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기적의 수호자
* * *
"하아..."
"라인하르트, 상태는 어떠신가요."
라인하르트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부좌를 튼 그의 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고, 라인하르트는 숨으로 내뿜으면서 몸의 열기를 낮추려 하고 있었다.
"하아... 로젤리아님,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안정화가 된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투력에 비해서 마력이 너무 약한 것 갔습니다."
다시 한번 숨을 내뱉었다.
"하아... 투력이 마력을 잡아 먹으려들고, 마력은 거기에 저항하면서 싸우고 있으니, 몸에서 열이 식지가 않고 있습니다. 하아..."
'영약'을 섭취한 그는 마력을 깨우쳤다.
처음에는 즉시 안정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마법을 몇 번 정도 사용한 후에 나오기 시작했다.
적은양의 마력이 돌연, 의지를 가진 것처럼 폭주하기 시작하더니, 끝에는 투력과 섞여 들면서 라인하르트의 몸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온몸의 핏줄이 부풀어 올랐고, 일부분은 터지면서 다량의 출혈이 생겼다.
그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안정을 취하면서 마력의 안정, 투력과 마력을 같이 다루면서 둘이 조화롭게 있도록 하는 수행등을 했다.
'그녀는 이런걸 실시간으로 하고 있던 것인가요.'
역시 괴물이 맞다.
투력과 마력이 날뛰기에는 적은양이거나, 아니면 둘의 균형을 맞춰주고 서로가 흐르는 길목을 나누어서 만나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고 했다.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적은양이라고 하기에는 라인하르트는 이미 상당한 양의 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그의 몸에 이제 막, 싹을 틔운 마력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었다.
투력은 분술물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사냥을 시작했고, 마력은 생존을 위해서 맞서 싸웠다.
그 싸움의 여파는 몸의 주인인 라인하르트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두 개의 길목을 나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쏠리고 있습니다. 실전에 투입되는 건, 조금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손톱을 깨물면서 물었다.
"융합은요? 융합은 사용 가능하실 것 같나요?"
초조한 자신의 모습을 보던 라인하르트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두 힘이 지나가는 길목을 하나로 만든 뒤에, 다시 두 힘이 싸우는 것으로 힘들을 폭발시키는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단 한 번. 단 한 번만 사용하는 것으로 목숨이 사라질 겁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여전히 열기가 가득 찬 숨을 내뱉으면서 몸을 진정시켰고.
"솔직히 그런 폭주를 전투에 사용하는 것부터가 미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친 방법... 그 괴물이 정말로 위기 상황일 때나, 아니면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만 사용하던 이유가 있었군요."
감은 눈을 뜨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라인하르트.
"그렇습니다. 사망사유는 아마도 폭주로 인해서 몸이 터져 버리거나, 아니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적에게 공격당하여 죽던가, 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뒤가 없는 힘을 마치 뒤가 있는 듯이 사용하는 것에 일말의 감탄을 느꼈지만, 그 힘이 자신을 노릴 것을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았다.
"알겠어요, 융합은 무리가 있겠네요. 지금은 마력을 빠르게 키울 방법을 고안 해요. 버틀러에게 마법서를 구하라고 시킬게요."
'회복마법에 능한 이유가 있었네요.'
몸이 터지지 안도록 조절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시간으로 몸을 회복시키며 사용하는 건지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전에 머리와 몸이 작별 인사를 할 것 같다.
지금의 왕국은 마법국보다 빠르게 전선이 뒤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한시라도 빨리 라인하르트를 투입시켜야 해요.'
"라인하르트, 조금만 더 고생해 줘요."
"알겠습니다, 로젤리아님."
자신은 다음 목표를 정하고서, 라인하르트에게 지시를 했다.
'우선은 배신자들의 처단이에요.'
엘프들.
실험재료로도 충분하고, 하이엘프 파니아와 더불어서 마왕의 편에 섯다는 명복을 씌워서 노예로 잡아들이면 병사들의 욕구해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지속되는 패배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 주기에는 딱 좋은 용도네요.'
"버틀러."
<예, 말씀하시지요.="" 여왕전하.=""/>
"엘프들의 왕국, 그린우드로. 노예사냥이에요."
<오호호, 알겠습니다.="" 실력="" 좋은="" 사냥꾼들을="" 추려서="" 그린우드를="" 치겠습니다.=""/>
☆☆☆
팔랑.
"앨리스, 넌 초대용사가 어떤방법으로 수백 년 동안 살아 있었다고 생각해?"
팔랑.
"...내 생각으로는 노화를 늦추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나 소피아정도의 마법사면 여신의 [창조]이외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니까."
'뭐든지라...'
불안한 눈으로 내 손을 바라보는 앨리스가 추가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네가 만든 [환생]같이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개발한 거 아닐까? 나는 단순한 젊음의 유지와 장수가 고작이니까!"
팔랑.
앨리스의 눈은 여전히 내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손에 들린 이 질 나쁜 종이로 만들어진 질 나쁜 책자에 고정되어 있는 거지만.
팔랑.
'조금만 눈을 돌리면 금세 이딴 걸 만든다니까..'
앨리스의 수제작.
종이부터 내용물까지 made in 앨리스.
내용물은...
"변태야, 언제까지 이런 거나 그릴래?"
책자를 말아서 앨리스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그... 취미생활.. 크흠! 취미 탄압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
빡!
"꺼억!"
"취미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종이를 처 만들더니, 내용물로 소년을 그려 넣어?! 심지어 뒤로 갈수록 퀄리티가 발전하는 것이 더 짜증나!!"
이것이 마탑에 있던 책장에서 깔끔하게 보관되어 있던 책들이 불타서 미친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이제는 구하지 못하니까 자급자족을 시작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와 후자 전부인 것 같다.
"나는 노예에게도 취미를 즐길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자유를 존중하라!!"
...혹시 기억을 지울 때에 실수로 자재심도 같이 지운 건가?
"애초에 여기는 내게 너무 가혹해! 소년 비율이 너무 높아! 아슈키나 삼손같은 가짜소년은 둘째치면서 참을 수 있어도 헨리왕자는 진짜잖아!!"
뭘 더 지워 버린 거지?
개념인가? 개념을 같이 지워 버려서, 이렇게 개념이 없는 건가?
"소피아, 너라면 참을 수 있어? 취향인 소년들이 있는 이 천국에서 참으라니... 그냥 '쿠헤헤.' 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그림만 그리는 정도면 많이 참았다고, 이 할미는 생각한단ㄷ... 앗! 잠시만요! 태우지 마세요! 차라리 고문을 하세요!"
'어쩐지.. 이 질 나쁜종이에 물 묻은 자국이 있더라.'
물이 아니라 침이었다.
"제발 그거 하나 만큼은! 그림 하나 만큼은 허락해주세요!"
앨리스가 내 다리를 붙잡고 처절하게 애원한다.
요즘 바쁘다고 너무 풀어 주었나 싶어진다.
책자를 다시 앨리스에게 안겨 주었다.
"감사합니다. 크흡! 감사.."
"됐고, 초대가 살아 있었던 건, 역시 마법 덕분이라는 거지?"
책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은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리고 로자리아의 '기적'도 한 목 했을 거라고 봐. 10위계 이상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고, '기적'도 10위계 위에 있는 신의 영역이니까."
'정말로 소중하게 안고 있네.'
"그것이 10위계를 넘어선 11위계라고 한다면, '기적'은 저주처럼 달라붙어서 목적을 이루려 하겠지. 마왕과 관련된 일이었나? 아마도 그는 이곳의 독기가 전부 사라지기 전까지는 죽지도 못했을 거야."
나름 대마법사라고 불릴 만 한 것 같다.
마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다양한 방향성으로 볼 수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내게 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고,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자주 질문을 하고 답을 듣고는 했다.
"에이 씨! 생각하니까, 또 짜증나네!"
뻑.
"억!"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쪽으로 관련돼서 가장 뛰어난 인물과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지.'
가름에게 와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중심부에서 할 일이 있다며, 나중에 오겠다고 했다.
'안 찾아왔서 삐진 것처럼 보인다고, 닉스가 말했지...'
처음 만났을 때는 중후한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냥 덩치 커다란 댕댕이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앨리스. 고문 받으러 가자?"
"어..? 나 어제도 도망치다가 잡혀서 고문 받지 않았어?"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고.
"네가 차라리 고문을 하라며, 데카라비아가 많이 좋아하겠다. 그렇지?"
데카라비아의 말로는 고문도 연속적으로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파니아의 고문은 다음에 한다고 했다.
'원래는 앨리스도 효과가 극에 달하는 시기에 하려고 했지.'
어쩌겠는가, 직접 고문해 달라는데.
'해 줘야지, 그리고 사실 저 책도 시간이 지나면 재로 변하도록 했지.'
품에 돌아온 소중한 자급자족의 결정체가 재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해라.
'나 행복하게.'
"네... 이것만 용서해준다면 얼마든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앨리스가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 맞다! 마왕성 청소가 아직이더라? 고문 다 받으면 다시 청소하고. 알았지? 헤헤."
해맑은 미소로 앨리스에게 전했고, 그녀는 더욱 울상이 되면서 대답했다.
"소피아.. 칫솔이라도 바꿔줘.. 흐윽! 솔이 다 나가서 청소가 안 돼.."
"응? 싫은데?"
"어흑..!"
☆☆☆
"언니, 요즘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시네요."
"응!"
리리스의 질문에 나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휴식이 좋기는 좋나 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쉬고 싶다던 오빠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내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자, 시연도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소피아가 기분 좋으니까, 우리가 뭔짓을 해도 그냥 넘어갈 거지?"
"응!"
다시 활기차게 대답했다.
"...응?"
실수했다.
"잘했어, 남편. 언질은 받았어."
"아니, 그거까진.. 읍!"
내가 반박하려고 하자, 리리스가 내 입을 손가락으로 막아 버렸다.
"언니, 후후후. 휴식은 끝났으니까, 한동안 다시 떨어져야하죠?"
"음... 아마도?"
"..."
말없이 미소만 짖고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식으로 될지 말이나 해주면 좋으련만...
물어봐도 분명히 '비밀'같은 말만 돌아오겠지.
나도 깨우칠건 깨우친다.
"하아... 알았어.."
더 정확히는 포기할 거는 포기하는 거겠지.
☆☆☆
"..."
그레고리와 마르스, 그리고 또 한 명의 전력.
"서로 인사 좀 하지, 앞으로 협력할 사이들인데."
"...왕국에는 정말로 전력이 없나."
연한 보랏빛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
부드럽고 성숙해 보이는 외모는 사뭇 그녀를 온화해 보인다는 생각을 들게 했지만, 감정이 매마른 듯한 눈동자 때문에 오히려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한 부분을 제외하면 인족과 차이가 없는 외견을 하고 있는 종족.
"천사족, 라파엘이여. 왕국에도 쓸 만한 전력은 하나 정도는 있다네."
"그 하나는 어째서 이곳에 없지?"
라파엘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건 여왕의 개여서 말이지... 여왕의 명령이 아니고서야, 이곳에 올 생각조차 안 할 거다."
"위기감이 없네, 이런 상황에서 서로 협력하지는 못할망정, 강자끼리 떨어져 있다니."
"크하하하핫!! 그래, 경력자의 말이 옳지. 뭐,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개가 사라지면 가장 위험해지니까."
자신이 마왕이라도 방패가 사라진다면 로젤리아를 먼저 노릴 것이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방패를 남에게 넘겨줄 만큼 멍청이는 아닌 듯싶다.
"천사족... 전하, 천사족은 전멸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옛 이야기에 나오는 천사족 라파엘이라... 이거 애비ㅅ... 아버지가 알았다면, 환장을 하고 실험체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마법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 마왕', 최강의 패.
"크크큭, 전멸이라... 전멸은 맞지. 지금까지 라파엘을 제외한 어떠한 천사족도 찾을 수가 없었고, 그녀조차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것을 억지로 깨운 것이니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는 말에 라파엘의 표정에 미세한 금이 갔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호오... 감정이 매말라 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본래 주어진 시간을 뛰어넘어서 생존한 대가.
그 대가로 넘어간 감정조차, 그녀의 종족 앞에서는 돌아오는 것 같았다.
'깨웠다는 말에도 조금은 틀린 부분이 있지, 왕성 지하 깊은 곳에서 멍하니 살아만 있었으니까.'
닳고 닳아버린 감정에 종족에 대한 슬픔과 마왕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버린 외톨이.
'지인, 연인, 가족, 마지막으로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까지.'
모든 것을 잃어 버린채로 멍하니 살아만가던 존재.
동료가 그녀를 생각해서 내린 '기적'은 '저주'가 되어,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으면 죽지도 못 하는 안타까운 마지막 천사.
'대신 '기적'이 있기에 마왕에 대한 히든카드가 될 수 있지.'
성녀가 죽기전에 그녀에 내린 저주와 같은 축복.
마왕이 어떤 인물이든 상관없이, 단순하게 '마왕' 그 자체에만 해당되는 기적.
"마지막으로 묻겠어, 마법국의 국왕."
"뭔가."
"마수도 아니고, 이계에서 소환한 존재를... 너희가 뿌린 씨앗에 내가 협력해야 할 이유는?"
당연하게 하나다.
"'마왕'이기 때문이다. 라파엘, 네가 가장 혐오하는 마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족의 한과 동료의 죽음에 대한,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라파엘이 자리에 일어나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협력하지."
"하하하! 한과 죽음인가... 그래,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충분하다. 자, 다시 한번 인사해라. 자네의 새로운 '동료'다."
마왕에게서 시간을 번 덕분에 얻은 '기적'의 수호자가 깨어났다.
* * *