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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33화 (133/156)

〈 133화 〉 눈물없는 울음

* * *

"바퀴?!"

벌레다.

바퀴벌레다.

그것도 길이가 3미터는 넘을 것 같은 바퀴.

"끼에에에에엑!"

"끼야아아악!!! 징그러 시발! [ICE SPEAR]!"

뿌직!

"히이익! 즙!즙!즙!즙!"

왕국으로 빠르게 이동하려고 들어간 숲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바퀴형태의 마수 덕에 마법을 무영창으로 사용도 해 보았다.

'...눈 마주쳤단 말이야...'

마치 현미경으로 확대한 바퀴벌레와 눈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치이이익.

"신, 이 마수는 머리만 터트린다고 끝이 아니야, 태우지 않으면 알을 까고, 그 끝은... 히야아악!"

치이익.

의문에 물약을 들이 부우면서 바퀴를 녹이던 올리비아가 징그러움을 못 이기고 불계통마법을 영창 한다.

"리아! 여기 숲! 불계통은 위험해!"

"놔! 프레.. 프로이드! 놓으라고! 분명 이 숲속에는 더 있을 거야! 숲 전체를 태우지 않으면..!"

맞다, 숲을 태우면 이곳에서 더 이상 바퀴랑 마주칠 일은 없을 거야.

"크흐흐흐... 역시 리아, 배운사람. 파이어 인 더 홀!"

"어?! 야! 신!"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성장한다고 했던가.

지진부진하던 마법을 실시간으로 개발했다.

착탄시에 정면으로 퍼져나가는 불계통의 마법을.

"화염병이다, 이 더러운 바퀴벌레들아!"

나와 올리비아의 폭주에 프레디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크기가 작았을 때도 혐오감을 불러오는 생물이 3미터가 넘는 크기로 나타나서 더듬이를 흔들어봐라.

누가 폭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바로 앞에서.

눈도 마주치고.

'그런데, 역시 불계통은 큰일이 날 거 같네.'

징그러운 거대 바퀴를 제거할 확실한 방법이라고 눈이 돌아간 것이 문제였다.

당장 마법을 취소하자.

'...어떻게 취소하는 거지?'

마법을 만든 것까지는 좋은데, 취소할 방법을 모르겠다.

'소피아처럼 손으로 튕겨낼까? 아니야, 그랬다가는 신혁바베큐가 될 거 같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신혁이 된다.

"망했네."

"[REVERSE BARRIER][TARGETING][FREEZING]."

쾅!

뒤에서 들려온 소리와 함께, 내 마법은 원형의 공간 안에서 폭발했다.

빈약한 불꽃은 공간의 벽을 파괴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바퀴만을 얼려 버린 마법.

그 마법은 조금의 벗어남도 없이 오직 바퀴만이 얼어 있다.

"어... 감사합니다?"

마법으로 화재를 막아준 라파엘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별로, 아무래도 친구들이랑 여행 중인 음유시인은 맞는 것 같네. 숲에서 불마법이라니. 너무 미숙하고 위험해."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진다.

우리를 훈련시켜 주던 소피아가 들었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지만...

나와 올리비아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분노한 듯한 프레디를 바라보았고, 그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피했다.

"하아... 라파엘 피해를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그것보다 리아는 음유시인겸 연금술사?"

'강철의?'

또 실수로 말이 헛나갈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예? 연금술사요? 아니요, 마법사요. 그리고 연금술사와 마법사의 경계가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올리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디 동굴 속에서 살다오셨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몰랐네. 신도 마법사인 줄도 몰랐고. 마법사 둘과 검사 하나라... 밸런스가 안 좋네, 이 파티."

정확하게는 검사겸 마법사와 검사 하나, 마법사겸 머리사냥꾼 하나다.

'...어쩐지 전체적으로 물리계열 같은데?'

확실하게 밸런스가 안 좋아 보인다.

"척후를 구해, 나는 그것 때문에 많이 고생했어 척후는 중요해. 정말로.. 매우..."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단지 목소리가 낮아진 것으로 보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 저희는 친구끼리 여행을 하는 거여서요. 다른 사람은 좀.. 아! 그렇다고 라파엘씨도 싫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 리아. 알겠어, 그래도 척후는..."

"아아! 알겠어요! 고려해볼 게요!"

올리비아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척후이야기를 끝냈고,라파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끝마쳤다.

"끼에에에엑!"

"[PRESS THE GROUND]."

콰직.

우욱. 또 즙이.

"내가 같이 있는 동안은 안심하렴. 난 마법, 특히 방어마법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못 봤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라파엘에게서 작은 미소를 본 것 같았다.

☆☆☆

숲에는 어둠이 찾아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야영을 했다.

프레디와 올리비아가 먼저 잠에 들었고, 나와 라파엘은 불침번을 섰다.

그녀가 펼친 방어마법은 장담한 것처럼 인족령의 마수들은 접근조차 못했고, 우리는 타오르는 모닥불만을 지키면서 조용하게 깨어 있었다.

어쩌면 마왕령의 마수들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것같이 단단해 보였다.

우리와 만났을 때부터 계속 쓰고 있던 로브속에 다리를 집어넣어서 온몸을 가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라파엘.

"밤이 많이 쌀쌀해졌네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라파엘도 많이 춥죠?"

얼마나 추우면 로브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을까.

"..."

"저기, 라파엘. 대화할 줄 모르시나요?"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녀에게 참다못하고 말을 걸었다.

'지루해서 잠들 것 같다고!'

"...아니? 이런 상황도 오랜만이라 생각 좀 하고 있었어. 신, 프로이드와 리아는 연인 관계?"

연인 관계 같아도 둘은 아직 진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관계.

"그냥 썸만 죽어라 타고 있죠."

"혹시 프로이드가 불구?"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요."

또다.

혹시나 해서 '썸'이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알아들었다.

"내 친구도 저런 식이었다고 들었어. 결국에는 여자 쪽이 먼저 나서게 만들었지."

정말로 그녀는 무엇일까.

이따금 생각에 깊이 잠길 때도 있었고, '옛 친구', '옛 동료'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없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 친구분들은 지금은 뭐 하고 있어요?"

"죽었어."

...갑자기 탈룰라를 해 버렸다.

"아니, 하나는 살아 있나? 기억이 전부 잃어버렸을 거니까, 살아 있다고 표현해야 하나? 내 친구였던 '그녀'는 죽고, 이제는 전혀 다른 누군가가 됐다고 해야겠네."

'기억? 전혀 다른 누군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원하는 정보가 뭐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마치 내가 그녀를 캐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들렸다.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라파엘, 무슨 소리를.."

"염화, 내용까지는 몰라도 너희가 염화를 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심지어 내 친구는 염화를 옅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주파수를 알면 옅들을 수 있다고 하나 봐."

검에 손이 갔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신, 네 실력으로는 내 방어마법에 금 조차 못가게 만들 거야."

과연.

소피아라면 몰라도 나는 얼마나 단단한지 가늠조차 안 되는 방어를 뚫을 수 없을 거다.

"처음부터 알았다면은 왜, 우리를 따라온 거지?"

'최악의 상황에는 모두를 깨우고 피신시킨다.'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다.

"그냥, 너희에게는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세상이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마법국이나, 왕국의 시야뿐만 아니라. 마왕국이라고 불리는 곳의 시야도 필요하니까."

"..."

따닥!

정적이 어두운 숲속을 감싸고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귓가에 울린다.

"그러니 검은 내려놔, 난 너희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해할 생각은 없어."

"내가 그걸 어떻게 믿는데? 난 충분히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내 친구들을 위험속에 끌어들였어."

"음... 어떻게 믿는다라... 그래, 이건 어때?"

그녀가 로브를 내렸다.

그리고 들어나는 순백의 날개.

리리스처럼 피막이 있는 날개가 아닌, 새하얀 깃털들이 나 있는 날개 였다.

"어... 그게 왜?"

진짜로 그게 뭔 상관인데?

"응? 천사족인데? 모르겠어?"

'알겠냐? 난 이 세계에 온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그것만 보고 알 거 같냐?'

라파엘이 당황한 것 같다.

"혹시! 혹시라도 나 말고 다른 천사족이라도 본 거야?!"

그녀가 나를 덥치면서 깔아 뭉갰다.

'앗! 야외가 첫 경험이라니! 안 돼! 모두가 보고 있..'

"크흠! 지금 뭐 하는 거지?"

말을 라파엘에데 했지만, 내 속에 또 다른 신혁에게도 한 것이다.

제발 상황을 좀 보라고.

라파엘의 눈동자가 떨렸다.

봤다고 말해 달라는 것처럼 떨려왔다.

"본적없어, 천사를 본 건 네가 처음이야."

"..그래, 그렇겠지..."

왜일까.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은데, 눈물이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은 뭘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나도 모르게 라파엘의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움찔!

잠깐은 움찔거렸어도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무슨 일인데, 같은 천사족을 찾는 거야? 내가 찾아 줄까?"

장담할 수 없는 말.

어쩌다 보니 튀어나온 한 마디의 말.

그 말에 라파엘의 무표정에 금이 갔고.

"읏..! 아니, 소용없어. 신."

깨져버렸다.

"신, 전설의 용사 이야기는 들어 봤을 거야. 이계의 용사, 초대 성녀, 무왕, 제국의 여제, 그리고... 최후의 천사족."

입술을 깨물면서 당장이라도 울어 버리고 싶어 하는 눈물이 매말라버린 천사.

"라파엘. 그게 나야, 자.. 신, 이제 천사족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정보가 되는지 알았지?"

여리고 여려보이는 마지막 천사가 눈앞에서 눈물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

따닥!

"라파엘, 조금 진정됐어?"

"그래."

내 위에서 덥칠듯이 올라탔던 그녀가 다시 나에게서 떨어졌다.

...좋은 냄새가 났다.

"또 표정이 사라졌네?"

이제 보니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을 들어내면 너무 슬퍼져서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을 뿐이었다.

"..."

휙!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돌린 라파엘.

그녀를 보면서 헤실거리며 웃었다.

"크크크... 재밌네, 그런데 왜 우리한테 그런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거야? 우리가 라파엘을 조사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았다며?"

그점은 이상했다.

알면서도 따라온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그' 라파엘이라는 걸 시원하게 밝힌 것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너희랑 있으면 그들이 떠오르거든, 마침 숫자도 똑같았고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어도 옛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었으니까. 그러니까, 너희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 거야."

"아..! 그러면 내가 가끔했던 말을 알아들었던 것도?"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초대 용사에게 들었던 말인 것 같다.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들이었지."

'추억인가...'

"덕분에 이 셋 중에서 네가 제일 호감이 갔어."

"...누가?"

전부 거짓말인가, 혹시 무표정도 고도의 연기인가?

경계심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예전에 시연누나가 한 말이 있지.'

그 말을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동의해 버린말.

'야, 김신혁. 어떤 여자가 너보고 '호감이가요' 같은 말을 하면 무조건 무시해. 속지마, 그거 전부 다단계나 조상님 찾는 사이비들이니까.'

말이 너무나 아팠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팩트.

심지어 셋 중에서 내가 제일 호감이 간다고 했다.

저건 무조건 거짓말이다.

내가 전생에 덕이라던지, 기운이 맑아 보인다던지 하는 말을 많이 듣기는 해서 속지 않는다.

'내가 쌓은 덕은 덕질 말고는 없다!'

"신, 네가 한 행동들이 그 사람들을 가장 많이 떠오르게 했어. 그래서 나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는 알려주려고."

"거짓말! 내가 호감이 갈리가 없어! 정말로 호감이 가면 나와 결혼을 전제로.."

"미안, 그건 아니야."

호감이 가 버렸다.

"난 나이가 너무 많아, 네 나이 때를 찾으렴."

"하.. 할무니... 제 나이 때의 여자들에게는 관심도 못 받아요.."

내 말에 라파엘이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끝까지 철벽은 무너뜨리지 않았다.

"...크흑! 라파엘. 그래, 혹시 우리가 마음에 들면 우리와 계속 함께하는 건 어때?"

그녀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려서 좋고, 우리는 새로운 동료, 그리고 인족에게 넘어갈 수 있는 강한 전력을 얻는 거다.

"아니, 난 마왕이란 존재에게 협력할 생각도, 할 수도 없어."

다만, 그녀가 거절하지 않았단 전제하에서.

"왜..!"

"현 마왕이 어떤 존재인지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정도는 알았어, 너희와 같이 다닌 것도 마왕이 어떤자인지 알기 위해서야."

소피아가 어떤 인물인 줄을 알고, 이 세계의 인족이 어떤 인물인지 알면서 어떻게 우리를 거절할 수 있을까.

"난, 마왕이란 존재가 싫어. 조금 더 여행을 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야. 그래도 난 '마왕'이란 개념부터가 싫은 거야. 전대인 내 친구였어도 '마왕'이 된 그에게 반격에 깃발을 들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마왕'에 대한 일족의 복수, 동료들에 대한 복수. '마왕'은 나를 막을 수 없어. 나는 로자리아의 '기적'으로 얻은 힘 때문에 생겨버린 '마왕'이 막을 수 없는 존재니까."

그녀에게서 '기적'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마왕'에 대한 복수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나도, 마왕도, 신, 너까지. 여신이 아니면 이 저주를 풀 수 없을 거야. 남겨져버린 내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저주를 원망하고 싶어도 친구가 남긴 마지막 축복이기에 원망할 수도 없으리라.

"신, 더 얻고 싶은 정보는 없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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