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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40화 (140/156)

〈 140화 〉 거절할 수 없는 부탁

* * *

"이봐요, 영감님. 그게 가능한 주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맞소, 초보 사냥꾼도 아니고, 숲에 직접 들어가서 엘프를 사냥하라니... 거긴, 베테랑도 길을 잃어버리는 숲이요."

"어지간한 레인저로는 어림도 없소, 돌아가시오."

기껏해야 노예사냥꾼들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수 전문 사냥꾼으로 보겠다.

'이런, 저라는 사람이.. 너무도 우스워서 표정에 들어낼 뻔했군요. 우후후후..'

"우후후, 그래서 여러분을 찾아온 것이지요."

이자들도 업계가 안 좋을 뿐, 나름 이름을 날리는 자들이었다.

"사례는 하겠어요, 당연히 노예사냥으로는 벌기 힘든 거액을 말이지요. 우후후후.."

쿵...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묵직한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어... 어이, 영감님. 이건..!"

"수많은 보석과 금입니다. 전쟁통이라 현금보다는 이쪽이 나을 것 같아서... 우후후, 원하신다면 현금으로 드리지요."

여기저기서 마름침을 삼키는 소리와 사냥꾼들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아! 물론 선금이고, 일의 실패 유무와 상관없이 드리는 겁니다."

이들은 본래, 마수를 사냥하던 자들이었다.

단지 노예를 사냥하는 것이 더욱 돈이 되는 것을 알아버린 재물에 눈이 먼 자일 뿐.

'우후.. 그래서 더욱 흔들리는 거지요. 이용하기 쉬운 자는 마음에 들어요.'

"이건 여러분께서 나누어야 하지만 엘프를 잡은 분께는 두당 이 금액의 두 배를 드리지요."

"두.. 두 배? 이 금액도 최상급 엘프를 잡았을 때보다 많은데?!"

심지어 매물이 가장 적은 시기에서 최고가로 경매된 가격 보다 비싸게 쳐주는 거다.

단순한 사냥꾼은 절대로 받을 수 없는 가격이며, 노예 상인도 보기 드믄 가격이다.

그러니 흔들릴 수밖에.

"잠깐만.. 영감님, 이런 일 일수록 뒤가 구린 법이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소?"

'호오.. 조금은 생각할 수 있는 자도 있군요.'

그래도 큰 제물에 두 눈이 흔들리는 것만은 다른 자들과 똑같다.

그냥 변명거리를 만들고 싶은 것뿐이겠지.

"우후후... 물론이지요. 아니다 싶으면 빠지셔도 돼요. 그러면 다른 분들의 선금이 많아질 뿐이고, 굳이 여러분이 아니어도 하겠다는 파티는 많이 있어요."

조급하게 만들어 주면 넘어올 것이다.

"거절하시겠다면 다른 분들로 구하겠어요."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주머니를 집어서 다시 가져갔다.

'사냥꾼을 대량으로 고용한 건, 거짓말도 아니니까요.'

"잠깐만 영감님! 우리는 거절한다고는 안했어!"

"맞아! 저놈만 빠지라고 해!"

"아니, 나도 빠진다고는.. 그래! 그냥 안전한지만 확인하려고 했던 것뿐이야!"

역시나.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자고로 생각할 시간을 안 주면 해결된다.

"우후후, 현명하신 선택이에요. 그래요, 안전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이 일은 국영사업입니다.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을 달래줄 노예들을 구하는 사업이지요."

본래라면 엘프사냥은 불법이었다.

동맹이라는 관계도 있었고, 세계수의 예언도 있었기에 대륙에서는 드워프와 함께 이득이 되는 불가침의 존재처럼 여겼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이득이 되는 존재들.

겨우 살아남은 적은 수의 드워프는 보호라는 이름아래에서 착취를 당하고, 겉모습이 아름다운 엘프는 이제 노예가 된다.

"그리고 노예를 인도받고, 여러분의 사냥에 대금을 측정해 줄 병사들도 함께할 것이니, 최악의 상황은 쉽게 오지 않겠지요. 우후후."

오래전부터 인간은 욕망에 물든 짐승들이란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들이 딱 그러했으니까.

"자... 경쟁자들은 많이 있어요. 최대한 빨리 사냥에 나서셔야 할 겁니다. 우후후후..."

☆☆☆

사냥꾼들이 자리를 비운 빈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선금을 냉큼 챙겨서 자리를 떠났고, 감시겸 인도자인 병사들도 같이 사냥에 나섰다.

'우후후후. 선금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로 싸우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어요.'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추악했다.

단체로 활동하며, 어지간히도 긴 시간을 보냈을 동료도 재물 앞에서는 부모의 원수처럼 싸운다.

이런 촌극을 보면서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버틀러님."

"오호? 이거, 우리 기사님 아니신가요?"

'우리 가문의 기사님은 딱딱하신 것 같군요.'

"기사님? 웃을수록 좋은 일이 생긴답니다. 우후후후, 재미있던 상황이었잖아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익숙해서인지, 놀려도 반응이 적다.

'우후후, 놀리는 건 그분들이 최고인데요.'

"그래요, 무슨 일인가요?"

"사냥꾼들의 처우는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런 일 때문이었나.

그거야 당연하게 하나뿐이다.

"어차피 저들은 돈을 받으면, 마지막에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서 칼부림이 날 것이에요."

저 금액으로도 싸우고 있으니까, 엘프 하나에 그 두 배로 받을 터이니, 반드시 싸울 것이다.

"적당하게 남으면 죽이고, 회수하세요. 우리 여왕님의 소중한 국고입니다. 우후후후."

'어리광쟁이 손녀같은 분... 늙은 집사는 그분의 바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들어드릴 뿐입니다.'

아무리 국고에서 꺼내온 돈이라고 해도, 엘프 전체로 따지면 상당히 아까운 소비가 된다.

아니, 오히려 국고이기에 더욱 아까운 것이다.

그러면 소비가 없으면 되는 일.

사냥꾼은 엘프를 사냥하고, 엘프를 나라에 헌납해서 도움이 된다.

'제물에 눈이 먼자들치고는 제법 의미 있는 죽음이네요.'

"사체는 증거하나 남기지 말고 숲과 함께 태우세요. 숲이 넓어서 티도 안나겠지만요. 우후후후!"

사냥한 엘프중에 새로운 하이엘프가 나온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세계수의 쓰임세가 다시금 생기는 것이니까.

"명 받들겠습니다."

☆☆☆

몸이 가볍다.

바람의 정령과 땅의 정령에 도움을 받으니,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바람이 등을 밀어 주고, 땅이 달리는 곳을 단단하게 다져 주었다.

밤중에 그린우드로 향하는 것에 많은 불만들이 생겼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숲을 밤중에 횡단해야 하는 불편함.

편안한 잠자리를 버리고 시작하는 야영.

초겨울 숲의 거센 추위.

안전한 식수.

아무리 파니아가 가장 잘 아는 숲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굳이 당장에 떠나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령의 도움을 받으니,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잦아 들었다.

추위와 어둠은 불의 정령을 이용했고, 식수는 물의 정령을 이용했다.

그녀가 정령들에게 부탁을 하니, 정령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오랜만의 부탁이라서, 정령들도 평소보다 더욱 기뻐한다고 했다.

'나도 정령을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정령계약은 정령의 마음에 들어야지 가능하다고 했지.'

소피아가 정령들을 다루지 못 하는 이유도 정령의 마음에 들지 못해서이다.

세계수의 중계가 있다면 어느 정도는 쉽게 되어도, 중계가 있어도 정령들이 싫어 했다고 말했다.

'내가 만지는 것도 아주 치를 떨던데...'

귀엽게 생기고, 애교를 잘 부리는 소동물들이 나에게만 치를 떨고 피한다고 생각해 보아라.

마음에 상처가 심하다.

이유라는 이름의 변명도 나름 타당했다.

'요즘 들어서 노예사냥꾼의 움짐임이 수상하다라... 그것만이 아닐 거 같은데...'

반 이상을 파니아에게 달려오고 있는 소피아에게서 도망치려는 것으로 보였다.

"빨리! 빨리요! 지금 주인님 쫓아 온단 말이에요!"

...대부분의 이유가 소피아에게서 도망치는 걸 수도 있다.

"엘프다!"

"먼저 쫓는 놈들이 있는데?!"

"쫓는 것이 뭐가 중요해! 먼저 잡는 놈이 임자지!"

말이 씨가 된다더니, 즉시 노예사냥꾼이 등장했다.

"꺼져!!"

콰앙!!!

"""크아악!"""

...그리고 퇴장했다.

뒤에 좋아 보이는 갑옷을 입은자도 있어서 퍽이나 수상했는데.

"바쁜데, 길을 막고 있어! 칫!"

움짐임이 수상하다던 노예사냥꾼들의 일부가 등장했는데, 등장과 동시에 퇴장했다.

'보통은 잡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부터 조사해야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내 상식이 잘못된 것인가를 확인 하려고 프레디를 바라보았지만, 그도 심하게 당황한 것 같았다.

"잠깐만! 방금 노예사냥꾼아니야?!"

"예?! 뭐라구요?! 주인님이 사냥하러 오신다구요?! 흐기야아악!"

노예사냥꾼을 어떻게 들어야 그런 식으로 듣지?

공포로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진 것처럼 아주 미친 듯이 달린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잘 따라오는 것인지 잊어 버리지 않고 보조를 하고 있다.

"도망쳐! 도망쳐야 돼!"

과연 썩었어도 구 용사파티.

소피아에게 묻혔을 뿐이지, 그녀의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노예사냥꾼을 바람의 정령으로 날려보냈으니까.'

마치 거대한 망치라도 휘두른 줄 알았다.

정작 본인은 관심조차 둘 수 없다.

"살려어어 줘어어!!!"

<꺄르륵!/>

<끼야앗!/>

<하하핫!/>

<.../>

"놀아주는 거 아니야!"

☆☆☆

"여기, 세계수님의 잎이요."

"하하! 매번, 고맙네."

엘프가 모아두는 세계수의 잎을 받았다.

심지어 뿌리에서 나는 잎이 아닌, 본기둥에서 떨어진 잎들이다.

"부작용이 없는 영약을 만들려면 이 잎이 꼭 필요하거든."

"그레고리님, 그 영약은 역시 친구분을 위해서 인가요?"

'안 먹어서 문제지.'

마르스를 위해서 매번 그린우드까지 와서 재료를 공수해 온다.

세계수를 신성시하는 엘프에게서, 그 부산물을 받는 것에는 큰 고생이 따랐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나름 신용이 쌓였으니까, 쉽게 받는 거지. 하여튼 그놈은 이 고생을 몰라요.'

그래도 안 먹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만약을 위해서 만들어 두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그레고리님이야 엘프들에게 신용이 있으니, 상관은 없어도 다른 인족들은 아니에요."

"응, 그래서 마르스는 놓고 혼자 온 거잖아."

늘 있는 일은 왜..

"그게... 요즘 들어 엘프들의 납치가 심해지고 있어요. 전쟁으로 뒤숭숭한 틈을 타서, 찢어 죽여도 쉬원치 않을 사냥꾼놈들이 날뛰고 있죠."

"왕국령 근처에서지? 나도 들었어. 미안하네, 나도 힘을 써 주고는 싶은데. 왕국과 마법국의 사이가 겨우 동맹만 유지되는 수준으로 떨어져서."

우리의 왕께서 여왕을 우왕으로 판단한 뒤에는 사이가 철저하게 뒤틀어졌다.

계속해서 사고만 치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완전한 결별이 이난 것만 해도 이반이 참아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왕을 이유로 버리기에는 왕국의 인구수는 무시할 수가 없었고, 마왕군과 대항하기 위해서 겉뿐인 동맹이라도 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자칫하면 두 곳을 막아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마왕군의 진격을 막는 것만 해도 벅찬데...'

왕국측을 경계하는 거에는 변함이 없지만.

"마법국은 내가 왕에게 진언해 보지, 근대 왕이 싫어하면 답없다? 우리 왕이야, 현상태에서 엘프를 적으로 둘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싫다는 데 하자고 하면 그냥 목을 베는 양반이니까."

"말해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요. 급한일이 없다면 며칠 쉬시다 가시죠, 가끔의 휴식도 중요하니까요."

...이게 무슨 소리람?

급한 일이 없다니, 밖은 한창을 전쟁 중이다.

본래라면 여기에 올 시간도 없었지만, 폐쇠적인 이들의 특성상 잘 아는 인물이 아니라면 절대로 물건을 주지 않을 거 같아서 온 거다.

'역시 폐쇄적이여서 밖의 상황을 모르는 건가? 인족령은 심각한데?'

"그레고리님?"

"이틀 정도라면..."

거절해서 기껏 쌓아 올린 관계를 부시기는 아깝다.

'망할 애비만 아니었어도...'

그 미치광이 실험중독자.

그와 똑같아질 것 같아서 타종족과의 관계에 민감해졌다.

"알겠어요, 주무실 곳은 늘 머무는 곳으로 준비해 두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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