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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32화 (132/156)

〈 132화 〉 수상함

* * *

"신혁, 그녀를 우리 파티에 넣은 이유가 뭐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정체를 숨겨야하는 우리에게는 위험한 거 같아."

급격하게 어색해진 술자리를 끝내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 도착했다.

아니, 지금은 나와 프레디의 이인실에 모였다.

"말해 봐,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서 음유시인의 악기로 만들 거야."

올리바아 부드럽운 미소와 함께 물약병을 흔들었다.

'점점 시연누나 닮아 가는 것 같은데...'

"음유시인은 미안.. 이유 없이 돌아다닌다고 하면 수상하잖아, 돌아다니는 데에 큰 이유가 필요 없는 직업 중에 이것이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 됐지."

"악기도 없는데?"

하필이면 거기까지 생각 못한 것이 문제였다.

변명거리로는 좋았는데, 중요한 악기가 없었다.

"어..노래로?"

챙그랑.

"악!"

"노래는 무슨! 나 노래 못해! 세이렌씨의 노래를 듣고서 아이돌 같은 개소리를!"

벼..변명거리로는..!

"난 세이렌씨와 비교하면 매미가 성악가 앞에서 '스피시오~! 스피시오~! 스파파파파...' 거리는 수준이라고!"

묘하게 구체적이다.

어차피 이번만의 설정이다, 의심 없이 돌아다니기 위한 변명거리로 생각하자.

올리비아도 변명거리 자체에는 불만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라파엘이라는 저 사람, 뭔가 이상해. 며칠 동안 저 사람도 같이 알아보려고."

같이 다니면 우리에게도 제약이 따르지만, 그 제약 때문에 넘기기에는 너무 찜찜했다.

집안의 가스불을 끄고 온 것인지, 안 끄고 온 것인지 기억이 안날 때 같은 찜찜함.

그녀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리비아도 내 진지한 태도를 보고 인정을 한 것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에 손을 얹으며...

"큰일이야, 프레디! 내가 신혁의 머리를 너무 많이 때렸나 봐!"

...

"올리비아, 일단 그를 눕히자.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 같아."

내 상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신혁. 앞으로는 조금만 때릴게. 물약병이 어디 안 좋은 곳을 때린 건가?"

"잠깐만, 두 사람. 나는 멀쩡해, 아픈 곳 따윈 하나도 없다고!"

이 말에 올리비아는 눈물까지 흘린다.

"흐윽! 자기가 멀쩡하데..."

장난도 이쯤 되면 상처받는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이 파티의 리더는 신혁, 너니까 네 판단을 믿을게."

다행히 올리비아가 믿어 주었다.

프레디도 나를 신용해주면서 라파엘의 조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 신혁. 네가 우리를 희생시키며까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자는 아니니까. 너를 믿겠다."

난 역시 이 파티가, 내 친구들이 좋다.

근대 왜 올리비아는 또 물약병을 든 것일까.

"올리비아?"

"응? 아.. 이거? 미안, 나도 모르게 습관이 돼서. 하하..."

물약병을 흔들면서 미소짖는 것이 조금.. 아니, 많이 무섭다.

"나도 신혁이랑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촉'이라는 것이 생겼나 봐."

프레디도 그녀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건지,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촉이라니! 무슨 촉?!"

"라파엘씨, 꽤나 미인이더라? 말해 봐, 라파엘씨에게 정말로 사심이 하나도 없는지, 없다면 가만히 있고, 있다면 얌전히 머리를 내밀어서 자수해."

그녀의 눈은 내가 거짓을 고한다면 밝혀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요즘 머리에 굳은살이 배기는 것 같아. 이러다가 리노처럼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얌전히 머리를 내밀었다.

챙그랑!

"꽥!"

☆☆☆

파티의 상의가 끝나고 방에 돌아왔다.

'아까부터 창밖만 바라보네.'

자신들이 모이기전에도 라파엘은 방에 들어오자, 창밖만을 응시했고, 지금도 아까와 같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 정도면 조금 수상하기는 한 것 같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끝났나? 괜히, 내가 껴서 친구들과 같이 마시는 데에 방해한 것 같네."

"엇..! 네?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그냥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할지 정하는 것뿐이었어요. 하하..."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조금은 놀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있어야지.'

생각은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표정으로 저 사람을 떠보기는 글렀네...'

이런 중대한 일을 떠넘긴 신혁의 머리를 못 부신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요즘은 더 튼튼해진 거 같았어.'

"아니야, 친구, 동료와의 대화는 중요해, 그들을 잃어버리고 나서 '더 대화할걸'이라고 후회해도 늦으니까.'

"...말이 조금 심한 것 같네요. 마치 제가 그들을 잃게 될 거라고 말하시는 것 같아요."

표정을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뻔뻔한 거 였다.

"미안, 사과할게. 하지만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래... 그냥 이미 겪어 봤기에 해 줄 수 있는 연장자의 충고라고 생각해줘."

".."

라파엘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 돼, 뭔가를 더 캐내야 해.'

"저.. 라파엘씨? 혹시 어디로 가시나요? 괜찮다면 저희도 라파엘씨를 따라가도 될까요? 하하... 다음은 왕국으로 목표를 잡았지만, 구체적인 장소는 정하지 않았거든요."

"...없어, 나도 세상을 돌아보는 중이야. 그냥 왕국도 보고 싶을 뿐이지,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어. 지금은 지명도 잘 모르고."

역시 내일 신혁의 머리를 깨버려야겠다.

'어색해! 대화가 이어지질 않아!'

뭔가, 대화를 이어갈 만한 화제를 찾아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라파엘씨의 이름! 그거 옛 전설에 나오는 그 라파엘 맞죠? 가끔 부모님들이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으로 지어 주시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후후후."

그 사람들처럼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며 지어 주는 이름들.

부모의 바람처럼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아직까지도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고려되는 이름 중에 하나였다.

".. 전설 속이라.. 그래, '그' 라파엘이지."

후우...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포기한다.

"신혁새끼, 죽었어..."

대화를 끊어먹는데에 뛰어난 사람이랑 대화라니, 역시 용서하면 안 됐다.

"신혁?"

"예? 아니요! 신이요! 신! 아까 그 조금 모자라 보이는 친구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제 떠올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호감가는 사람?"

"...누구요?"

누가 호감이 간다구요?

'그래, 정말로 수상해. 신혁이 이럴 때는 참 대단하다니까.'

그녀가 말하는 호감가는 사람이 만에 하나... 아니, 일조에 하나의 경우라도 신혁이라면 무조건 수상한 인물이다.

소피아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조사하라고 했을 거다.

"아까 나에게 동숙을 허락한 사람 말하는 거 아니야?"

"맞는데요. 정말로 호감이 간다구요?"

정말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옛 동료들을 떠올리게 하거든, 동료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으면서도 동료를 위해서 행동할 거 같다고나 할까?"

제 멋대로 행동하기는 했다.

물론 그렇다고, 프레디에게 들었던 것처럼 동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안 했다.

"또 바보같이 행동하면서 동료를 웃게 해주고, 또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동료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 동료를 위해서 한없이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감정이라는 것이 담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움...'

"동료가 다치는 걸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 전부 다, 내가 잃어버려서 대화할 수 없는 그리운 동료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호감이가."

잠깐동안 마주친 신혁에게서 많은 걸 느꼈다.

그에게서 그녀가 잃었다고 하는 동료들과 비슷한 부분을 본 것 같다.

"음... 역시, 한동안 저희 같이 다녀요!"

"...그래."

수상하면서도 불안한 저 사람을 그냥 버려 두기는 힘들다.

'역시 신혁에게 배운 건가?'

우리 바보 용사는 이상한 부분에서 우리를 감염시켰다.

"혹시라도 신이랑 잘 될 수도 있잖아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면서 그녀에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철벽이었다.

"그건 됐어, 어딘가 변태 같은 부분도 옛 동료를 떠올리게 만들어도... 내 나이가 조금..."

마지막 말은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들리지 않았어도 앞부분은 들렸다.

'...미안, 신혁. 또 고백도 안 했는데, 차였어 너. 그러게, 분위기에서 풍기는 변태력 좀 줄이라니까.'

정신적으로 때렸으니, 물리적으로 때리는 건 용서해주자.

☆☆☆

"커흑!"

"뭐야, 신혁. 또 무슨 일이지?"

자신의 검을 손질하던 프레디가 내게 물었다.

"아니... 왠지, 의문에 1패를 겪은 기분이야."

"뭐야, 늘 있는 일이네."

1패가 원 플러스 원 행사처럼 얹어졌다.

☆☆☆

"가자! 왕국! 노려라! 전국제ㅍ...! 끄악!"

"어휴! 이 멍청아! 제발 이상한 짓 좀 그만 하라니까!"

임시 파티원도 생겼으니, 조금은 색다른 출발 구호를 외치려고 했는데 올리비아가 막았다.

"끄어어어억..."

"올리비아, 거기는.. 괜찮나, 신혁?"

내 다리 사이를 발로 차서.

프레디가 고통을 상상했는지, 침을 흘리면서 고환을 붙잡으며 쓰러진 나의 허리를 두드려 주었다.

같은 남자라면 그 어떤 적이라도 공격하지 않는 곳에 치명타를 맞아 버렸다.

"여기가 어디요! 아랫도리에 감각이 없이니, 어떻게 된 일이오!"

아파도 한번, 이 고통에는 꼭 해야 하는 약속의 대사를 외쳤다.

소피아가 있었다면 받아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하필이면 다리가 영 좋지 못한 곳을 맞았어요. 선생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고ㅈ... 응?"

조금 부실해도 누군가 맞받았쳤다.

"틀렸어? 미안하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나."

라파엘이.

'다른 두 사람도 모르는 이걸 받아친다고?!'

어떻게 이걸...

'혹시 빙의나 환생?!'

소피아도 자력으로 환생을 했으니, 또 다른 환생자가 있을 수도...

"동료.. 그러니까, 내 옛 친구가 방금 그 말에는 이런 식으로 받아쳐야 된다고 했지,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힌트는 있네.'

그녀의 옛 동료라는 사람이 지구출신. 그것도 한국 출신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겠다.

'시작부터 중요한 힌트가 나왔다라... 처음부터 쉬우면 나중이 굉장히 힘들어지는데...'

그러면 처음부터 자신을 희생하고 후에 있을 난이도를 낮추자.

"라파엘,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주세요. 애는 다섯이.."

"미안."

칼 같이 차이고, 처음부터 쉽지 않게 만들었다.

차일걸 알았어도 왜 가슴이 이렇게 아아파지는 걸까.

"라파엘씨? 신은 신경 쓰지 말고 왕국으로 떠나죠? 잠깐이어도 동료니까, 추억만들기 해 봐요."

"그래, 리아. 세상구경은 여럿이서 하는 것이 좋으니까."

프레디는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한마디를 던지고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행동부터 고치라니까."

아무도 모르게 희생된 내 실연횟수여 울어라.

넌 울 자격이 있다.

"크흡! 같이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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