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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34화 (134/156)

〈 134화 〉 마왕이니까

* * *

"..됐어, 더 이상 조사같은 짓은 그만할게. 네가 천사족의 라파엘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기적'의 내용도 그렇고."

충분하다기보단 캐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물어보면 다 말해 줄 거 같아서 더욱.'

"그래? 사이즈라도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네."

"..."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다.

'사이즈를 직접 듣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욱 흥분되니까.'

아무튼 아니다.

"뒷조사같은 건, 솔직히 나랑 안 맞고 말이야. 이 정도만 알아가도 소피아가 알아서 하겠지."

나무에 등을 기대면서 생각했다.

아직 걸리는 것이 있었다.

뭔가 놓친 것이 있으니 알아보고는 싶었지만, 왠지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후벼 파는 것만 같아서 꺼려지고 있었다.

'너무 다 말해주잖아, '기적'이 있어도 그렇지.'

기적이 있기에 마왕이 라파엘을 어쩌지 못한다.

'나라면 몰라도 소피아라면 그런 기적따위는 어떻게든 대처법을 만들 거 같은데...'

그 소피아조차 이기기 힘들었다던 마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 같은 이계의 존재는 여신이 만들어둔 법칙따윈 무시할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여신의 기적도 우리에게 만능은 아닐 거다.

어느 정도는 통할지라도 정작 중요할 때는 말을 듣지 않는 그런 것.

'나중에 소피아에게 물어나 봐야겠네.'

☆☆☆

왕국은 마법국에 비교해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암울했다.

연이은 패전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마법국도 패전을 이어가고 있었으니, 둘에 차이가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저씨, 여기 왜 이래요?"

지나가는 마을주민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차디찬 냉대였다.

"미친놈... 저것도 탈영병이구먼, 쯧쯧... 강도로만 안 변하면 다행이겠네.. 변태같이 생긴놈. 에잉!"

양팔을 벌리면서 동료들을 돌아봤다.

"내가 그렇게 변태같이 생겼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

마을의 여관은 조용했다.

젊은 사람이 적은 것은 마법국과 비슷했으나, 그나마 있는 사람들을 무언가에게 쫓기는 사람들처럼 불안해 보였다.

"읏차! 술나왔습니다, 손님들은 마법국쪽 사람이요?"

"응, 마법국에서 왔어."

라파엘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주인은 눈살만 살짝 찌푸리고는 다시 원상태로 돌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크... 부럽다, 부러워. 거기는 병사들의 대우는 확실하다면서?"

털썩...

'이 주인장...'

생각보다 한가한 것인지, 우리 자리에 앉아서 떠들고 있다.

누가 보면 일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아저씨, 일 안 해요?"

"하핫! 손님, 내가 바빠보여?"

주인은 자신의 뒤를 가르키면서 웃었다.

그렇다고 한가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왕국은 요즘 탈영병들이 늘어서 난리라니까, 손님들. 몇놈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산적이나 강도짓을 일삼고 있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무장한 군인출신의 산적들을 이길 수도 없지..."

그래서 아까 전에 마을 사람이 탈영병 같은 소리를 하면서 지나간 거였다.

"탈영병이 많아요?"

"음? 많이 있지, 계속해서 패전하지, 강하다는 라인하르트는 어디에 밖혀서 안 나오지, 병사들은 불만은 쌓여만가지."

주인이 고개를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왕국에는 답이 없다고 느낀 병사들이 탈영하는 거요. 마법국은 그나마 왕이 답을 내놓으려고 발버둥 친다고 들었는데, 이나라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답이 안 나오고 있지."

'과연.'

나라를 위해서 싸우기에는 희망조차 보이지 않으니 도망을 선택하는 병사들이 늘었다는 거다.

희망을 주어야 할 여왕과 기사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입에 발린 소리와 무소식뿐.

군의 사기를 올리려고 해도 결과가 없는 독려는 단순한 망언이 됐다.

"뒤에서만 나불거리는 건, 누가 못해! 뭘 보여주기라도 하든가!"

다른 테이블에서 마시던 늙은 남자가 소리쳤다.

"그려! 애초에 용사님 헌티 잘했으면 이런 전쟁도 안 일어난 거 아니여! 용사님이 우덜 헌티 해준 게 얼만디 싸우라는 것이여! 용사님을 화나게 한 것이 저들이면서!"

"영감님, 요즘은 그런 소리 했다가는 끌려 간다니까."

"냅둬!"

주인이 한숨 섞인 듯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요즘은 저런 사람들이 늘었으니 이해해주게나 손님. 영감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까, 솔직히 과거에 용사님 덕분에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소피아가 용사일적에 도움을 받은 인간들.

그리고 소피아를 소환한 국가인 글리아스는 그녀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였다.

그만큼 비례적으로 구원을 받은 인간도 늘어나는 것도 당연지사.

받은 은혜를 잊고 당장의 피해만 생각하는 인간이 있는 반면, 저 사람처럼 은혜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저 영감님은 하나뿐인 손녀랑 같이 마수에게 잡아 먹힐 뻔한걸 구해 줬다고 했나? 맞지요, 영감님!"

"암만! 숨어만 있는 탈영병 중에도 많을 것이여!"

'이런 장면을 소피아가 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쾅!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문을 박차고 등장하는 한 무리의 인물들이 있었다.

"흐음... 이곳에 탈영병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

흠칫.

조용히 있던 몇 명이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급진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수염을 만지면서 여관내부를 둘러봤고, 갑옷을 입은 남자들은 무기를 고쳐 쥐고서 사람들을 위협적이게 바라보고 있다.

"자수하면 탈영건은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겠다."

사람들은 조용했고, 그 누구도 자수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자수하지 않겠다는 건가? 다 뒤집어 엎어라!"

수염남자의 명령에 병사들이 여관에 있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내부를 부신다.

콰직.

"으악!"

쿵.

"아악!"

사람들은 병사들의 횡포에 대항할 수가 없었고, 더욱 공포에 질리면서 병사들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병사도 수염남자도 익숙하다는 듯이 일을 행하고, 사람들은 인간들에게서 만들어진 아비규환에서 시선을 돌린다.

자신들에게 병사들의 폭력이 닫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을 돌렸다.

"이봐요! 당신들 뭐 하시는 건가요!"

올리비아가 병사들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쳤다.

"흠? 뭐지 자네. 지금 나라가 하는 일에 반앙한다는 건가?"

그러고는 수염남자는 올리비아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여봐라! 탈영병혐의가 있다. 저 여자를 붙잡아라. 크흐흐... 당장 조사실로 데려가 진득하게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 무슨..!"

수염남자의 말에 나와 프레디가 맞서려 했다.

"둘은 그대로 있어."

라파엘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호오.. 여기 탈영병이 하나더..."

"닥쳐라, 나는 마법국에서 왔다. 더 이상 되지도 않는 짓을 벌이면, 안 그래도 삐걱 되는 각국의 관계가 네탓으로 파탄이 나겠네."

그러고는 품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왕이 내준 서류다. 의심되면 직접 읽어 봐도 되고."

"그 따위 위조인 게 분명하다."

"만약에 아니라면?"

수염남자의 눈이 떨린다.

"자신 있나? 이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 '이자의 신원은 마법국의 국왕이 보증한다. 만일 이자에게 해를 입힌다면 마법국 자체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라고 말이야."

라파엘이 서류를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덤으로 이 서류를 받았을 때 들었던 말인데, 해를 입힌 자가 국가에 소속된 인물이라면 그 국가 전체를 적대시 한다고 했어. 다시 한번 물을게, 이 시국에 마법국과 적대시할 자신 있어?"

사류는 조금 낡았지만, 분명하게 마법국의 인장이 밖혀 있었다.

만약 라파엘이 서류를 위조 한 것이라면 큰 죄가 될 터.

일개 관리가 판단할 만한 일은 아니어도 누구도 쉽게 위조할 만한 서류도 아니다.

'설마 이반과 연관이 돼 있는 건가.'

"자신없으면 꺼져, 너는 지금 마법국에게 결래를 범하고 있으니까. 확, 보고를 하기 전에."

"크윽..! 확인하고 다시오겠다! 일단 여기서 기다려라!"

수염남자와 병사들은 자리에서 도망을 쳤다.

꼴사납게.

☆☆☆

"라파엘, 그건..."

"이거?"

라파엘은 서류를 조심히 품속에 집어넣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동료들과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 받은 거니까, 위조는 아니야."

...공인인증서처럼 새로 발급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저기, 라파엘씨 도대체 정체가..."

"응? 신이 말 안 했어?"

'네. 깜빡했어요.'

생각할게 많아서 말하는 걸 깜빡했다.

물약병을 흔들면서 짜증 내는 올리비아에게서 도망을 쳤다.

'프레디라면..'

음.. 프레디도 막아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저기..! 라파엘, 진짜로 저 수염이 연락을 하면..."

"그럴 리는 없어, 저런 종류의 인간은 그런 대담한 짓은 못해."

무슨 자신감인가.

"설사 하더라도 문제는 없을 거야."

프레디가 다가왔다.

"라파엘, 일단은 자리를 피합시다."

시선이 몰렸다.

횡포를 부리는 관리를 내쫒았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튀면 돼. 어차피 튀어야 겠네. 신, 튀자."

"..."

이 할머니가 오랜만에 여행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

챙그랑!

우리는 마을에서 도망치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그들을 공격했어도 도망은 쳤어야 했다.

과정이 바뀌었을 뿐 결과는 같다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팔짱을 끼고 머리에서 흐르는 물약을 느끼면서 선언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이 자식이 이제는 한 번으로는 소용도 없네."

휘익.. 챙그랑!

"아악!"

"저희는 더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딴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라파엘은 어쩌시겠습니까?"

"응? 나는.. 왕국은 아까 것만 봐도 상황을 알 수 있겠어, 난 돌아가야지."

라파엘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마법국과 왕국, 전부 자신들 손으로 뿌린 씨앗이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

그녀가 로브를 내게 주면서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한쪽은 전쟁이 일어났어도 절망적인 분위기가 돌지 않도록 노력하고, 한쪽은 과거의 영웅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무너져 내린다. 심지어 대항할 전력조차 없으니까, 더 심하지."

"라파엘씨..! 날개가.."

우리를 살짝 돌아보는 그녀에게서 작은 미소를 보았다.

"너희랑의 수일간의 여행, 정말로 재미있었어. 다음에 만난다면 적이 될 수도 있지, 그래도 이 수일간은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어서 좋았어."

"천사족."

그녀에 손에 들린 나무 지팡이.

"스피어, 비행한다. 보조해."

<예, 그래도="" 저들에게="" 이="" 정도로="" 해주는="" 이유가="" 뭔가요,="" 라파엘.=""/>

스피어라고 말했다.

'에고스태프..!'

"마왕은 아니니까, 마왕이 아니니까. 그들에게는 원망이 없어, 스피어."

'현 마왕에게도..'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말은 이 자리의 누구도 듣지 못했다.

"잘 있어, 내 새로운 '친구'들."

그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부디 너희는 나보다 오래 살렴."

☆☆☆

라파엘이 사라진 하늘을 우리는 오랜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신혁, 너는 들었나?"

"그녀가 '그' 라파엘이라는 것 정도는... 미안 말하는 게 늦어졌네."

프레디는 잠시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다.

"우리에게 말할 시간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뭔가를 알고 있었는데, 우리만 모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어."

나는 그 말을 한 올리비아에게도 고개 숚여서 사과했다.

"됐어, 화는 다 풀었고. 그러면 신혁, 다음은 어디였지?"

챙그랑!

...지금 타이밍은 머리를 맞을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앗! 미안, 나도 모르게. 네 정수리를 보니까 반사적으로.."

이런, 조건반사였다.

"엘프들의 나라. 그린우드, 내가 트라우마가 심한 그곳."

다시 한번 그곳으로 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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