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예언의 실현
* * *
<소피아! 지금="" 큰일이="" 생겼어!="" 그린우드가..!=""/>
갑자기 신혁에게서 통신이 왔다.
다급하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큰일이 터진 것 같았다.
"신혁아,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해볼래? 무슨 일이니?"
<습격! 노예사냥꾼과="" 왕국군이="" 그린우드를="" 습격했어!="" 지금은="" 파니아가="" 혼자서="" 상대하는="" 중이고,="" 닉스랑="" 우리가="" 엘프들을=""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음... 큰일은 맞았다.
"파니아가 혼자서? 어... 가능할걸?"
큰일은 맞는데, 그거 생각 외로 강하다.
'나한테 맞고 사는 거지, 어디 가서 맞고 살만한 존재는 아니지.'
...아니다, 닉스가 상대여도 충분히 맞고 살 수 있겠다.
<아니! 파니아의="" 말로는="" 세계수가="" 직접="" 대피를="" 명령했다고="" 말했어!="" 닉스와="" 정령들이="" 호위하고="" 엘프들을="" 너에게="" 위탁하라고..!=""/>
내 짐작이 틀렸었나.
아니면 파니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인원이 습격한 건가.
<소피아, 왕국군에="" 고위계의="" 불마법="" 스크롤이="" 있데,="" 숲="" 전체를="" 불태울="" 생각인="" 것="" 같아.="" 그리고="" 저곳에="" 라인하르트가="" 있다고="" 했어.=""/>
'아.. 그거라면 감당하기 힘들겠다.'
"알았어, 너희는 닉스의 호위를 받아. 아직 성장중인 너희가 성장이 끝난 라인하르트에게 다가간다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말 들어."
신혁이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내 강한 어조에 입을 다물었다.
"파니아가 무슨 생각으로 덤빈지는 모르겠다. 제 목숨 귀한 하이엘프가 말이야, 그런데 파니아에게도 안 되는 일에 너희가 나서려고? 혹시 자살하려고 그러니?"
내가 그들을 키워 주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다.
"지금 전투하는 모습이 보일 거야, 거기에 네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아니, 들어갈 수는 있을 거 같아?"
자신을 알아라.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긍정적이고 좋은 마인드이지만, 자신감과 오만은 다르다.
안 될 것 같으면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판단이다.
"신혁아, 나쁜말 하지는 않을게. 너희는 많이 성장했고, 앞으로도 잘 성장할 거야, 그래도 아직은 라인하르트에게는 못 당해. 그러니까 닉스와 함께 엘프들을 지켜줘."
<...알았어./>
조금 심하게 말한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맞서 싸우려고 했을 거다.
현재의 그들은 마르스와 그레고리, 라파엘과 맞서 싸우게 될 상대들이다.
'라파엘에게 닿으려면 멀었지만.'
셋이서 리노, 라나 남매를 이길 수 있다면 가능하리라.
"소피아언니.."
"마왕님..."
레이나와 프루나.
두 사람도 통신 내용을 들었을 거다.
굉장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으니까.
"미안, 두 사람 다 집으로 돌아가자?"
"소피아언니는?"
"하하, 언니는 잠시 다녀 올 곳이 있어. 프루나한테도 파니아와 만나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지키러 가야지."
그래서 조금은 안심시키려고,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법으로 돌려보내 줄게, 프루나? 엘프들은 무사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렴."
이제야 고향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이에게 슬픈 소식을 전달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마왕님.. 정말로 괜찮아요? 저 엄마 아빠랑 다시 볼 수 있는 거예요? 하이엘프님 도 만날 수 있는 거죠..?"
"하하, 그럼. 이 마왕님은 한다고 한 것은 무조건 하는 사람이란다."
'그러니, 안심하고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주렴.'
두 사람을 부드럽게 안아 주면서 진정시킨다.
"잠깐이면 시야가 바뀔 거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거기에 리리스언니가 있으니, 내가 보냈다고 하면 잘 알 거야. 음... 궁금하면 연락하겠지."
"응.."
"네.."
정말로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다.
"[TELEPORT]."
내 마법에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거리 전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장거리 전이 마법.
고위 마법사의 증명이자, 마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좌표를 알고 있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마법.
'마력을 많이 잡아 먹어서 어지간하면 안쓰긴 하지.'
그 어지간한 경우가 지금이고, 두 사람을 데리고서 마왕성에 돌아갔다가는 프루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만 이곳에 놓고 갈 수도 없기에 안전한 마왕성으로 옮긴 것이다.
"자.. 그러면 나는 약속을 지키러 가 볼까?"
전력으로 달리면 하나 정도는 살릴 수 있겠지.
<보조하겠다. 소피아,="" 그대는=""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거라.=""/>
<체력 회복은="" 맞기세요!=""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든="" 사람을="" 혼내주러="" 가죠!=""/>
☆☆☆
"라인하르트!!"
숲이 불타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숲이.
내 삶을 이어 준 세계수가.
나의 고향이.
'왜! 당신이라면 살 방법을 찾을 거 잖아! 그런데 어째서!'
연기 때문일까.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파니아야, 나의="" 아이야.="" 어서="" 도망치거라.="" 너로서는="" 저자에게="" 당해낼="" 수가="" 없다.="" 너="" 답게="" 행동하거라.=""/>
'닥쳐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으니까, 제발 좀..!'
다른 인족들은 자신의 화살을 받아치지 못했다.
화살에 맞고 터져 나갔다.
하지만.
"쫌, 맞아라!"
쾅! 쾅! 콰아앙!!!
그는 전부 받아 내고 있다.
쏘는 화살을 전부 받아치고 있다.
'도망쳐야 하는데.. 살고 싶은데...'
막상 정말로 세계수를 버리려고 하니까, 그게 되지가 않았다.
주인님에게는 처음부터 답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세계수가 불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까?
결국에는 자신도 세계수가 소중한 한 명의 엘프였던 것 같다.
"에이 씨..! 죽을 때나 되어 서야 깨닫고..! 씨발! 씨발! 맞으라고!"
쾅! 쾅! 콰앙!!
<파니아야, 이만하면="" 되었다.="" 네가="" 속으로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 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까..=""/>
"닥치라니까요! 집중 안 돼요!"
마법이 직격한 곳이 차라리 뿌리 쪽이었으면.
그랬다면 아마도 도망쳤을 거다.
'하필이면 본 기둥에..!'
뿌리가 불탔으면, 또 머리카락이 짧아 졌다는 불평을 늘어놓았을 세계수가 삶이 끝난 것처럼 저러니, 더욱 도망칠 수가 없다.
콰아앙!!
'저.. 저 사기 조합..!'
[신속][강력][검술][동체시력].
기사 라인하르트를 최강의 기사라고 불리게 해 준 고유능력들.
하나만 있어도 축복 받았다고 불리는 고유능력들을 알짜배기로만 모아 놓은 사기꾼.
"야이 사기꾼 새끼야!!"
쾅!
장거리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승산은 있었다.
'저 새끼, 더 강해졌어!'
이전까지는.
콰앙!!!
'흐으으.. 이제, 저거는 주인님이나, 닉스마님이 아니면 못 이겨..'
자신이 알고 있던 라인하르트는 골리앗 보다는 못한 존재였다.
하지만 주인님이 환생하기까지의 육 년.
그 평화로운 시절에도 라인하르트는 강해졌다.
이제는 골리앗과 승부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흐어엉..! 주인님.. 닉스마님.. 살려주세요.."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건 라인하르트뿐.
마치 산책을 하듯이 유유자적하게.
쾅!
날아오는 화살을 처내면서.
자신을 죽이러.
다가온다.
쾅!
이제는 몇 걸음도 남기지 않았다.
궁수의 이점인 위치선정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왜 나 답지 않은 짓을 벌여가지고는..!'
"세계수님.. 뭐라고 대답 좀 해보세요..! 닥치란다고 진짜로 닥치시면 어떡해요?!"
세계수도 아까부터 말이 사라졌다.
내가 조용히하라고 해도 들은 존재가 아닌 세계수가 말이 없어졌다.
"불안하잖아요! 뭐라고 말 좀..! 아..."
"파니아여."
그가 왔다.
"로젤리아님의 명령이다, '엘프들을 잡아라.'라고."
손이 떨려온다.
왜 내 화살이 그에게 닿지 못한 건가.
평화로워졌다고 개을러졌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안 그러면은 너무 억울하다.
같은 파티원이었다.
주인님을 제외하면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평화가 불러낸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 화살이 처음부터 그에게 닿지 못 하는 것이 아니기를.
"그리고 너는 방해가 된다. 마법으로 강화하지 않았다면 공격을 허용했을지도 모르겠군."
검에 휘둘러졌다.
'아.. 느리네..'
아니면 단지, 죽음을 앞에 두고서 세상이 느리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촤아악!
"옛 정을 생각해서, 즉사는 면하게 해주지. 파니아."
'하하... 참으로 고맙네..'
털썩!
검이 베어나간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다.
'얼마 못 가서 과다출혈로 죽겠어.. 하하.. 다른 엘프들은 무사히 도망쳤으려나..'
아마도 했을 것이다.
아무렴, 그들은 지켜 주는 것은 다른 이도 아닌 그 세 마수이자, 니드호그라고 불리는 닉스였다.
"쿨럭!! 너 새끼가.. 쿨럭..! 엘프들은 못 가져갈 거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그를 매도 했다.
"엿 처먹어, 개새끼.."
'세계수님이 봤던 장면이 이거였나... 그때는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아... 내가 또 말을 안 들었네..'
그런데 그때는 여자라고 했던 것 같았다.
쾅!쾅!쾅!쾅!
하늘에서 파공음이 빠르게 접근해 온다.
고개를 들어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콰아아앙!
"하이? 잘 지냈어? 내 '친구'야."
'아.. 이 장면이었구나...'
예언은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새로운 악'과 '나를 죽일 자'를 확실하게 알았으면 이러지는 않았을 거 같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세계수에게 불평을 했다.
☆☆☆
쾅!!
"큭!"
'오.. 막았네?'
내 친구가 못 본 사이에 많이도 성장한 것 같다.
"하하하! 막기만 했네!"
한참을 뒤로 밀려난 그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마력도 느껴지고!"
쾅!!
"내가 마지막에 착용했던 장비를 그대로 착용했고!"
쾅!!!
"그 전 장비를 차고 있는 내 공격을 막기만 했네! 아하하하!"
콰아앙!!!!
라인하르트가 이곳에 있다고 들었을 때부터 미리 장비를 착용하고 왔다.
로젤리아가 꽁꽁 숨겨 두었던 그가 어떤 힘을 얻은 건지를 몰랐기에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는 기대 이하였다.
'파니아가 버거울만은 해, 그런데 마력과 투력을 동시에 운용하려면 비슷한 크기로 키웠어야지.'
한쪽만 거대하면, 작은 부분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투력은 이미 완성형.
마력이 투력만큼 강해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게 맞는 수많은 영약을 마셔야 할 거다.
때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마력으로 인해서 조금 강해진 정도.
'굳지 따지자면, 골리앗의 위, 바실리스크의 아래.'
"라인하르트! 이게 최강의 기사의 실력이냐! 나에게 검을 가르쳤던 기사는 어디로 가고!"
"..성재!"
"응! 아핫!"
내가 직접 찾아온 가치를 보여봐라.
내게서 쏟아지는 검격을 막는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
나의 친구여.
"짜잔! 이도류!"
아공간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더욱 빨라진 검격.
조금씩 생겨나는 찰과상.
"크아악!"
"오! 반격했어? 아하하!"
'원래는 파니아에게 실험해 보려고 했는데...'
저기서 다 죽어 가니, 당장은 실험하기가 힘들 것 같다.
'실험체는 하나가 더 있지.'
왼손에 쥐어진 무기를 그에게 던졌다.
챙!
"무슨..!"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서 손목을 붙잡았다.
"이름하여, 갓핑거."
전에 카르마에게 해 보았던 외부 융합.
내 손이 닿는 곳에 마력과 투력을 흘려보내고 강제로 섞는다.
단순하지만, 강한 고통을 줄 수 있는 기술.
"크아아아악!!!"
내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그를 더욱 강하게 붙잡는다.
챙! 챙! 쾅! 챙!
검으로 나를 공격하지만, 검을 들고 있는 건 마찬가지.
심지어 자신은 라인하르트의 검술 습관을 모조리 알고 있다.
검으로 나를 막으려는 것은 더욱 안 좋은 선택일 뿐이다.
"아파? 아프지?! 아프라고 하는 거니까! 아하하하!"
빡!
"쿨럭!"
무릎을 들어 올리면서 그의 복부를 차올렸다.
'앗.. 떨어졌다.'
"하아... 하아... 성재, 네놈..!"
"왜? 아! 혹시 파니아를 이기고서 자신감이 넘처 흐르셨나 봐? 저거는 너랑 상성이 안 맞는 거야. 큭큭큭큭..."
장거리 전문에 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파니아가 상대하기에는 라인하르트의 조합이 너무 맞지가 않다.
[동체시력]으로 파니아의 화살을 포착하고, [신속]으로 따라간다.
[검술]로 가장 좋은 반격 위치를 잡으면서, [강력]으로 받아친다.
그러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파니아에게는 쥐약인 근접전투로 돌입.
정령마법이 있다고 해도, 미약한 마력으로 흐름을 느끼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나와 그가 장거리 전투를 가정해서 짠 전투방식이지.'
"어쩜 너는 한결같이, 내 뒤를 따라 다닐까? 초반에는 내가 너를 보고 배웠는데도 말이지."
"크흑?!"
나를 모델로 훈련하면 절대로 나를 뛰어넘을 수 없을 거다.
'내 약점은 내가 전부 파악하고 보완하는데, 당연히 못 뛰어넘지.'
나도 고유능력의 덕을 보는 거지만.
'[준비하는 자] 만세, 만세, 만만세!'
나를 괴롭히던 [정신력]과 달리 예쁜 짓만 하는 능력이다.
"자, 그러면 이제 죽.."
'아니지? 역시 팔다리 다 자르고, 눈앞에서 로젤리아를 죽인 다음에 죽이는 것이 좋을까?'
응, 그게 좋겠다.
"다음에는 더 성장해서 맞서겠다, 성재."
"엉? 야! 어 딜 도망가!"
안타깝게도 내가 그를 붙잡는 것보다, 그가 [전이] 스크롤을 찢는 것이 더 빨랐다.
"젠장! [신속]!"
도망치는 속도 하나 만큼은 일품이다.
"에잇..! 쓸데없는 생각이나, 장난치지 말고 그냥 베어 버릴 걸.."
그래도 그가 숨었어야 했던 이유와 신기술의 효과는 알았으니, 이득이라고 치자.
"후우... 우와, 아주 활활 타네."
평소에 장작이라고 놀렸는데, 진짜로 장작이 되어 버렸다.
"퍼렁이가 아주 각 잡고 습격했어."
본 기둥에 직접 태운 것을 보면 9위계 쯤 되어 보인다.
'10위계라면 본 기둥을 직접 태울 필요는 없지.'
마법으로 만들어 내는 재앙에게는 위치같은 건 아무 상관없을 거니까.
"이제, 파니아를 보러 갈까?"
세계수는 내가 너무 늦은 것 같았고, 아직은 늦지 않은 듯한 파니아를 돌보자.
'방벽은 포기, 프루나와의 약속만은 지켜 줘야지.'
☆☆☆
"파니아야. 아직 살아 있지?"
"쿨럭! 아..마도요..."
곧 죽을 것 같다.
"음... 세계수가 본 장면은 이거 아닐까? 구도가 딱 그런데?"
"그럴.. 수..도 있..! 쿨럭!"
"응, 말하지 마. 고개만 끄떡.. 이지도 못하겠네, 그냥 눈만 깜빡거려."
깜빡.
'옳지,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말도 잘 듣네.'
"살고 싶어? 살려 줄까?"
동공이 떨리고 있다.
빛이 다 사라져가도 내 질문에 의문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그런데.'
"내가 말했던 그 엘프의 아이가, 음.. 프루나라고 하는데, 프루나가 너랑 꼭 좀 만나고 싶데."
어차피 죽을 거 였으면 내버려둘까도 생각했다.
그냥 조금 늦었다고 변명을 할까도 생각했다.
'아이에게 한다면 한다고 말하고 그건 아니지.'
로렐라이도 왕의 약속은 무겁다고 했다.
한 번만이라도 가벼워지면 그 가벼움은 계속 되겠지.
'그래도 선택권은 주자.'
"짠! 지금 죽으면 영원할 것 같던, 고문에서도 해방! 살아나면 회복한 뒤에 찾아오는 맞짱!"
이건 안 봐준다.
성희롱은 둘 째치고, 아이들이 누가 더 강한지 보여 달라고 했으니까.
동공이 아까보다 더욱 격하게 흔들린다.
'오..! 기운차네.'
"파니아야, 세계수의 말은 이제 안 들리지?"
깜빡.
역시, 저렇게 불타오르는 세계수가 결국에 최후를 맞이 한 것 같다.
"네가 죽었다면 다음 하이엘프가 등장해서 그런 거라고 치는데, 아직 살아 있잖아?"
깜빡.
"다시 물어볼게, 살고 싶니? 목걸이, 로자리아의 치유력이면 살릴 수 있을 거 같은데."
...
반응이 없다.
고민하는 것인가, 아니면 결국에는 늦어 버린 것인가.
"살..려.. 주세..요.."
털썩.
"응, 알았어. 살려줄게."
'결국에는 기절했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나는 즉시 로자리아의 치유마법을 이용했다.
다만, 출혈로 인한 실신은 버티지를 못한 것 같다.
'피도 채워주네, 역시 치유력 최강.'
프루나와의 약속은 지킬 수가 있을 것 같다.
☆☆☆
<신혁, 왜="" 그러지?=""/>
"아.. 아니야, 닉스. 그냥 이 사람들을 보니까."
피난을 떠나는 엘프들의 표정이 침울해져 있다.
고향이 불타고 있다.
자신들이 신으로 모시는 세계수의 생사도 알 수가 없다.
몇몇은 극도로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함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
소피아게 내게 한 말이 생각 났다.
'지금 전투하는 모습이 보일 거야, 거기에 네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아니, 들어갈 수는 있을 거 같아?'
그래, 자신이 들어가도 방해만 될 거였다.
텅 빈 손들.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닉스를 따라서 엘프들을 인도하는 것.
나쁘게 말하면 같이 구출 되는 것.
'어부지리로 한 사람을 더 구하긴 했는데...'
"아... 좆됐네... 마르스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아니, 그전에 왕님에게 목이 베일 거 같은데.. 마왕군은 포로 대우가 어떠려나..."
그린우드에 있던 그레고리도 구출이라는 이름에 포로를 잡았다.
'이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고.'
정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건가.
자신은 여전히 초라했다.
친구를 지키고 싶고, 소피아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모든 것을 잃은 엘프들에게 아직 무언가가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그들의 신은 생사불명, 그들의 지주는 단신으로 적과 맞서고 있다.
'소피아가 안 된다고 했으니, 그녀도 이제는...'
닉스에게 구해 달라기에는 염치가 없다.
만약 그녀가 구하러 나선다고 해도, 여기 있는 엘프들이 위험해질 뿐이다.
"엘프때다!"
"잡.. 어? 니드호그다!! 도망쳐!!"
콰아아앙!
이들을 지키면서 왕국군과 노예사냥꾼을 모조리 격퇴할 자신이 사라졌다.
<징그럽게도 오네,="" 멀리서는="" 내="" 브레스가="" 안="" 보이나?=""/>
그러게 말이다.
"하아... 어?"
다시 한번 빈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길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있어, 아직 세계수가 살아 있을지도 몰라!'
"신혁, 혹시 이상한 생각하는 거면.."
"아니야, 올리비아! 하나 있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래 비어 있지만, 전혀 빈손이 아니다.
오히려 꽉 찬 손이라고 할 수 있다.
"뭐지, 신혁?"
"잘 봐, 프레디. 닉스도, 엘프 여러분도요! 그리고 귀족영애 그레고리도!"
"엇?! 뭣?! 뭐라고..!"
당황하는 것 봐라, 역시 내 촉이 맞다.
"하하핫! 이것이 내가! 소피아도 못 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빛나라, 왼손의 청광룡아!'
아앗... 오랜만의 중이병, 취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