해 갔으니까, 확실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나?'
요주의 인물로 체크중이던 사람의 정보가 사소하지만 큰 오류가 있는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도 같이 조사시키자.
"응, 그레고리 본인조차 모르는 습관 하나까지 철저하게, 그리고 마르스, 최신 정보가 적은 라파엘까지."
사람은 실수를 한다.
"한 번은 실수여도 두 번은 실력이 되고, 세 번이 되면 고의가 돼. 데카라비아? 네가 우수한 비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명심하겠습니다, 마왕이시여."
이번에도 오류가 있다 하여서, 그녀를 내치진 않을 거다.
단지, 실망을 할 뿐이다.
☆☆☆
"우와... 사람을 앞에서 대놓고 뒷조사하겠다고 말하네?"
이 경우는 앞조사다.
"저기요, 포로라고 해도 너무 없는 취급하는 거 아니야? 저 언니도 그렇고 마왕언니도 그러네?"
애써 신경을 안 쓰고 있을 뿐이다.
어느 포로가 수용소 안에서 팔을 괴고 누워 있나.
포로에 대한 규약이 없는 세계에서 저 수준의 당당함은 오히려 감탄이 나올 정도다.
"여기도 일단은 수용소인데, 적어도 포로답게 대기하고 있어라."
철창 안이 얼마나 익숙하면 저럴까.
데카라비아의 조사서에도, 프레디의 말에서도 그녀는 경범죄로 자주 철창신세를 졌다고 했다.
'뭐 였더라..? 분명히 음주가무, 도박, 상습폭행...'
그냥 자잘한 쓰레기인데?
"어? 뭐야?! 왜 갑자기 창을 꺼내는 건데?!"
이제 와서 바른 자세로 있어도 소용없다.
"이거 영창이라는 매직웨폰인데, 물리적인 상처는 전혀 없어."
물론 정신적인 데미지가 장난 아니다.
이걸로 게이볼그라고 외치면서 심장찌르기로 기절시킨적이 있으니, 매우 확실한 고문 도구이다.
"상처 없이 정신적으로만 고통받는 매우 인도적인 도구지."
"아니, 그거랑 날 찌르는 거랑 뭔 상관이 있는데?! 그 전에 인도적 어디 갔어?!"
쓰레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인도적인 대우다.
음주가무와 백번양보해서 도박까지는 넘어가도 상습폭행은 아웃이다.
"닥쳐, 폭행범. 네게 더 이상의 인도적인 대우는 없다."
사유는 안 봐도 뻔하다.
음주 폭행이 분명하다.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네, 둘이 똑같은 쓰레기야.'
<어.. 음...="" 소피아,="" 그="" 폭행사유는="" 제대로="" 보았느냐?=""/>
카르마다.
그녀가 나를 붙잡으면서 서류를 내밀었다.
리리스와 침대에서 뒹굴고, 시연에게도 걸려서 같이 뒹굴다가 이곳에 온 거다.
당연히 서류는 훑어봤지만, 자세하게 본 건 아니다.
"검순아, 폭행에 큰 이유가 있을까? 보니까 한두 번도 아니던데."
거기에 여성관계도 문란하다.
유교사상이 짙은 나는 도저히 저런 가벼운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어라? 소피아님,="" 확실히="" 폭행에="" 순방조치가="" 많이="" 있네요.="" 순방="" 사유도..=""/>
"뇌물이지? 그렇지, 목걸아?"
백작가의 하나뿐인 자제.
계급이 최고인 나라에서는 그거 하나만으로도 먹힐 것이다.
'평범한 병사들이 건들이지도 못 하는 존재겠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고 해도 좋다.
그녀의 아버지란 존재가 이 색안경을 끼워줬다.
<뇌물수수가 맞기는="" 해요,="" 그런데="" 잡힌="" 사유가="" 여성에게="" 손찌검을="" 하려던="" 남성에게="" 권력의="" 쓴맛을="" 보여줬다네요.=""/>
어... 음...
생각해 보니, 마법사가 물리적인 폭력이라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한 번뿐인가?'
로자리아가 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아서 다른 내용도 확인해 봤다.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던 대부업 사무소를 반파,순방조치.
빈민가에 자리 잡던 갱단을 반파, 순방조치.
이 종족 노예들을 납치하고 판매하던 노예상을 불구로 만듬, 순방조치.
'순방조치가 뇌물수수를 해서 그런 건 확실하게 사실이네.'
권력과 돈으로 매수하기는 했어도, 맞아도 되는 사람들을 때린 거다.
조금은 참작해주자.
"그런데 전부다 여자가 연결 돼 있네?"
빚을 못갚고 팔려 가려던 여성을 구해주거나, 빈민가를 매춘굴로 운영하려던 갱단을 부시거나, 엘프 여성을 구해주거나.
엘프와 친분이 생긴 건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하하, 내가 여자를 좀 많이 밝히니까."
...
"왜 피하는 건데, 마왕언니. 난 적어도 임자있는 여자는 안 건드려."
아니, 순간적으로 정조의 위협을 느껴서...
다행히 남에걸 탐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여자가 여자를 밝혀?"
"물론 가벼운 관계로,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걸로 끝. 깔끔하지?"
깔끔.. 한가?
"그리고 마왕언니도 많이 밝히는 거 아닌가? 네 명이면... 어휴, 대단하네."
"크흠! 내가 길들여지고 있는 입장이라.. 아니, 뭔 소리를..!"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버렸다.
"크크크.. 그러니까, 말했잖아? 난 여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내가 여자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철창신세를 많이져서 그런지, 아직도 유쾌해 보인다.
"이런 부분은 로마노프를 닮았네."
"마왕언니, 욕이 너무 심한데?"
...욕으로 들을 줄은 몰랐다.
"딴 건 집어치우고, 도박으로 잡혀간 건 뭐지?"
"음.. 집안의 돈을 거덜 내고 싶어서? 그런데 너무 따버려서 상대방과 시비가 붙었거든."
이런 몹쓸 자식을 봤나.
"아니, 먹으라고 똥패에 돈을 걸었는데, 거기서 죽을 줄 알았냐고."
나는 아이에게 이런 사람처럼 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지.
"음주가무는..."
"술집 서빙언니의 가슴을 희롱하던 놈의 머리통을 깨줬어."
...이쯤 되면 전부 폭행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나 싶다.
"사유는 마음에 드네, 엘프와의 친분은 노예상을 불구로 만들었을 때 생긴 건가?"
"아... 그거? 그때 생겼어, 그 자식이 애비놈에게 이종족을 매매하던 놈이더라, 나도 모르게 반앙심이 생겼지."
그날 이후로 엘프의 지인들이 늘어 났다.
심지어 그 엘프는 파트너란다.
'어쩐지.. 수용소 앞에서 엘프 한 명이 기웃거리더라.'
파트너인 엘프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몇 명의 엘프들도 그레고리와 면회가 안 되는지, 그녀의 방탕한 생활때문이라면 자신들이 변호할 것은 없는지, 그레고리가 어떤 처분을 받게 되는지등을 물어왔다고 보고 받았다.
'흰색, 나름 선한 인물인가?'
그렇지 않다면, 엘프들이 나서서 그녀를 변호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만히 보면 로마노프랑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해."
없다.
"아니, 씹.. 하아... 그냥 욕하지, 마왕언니."
그게 비록 로마노프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생긴 것일지라도.
"왜 그렇게 네 아비를 싫어하지?"
"마왕언니, 당신이라면 제 자식조차 실험의 도구로 보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나? 낳아줬다고 전부 부모가 되는 건 아니야."
그래, 그건 인정한다.
"난 그 인간이 싫어, 그 인간의 재산이 싫고, 그 인간의 가문이 싫어."
그녀의 표정은 마치 더러운 벌레를 짓누른 것처럼 일그러져 있다.
"내 몸속에 그 인간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면 역겨워서 참을 수 없어, 결과적으로 반앙한다고 이렇게 사는데, 나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특정인물을 극도로 싫어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방금까지도 헤실거리며 웃고 떠들던 사람을 실험체로 보라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 뭔가가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면."
탁.
<꺅! 소피아님?=""/>
서류를 치웠다.
그 방향에 로자리아가 있었지만... 뭐, 상관은 없겠지.
"너."
"응? 뭐야, 마왕언니. 왜 갑자기 그런 표정으로 다가오고.."
끼기기기익.
'하하, 철창 보수 좀 해야겠네.'
이리 연약해서야, 누굴 가둘 수 있겠나.
그녀를 가두고 있던 철창이 엿가락처럼 휜다.
"히..히익! 무서워! 이봐! 표정이 무섭다고! 나 죽는 거야?! 응?!"
"마왕성은 언제나 인재난이란다."
"웃기지 마! 인재란 인재는 쏙쏙 골라먹으면서 어디서 거짓말을..!"
수많은 이종족이 모이는 마왕국의 특성상, 종족 간의 불협화음은 빼 놓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문화탓에 발생하는 다툼은 금세 사그라들지만, 아주 자그마한 골치거리중에 하나로 손에 꼽는다.
'최근에는 돼지 수인과 엘프들 사이에도 하나가 일어 났지.'
아무것도 안한 오크족에게 엘프여성이 무서워 하면서 피했다.
그 오크는 침울해져서 마왕성에 건의를 넣었고, 건의 내용은 '저는 무분별하게 씨뿌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울해요. 부르륵.' 이었다.
엘프와 오크라는 인식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엘프의 행동도 이해는 된다.
다만, 오크가 너무 안타까웠다.
'알고 보면 굉장히 착하고, 순정을 가지고 있는 수인들인데.'
후에 대화로 오해를 풀고, 엘프 여성 쪽도 풋풋하며 귀여운 순박함을 가진 오크랑 친해졌다는 걸 들어보면 결과는 좋다고 할 수 있다.
'과정이 안 좋아서 그렇지.'
그러니, 이종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중재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들이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을 커버할 수도 없고, 그 일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종족 간의 편견이 없는 사람이 필요해.'
"물어볼게 있어, 추가 조사가 나온 다음에 진행해야겠지만 사전 조사라고 생각해 줘."
"응? 뭔데. 하하하.. 무서우니까 조금은 떨어져 주고.."
무섭다니까 미소를 지어 주자.
"히익!"
"너 이종족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 별생각없는데..? 말 통하고, 웃으면서 떠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인족이랑 다른 생각을 가져야 돼?"
합격이다.
"너 내꺼 하렴, 마왕성에는 포로 귀화정책도 운영 중이란다."
그 인물에대해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그 건은 내 비서가 열심히 할 거다.
"잘 생각해 봐, 난 뒤통수만 안치면 매우 자비로운 왕이니까."
데카라비아가 심하게 고생하겠지.
'난 아니니까, 그보다 인재다.'
친분이 있는 엘프들이 그녀가 걱정돼서 찾아올정도면 관계도 무리 없이 이루어 질 거다.
"고민하고 대답하렴, 네 추가조사가 끝나려면 시간이 남았으니까."
"시... 싫어! 당신 무서워!"
월컴 투 마왕성.
☆☆☆
"하하하! 젊은이! 잘 마시네, 그래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러 간다고?"
"아니... 청혼이..."
"크하하하! 이 친구가 부끄러워하기는! 내 아내도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여자였어! 내가 딱 보면 알지!"
이 중년이 말을 안 듣는다.
엄밀히 따지면 사고 친 유쾌범을 데려오려고 하는 거다.
'뭔가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아..'
"내가 딸만 둘이어도, 자네만한 젊은이도 잘 알지! 반갑네! 나는 프라이드라고 하네!"
바쁜 와중에 이상한 아저씨가 들러붙었다.
어쩐지 이 아저씨랑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낼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올라온다.
"잘 부탁하지!"
하하하... 유쾌범.. 각오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