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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31화 (131/156)

〈 131화 〉 이상한 동행

* * *

마르스군이 후퇴한지 수일후, 소피아가 사흘간의 휴식을 하기시작했을 때, 그 시간의 신혁파티는 인족령에 잠입해 있었다.

"이 사장님이?! 우리는 얼굴이 알려져 있다고! 뭐가 안경을 벗으면 못 알아 본다는 거야?! 말이 돼?!"

올리비아의 불평과는 다르게, 소피아의 판단은 정확했다.

"왜, 못 알아보는 건데?!"

"역시 안경이 본체.."

머리색부터 눈색까지 다양하게 변장한 두 사람과 비교해서 안경 하나만 벗은 올리비아.

그런데 아무도 못 알아본다.

안경을 벗은 뒤에 드러난 외모가 주변의 이목을 끌었어도 단 한 명도 못 알아봤다.

"안경이 본체인건 국룰인가?"

챙그랑!

"악!"

올리비아가 신혁의 머리에 물약병을 휘둘렀다.

안경 뒤의 외모는 어딘가 심약해 보이고 지켜줘야할 것 같은 덜렁이상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깡패 그 자체였다.

"잠깐만.. 올리비아 머리에서 피나는 것 같아.."

따듯한 물이 흘러내리는 걸보면 확실하다.

"그거 회복물약이라 네 머리통이 깨져도 바로 회복 가능해, 연구실에서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신작이니까, 효과는 네가 보증하지."

".."

아무래도 실험당한 것 같다.

그녀가 잔뜩 열이 받은 상태에서 장난을 친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의 잘못...

조금 억울해서 눈앞에 있는 술을 들이켰다.

"크하~! 정말로 아무도 신경 안쓰네."

떠들썩한 술집에서 물약병을 머리에 휘두르는 일이 발생했는데, 잠깐동안 흘겨보고는 금세 자신들이 같이 마시던 인물들과 떠들고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면 볼 의미가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만 보는 쪽을 의심해야 하지."

'흥미롭지 않다고? 술자리에서 뚝배기 깨는 게?'

자고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불구경, 싸움구경이다.

"나라면 관심 있게 볼 거 같은데? 뭔 일인가, 하고 말이야."

"그야, 네가 잘못했으니까."

올리비아가 뼈를 때렸다.

"그래도.."

"음... 그래, 정정할게. 뭔지는 몰라도 네가 잘못한 것 같으니까."

...술이 쓴것이 아니다, 인생이 쓴 거다.

"크흐..!"

"신혁, 우리는 계속 떠들자고, 이런 술집에서 떠들지 않고 마시고만 있는 것이 더 관심이 쏠릴 테니까."

프레디의 말이 맞다.

괜히 적진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상사를 까거나... 그래! 내가 왜 인기가 없는지 알아.."

""행동.""

"..."

내 파티원들은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안 좋아하면 팩폭도 안 하지.'

인족령의 분위기라던지, 일반시민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려고 왔지만, 생각보다 그들의 일상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마치 아직은 남의 이야기.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경을 안쓰는 건지, 아니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건지...'

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상자들이 나오는 데, 이곳은 평화 그 자체였다.

소피아가 용사로서 여행을 다니기 전부터 시민들이 겁을 먹는 건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말고는 없었다고 했다.

가끔.

"들었어? 마르스라는 기사가 지휘를 맡았던 군이 후퇴했다네."

"아... 그 남색가 지휘관? 초임이 그렇지, 뭘 더 바라?"

그 전장에서 모든 물자와 병력을 안전하게 후퇴시킨 것만 해도 칭찬받아도 이상할게 없는 지휘관이었다.

병력을 무능하게 희생시키지 않고, 자존심과 경력에 금을 만들면서까지 선택한 전략적 후퇴.

"프레디, 마르스가 우리를 보면 죽이려고 달려들겠지?"

"...그래, 그냥 죽어 줄 생각은 없어도.. 뭔가, 마르스에게 원한 가득한 시선을 받을 생각을 하니까, 조금은 힘들군."

한때, 둘은 의형제였고, 프레디는 그의 졸업식도 시간을 쪼개서 찾아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다.

'아끼는 동생이 칼을 들고 공격한다라... 생각해 보면 소피아에게 '용사 김신혁'은 현재의 프레디에게 마르스 같은 느낌이었겠네.'

그녀를 성녀로 알고 있을 때, 마지막은 큰충격을 먹었어도, 그전까지는 마냥 모질게 대하지 않았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것 좀 줄여야겠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레고리 도련님과 마르스가 설마 그런 사이일 줄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라는 것은 알았는데, 하아..."

역시, 프레디도 모르고 있다.

"프레디, 내가 말했잖아. 분명히 여자라니까."

내 말에 프레디와 올리비아가 '또 개소리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이 많이 따갑다.

"잘 들어봐, 프레디. 내가 합리적이고 매우 정확한 의심을 이야기 할게."

"...그래, 어디 해 봐라."

그래도 들어는 주겠다는 프레디에게 손가락을 하나씩 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첫째, 그레고리가 [다형체]가 사용 가능한 위계의 마법사라는 점."

색적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도, 디스펠만 안 당하면 어떤 모습으로도 변환 가능한 마법.

다른 성별로도 변환이 가능한 [다형체]를 사용할 수 있다면 성별을 속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다형체]로서는 임신등이 불가능하고 했으니, 문란한 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있는 그레고리에게 사생아 논란이 없는 것도 이해는 가지.'

프레디의 말로는 몇 번 정도 찾아왔다고 들었지만, 로마노프와 그레고리가 단호하게 아니라고 일축했다고 말했다.

본래 성별이 여성인 그레고리가 [다형체]로 변화해서 여성이랑 잠자리를 가졌으니, 확신이 가능한 것이겠지.

"둘째, 프레디, 그레고리의 알몸을 본 사람이 있어?"

"마르스는 있었지, 그리고 여성들도 도련님의 알몸을..."

"[다형체]가 사용 가능한 위계에 오르기 전까지는?"

없을 거다.

한 명을 제외하면.

"...마르스가 어린 시절에 우연히 봤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을 입혀 줄 하녀도 들이지 않았네."

'역시.'

"보면 안 되니까,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거야."

이쯤 되면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셋째,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의심하는 내 촉.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촉은 확실하거든. 믿어도 좋아, 그레고리가 여자라는 것에 내 두 불알을 걸겠어."

소피아에게도 이야기하자, 멍청한 짓은 줄이기로 했지만, 이런 작은 정보라도 정확한 것을 얻는다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좋아, 나중에라도 그레고리의 성별이 정확해지는 날에는 신혁, 네가 거세되는 날이 될 거야."

'올리비아... 이미 자르는 걸로 확정하고 말하네..'

분명 초반의 인상은 덜렁이 였는데, 알고 보면 참으로 괴팍한 성격을 가졌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덜렁대는 것 같다.

그녀의 '정말로 자를 거야'라고 말하는 눈빛에 조금은 쪼그라 들었다.

"이봐, 주인장. 빈방과 음식을 줘."

우리가 쉽게 의심 받지 않도록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술집의 문이 열리면서 눈에 띄는 여성이 들어왔다.

"아이고.. 손님 죄송하게 됐수다. 방이 꽉 찼어요. 식사는 되는데, 드릴까?"

대화 중에도 주변에 신경을 쓰던 우리는 갑자기 들어온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고, 상체를 완전히 가릴 수 있는 로브를 입고 있던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 [염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신혁, 이=""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인물이지?=""/>

<응, 난="" 본="" 적="" 없어.="" 프레디,="" 너는?=""/>

<나도다. 방을="" 찾는="" 걸="" 보면="" 타지의="" 인물이겠지,="" 왕국의="" 인물인가?="" 곧="" 분위기도="" 보러="" 갈="" 생각인데,="" 그녀가="" 인물이라면="" 그곳의="" 예상은="" 할="" 수="" 있겠어.=""/>

"진짜로 여자라니까, 분명해."

"그래, 그때 가서 자르지 말아 달라고 빌지나마."

"두 사람 다 그만 좀.."

입으로는 술 자리의 안줏거리 같은 대화를 하면서.

"아! 한 손님이 쓰는 방이 이인실이기는 한데, 손님. 한 번 같은 방에 묶어도 되는지 물어나 볼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명만 사용하고 있는 이인실.

'그거 아마도 올리비아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술집의 주인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손님, 아무래도 저 손님이 방을 찾고 있나 봐요. 죄송하지만, 같은 방을 쓰게 할 수 있을까? 여성 혼자 노숙하게 하는 것도 조금 그래서 말이죠."

초면의 인물을 우리와 같은 방에 머물게 하는 건 위험하다.

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잠입을 하고 있는 우리랑 같은 방이라니, 있을 수 없다.

"그... 죄송해요. 제가 처음 보는 사람과 머물기에는 낮을 가려서요."

올리비아가 떨리는 눈으로 정말, 낮을 가린다는 듯이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고환을 자르겠다고 말한 사람이라고는 못 느낄만한 연기력이다.

"하하하! 손님들도 여행자지? 가끔 모르는 사람과 여행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지! 어이, 손님! 손님은 어디로 가나?"

"...왕국."

목적지는 비슷하다.

여기서 동숙을 허락하면 동행까지 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잠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거절해야...'

"그러면 결정이네! 자, 자! 서로 인사들 하세요, 손님들! 하하하!"

주인이 소리 높여서 웃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우리의 의견을 듣지는 않고.

연한 보랏빛의 머리결, 같은 색의 감정을 찾기가 힘든 눈.

"실례, 라파엘이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동숙을 허락해 줘."

어딘가 성숙해 보이면서 이질적인 인상을 주는 라파엘이 인사를 했다.

"하..하, 신ㅎ.. 신입니다."

"프로이드라고 불러 주십시오."

"리아예요.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미리 짜둔 가명을 말하면서, 술집겸 여관의 주인의 오지랍으로 생긴 이상한 동행과의 첫 인사를 마쳤다.

☆☆☆

"당신들은 왕국 어디로 가는 거지?"

뭐지? 이 줏대없는 말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소피아와 시연이 들었어도 이 초면부터 반말을 내뱉는 라파엘에게 유교사상을 들먹였을 것 같다.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아닌가? 많아 보이기도 하네?'

나이가 많아도 초면부터 반말은 아니다.

심지어 '당신들'은 반말보다는 존칭에 비슷하니 줏대가 없는 거다.

'하지만 난 여성에게는 한없이 약해지지.'

"여기 리아가 음유시인이어서요. 저희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로 그녀를 혼자 여행보네기가 불안해서 따라온 겁니다. 그냥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죠."

올리비아가 '음유시인이라니?! 그딴 건 못 들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지만,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데에, 음유시인만한 직업이 없을 거다.

"그런가? 그러면 실례만 아니라면, 저도 여행에 따라고 싶어. 아.. 미안, 내가 요즘 사람들 말투를 잘 몰라, 누군가와 길게 이야기해 본적도 오랜만이고."

실례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라니, 마치 자신은 요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쓰으읍... 뭔가 있어, 이 여자.. 뭔가가 내 촉을 자극하고 있어.'

위험을 안고 동행할 만큼, 중요한 무언가를 가진 여자인가, 아니면 그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행을 두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전에는 이러다가 크게 혼이 났다.

이 파티의 리더가 나라고 해도, 파티원의 의견은 존중하고 모아야 한다.

'음.. 감정이 죽은 듯한 눈동자, 가면을 쓴것 같은 표정 없는 얼굴.'

"예, 좋아요! 동행이 생기면 새롭게 노래할 이야기도 생기겠죠, 그렇지? 리아?"

믿자, 이 촉을 한번 믿자.

정말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잘하면 잠입에 가장 큰 수확이 될 만한 것을 라파엘이라는 여자가 가지고 있다.'

올리비아가 죽이겠다는 듯이 바라봐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두... 두="" 분..!="" 한="" 번만="" 제="" 판단을="" 믿어="" 주세요!=""/>

<알았어, 신혁.="" 죽기전의="" 소원이라면="" 들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올리비아, 신혁도="" 우리에게="" 큰="" 피해를="" 줄="" 만한="" 선택은="" 안="" 하니까,="" 한="" 번만="" 참아봐.=""/>

'올리비아, 예전의 덜렁이로 돌아와줘...'

또 쪼그라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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