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범인의 자존심
* * *
콰드득.
또 뜯겼다.
"흥 흐흥 흐흥~"
콰드득.
이제는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뿌리를 뜯어 버렸다.
"아~ 아음!"
빠드득.. 빠드득..
"옴뇸뇸뇸."
콰득! 뿌득! 빠각!
티타임에 나온 과자를 먹는 듯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흔들면서 먹고 있지만 씹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쿠구구구.. 쾅!
"에이.. 흙이 많이 묻어 있네.."
...땅속에 밖혀 있던 뿌리를 뽑았으니 흙이 묻어 있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쾅! 쾅! 쾅!
세계수가 자신의 상식을 의심하고 있을 때, 니드호그는 '한' 손으로 뿌리를 흔들어서 흙을 털어 냈다.
요즘 노예사냥꾼이 늘어 골치가 아픈 상태에서 그녀가 찾아왔다.
봐라 지금도 사냥꾼이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조심성이 없다.
사냥꾼이.
니드호그의 현재 모습은 힘만 안 쓰면 어딘가의 귀족영애 같은 뛰어난 외모에 용족의 날개, 꼬리, 뿔을 달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는 노예사냥꾼에게는 군침이 도는 돈덩어리 처럼 보였을 거다.
"크흐흐흐.. 어이! 보이지? 저거."
"아... 처음 보는데, 값 좀 나가겠는데?"
"팔기 전에 우리도 한 번 먹어 보자고, 저런 희귀품은 처녀가 아니어도 비싸니까, 크크크!"
아이고.. 큰일 났다.
니드호그가 그들을 흘겨봤다.
그들이 접근해도 신경조차 쓰지 않던 그녀가 사냥꾼을 '인식'해 버렸다.
힘내라 사냥꾼.
너희 덕에 니드호그가 식사를 멈췄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라.
그녀 때문에 자신의 기다란 머리가 많이 짧아졌다.
원래는 바닥까지 닿던 머리였다.
이제는 그만 짧아지고 싶다.
"크흐~ 저 뿔 잡고 목구멍 끝까지 박아버리고 싶네."
"알지, 알지. 저 눈이 공포로 떠는 모습이 기대된다고. 크크크."
아니야.
그거 아니야, 더는 자극하지 마.
저거 화났어.
너희 같은 연약한 사냥꾼은 여름철 모기처럼 눌러 죽일 수 있는 존재니까.
장난도 이제는 적당히 하자.
저 사냥꾼은 니드호그가 몰아내 줄 것이다.
예전에 그녀가 이 숲에서 둥지를 틀었을 때도 자주 있던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어린 엘프가 납치 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니드호그 때문에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그 마수가 없으니까. 돈 벌이가 쏠쏠해!"
너희 눈앞에 있는 그녀가 그 마수다.
부웅...
"""어?"""
쿵!!
역시나.
가볍게 날아오른 그녀가 사냥꾼에게 공격을 가했다.
맨 앞에서 그녀에게 음담패설을 한 사냥꾼은 상반신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절명했고, 다른 두 사냥꾼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죽은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남편도 아닌 것이.."
쾅!!!
남은 둘도 그 광경을 눈에 담고서 생을 마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내 뿔은 남편꺼야. 흥!"
화내는 부분이 조금 이상하다.
남편인 마왕이라면 뿔을 잡고 해도 된다는 것처럼 들렸다.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뿔을 만지는 걸 보면 확실하다.
이곳에 파니아라도 있었으면 대화하면서 떠들었겠지만,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서 떠났으니,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있을 때는 사고만 치는 하이엘프였는데, 없으니 답답하고 아쉬운 아이다.
콰드득.
그만 먹으라고,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사정없이 먹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으니까.
☆☆☆
"흡!"
콰앙!
"...단단하군."
얼마 전부터 생겨난 방어막.
마법국으로 가는 진로에 생겨난 방어막으로 인해서 진군이 늦어지고 있었다.
아니,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미동조차 하지 않아.'
라나와 함께 공격을 하는데도 미동도 없었다.
"단단한 정도가 아닌데? 고유능력까지 썼는데도 끄떡도 안 하는 거 보면."
슬슬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후우... 하앗!"
쾅!!
이번에도 효과는 없었다.
"야, 대머리. 저기 위에 있는 인족들이 비웃는 거 같지 않아?"
딱히 그런 느낌은 없고 든든함에 안심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어떡할까.
마왕이 온다면 해결될 방어막이다.
욕심을 부리면서 깨부술 필요는 없다.
그저 잠깐 자존심만 상하면 될 일이다.
"하앗!"
쾅!
그 자존심이 문제였다.
무기를 고쳐쥐면서 얼마 전에 마왕에게 말했던 '도움'을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우리의 손에 벅차보이는 일이라고 그녀에게 쉽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녀라면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들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고 달려올 것이다.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하냐는 실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실망은 내가 내게 할 뿐이다.'
"흡!"
쾅!
명색의 거인족장이다.
일족의 모범이며, 그들이 나아갈 지표로서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
다행히 마법사는 방어막을 펼친 뒤로 소식이 없었다.
'이 정도로 단단한 방어마법을 사용하는 자다. 이것만으로 끝나진 않을 거다.'
아니면 흠집조차 내지 못 하는 자신들을 무시하고 지켜보고 있거나.
까드득.
쾅!!!
"대머.. 리노, 해결 가능해?"
"모른다."
콰앙!!!
그저 두드릴 뿐.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
세 번으로도 안 되면 될 때까지.
"언젠가는 부서지겠지, 마법만 펼치고 소식조차 없던 걸 후회하게 해주지."
역시 자존심 상한다.
☆☆☆
"하아... 저 답답한 대머리.."
또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면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리노가 말한 마지막 말로 미루어보아, 방어막 보다 방어마법의 시전자에게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마법만 펼치고 공격이 없는 건 수상했다.
자신들의 발 묶기나 이곳을 포기하면 시작할 전진을 위해서 마력을 모아 두는 것일 수도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이치다.
'열 받아서 생각을 포기했네.'
머리도 잘 돌아가는 리노가 자신도 생각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인데, 저리도 생각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초반에는 깔끔한 자세로 투력을 모아서 공격했는데, 지금은 그냥 난타전을 방불케 하는 공격을 가한다.
'위쪽에 있는 인족들도 긴장하기 시작했어.'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드는 걸 보니, 어떠한 대책을 내놓으려는 모양이다.
가장 편한 건 마법의 시전자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고, 그 외에는 위에서 자신들을 요격하는 것.
'다른 방법은 내가 몰라, 그 방법을 생각할 대머리가 저러니..'
"쯧! 인족이 대머리를 요격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지, 전원 리노를 보조해서 방어마법을 깨트려라!"
☆☆☆
'나의 아버지, 골리앗은 역대 거인족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강했다.'
자신은 아니다.
그냥 현재의 족장이 될 만한 수준.
순수한 무력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지혜도 있었기에 가능했으니, 딱히 자랑할 만큼 강력한 것도 아니다.
라나와 비교해도 약하고, 마왕에게는 더더욱 안 된다.
하물며 조부인 삼손에게도 안 될 것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용족중에서도 자신보다 강한 자는 많이 있다.
아버지의 강한힘은 라나가 물려 받았으며, 자신은 고유능력도 없는 범인이다.
특출한 것 하나 없는 범인.
마왕 같은 압도적인 강함도.
조부나 라나 같은 효과 좋은 고유능력도.
아버지 같은 거인족을 뛰어넘는 거대한 신체도 없다.
그래도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각이 있다.
부족한 점을 매우려는 노력이 있다.
범인에게도 범인만의 자존심이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펼친다면, 어딘가 한 곳은 연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생각 없이 되지도 않는 공격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난타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미약하게나마 반응이 있는 곳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
인족의 견제는 라나가 알아서 할 것이다.
무식한 근육돼지 같아도 전투력과 센스 만큼은 인정해 줄 만한 동생이니까.
형제이니만큼 자신의 생각을 깨달았을 거다.
지금처럼 인족을 견제해 주는 것으로 보면 확실하다.
여기서 자신의 역할은 전력으로 방어막의 얇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
라나가 전력으로 때리면 금이갈 만한 곳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심한 전력이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적의 계획을 깨부수는 것이 자신의 전력이다.
'여기..!'
"라나! 여기다! 이곳을 전력으로 공격해라!"
지시와 동시에 라나가 즉시 이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콰아앙!!!!
방어막에 미약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작은 균열은 거대한 균열을 불러오는 법.
자신과 라나가 균열을 기점으로 방어막을 깨부수고 있었다.
챙그랑!!
"깨졌다! 지금이다! 전원 공격해라!"
마왕에게 새롭게 보고할 점령지가 늘어날 것이다.
"마법사는 전부 모아라! 이 마법을 시전한 사람을 찾아라!"
누구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누구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한 번의 마법으로 버틸 것이라 생각한 인족에게 패배를 안겨 주거라!"
☆☆☆
"응?"
펼쳐 놓았던 방어마법이 깨졌다.
'시전하고 방치하기는 했지만...'
단단한 편인 마법이었다.
쉽게 깨질만한 마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지, 지속적으로 마력을 준 것도 아니고.'
방어마법은 실시간으로 보수하고, 적이 공격하는 부분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곳에 상주 할 수 없으니, 쉽게 깨부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한계다.
"무슨 일 있습니까, 라파엘?"
"아... 방금 한 곳이 함락 됐어."
그걸 깨부술 정도이니까, 함락도 쉽게 했겠지.
"이야... 되게 쉽게 말하네, 마르스 너 시말서 쓰게 생겼다?"
마르스가 두 눈을 가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왜죠?"
"푸훗! 너니까?"
"미안?"
더욱 중요한곳 일수록 튼튼하게 만들면 된다.
"마왕군이 어느 정도의 방어마법을 부술 수 있는 건지 알았으니까, 상관없어. 다음에는 더욱 강하게 만들면 돼."
어차피 아직은 공격마법을 쓸 일이 없다.
조금 더 방어마법에 마력을 투자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